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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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6월 23일 (일) 18:0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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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침입한 사건이다.

내용

역사적 배경

병인사옥이라고도 한다. 1866년 초에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금압령으로 프랑스신부와 조선인 천주교신자 수 천 명이 학살된 병인박해가 발생했다. 이때 프랑스선교사는 12명 중 3명만이 화를 면할 수 있었는데 이 3명 중, 리델이 중국으로 탈출해 주중 프랑스 함대사령관 구스타브 로즈에게 박해 소식을 알리면서 병인양요가 발생하게 되었다.

경과

1866.10.16 강화부 점령 1866.10.26 문수산성 전투 1866.11.09 정족산성 전투 1866.11.10 프랑스군 함대 철수

결과

프랑스군은 강화도 철수 시 고도서 345권과 은괴 19상자 등 문화재를 약탈해갔고 방화로 인해 외규장각 전각이 소실되었다.

[1] [2]

강화 고려산 백련사와 병인양요 이야기

인천의 전통사찰과 불교미술(3)(103쪽)에 의하면 ...

"1866년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를 침법해 온 병인양요 때, 장녕전에 봉안되어 있던 숙종영조어진백련사에 잠시 보관한 적이 있었다. 당시 강화유수 이인기가 장계를 올려 장녕전에 모셨던 주 어진을 서문 밨에 있는 백련사로 옮겨 놓았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다시 어진은 왕명으로 서울의 궁궐로 옮기게 되었다. 고재형이 지음 심도기행에는 1866년 9월 프랑스 군이 쳐들어 와 강화성이 함락되었을 때, 별검 최씨가 두 어진을 받들고 서울로 들어와 궁 안의 진전에 종안하였다고 하였다."

멀티미디어

연표

전자지도

네트워크 그래프

... 등

참고문헌

기여

주석

  1. 병인양요,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 외규장각 의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