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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fs유재혁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6월 18일 (화) 09:0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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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란(박경련)백석이 사모하던 여인이다. 본명은 박경련이지만 백석이 불렀던 이름인 란(蘭)으로 더 알려져 있다.

내용

생애

백석과 란

백석은 이 아리따운 처녀 박경련을 마나고 나서 몇 개월 후 <조선일보> 1936년 2월 21일자에 산문 <편지>를 발표했다.[1]

남쪽 바다ㅅ가 어떤 날근 항구의 처녀 하나를 는 좋하하엿습니다.머리가 깜아코 눈이 크고 코가 놉고 목이 패고 키가 호리낭창하엿습니다. 그가 열 살이 못 되여 젊디젊은 그 아버지[2]는 가슴을 알어 죽고 그는 아름다운 젊은 홀어머니와 둘이 동지섯달에도 눈이 오지 안는 따뜻한 이 날근 항구의 크나큰 기와집에서 그늘진 풀가티 살어왓습니다.


신현중

  • 백석의 친구 '신현중'
  • 혼인 후의 삶

박경련과 혼인한 그는 1940년 모든 걸 접고 통영으로 귀향한다. 통영에서 그는 요시찰 인물로 늘 감시를 받으며 살았다고 한다. 해방 직후 다시 상경해 조선통신사에 들어가 언론인으로 재기하려 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진주로 내려와 진주여중교장을 시작으로 교직 생활을 시작한다. 1950년 통영여중학교 교장, 1952년 통영중학교 교장, 1956년 부산남중학교 교장, 1962년 부산여중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경남·부산의 교직을 두루 거치면서 청마 유치환, 초정 김상옥과도 자주 어울렸다고 한다. 1980년에 영면했다. 고인의 뜻에 따라 통영 미륵산 아래 묻혔다. 1982년 ‘대한민국건국훈장 애족장’을 서훈 받고, 1993년 대전국립묘지 애국지사 제2묘역으로 옮겨졌다.[3]

신현중의 배신과 둘의 결혼

멀티미디어

이미지

동영상

전자지도

네트워크 그래프

... 등

참고문헌

기여

주석

  1. 안도현 「백석평전」 74p
  2. 박경련의 아버지 박성숙은 폐결핵으로 일찍 죽었는데, 박경련도 이때 몸이 허약하고 폐가 좋지 않아 이화여고보를 한 해 휴학한 적도 있었다.(안도현 「백석평전」 74p)
  3. 국민일보 [정철훈의 백석을 찾아서] 명정골 비화… ‘고백’ 한번 못한채 절친한 신현중에게 ‘사랑’ 빼앗겨

프로필 사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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