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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 시대 부락연맹의 수장으로 쟁기와 보습을 발명했고, 백가지 풀을 맛을 보아 약초를 가려냈기 때문에 ‘신농씨(神農氏)’로 불려졌다. 이 밖에도 ‘염제(炎帝)’, ‘적제(赤帝)’, ‘열산씨(烈山氏)’라고 불린다.
 
상고 시대 부락연맹의 수장으로 쟁기와 보습을 발명했고, 백가지 풀을 맛을 보아 약초를 가려냈기 때문에 ‘신농씨(神農氏)’로 불려졌다. 이 밖에도 ‘염제(炎帝)’, ‘적제(赤帝)’, ‘열산씨(烈山氏)’라고 불린다.
  
 
그는 또한 시장을 개설하고, 도기(陶器)와 활을 발명했다고 한다. 또 황제(黃帝)의 부족과 연맹하여 고대 화하족(華夏族)의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 때문에 오늘날까지 중국인들은 스스로 염황(炎黃)의 자손(子孫)이라고 한다.
 
그는 또한 시장을 개설하고, 도기(陶器)와 활을 발명했다고 한다. 또 황제(黃帝)의 부족과 연맹하여 고대 화하족(華夏族)의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 때문에 오늘날까지 중국인들은 스스로 염황(炎黃)의 자손(子孫)이라고 한다.

2017년 6월 12일 (월) 15:1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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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 시대 부락연맹의 수장으로 쟁기와 보습을 발명했고, 백가지 풀을 맛을 보아 약초를 가려냈기 때문에 ‘신농씨(神農氏)’로 불려졌다. 이 밖에도 ‘염제(炎帝)’, ‘적제(赤帝)’, ‘열산씨(烈山氏)’라고 불린다.

그는 또한 시장을 개설하고, 도기(陶器)와 활을 발명했다고 한다. 또 황제(黃帝)의 부족과 연맹하여 고대 화하족(華夏族)의 형성에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이 때문에 오늘날까지 중국인들은 스스로 염황(炎黃)의 자손(子孫)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