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을 노래하다. 세시봉"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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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시봉의 문화적 가치)
(음악감상실 세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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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프랑스어를 상호로 사용한다는 자체가 '''한걸음 더 앞서는 문화를 향유'''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br/>프랑스어를 상호로 사용한다는 자체가 '''한걸음 더 앞서는 문화를 향유'''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다른 음악감상실과 다를 수 있었던 것은 음악만 들려준 것이 아니라 당시 젊은이들이 갖고 있었던 음악 이외의 문화를 적극 이끌어내는 차별적인 프로그램들을 요일별로 신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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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음악감상실과 다를 수 있었던 것은 음악만 들려준 것이 아니라 당시 젊은이들이 갖고 있었던 음악 이외의 문화를 적극 이끌어내는 차별적인 프로그램들을 요일별로 신설
  
  

2019년 6월 10일 (월) 15:08 판

음악감상실 세시봉

1963년에 서울 무교동에 자리 잡은 음악감상실 '세시봉'은 이후 한국의 통기타 음악 역사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음악 인프라였다.
상호인 세시봉은 프랑스어인 C'est Si Bon(영어로 it's so good)에서 따온 것인데
영어만 사용해도 문화적으로 앞서가는 분위기를 연출하던 당시
프랑스어를 상호로 사용한다는 자체가 한걸음 더 앞서는 문화를 향유하는 곳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다른 음악감상실과 다를 수 있었던 것은 음악만 들려준 것이 아니라 당시 젊은이들이 갖고 있었던 음악 이외의 문화를 적극 이끌어내는 차별적인 프로그램들을 요일별로 신설


[1]

세시봉의 OOO

세시봉의 음악

세시봉과 유신정권

세시봉의 문화적 가치

월요일에는 '성점(星占) 감상실'로 수용자들이 신보를 듣고 곡에 별의 숫자로 등급을 매기는 수용자 비평 마당이었다. 수요일에는 '시인만세'라는 프로가 있었는데, 시인을 불러서 자작시를 낭송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금요일에는 '대학생의 밤'이 마련되어 대학생들의 라이브 노래 마당이 펼쳐졌다. 이 무대에는 각 대학의 통기타 마니아들이 모여들어 첨단 유행인 통기타 음악을 들려줬는데 하나같이 기존 관행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지닌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송창식과 윤형주가 1968년 한국 최초의 통기타 듀엣 트윈폴리오를 결성하면서 세시봉은 한국 사회에서 통기타 음악의 문을 연 장소가 되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세시봉이란 업소명은 현재에 통기타음악을 상징하는 용어로 쓰이고 있다.

1964년 10월 경복궁 광장에서 공연했던 영국의 리버풀 비틀스를 초대해 라이브 공연을 할 정도로 세시봉은 문화적으로 앞서가는 참신하고 대담한 운영으로 음악감상실 문화를 선도하게 된다.

방송 관계자들은 '쓸 만한' 물건을 헌팅할 수 있는 중요한 장소로 이곳을 드나들었으며, 이들의 측면 지원에 의해 세시봉의 스타들은 이후 1970년대 새로 등장한 통기타 음악의 스타로 가요계를 석권한다. 1960년대 중반의 음악감상실은 한국의 클럽 문화의 시초라고 할 수 있으며, 이곳을 토양으로 통기타 음악은 새로운 음악 문화로 피어오르게 된다

세시봉의 쇠퇴, 그리고 오비스캐빈

주석

  1. 김형찬의 대중음악 이야기 <4> 음악과 함께 한 다방의 역사- 음악감상실 세시봉

참고문헌

"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윤형주 조선일보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