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오버워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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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milkjh2889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5월 29일 (월) 16:1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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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자연환경과 기후

멕시코는 국토면적이 한반도의 약 9배이며 세계 제 14위에 해당하는 크기이다. 북으로는 미국과 3,200㎞의 국경을 접하고 있으며, 남으로는 과테말라, 벨리즈와 접하고 있다. 해안선의 길이 9,220㎞로 캐나다에 이어 아메리카 대륙에서 두번째 규모이다. 시에라 마드레 산맥이 남북으로 국토 중앙을 통과하고, 국토의 절반 이상이 고지대로 중심부는 해발 평균 2,600m, 북부는 평균 1,200m에 달한다.

멕시코는 지체(地體) 및 지형의 구조로 보아 북아메리카의 일부이다. 한편 민족적으로는 라틴아메리카이며 남·북 아메리카의 육교부(陸橋部)를 차지하므로 중앙아메리카의 일부라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대(大)·소(小) 앤틸리스제도(諸島)는 구조상 중앙아메리카의 습곡축(褶曲軸)과 같은 계열에 속하므로, 중앙아메리카와 서인도제도를 총칭하는 중부아메리카에서 주요부를 차지한다.

중생대 말기부터 제3기에 걸쳐 일어난 태평양 연안의 폭넓은 신기(新期) 습곡산맥은 시에라마드레오리엔탈·시에라마드레옥시덴탈의 두 산맥을 이루고, 파나마지협(地峽)까지 불안정한 환태평양조산대(環太平洋造山帶)를 형성하며 뻗어 있다. 태평양 쪽의 시에라마드레옥시덴탈산맥은 해발고도가 평균 2,000m, 멕시코만(灣) 쪽의 시에라마드레오리엔탈산맥은 평균고도 1,500m로 동쪽이 낮고 서쪽이 높은 지형을 이룬다. 그 사이에 있는 평균고도 1,700m의 멕시코고원은 국토의 1/3 을 차지하면서, 시에라마드레델수르산맥과 하나가 되어 파나마에 이른다.

한편, 북위 19°선을 따라 동서로 횡단하는, 구조상 중앙아메리카 습곡산맥의 연장인 대·소 앤틸리스제도가 유카탄반도에서 시작하여 트리니다드토바고에 이른다. 4,000m 이상의 설선을 안고 있는 오리사바(5,700m), 포포카테페틀(5,452m), 이스탁시우아틀(5,286m), 톨루카(4,677m), 콜리마(3,960m), 마린치(4,460m) 등의 화산들은 멕시코고원에 있다.

이처럼 높은 산들 덕분에 멕시코의 심장부는 아나와크고원(‘물가 근처’라는 뜻)에 형성되었는데, 이 지역에 인구의 반 이상이 집중 거주하며 생산물도 전국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 멕시코 남부지역에는 종종 지진이나 화산폭발 등이 발생한다. 전국토의 39%는 초원, 26%는 산림지대이며 경작이 가능한 땅은 13%이다.

기후는 고도에 따라 상이한 기후분포를 보이고 있으며 해안지대는 열대성 기후특징이 나타난다. 국토의 대부분이 고원성이고 북회귀선이 남북을 가로지르기 때문에, 열대기후권이 전국토의 25%, 건조기후권이 50%, 온대기후권이 25%를 차지한다. 연중 고온다습한 기후로, 중부 고산지대는 우기를 제외하고는 건조한 온대성 기후이며 나머지 국토는 아열대 기후이다. 즉 멕시코의 중심부는 열대 고원의 상춘(常春) 지역이며, 특히 1,500m 내외가 최적온(最適溫) 지대를 이룬다. 해발 2,300m에 위치한 멕시코시티의 경우 연중 온난한데, 6~9월에는 우기로서 기온이 온화하고, 11~1월은 기온이 낮은 겨울 기후이며, 나머지 2~6월은 한국의 봄 기후와 비슷하다. 연중 기온은 평균 5℃-25℃ 사이이다. 강우량은 일반적으로 적은 편인데, 북서부는 435mm, 북동부는 685mm, 중부는 879mm, 남부는 1,301mm 정도의 분포를 나타낸다. 그러나 설선을 지닌 화산의 융설수(融雪水)가 풍부하며 옥토를 만들고, 멕시코분지에서는 수향(水鄕)의 경관을 나타내는 지역도 볼 수 있다.

식물상(狀)은 고원으로 인한 수직적 분포와 건조기후에 지배된다. 1,000m 이하 열대우림지역은 혹서로 인해 코코야자, 바나나, 카카오 등 열대작물 재배에 알맞고, 1,500m 내외는 참외, 귤, 망고 등의 열대 과일과 커피, 사탕수수 등이 재배된다. 2,000m 내외의 온대에서는 멕시코인(人)의 주식인 옥수수가 산출되며, 멕시코 분지를 둘러싼 3,000m 이상의 산지는 냉대지역으로 소나무가 무성한 국유림지대가 전개된다. 그밖의 건조지역은 선인장 등이 자라는 황지(荒地)를 이룬다. 특히 북부고원지대는 반사막의 경관을 나타내며 식물은 거의 없다.

멕시코는 고지 및 공해로 인해 산소가 여타지역보다 25~30% 부족해 간혹 두통, 미열, 구토 등 고지증세로 시달리거나 공해 때문에 먼지에 의한 알레르기로 고생하기도 한다.

역사

멕시코에는 1521년 에스파냐인(人)에게 정복되기 훨씬 이전부터 원주민 인디언에 의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이미 BC 2000년 경 옥수수 농사를 기반으로 한 촌락이 각지에 발달하였으며, 기원 전후에 이르러서는 멕시코 중앙고원의 테오티우아칸에 태양과 달의 거대한 피라미드가 구축되었고, 이것을 중심으로 도시가 건설되었다. 한편 남쪽에서는 멕시코만(灣) 기슭부터 오악사카계곡(溪谷)에 걸친 일대에 몬테알반의 사포텍문명, 유카탄반도에 마야문명이 꽃피고 있었고, 900년 경에는 군국주의적인 국가가 성립되었다.

멕시코 중앙고원의 톨텍, 마야에 뒤이은 치첸이차, 욱스말 등의 후기 고전문명이 융성하였으며, 멕시코분지 일대에서는 아스텍제국(帝國)이 일어나 1325~1521년까지 약 200년간 테스코코호(湖) 주변을 도읍으로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1521년 8월 에스파냐 탐험대의 장군 코르테스에게 정복된 후 300년 동안, 에스파냐의 ‘누에바에스파냐’로서 에스파냐의 부왕(副王)이 통치한 식민지 시대가 전개되었다. 16세기는 식민과 포교(布敎)의 시기, 17세기는 혼혈화가 진전된 시기, 그리고 18세기는 고유의 혼혈문화를 형성하여 독립의 기운을 북돋운 시기이다.

에스파냐로부터의 독립은 1810년 9월 16일 혁명적 애국자인 미구엘 이달고의 유명한 ‘돌로레스의 부르짖음(Grito de Dolores)’을 계기로 기운이 일기 시작하여, 1821년 멕시코의 독립을 인정한 코르도바 협정에 의해서 성립되었다. 독립 이후 식민지시대가 끝나고 전제정치로부터 공화제로 이행하여 대통령이 선출되었으나, 중앙집권주의파와 연방주의파의 대립이 심하여 혼란에 빠졌다. 1846년의 실정(失政)은 미국과의 전쟁을 초래하여, 2년 후에는 영토의 북부를 상실하는 결과를 빚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연방주의파는 인디언 출신의 베니토 후아레스를 대통령으로 하여 자유주의 헌법을 반포하고, 정교분리(政敎分離)를 단행하여 교회의 재산을 몰수하는 등 이른바 레포르마(개혁)를 달성하고 근대화를 지향하였다. 1861년 외채(外債) 지불문제로 무력간섭이 비롯되어,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가(家)의 막시밀리안이 괴뢰황제(傀儡皇帝)로 부임했으나 총살당함으로써 간섭정치는 종지부를 찍었다. 뒤를 이어 독재자 포르피리오 디아스가 등장했으나, 대토지소유제 강화가 기폭제가 되어 1910년 11월 20일 멕시코 혁명으로 돌입하였다.

1917년 2월 5일 국가의 권리와 농민·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된 혁신적인 신헌법이 시행되었다. 오늘날 멕시코의 근대국가로서의 번영은 이 신헌법을 바탕으로 구축된 것이다. ‘아시엔다’라 불리던 대토지 소유제도는 농지개혁으로 무너졌다. 이후 1934년 취임한 대통령 카르데나스에 의하여 집단농장의 창설, 멕시코노동자총연합(CTM)의 결성, 석유업의 국유화 등이 추진됨으로써 경제가 크게 발전하였다. 1970년대 중반 집권한 대통령 포르티요 때에는 주요 산유국 중 하나가 되면서 빠른 경제 발전을 보였다. 그러나 지나친 외채 부담과 1980년대 중반이후 계속되는 유가 하락으로 인해 포르티요 이후의 대통령들은 심각한 재정 부담을 안게 되었다. 이후 집권한 대통령들은 재정적 위기상황의 개선과 광범위한 경제부양을 위해 노력하였는데, 1980~90년대에 걸쳐 국영기업의 민영화를 포함한 시장 자유화 조치도 그 일환으로 행해졌다.

카를로스 살리나스(1988∼1994) 대통령은 과감한 시장개방정책을 추진하고 국영기업을 민영화시켰으며 석유노조를 약화시키고, 1994년에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체결하였다. 1994년 3월 차기 대통령으로 유력시되던 집권 제도혁명당(PRI)의 여당 후보인 콜로시오가 유세 도중 저격되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고, 또 1994년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Chiapas)주에서 사파티스타(Zapatista) 원주민 농민들의 무장투쟁이 발생하면서 정치적으로 극도의 혼란스러운 시기에 접어들었으며, 12월에는 외환위기까지 맞이하게 되었다. 미국과 IMF 등 국제금융기구에 의해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으나 이후 사회양극화와 이에 따른 생활고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었다.

2000년 7월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보수계 야당인 국민행동당(PAN)의 빈센테 폭스(Vicente Fox)가 당선되어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71년 만의 역사적인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오랜 일당 지배의 역사가 끝난 것이기도 하다. 제도혁명당(PRI : Partido Revolucionario Institucional)은 1929년 3월 국가혁명당(PNR), 1938년8월 멕시코혁명당(PRM)에서 1946년 1월 18일 현재의 당명으로 개정하였으며, 1929년부터 2000년까지 장기집권하면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온 정당으로, 멕시코혁명의 이념을 표방하며 중도 및 좌우익 공존 노선과 문화개방정책을 추진해왔다. 1994년에 발생했던 경제 위기와 장기집권에 따른 보수화, 부정부패 및 정경유착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으로 2000년 대선에서 패배하였으며, 이후 2006년에도 재집권에 실패하였다. 국민행동당(PAN : Partido de Acción Nacional))은 중산층, 실업가 등으로 구성되어 중도우익 성향의 정당으로, 1995 년도 지방선거에서 선전하면서 제1야당의 위치를 고수한 이래 정치적 비중이 확대되다가 2000년 7월 대선 승리로 사상 처음 집권하였으나, 2003년 총선 및 2004년 지방선거에서는 패배하여 상하원 제2당에 그쳤다.

그러나 폭스정권에 이어 2006월 7월 대선에서도 치열한 경합 끝에 국민행동당(PAN)의 펠리페 칼데론(Felipe Calderon)이 좌파진영의 로페즈 오브라도르(Lopez Obrador) 민주혁명당(PRD) 후보를 가까스로 누르고 대통령으로 취임하였다. 오브라도르 진영은 부정선거였다는 이유로 선거결과에 불복, 전면 재검표를 요구하면서 장기 농성 및 대규모 군중시위가 발생하고 급기야는 대안정부까지 구성됨으로써, 칼데론 신정부에 큰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하였다. 대선에서 36% 미만 지지 확보, 상하원 과반수 의석 미달 등에 직면한 칼데론 신정부는 정치기반의 취약성과 정통성 시비를 극복 해야 한다는 난제를 안고 출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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