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죽서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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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kseoru Pavilion

Jukseoru Pavilion is an open pavilion that overlooks at the Osipcheon Stream. Due to the beautiful scenery that surrounds the pavilion, it is regarded as one of the Eight Scenic Views of Gwangdong or Eastern Korea. It is estimated that the pavilion was built around 1266 by Yi Seung-hyu, a renowned scholar of Goryeo. Later, it was repaired in 1403 during the reign of King Taejong of Joseon. It was much loved by scholars who came to enjoy the scenery and composed poetry in their admiration.


정의

삼척시 오십천 절벽위에 자리잡고 있는 관동팔경으로 꼽히는 누각. 창건연대와 창건자는 알 수 없으나 1266년에 이 누각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으로 추정된다. 빼어난 경치로 많은 문인들의 시의 배경이 되었으며 여러 번 고쳐 세워진 것으로 보아 강원도 내에서 위상이 대단했음을 몰 수 있다. 누각 내에도 유명 학자, 문인들의 시가 적힌 현판 여러 개 걸려있다.

위치

내용

창건연대와 이름의 유래

죽서루는 '서루(西樓)'라고도 불렸는데, 죽장사(竹藏寺)의 서쪽에 위치했다고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또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여기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있다.[2]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후기 이승휴(1224-1300)가 1266년에 죽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3] 1403년에 삼척 수령 김효종이 고쳐서 삼척부의 객사였던 진주관의 부속건물로 사용했다. 사신관들을 위한 연회와 접대를 위한 장소로, 삼척 지방 양반 사대부와 문인들의 정신 수양을 위한 공간으로도 사용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이후에도 여러 차례 고쳐 세워 졌다는 기록이 있어 죽서루가 갖는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4]

형태와 위치

강원도 삼척시 성내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송강 정철이 소개한 관동팔경에 속하며 태백산 오십천의 동쪽 암벽 위에 위치하고 있다. (죽서루와 오십천이 함께 명승 제28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긴 장방형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5] 자연 바위 그대로를 주춧돌로 이용했다는 것이 특징이다. 바위를 깎아내지 않고 그 표면의 울퉁불퉁한 모양대로 기둥을 깎아내어 맞물리게 했다.(그랭이질이라는 전통 건축 기법)

죽서루 내의 시문(詩文)

죽서루에는 임금의 어제시를 비롯하여 유명한 문인들의 한시 편액이 곳곳에 붙어있다. 1959년 9월 17일 사하라 태풍으로 많이 유실되고 현재는 27점이 남아있다. 이 중에서 이율곡, 정조어제시, 이구의 작품은 1992년 김충현이, 정철의 작품은 홍태의가 다시 써서 붙였다. 몇가지를 살펴보면, '죽서루'와 '관동제일루'는 숙종 대의 삼척부사였던 이성조가 쓴 것이다.'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헌종 대의 삼척부사 이규헌이 쓴 것이다.[6]

죽서루 팔영(八詠)

자연의 승경을 여덟 가지 경치로 구분하여 쓴 시를 팔경시라 한다. 죽서루를 주제로 한 팔경시도 '죽서루 팔영(八詠)이라하여 몇 가지가 전해져온다. 안축(1282~1348)의 <삼척서루팔영(三陟西樓八詠)>과 이를 모델로 한 이곡(1503~1549)의 <차안근제축삼척팔영운(次安謹軸三陟八詠韻)>, 이달충(1309~1385)의 <삼척팔영(三陟八詠)>, 이곡의 시를 모델로 한 서거정(1420~1488)의 <삼척축서루팔영(三陟竹西樓八詠)>, 성현(1439~1504)의 <삼척죽서루팔영(三陟竹西樓八詠)>, 신광한(1484~1555)의 <죽서루팔영(竹西樓八詠)> 등 이 있다.[7]

용문(龍門)과 성혈(性穴)

죽서루 동쪽에 행초서로 '용문(龍門)'이라 생긴 음각글씨가 있는 바위이며 그 위에 성혈을 암각한 것이 남아있다. 성혈은 여성의 생식기 모양의 구멍을 의미한다. 성혈은 풍요와 생산을 의미하는 선사시대의 상징물이지만 조선시대에 와서 남자아이를 낳게 해달라고 비는 곳으로 변모하게 된다. 용문바위위 성혈은 지금 3~4cm, 깊이 2~3cm 정도의 크기로 10개가 뚫려있다.[8]

사진자료

가상현실

주석

  1. '삼척죽서루', 문화재청, 2017년 4월 5일
  2. 안세현, 「麗末鮮初 八景詩의 창작 양상과 삼척 竹西樓 八詠」, 『강원문화연구』 제34집, 2015, 9쪽
  3. '삼척 죽서루', 문화재청, 2017년 4월 5일
  4. 문지은, 「생활을 바탕으로 한 죽서루, 경포대의 누정건축 공간해석에 관한 연구 : 조선시대 회화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5. 문지은, 「생활을 바탕으로 한 죽서루, 경포대의 누정건축 공간해석에 관한 연구 : 조선시대 회화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6. 삼척시, 「삼척 죽서루 정밀실측조사보고서」, 1999, 39쪽
  7. 박연호, 「竹西樓의 공간 특성과 그 의미」, 『강원문화연구』28, 2009, 3쪽
  8. 삼척시, 「삼척 죽서루 정밀실측조사보고서」, 1999, 59-60쪽
  9. 문지은, 「생활을 바탕으로 한 죽서루, 경포대의 누정건축 공간해석에 관한 연구 : 조선시대 회화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58쪽
  10. 문지은, 「생활을 바탕으로 한 죽서루, 경포대의 누정건축 공간해석에 관한 연구 : 조선시대 회화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58쪽
  11. 문지은, 「생활을 바탕으로 한 죽서루, 경포대의 누정건축 공간해석에 관한 연구 : 조선시대 회화를 중심으로」, 중앙대학교 대학원 석사학위논문, 2010, 59쪽
  12. 삼척시, 「삼척 죽서루 정밀실측조사보고서」, 1999, 3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