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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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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년 (한·일 병합 1년 전) 일본인 승려 내전(內田, 우찌다) 불관(佛觀, 붓깐)이 금강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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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9년 (한·일 병합 1년 전) 일본인 승려 내전(內田, 우찌다) 불관(佛觀, 붓깐)이 금강선사(錦江禪寺)로 창건.
(錦江禪寺)로 창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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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3년 대웅전 및 요사 준공
대웅전 및 요사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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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19년 범종 및 범종각 준공
범종 및 범종각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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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1년 대문 석주 준공
대문 석주 준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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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2년 개축
개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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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5년 해방 직후 대한민국 정부로 이관.
해방 직후 대한민국 정부로 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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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5년 전북종무원에서 매입.
전북종무원에서 매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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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0년 남곡 스님께서 동국사(동국은 "해동대한민국"의 준말로 우리의 절이란 뜻)로 개명하고,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로 증여.
남곡 스님께서 동국사(동국은 "해동대한민국"의 준말로 우리의 절이란 뜻)로 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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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등록문화재 제64호 등록(문화재청)
하고,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로 증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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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석가삼존불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213호 지정)<ref>http://dongguksa.or.kr/ 동국사연혁,동국사<references/>
등록문화재 제64호 등록(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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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삼존불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213호 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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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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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6월 8일 (금) 22:2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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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동국사(東國寺)는 1909년 일본 승려 선응불관 스님에 의해 창건되어 일제 강점기 36년을 일인 승려들에 의해 운영되다가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이하여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온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그리하여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 시대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에 남겨진 유일의 일본식 사찰로 대웅전과 요사채가 실내 복도로 이어진 것이 특징이다. 화려한 단청이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아무런 장식이 없는 처마와 대웅전 외벽에 많은 창문이 일본색을 나타낸다. 조계종 제 24교구인 고창 선운사의 말사로, 동국사의 대웅전은 2003년 7월에 국가지정 등록 문화재 제 64호로 지정되었다.

동국사의 본래 이름은 금강선사였다. 금강선사는 1909년 일본인 승려 내전불관이 군산에 포교소를 개설하면서 창건한 조동종 사찰이다. 일본불교는 1877년 부산의 개항과 함께 일본정부의 요청에 의해 들어오기 시작하였다. 가장 먼저 정토진종 대곡파가 포교를 개시하였고 1904년 군산에도 포교소를 개설하였고 일연종이 뒤를 이었다. 결국 일본 불교가 우리나라에 진출한 까닭은 순수한 불교포교가 목적이 아니라 한국을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일본정부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하겠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일본 불교를 포교하고자 1911년 6월 3일자로 사찰령을 발령한다.

이를 계기로 일본불교는 전국에 별원, 출장소, 포교소 등을 건립하였다. 금강선사가 창건되기 전 군산에는 본원사, 군산사, 안국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금강사를 창건한 내전불관은 1909년 당시 77세의 고령으로 군산 지역을 순석하다가 군산 일조통에 있던 집을 빌려 포교소를 개설하였다. 1913년 7월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금의 동국사을 신축하였다. [1]

건립 경위 및 변천

일본 조동종(曹洞宗) 승려 우치다[內田佛觀]가 1909년 8월 군산의 외국인 거주지 1조 통에 세운 금강선사[금강사]에서 출발한다. 당시 금강사는 '포교소'였다. 우치다는 1913년 군산 지역 대농장주 구마모토[熊本利平]와 미야자키[宮岐佳太郞] 등 29명의 신도에게 시주를 받아 지금의 자리에 대웅전과 요사를 신축하였다.

1945년 해방과 함께 미군정에 몰수됐다가 1947년 불하받아 사찰 기능을 재개하였다. 1955년에는 '불교 전북 종무원'에서 인수하여, 김남곡[1913~1983]이 이제부터는 ‘우리나라[海東國] 절이다’는 뜻으로 '동국사'로 등기를 내고, 1970년 대한 불교 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에 등록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2]

현황(조직, 시설 현황 포함)

등록 문화재 제64호인 대웅전은 건축 자재를 일본에서 가져와 지었으며, 우리나라의 전통 사찰과 달리 승려들의 거처인 요사와 복도로 연결된 것이 특징이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정방형 단층 팔작 지붕 홑처마 형식의 대웅전은 일본 에도 시대 건축 양식으로 외관이 무척 단조롭다. 지붕 물매는 75도의 급경사를 이루고, 건물 외벽에 창문이 많으며, 용마루는 일직선으로 한옥과 대조를 이룬다.[3]

관련 문화재

동국사는 2003년 7월 15일 문화재청에 의해 등록 문화재 제64호로 지정되었으며, 대웅전에 있는 석가 삼존불상은 전라북도 유형 문화재 제213호로 지정되었다가 2011년 9월 5일 복장유물과 함께 보물 제1718호[군산 동국사 소조석가여래삼존상 및 복장유물]로 승격되었다.[4]

건립 경위

군산 내항 뜬다리는 간만의 차를 극복하고 대형 선박을 접안시켜 일본으로의 미곡 반출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1926년~1932년 사이에 진행된 제3차 축항 공사를 통해 3기가 설치되었다. 사이토 마코토[齋藤實] 조선 총독이 1926년 기공식에 참석할 만큼 제3차 축항 공사는 군산을 통해 미곡 수탈을 확대하고자 했던 일본 제국주의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제3차 축항공사에서 완공된 뜬다리를 통해 썰물 때에도 3천 톤급 기선 3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었다. 또한, 1936년~1938년 사이에 진행된 제4차 축항 공사에서 뜬다리 1기를 추가 설치하여 3천 톤급 기선 6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도록 하였다.[5]

연혁

  • 1909년 (한·일 병합 1년 전) 일본인 승려 내전(內田, 우찌다) 불관(佛觀, 붓깐)이 금강선사(錦江禪寺)로 창건.
  • 1913년 대웅전 및 요사 준공
  • 1919년 범종 및 범종각 준공
  • 1921년 대문 석주 준공
  • 1932년 개축
  • 1945년 해방 직후 대한민국 정부로 이관.
  • 1955년 전북종무원에서 매입.
  • 1970년 남곡 스님께서 동국사(동국은 "해동대한민국"의 준말로 우리의 절이란 뜻)로 개명하고,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로 증여.
  • 2003년 등록문화재 제64호 등록(문화재청)
  • 2008년 석가삼존불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213호 지정)[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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