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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문』 전1장)
(『혹문』 전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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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氏曰: "於寂然不動之時, 則合萬殊為一本, 而渾然之全體常昭融於方寸之間; 及感而遂通之際, 則散一本為萬殊, 而縱横曲直莫非大用之所流行矣." 又曰: "天理本體, 常生生而無一息之已; 而其大用, 亦無一息不流行乎日用之間."
 
:陳氏曰: "於寂然不動之時, 則合萬殊為一本, 而渾然之全體常昭融於方寸之間; 及感而遂通之際, 則散一本為萬殊, 而縱横曲直莫非大用之所流行矣." 又曰: "天理本體, 常生生而無一息之已; 而其大用, 亦無一息不流行乎日用之間."
  
人惟不察於此. 是以汨<sub>音骨</sub>於人欲而不知所以自明, 常目在之而眞若見其參於前倚於衡也, 則成性存存而道義出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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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惟不察於此. 是以汨<sub>音骨</sub>於人欲而不知所以自明, 常目在之而眞若見其參於前、倚於衡也<ref><논어> <위령공> 5. 立,則見其參於前也;在輿,則見其倚於衡也。夫然後行。</ref>, 則成性存存而道義出矣<ref><주역> <계사상> 7. 成性存存,道義之門。</ref>."
 
:問: "如何是體, 如何是用?" 朱子曰: "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便是用. 赤子匍匐將入井, 皆有怵惕惻隱之心, 只此一端體用便可見. 如喜怒哀樂是用, 所以喜怒哀樂是體."
 
:問: "如何是體, 如何是用?" 朱子曰: "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便是用. 赤子匍匐將入井, 皆有怵惕惻隱之心, 只此一端體用便可見. 如喜怒哀樂是用, 所以喜怒哀樂是體."
 
:○若'見其參前', '倚衡', 此豈有物可見? 但凡人不知省察, 常行日用毎與是徳相忘, 亦不自知其有是也. 今所謂'顧諟'者, 只是心裏常常存著此理, 一出言, 一行事, 皆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初豈實有一物之可見其形象耶?
 
:○若'見其參前', '倚衡', 此豈有物可見? 但凡人不知省察, 常行日用毎與是徳相忘, 亦不自知其有是也. 今所謂'顧諟'者, 只是心裏常常存著此理, 一出言, 一行事, 皆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初豈實有一物之可見其形象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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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 "'天未始不為人而人未始不為天', 何也?" 朱子曰: "只是言人性本無不善, 而其日用之間莫不有當然之則, 所謂天理也. 人若毎事做得是, 則便合天理. 天人本一理, 若理㑹得此意, 則天何嘗大, 人何嘗小也?"
 
:問: "'天未始不為人而人未始不為天', 何也?" 朱子曰: "只是言人性本無不善, 而其日用之間莫不有當然之則, 所謂天理也. 人若毎事做得是, 則便合天理. 天人本一理, 若理㑹得此意, 則天何嘗大, 人何嘗小也?"
 
:○天即人, 人即天. 人之始生, 得於天也; 既生此人, 則天又在人矣. 凡語言動作視聽, 皆天也; '顧'是常要看得光明燦爛, 照在目前.
 
:○天即人, 人即天. 人之始生, 得於天也; 既生此人, 則天又在人矣. 凡語言動作視聽, 皆天也; '顧'是常要看得光明燦爛, 照在目前.
:○黄氏曰: "本文三引書, 乃斷章取義, 以明經文明明徳之意. 其言之序, 則自淺而深, 最爲有用. '克明徳'者, 泛言之; 曰'顧諟', 則言明之之功; 曰'明命', 則言明徳之故; 次之曰'峻徳', 加一峻字, 則又見明徳之極, 乃所謂'止於至善'者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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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黄氏曰: "本文三引<書>, 乃斷章取義, 以明經文明明徳之意. 其言之序, 則自淺而深, 最爲有用. '克明徳'者, 泛言之; 曰'顧諟', 則言明之之功; 曰'明命', 則言明徳之故; 次之曰'峻徳', 加一峻字, 則又見明徳之極, 乃所謂'止於至善'者也."
  
 
===傳二章===
 
===傳二章===

2020년 3월 23일 (월) 23:58 판

해제

의적단의 강독 작업 일환으로 개설한 페이지이다.
저본은 <사서장구집주대전>, <대학혹문>이다.

원문

讀大學法

1.
朱子曰。語孟。隨事問答。難見要領。惟大學。是曾子述孔子說古人為學之大方。而門人又傳述[1]以明其旨。前後相因。體統都具。翫味此書。知得古人為學所向。却讀語孟。便易去聲入。後面工夫雖多。而大體已立矣。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논어>와 <맹자>는 일에 따라 문답한 것이므로 핵심을 이해하기 어렵다. 오직 <대학>만은 증자가 공자께서 옛 분들이 학문한 큰 방법에 대해 말씀하신 것을 조술하고 [증자의] 문인들이 다시 전술하여 그 뜻을 밝힌 것이어서, 앞뒤로 [맥락이] 서로 연결되고 체계가 모두 갖춰져 있으니, 이 책을 완미한다면 옛 분들의 학문적 지향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나서 <논어>와 <맹자>를 읽는다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뒤에 공부가 비록 많지만, 큰 얼개는 이미 세워진 것이다."

○看這一書又自與看語孟不同。語孟中。只一項事。是一箇道理。如孟子說仁義處。只就仁義上說道理。孔子答顔淵以克己復禮。只就克己復禮上說道理。若大學。却只統說。論其功用之極。至於平天下。然天下所以平。却先須治國。國之所以治。却先須齊家。家之所以齊。却先須修身。身之所以修。却先須正心。心之所以正。却先須誠意。意之所以誠。却先須致知。知之所以至。却先須格物。
이 책을 읽는 것은 <논어>나 <맹자>를 읽는 것과는 또 절로 다르다. <논어>와 <맹자>에서는 한 가지 사건이 하나의 도리일 뿐이니, 예를 들어 맹자께서 인의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은 그저 인의의 차원에서 도리를 말한 것이고, 공자께서 안연에게 '극기복례'라고 대답해주신 부분은 그저 '극기복례'의 차원에서 도리를 말씀하신 것일 뿐이다. [그러나] <대학>은 統說(한 텍스트가 하나의 체계를 설명)일 뿐이다. 최종적 공효를 말한다면 '평천하'에 이르지만, 천하가 평안하기 위해서는 먼저 '치국'해야 하고, 나라가 다스려지기 위해서는 먼저 '제가'해야 하며, 집안이 가지런해지기 위해서는 먼저 '수신'해야 하고, 자신이 수양되기 위해서는 먼저 '정심'해야 하며, 마음을 바루기 위해서는 먼저 '성의'해야 하고, 뜻을 진실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치지'해야 하며, 앎을 지극하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격물'해야 한다.
○大學。是為學綱目。先讀大學。立定綱領。他書皆雜說在裏許。通得大學了。去看他經。方見得此是格物致知事。此是誠意正心事。此是修身事。此是齊家治國平天下事。
<대학>은 학문의 綱目(큰 줄기와 세목)이다. 먼저 <대학>을 읽어 강령을 강령(큰 줄기)를 굳게 세우고 나면, 다른 책들은 모두 그 안의 여러 설일 뿐이다. <대학>에 통달하고 나서 다른 경전을 보아야 비로소 '이건 격물치지의 일이고, 이건 성의정심의 일이며, 이건 수신의 일이고, 이건 제가치국평천하의 일'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今且熟讀大學作間架。却以他書。塡補去。
지금 우선 <대학>을 숙독하여 얼개를 세우고, 다른 책으로 [세목을] 채워나가라.
○大學。是通言學之初終。中庸是指本原極致處。
<대학>은 학문의 시작부터 끝까지를 전체적으로 말하고, <중용>은 궁극적인 본원을 가리킨다.
○問欲專看一書。以何為先。曰先讀大學。可見古人為學首末次第。不比他書。他書非一時所言。非一人所記。
물었다: "한 책만 집중해서 보고자 한다면, 무슨 책을 먼저 봐야합니까?" 말씀하셨다: "먼저 <대학>을 읽으면 옛 분들이 학문 하신 단계를 알 수 있으니, 다른 책이 비길 바가 아니다. 다른 책은 어느 한 시점에 말한 것도 아니고, 한 사람의 기록도 아니다."

2.
又曰。看大學。固是着逐句看去。也須先統讀傳文敎熟。方好[2]從頭仔細看。若專不識傳文大意。便看前頭亦難。
또 말씀하셨다: "<대학>을 읽을 때에는 진실로 구절마다 읽어나가야 하지만, 그래도 먼저 傳文을 통독해 익숙하게 해야 하니, 그래야 비로소 처음부터 자세하게 읽을 수 있다. 만일 傳文의 대의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면, 앞부분 읽는 것도 어려울 것이다."

3.
又曰。嘗欲作一說。敎人只將大學一日去讀一遍。看他如何是大人之學。如何是小學。如何是明明德。如何是新民。如何是止於至善。日日如是讀。月來日去。自見所謂溫故而知新。須是知新。日日看得新。方得。却不是道理解[3]新。但自家這箇意思。長長地新。
또 말씀하셨다: "전에 한 마디 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저 <대학>을 하루에 한 번 읽게 해, <대학>에서 무엇이 '大人의 학문'이며, 무엇이 '소학'이며, 무엇이 '명명덕'이며, 무엇이 '신민'이며, 무엇이 '지어지선'인지 보게 하고자 하였다. 날마다 이처럼 읽어 시간이 흐르면 절로 이른바 '온고이지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반드시 새로운 것을 알아야 하니, 날마다 새로운 것을 읽어야 옳다. 도리가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자신의 이 생각이 길이길이 새로워지는 것이다."

○讀大學初間也只如此讀後來也只如此讀。只是初間讀得。似不與自家相關。後來看熟。見許多說話。須著如此做。不如此做自不得。
<대학>을 읽을 때 처음에도 이렇게 읽고 나중에도 이렇게 읽으라. 처음에 읽고는 나와는 상관이 없는 것 같겠지만, 나중에 읽는 것이 익숙해지고 나면 여러 말이 이렇게 해야 하거나 절로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음을(여러 말대로 해야 하거나 절로 여러 말대로 하지 않을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讀書。不可貪多。當且以大學為先逐段熟讀精思。須令了了分明。方可改讀後段。看第二段。却思量前段。令文意連屬音燭。却不妨。
책을 읽을 때 많이 읽기를 탐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우선 <대학>을 우선으로 해서 단락마다 자세히 읽으며 정밀히 생각해보아야 한다. 명명백백하게 이해하고서야 다음 단락을 읽어야 하고, 두 번째 단락을 읽을 때 앞 단락을 생각해 문의가 연결되게 해야 문제가 없을 것이다.
○問大學稍通。方要讀論語。曰且未可。大學稍通。正好着陟略反。下同心精讀。前日讀時。見得前未見得後面。見得後未見得前面。今識得大綱體統。正好熟看。讀此書。功深則用博。昔尹和靖見伊川半年。方得大學西銘看。今人半年。要讀多少書。某且要人讀此是如何。緣此書却不多。而規模周備。凡讀書。初一項。須著十分工夫了。第二項。只費得八九分工夫。第三項。便只費得六七分工夫。少間讀漸多。自通貫他書。自著不得多工夫。
물었다: "<대학>은 조금 알겠으니, 이제 <논어>를 읽으려고 합니다." 말씀하셨다: "아직 안 된다. <대학>을 조금 알게 되었다면, 이제는 집중해서 정독할 때다. 전에 읽었을 때에는 앞부분만 이해하고 뒷부분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뒷부분만 이해하고 앞부분을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지금 [<대학>을 조금 알게 되어] 큰 얼개와 체계를 이해했다면, 이제는 숙독할 때다. 이 책을 읽는 공부가 깊어진다면 공효가 넓어질 것이다. 전에 윤화정은 이천 선생을 뵌 지 반 년이 돼서야 <대학>과 <서명>을 볼 수 있었다. 요즘 사람들은 반 년만에 많은 책을 읽으려고 한다. 나는 우선 사람들로 하여금 이 책만 읽게 하는데, 어째서일까? 이 책이 분량은 많지 않지만 체계를 빠짐없이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무릇 책을 읽을 때, 처음에는 100%로 노력해야 하지만, 두 번째에는 8-90% 노력만 필요로 하고, 세 번째에는 6-70%의 노력만 필요로 하니, [그렇게 되면] 잠깐 사이에 점차 많은 것을 읽게 되고 다른 책을 절로 이해하게 되어, 절로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게 될 것이다."
○看大學。俟見大指。乃及他書。但看時。須是更將大段分作小段。字字句句。不可容易放過。常時暗誦黙思反覆硏究。未上口時。須敎上口。未通透時。須敎通透。已通透後。便要純熟。直待[4]不思索時。此意。常在心胸之間。驅遣不去[5]。方是。此一段了。又換一段看。令如此數段之後。心安理熟。覺工夫省力時。便漸得力也。
<대학>을 읽을 때 요지를 이해하고서 다른 책을 읽어야 한다. 다만 [<대학>을] 읽을 때 다시 큰 단락을 작은 단락으로 나눠야 하고, 글자마다 구절마다 쉽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 평소에 암송하기도 하고 묵묵히 생각하기도 하며 반복해서 탐구해, 입에 붙지 않았을 때에는 입에 붙게 해야 하고, 완전히 이해되지 않았을 때에는 완전히 이해되기 해야 한다. 완전히 이해된 이후에는 숙달되게 해서, 사색하지 않을 때에도 이 뜻이 늘 마음에 있어 쫓아버릴 수 없어야 옳다. 이 단락이 끝나고서 다음 단락을 읽어 이와 같이 여러 단락을 하고 나면, 마음은 안정되고 도리는 익숙해질 것이니, 공부에 힘이 덜 든다고 느낄 때 점차 힘을 얻게 될 것이다.

4.
又曰。大學是一箇腔子。而今却要塡敎平聲他實。如他說格物。自家須是去格物後塡敎他實著。誠意亦然。若只讀得空殼子。亦無益也。
또 말씀하셨다: "<대학>은 腔子이니, 지금 그것을 메워 충실하게 해야 한다. 예를 들어, <대학>에서 '격물'을 말하면, 스스로 '격물' 뒤에서 메워 그것을 채워야 한다. '성의'도 마찬가지이다. 만일 그저 빈 껍데기만 읽는다면 역시 무익할 것이다."

○讀大學。豈在看他言語。正欲驗之於心如何。如好好色惡惡臭。試驗之吾心。果能好善惡惡如此乎。閒居為不善。是果有此乎。一有不至。則勇猛奮躍不已。必有長上聲進。今不知如此。則書自書我自我。何益之有。
<대학>을 읽는 [관건이] 어찌 그 문장을 읽는 데 달려있겠는가? 다만 내 마음에 어떠한지 증험해보려는 것이다. [<대학>에서] '아름다운 여색을 좋아하듯, 악취를 싫어하듯이 한다'[6]고 하는데, [이것을] 한 번 자기 마음에 증험해보면 과연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하기를' 이처럼 할 수 있는가? [<대학>에서 '소인은] 혼자 있을 때 불선한 짓을 한다'[7]고 하는데, 과연 [나에게] 이런 점이 있는가? 하나라도 지극하지 못한 점이 있으면 용맹하게 분발하기를 그치지 않아야 반드시 장구적인 진전이 있을 것이다. 만일 이와 같음을 알지 못한다면 책은 책이고 나는 나일 것이니, 무슨 보탬이 있겠는가?

5.
又曰。某一生。只看得這文字透。見得前賢所未到[8]處。溫公作通鑑。言平生精力。盡在此書。某於大學亦然。先須通此。方可讀他書。
또 말씀하셨다: "나는 일생토록 이 글을 철저하게 읽어 이전 현인들이 알지 못했던 바를 알게 되었다. 사마온공은 <자치통감>을 짓고서 '평생의 정력이 모두 이 책에 있다'고 말했는데, 내가 <대학>에 있어서 역시 그러하다. 먼저 이 책에 통달하고서 다른 책을 봐야 한다."

6.
又曰。伊川舊日。敎人先看大學。那時。未解說。而今有註解。覺大段分曉了。只在仔細看。[9]
또 말씀하셨다: "이천 선생께서 전에 사람들로 하여금 먼저 <대학>을 읽게 하셨지만 그때에는 [<대학>을] 풀이하지 않으셨다. 지금은 [이천 후학의] 주해가 있어 [의미가] 상당히 밝혀졌다고 생각하니, 그저 자세하게 읽는 데 달렸을 뿐이다."

7.
又曰。看大學。且逐章理會。先將本文念得。次將章句來解本文。又將或問來參章句。須逐一令平聲。下同記得。反覆尋究。待他浹洽。旣逐段曉得。却統看溫尋過。
또 말씀하셨다: "<대학>을 볼 때 우선 장마다 이해해야 한다. 먼저 본문을 생각해보고서 다음으로 장구로 본문을 해석해보고, 다시 <혹문>으로 장구에 참조해보라. [그리고 나서] 하나하나 기억나게 하고 반복 탐구해 그것이 [마음에] 젖어들고 나서, 단락마다 이해되면, 전체적으로 읽으며 복습해보라."

8.
又曰。大學一書有正經有章句有或問。看來看去。不用或問。只看章句便了。久之又只看正經便了。又久之自有一部大學在我胸中。而正經亦不用矣。然不用某許多工夫。亦看某底不出。不用聖賢許多工夫。亦看聖賢底不出。
또 말씀하셨다: "<대학> 한 텍스트에는 正經(경전 원문), <章句>, <或問>이 있다. 여러 번 읽다보면 <혹문>은 필요하지 않고 <장구>만 읽어도 될 것이며, [읽기가] 오래되면 다시 경전 원문만 읽어도 될 것이다. [읽기가] 더 오래되어 저절로 <대학> 한 부가 마음속에 있게 되면, 경전 원문도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의 많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내 것을 알 수 없고, 성현의 많은 공부를 하지 않으면 성현의 것을 알 수 없을 것이다."

9.
又曰。大學解本文未詳者。於或問中詳之。且從頭逐句理會。到不通處却看。或問乃註脚之註脚。
또 말씀하셨다: "<대학>에서 본문을 해석하다가 자세하지 않은 것은 <혹문> 가운데 상세히 설명하였다. 앞으로 처음부터 구절마다 이해하다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을 만나면 읽어보라. <혹문>은 바로 '주석의 주석'이다."

○某解書不合太多。又先準備學者為去聲他設疑說了。所以致得學者看得容易去聲了。
나는 책을 해설할 때 설명을 너무 많이 해서는 안 되지만, 그래도 배우는 자들이 그에 대해 의심할 것을 먼저 대비해 설명해서 배우는 자들이 쉽게 볼 수 있게 했다.
○人只說某說大學等不略說使人自致思。此事大不然。人之為學。只爭箇肯與不肯耳。他若不肯向[10]這裏。略亦不解致思。他若肯向此一邊。自然有味。愈詳愈有味。[11]
사람들은 그저 내가 '<대학> 등에 대해 설명할 때, 간략하게 설명하지 않아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을 다하지 못하게 한다(상세하게 설명해 해석의 여지를 좁힌다)'고만 말하는데, 이는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들이 학문함은 그저 긍정하냐 긍정하지 않냐를 따질 뿐이다. 그가 만약 이쪽에 대해 긍정하지 않는다면, 간략하게 설명하더라도 생각을 다하지 못하겠지만, 그가 만일 이쪽에 대해 긍정한다면 절로 재미가 있어, 설명이 상세할수록 재미있을 것이다.

大學章句序

1.
大學之書。古之大學所以敎人之法[12]也。蓋自天降生民。則旣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
<대학>은 옛적 태학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던 교법(표준 텍스트)이다. 대개 하늘이 백성을 내리고 나서 이미 인의예지의 성을 주지 않은 경우는 없다.

朱子曰。天之生民。各與以性。性非有物。只是一箇道理之在我者耳。仁則是箇溫和慈愛底道理。義則是箇斷制裁割底道理。禮則是箇恭敬撙節底道理。智則是箇分別是非底道理。凡此四者。具於人心。乃是性之本體。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이 백성을 낳을 때 각각 性을 부여했다. 性은 물건이 아니라 그저 나에게 있는 도리일 뿐이다. 인은 온화하고 자애로운 도리이고, 의는 판단하고 제재하는 도리이며, 예는 공경하고 절약하는 도리이고, 지는 시비를 분별하는 도리이다. 무릇 이 네 가지는 사람의 마음에 갖춰져 있으니, 바로 성의 본모습(本體)이다."
○雲峯胡氏曰。朱子四書。釋仁曰心之德。愛之理。義曰心之制。事之宜。禮曰天理之節文。人事之儀則。皆兼體用。獨智字未有明釋。嘗欲竊取朱子之意以補之。曰智則心之神明。所以妙衆理而宰萬物者也。番易沈氏云。智者。涵天理動靜之機。具人事是非之鑑。
운봉 호씨가 말했다: "주자의 <사서>에서 인은 '마음의 덕이자 사랑의 이치'라고 하고, 의는 '마음의 제재이자 일의 마땅함'이라 하며, 예는 '천리의 절문이며 인사의 의칙'이라고 하니, 모두 體用을 겸한다. [그런데] 유독 智자에만 분명한 해석이 없다. 전에 주자의 생각을 삼가 취해 보충하려고 했다: '智는 마음의 신명이니, 뭇 이치를 신묘하게 [갖추고서]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 파양 심씨가 말하길: '智라는 것은 天理動靜의 기틀을 포함하고, 인사의 시비를 [비추는] 거울을 갖추고 있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書云。惟皇上帝。降衷于下民。若有恒性。六經言性自此始。謂天降生民而與之以性。亦本書之意而言。
신안 진씨가 말했다: "<서경>에서 말하길: '위대한 상제께서 백성들에게 속마음(衷)을 내려주셔서 순히 변치 않는 性을 두셨다'[13]고 하니, 육경에서 性을 말하는 것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대학장구서>에서] '하늘이 백성을 내리고 나서 性을 주었다'고 말한 것 역시 <서경>의 뜻에 근거해 말한 것이다."

然其氣質之稟。或不能齊。是以不能皆有以知其性之所有而全之也。
그러나 품수받은 기질이 혹 일정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性에 있는 [인의예지를] 알고서 이를 온전히 할 수는 없다.

新安陳氏曰。性之所有。卽仁義禮智是也。性無智愚賢不肖之殊。惟氣有淸濁。淸者能知。而濁者不能知。故不能皆知。質有粹駁。粹者能全。而駁者不能全。故不能皆全。知性之所有屬知。全性之所有屬行。知行二者。該盡一部大學。意已寓於此矣。
신안 진씨가 말했다: "'지닌 性'은 곧 인의예지가 이것이다. 性에는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현명한 자와 못난 자의 차이가 없고, 오직 氣에 맑고 탁함의 차이가 있어서, 기가 맑은 자는 지닌 성을 알 수 있지만, 기가 탁한 자는 알 수 없다. 質에는 순수하고 잡박함의 차이가 있어, 質이 순수한 자는 [자신의 성을] 온전히 할 수 있지만, 잡박한 자는 온전히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온전히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지닌 성을 아는 것은 앎(知)에 속하고, 지닌 성을 온전히 하는 것은 실천(行)에 속한다. 앎과 실천(知行) 두 가지는 <대학> 한 부에 완비되어 있으니, 그 의미가 이미 여기에 깃들여져 있다."

一有聰明睿智。能盡其性者。出於其間。則天必命之。以為億兆之君師。使之治平聲下治人同而敎之。以復其性。
총명예지를 갖추고서 자신의 성을 다할 수 있는 자가 혹 한 명이라도 그 사이에서 나오면, 하늘은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뭇 백성의 임금이자 스승(君師)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백성들을 다스리고 가르쳐 자신의 성을 회복하게(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問何處見得天命處。朱子曰。此也如何知得。只是才生得一箇恁地底人。定是為億兆之君師。便是天命之也。他旣有許多氣魄才德。決不但已[14]。必統御億兆之衆。人亦自是歸他。如三代已前。聖人都是如此。至孔子方不然。雖不為帝王。然也閑他不得。也做出許多事來。以敎天下後世。是亦天命也。
물었다: "어디에서 천명을 볼 수 있습니까?"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이것을 또 어찌 알겠느냐? 그저 이런 사람을 낳자마자 반드시 뭇 백성의 임금이자 스승으로 삼는 것, 이것이 '하늘이 명한 것'이다. 그는 많은 기백과 재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절대로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반드시 뭇 백성을 통솔할 것이요, 사람들 또한 스스로 그에게 귀의할 것이니, 삼대 이전의 성인들은 모두 이와 같았다. 공자에 이르러 비로소 그러하지 못했다. 공자의 경우 비록 제왕으로 삼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를 내버려 둘 수 없었고, 그래도 수많은 일을 해내 천하 후세를 가르치게 하셨으니, 이 또한 천명이다."
○新安陳氏曰。聰明睿智。能盡其性者。是就淸濁粹駁不齊中。指出極淸極粹者言之。聰明睿智。生知之聖也。與知其性相應。能盡其性。安行之聖也。與全之相應。常人必先知其性。方可望以全其性。故於中下一而字。聖人合下生知安行。不待知而方全。故只平說。天必命之以為億兆君師。君以治之。師以敎之。變化其氣質。而復還其本性。以上四箇性字。須融貫看透。三代以前。聖賢之君。君師之責兼盡。三代以後。君道有略得之者。而師道則絶無矣。
신안 진씨가 말했다: "'총명예지를 갖추고서 자신의 성을 다할 수 있는 자'는 기질의 청탁/수박이 고르지 않은 사람들 가운데 지극히 맑고 지극히 순수한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다. '총명예지를 갖춘 자'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生知) 성인이니, '자신의 성을 안다'와 호응한다. '자신의 성을 다할 수 있는 자'는 편안히 여겨 행하는(安行) 성인이니, '온전히 한다'와 상응한다. 보통 사람들은 반드시 자신의 성을 알아야 비로소 자신의 성을 온전히 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운데에 '而'자를 두었다. 성인은 원래 태어나면서부터 알고 편안히 여겨 행하니, 보통 사람들처럼 자신의 성을 알고서 비로소 온전히 할 필요가 없다. 그러므로 다만 평이하게 말했다. 하늘은 반드시 그에게 명하여 뭇 백성의 임금이자 스승이 되게 하여, 임금의 자격으로 그들을 다스리고, 스승의 자격으로 그들을 가르쳐 기질을 변화시켜 자신의 본성으로 돌아가게 하였다. 이상 네 번의 性자(仁義禮智之性, 知其性之所有, 能盡其性, 復其性)를 반드시 일관하여 철저히 읽어야 한다. 삼대 이전의 성현이었던 임금들은 임금과 스승의 책임을 모두 지극히 하셨지만, 삼대 이후에는 임금의 도(君道)의 경우에는 이를 대략 얻은 자는 있었지만 스승의 도(師道)의 경우에는 [이를 대략이라도 얻은 자가] 전혀 없었다."

此伏羲神農黃帝堯舜。所以繼天立極。而司徒之職。典樂之官。所由設也。
이것이 복희·신농·황제·요·순이 하늘의 뜻을 잇고 법도를 세운 까닭이며, 사도의 직책과 전악의 관직이 설치된 이유이다.

書舜典。帝曰。契。汝作司徒。敬敷五敎在寬。又曰。夔。命汝典樂。敎冑子。
<서경> <순전>에 "요임금께서 말씀하셨다: '설아! 너는 사도가 되어 공경히 五敎를 펴되, 너그럽게 하라."고 하였고, 또 "기야! 너를 전악으로 임명하니, 冑子[15]를 가르쳐라."라고도 하였다.
○朱子曰。天只生得許多人物。與你[16]許多道理。然天却自做不得。所以必得聖人為之脩道立敎。以敎化百姓。所謂裁成天地之道。輔相天地之宜是也。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하늘은 그저 수많은 인물을 낳고 모든 사람에게 많은 도리를 부여한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작용할 수 없으므로, 반드시 성인을 얻어 그로 하여금 도를 닦고 가르침을 세워 백성을 교화하게 했으니, 이른바 '천지의 도를 재단하고 이루며, 천지의 마땅함을 돕는다'[17]는 것이 이것이다."
○古者敎法。禮樂射御書數。不可闕一。就中樂之敎尤親切。夔敎冑子。只用樂。大司徒之職。也是用樂。蓋是敎人朝夕從事於此物。束得心長在這上面。蓋為樂有節奏。學他底。急也不得。慢也不得。久之都換了他情性。
과거의 교법(교과 과정)인 육예(禮樂射御書數)는 하나라도 빠뜨려서는 안 되는데, 그 가운데 음악의 가르침은 더욱 친절하다. 夔가 冑子를 가르칠 때 단지 음악을 사용했고, 대사도의 직임도 음악을 사용했으니, 대개 사람들로 하여금 하루 종일 이것에 종사하게 해서 마음을 단속해 오래토록 여기에 있게 한 것이다. 대개 음악을 연주하는 데에는 리듬(節奏)이 있으니, 그것을 배울 때에는 급해도 안 되고 느슨해서도 안 된다. [음악을 배우는 것이] 오래되면 그들의 情性을 모두 바꿀 것이다.
○雲峯胡氏曰。司徒之職。統敎百姓。典樂之官。專敎冑子。
운봉 호씨가 말했다: "사도의 직책은 백성을 통솔하고 가르치는 것이며, 전악의 관리는 오로지 冑子만 가르친다."
○新安陳氏曰。上文說其理。此實之以其事。天生民而賦與之。不能敎之。聖君代天立標準。以主敎於上。而設司徒及典樂之官。以掌敎於下。此時敎已立。而敎之法未備。學之名未聞也。
신안 진씨가 말했다: "앞의 글에서 이치를 말했다면, 여기서는 일로 실증한다. 하늘은 백성을 낳고 [성을] 부여하지만, [직접] 가르치지는 못한다. 성군이 하늘을 대신해 표준을 세워 위에서 가르침을 주관하고, 사도와 전악의 관직을 설치해 아래에서 가르침을 관장하게 했다. 이때에는 가르침이 이미 세워졌지만 교법(교육 제도)가 미비했고, '학교'라는 명칭이 아직 들리지 않았다."

2.
三代之隆。其法寖備。然後王宮國都。以及閭巷。莫不有學。人生八歲。則自王公以下。至於庶人之子弟。皆入小學。而敎之以灑上聲又去聲去聲應對進退之節。禮樂射御書數之文。
융성한 삼대에 그 법도가 차츰 갖춰진 연후에, 왕궁(천자의 도성)·국도(제후의 도성)에서 여항(그 외 지방)에 이르기까지 학교가 있지 않은 곳이 없었다. 사람이 태어나 8세가 되면 왕·공 이하로 서인의 자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에 들어가게 해서 쇄소·응대·진퇴의 예절과 육예의 이름을 가르쳤다.

朱子曰。古者小學。已自是聖賢坯樸[18]了。但未有聖賢許多知見。及其長也。令入大學。使之格物致知。長許多知見。[19]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 소학을 [다니면] 이미 성현의 그릇(坯璞)이지만, 성현의 많은 지식(내용물)은 없다. 자라서 태학에 들어가게 해 격물치지하게 해 많은 지식을 기르는 것이다."
○番易齊氏曰。灑掃。內則所謂雞初鳴。灑掃室堂及庭。曲禮所謂。為長者糞。加帚箕上以袂拘而退。以箕自向而扱之之類是也。應對。內則所謂。在父母之所。有命之。應唯敬對。曲禮所謂。長者負劍辟咡詔之。負。置之於背。劍。挾之於旁。口耳之間曰咡。辟咡詔之。傾頭與語。則揜口而對之類是也。進退。內則所謂。在父母之所。進退周旋愼齊。曲禮所謂。凡與客入者。每門讓於客之類是也。禮。習於度數之節文。所以敎之中也。樂。明於聲音之高下。所以敎之和也。射法。一弓挾四矢。驗其中否。以觀德行。御法。一車乘四馬。御者執轡。立於車上。欲調習不失驅馳之正也。書。書字之體。可以見心畫。數。算數之法。可以盡物變。周禮大司徒。所以敎萬民而賓興之者。始以六德。繼以六行。後及於六藝。非八歲以上者。所能盡究其事。不過使曉其名物而已。故上三者言節。有品節存焉。下六者言文。文者。名物之謂也。非其事也。
파양 제씨가 말했다: "'쇄소'는 <내칙>의 이른바 '닭이 막 울거든 집과 뜰에 물을 뿌리고 쓴다'[20], <곡례>의 이른바 '어른을 위해 청소하는 [예절은 반드시] 빗자루를 쓰레받기 위에 두고서 소매로 빗자루 앞을 막고 [쓸면서] 물러나 [먼지가 어른에게 이르지 않게 하며] 쓰레받기를 자신을 향하게 하여 쓸어담든다'[21]는 것 따위가 이것이다. '응대'는 <내칙>의 이른바 '부모·[시부모가 계신] 곳에서 명하시거든 길고 짧게(應·唯) 공경스럽게 대답한다'[22], <곡례>의 이른바 '장자가 칼은 등에 진 듯, 칼을 찬 듯 입가에 대고 말씀하시거든, 입을 가리고 대답한다'[23]'負'는 등에 지는 것이고, '劍'은 옆에 차는 것이다. 입과 귀 사이를 '咡'라고 하니, '辟咡詔之'는 머리를 숙여 그에게 말하는 것이다.따위가 이것이다. '진퇴'는 <내칙>의 이른바 '부모·[시부모가 계신] 곳에서는 진퇴와 행동을 삼간다'[24], <곡례>의 이른바 '무릇 손님과 들어갈 때에는 문마다 손님에게 양보한다'[25]는 것 따위가 이것이다. '예'는 도수의 절차를 익히는 것이니, '中'을 가르치는 과정이고, '악'은 음악의 고하를 밝히는 것이니, '和'를 가르치는 과정이다. 활쏘는 법은 활 하나에 화살 네 개를 가지고서 적중 여부를 시험해 그의 덕행을 살피는 것이다. 수레 모는 법은 한 수레에 말 네 마리를 매고, 모는 사람이 고삐를 쥐고 수레 위에 서서 바른 운전법을 잃지 않기를 연습하려는 것이다. '서'는 글자 쓰는 체계이니, '心畫'[26]를 볼 수 있고, '수'는 계산법이니, 사물의 변화를 다할 수 있다. <주례> <대사도>에 따르면, 만민을 가르치고 우대하는 것 방법은 육덕으로 시작하고 육행으로 이으며 육예에 미치는데,[27] [육예는] 8세 이상인 [아이가] 능히 그(육예) 구체적 일을 모두 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그들로 하여금 그저 사물의 이름을 알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앞의 세 가지(쇄소·응대·진퇴)에서는 '예절(灑掃應對進退之節)'이라고 말했으니 구체적 절차(品節)가 있는 것이요, 뒤의 여섯 가지에서는 '이름(禮樂射御書數之文)'이라고 말했으니, 文이라는 것은 사물의 이름을 말하니, 그 일이 아니다."
○勿軒熊氏曰。按大戴記保傅篇。古者年八歲。出就外舍。學小藝焉。履小節焉。束髮就大學。學大藝焉。履大節焉。註曰小學為庠門。一作虎闈。大學在王宮之東。束髮謂成童。尙書大傳曰。公卿之太子。元士之嫡子。年十三入小學。二十入大學。白虎通曰。八歲入小學。十五入大學。此太子之禮也。按年數互有不同。而朱子獨以白虎通為斷。
물헌 웅씨가 말했다: "<대대례기> <보부>편에 '옛적에 8세가 되면 소학(外舍)에 가서 小藝를 배우고 小節을 실천한다. [成童이 되어] 상투를 묶으면(束髮) 태학에 가서 大藝를 배우고 大節을 실천한다'[28]고 하고, 그 주석에 '소학은 庠門[29]이니, 虎闈[30]라고도 한다. 태학은 왕궁의 동쪽에 있었다. 송발은 성동이다.'라고 하였으며, <상서> 대전에 이르길: '公卿의 태자와 元士의 적자가 13세가 되면 소학에 들어가고, 20세가 되면 태학에 들어간다'고 하고, <백호통>에 이르길: '8세에 소학에 들어가고, 15세에 태학에 들어가니, 이는 태자의 예이다'라고 했다. 살펴보건대, 입학연령이 서로 같지 않은데, 주자께서는 유독 <백호통>을 기준으로 판단하셨다."

及其十有五年。則自天子之元子衆子。以至公卿大夫元士之適音的子。與凡民之俊秀。皆入大學。
15세가 되면 천자의 元子와 衆子로부터 공·경·대부·원사의 적자 및 뭇 백성 가운데 준수한 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태학에 들어가게 해서,

新安陳氏曰。凡民惟賢者得入大學。不比[31]小學。則無貴賤賢愚皆得入也。
신안 진씨가 말했다: "뭇 백성의 경우 오직 현명한 자만 태학에 들어갈 수 있었으니, 소학은 貴賤·賢愚와 관계없이 모두 들어갈 수 있었던 것과는 다르다."

而敎之以窮理正心修己治人之道。此又學校之敎。大小之節。所以分也。
窮理·正心·修己·治人의 도를 가르쳤다. 이것은 또한 학교의 가르침과 대학·소학의 제도가 구분되는 방식이다.

新安陳氏曰。三代有小學大學之敎法。未有書也。天子元子。繼世有天下。衆子建為諸侯。公卿大夫元士適子。將有國家之責。皆在所敎。民之俊秀。他日亦將用之。以佐理天下國家者也。窮理。知之事。正心以下。行之事。
신안 진씨가 말했다: "삼대에는 소학·태학의 교법이 있었지만 이 텍스트는 없었다. 천자의 원자는 대를 이어 천하를 소유하고, 중자는 제후로 세워진다. 공·경·대부·원사의 적자는 장자 국가를 다스릴 책무를 갖게 되니, 모두 가르침을 받아야 할 대상에 속한다. 준수한 백성 역시 훗날 등용되어 천하·국가를 다스리는 데 보좌하는 자이다. 궁리는 앎의 일이고, 정심 이하는 실천의 일이다."

3.
音扶以學校之設。其廣如此。敎之之術。術卽法也。其次第節目之詳又如此。而其所以為敎。則又皆本之人君躬行心得之餘。不待求之民生日用彝倫之外。
저 학교를 설치함에 그 범위가 넓음이 이와 같고, 가르치는 법제의 순서나 절목이 상세함이 또 이와 같았는데, 가르침으로 삼았던 것은 또한 모두 임금이 몸소 실천하고 마음으로 깨닫는 것들에 근본하고, 백성들이 날마다 쓰는 도리 밖에 것은 필요로 하지 않았다.

新安陳氏曰。上言學校施敎之法。此言君身為立敎之本。卽所謂為億兆君師繼天立極者也。躬行心得。謂躬行仁義禮智之道。心得仁義禮智之德。卽行道而有得於心也。彛倫。常理也。
신안 진씨가 말했다: "앞에서는 학교에서 교육하는 방식에 대해 말했고, 여기서는 임금 자신이 가르침을 세우는(즉 교육제도를 만듦과 동시에 교육의 본보기가 되는) 근본이 됨을 말했으니, 곧 이른바 '뭇 백성의 임금이자 스승이 되어 하늘을 잇고 법도를 세운다'는 것이다. '躬行心得'은 몸소 인의예지의 도리를 실천하고, 인의예지라는 덕을 마음으로 터득하는 것이니, 즉 도를 실천해 마음으로 터득하는 것이다. '彛倫'은 일상적인 도리이다."

是以當世之人無不學。其學焉者。無不有以知其性分去聲下同之所固有。職分之所當為。而各俛音免焉以盡其力。
이 때문에 당시 사람들 가운데 배우지 않았던 자가 없었고, [태학에서] 배웠던 자들 가운데 자신의 성에 본래부터 있었던 것과 직분상 마땅히 해야할 것을 알아서 각자 노력해 자신의 힘을 다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雲峯胡氏曰。前說上之所以為敎。此說下之所以為學。
운봉 호씨가 말했다: "앞에서는 윗사람이 가르치는 방식을 말했고, 여기서는 아랫사람이 배우는 방식을 말한다."
○新安陳氏曰。性分固有。卽仁義禮智。是理是體。職分當為。如子職分當孝。臣職分當忠之類。是事是用。知性分職分。是知之事。俛焉盡力。是行之事。與前知性之所有而全之相照應。
신안 진씨가 말했다: "'性分固有'는 곧 인의예지이니, 理이자 體이다. '職分當為'는 자식의 직분은 마땅히 효도해야 하고, 신하의 직분은 마땅히 충성해야 하는 것 등이니, 事이자 用이다. '知性分職分'은 앎의 일이고, '俛焉盡力'은 실천의 일이니, 앞의 '知性之所有而全之'와 호응된다."

此古昔盛時所以治去聲下同隆於上。俗美於下。而非後世之所能及也。
이것이 과거 성대했던 때에 위에서는 통치가 훌륭하고 아래에서는 풍속이 아름다웠던 까닭이니, 후세가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4.
及周之衰。賢聖之君不作。學校之政不修。敎化陵夷。風俗頹徒回反敗。時則有若孔子之聖。而不得君師之位以行其政敎。於是獨取先王之法。誦而傳之。以詔後世。
주 왕조가 쇠퇴하자 성현다운 임금이 흥기하지 않고 교육 정책이 닦이지 않아, 교화는 쇠퇴했고 풍속은 타락했다. 이 때 공자 같은 성인이 계셨지만 임금이자 스승으로서의 지위를 얻어 정치와 가르침을 행할 수 없으셨다. 이에 공자께서는 오직 선왕의 법도를 취해 이를 외고 전달해 후세에게 알려주셨다.

新安陳氏曰。皇帝生當天地氣運盛時。所以達而在上。以身為敎。而道行於當世。孔子當天地氣運衰時。不免窮而在下。以言為敎。傳諸其徒。而道明於後世而已。
신안 진씨가 말했다: "황제가 살아있을 때에는 천지의 기운이 성대한 때를 만나 현달하여 임금의 자리에 있게 되었으므로, 몸소 가르침을 행해 도가 당시에 행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공자께서는 천지의 기운이 쇠한 때를 만나 곤궁하여 아랫자리에 있음을 면하지 못했으므로, 말로 가르침을 행해 제자들에게 전했고 도가 후세에나 밝혀질 수 있었을 뿐이다."

若曲禮少去聲儀內則弟子職諸篇。固小學之支流餘裔餘制反
<곡례>·<소의>·<내칙>·<제자직> 등의 여러 편은 본래 소학의 지류이자 말단이지만,

○番易齊氏曰。曲禮少儀內則。見禮記。弟子職。見管子。此四篇作於春秋時。三代小學之全法。僅存其一二。故曰支流餘裔。支流。水之旁出而非正流者。餘裔。衣裾之末也。
파양 제씨가 말했다: "<곡례>·<소의>·<내칙>은 <예기>에 보이고, <제자직>은 <관자>에 보인다. 이 네 편은 춘추 시대에 지어졌다. 삼대 소학의 전체 교법 가운데 겨우 한두 가지만 보존되었으므로 '支流·餘裔'라고 한 것이다. '지류'는 물이 옆으로 흘러나와 바른 줄기가 아닌 것이고, '餘裔'는 옷자락 끝이다."

而此篇者。則因小學之成功。以著大學之明法。外有以極其規模之大。而內有以盡其節目之詳者也。
이 편(<대학>)은 소학에서 이룬 공부를 기반으로 태학의 밝은 교법을 드러내는 것이니, 밖으로는 規模의 큼을 지극히 하고, 안으로는 節目의 상세함을 다한다."

問外有以極其規模之大。內有以盡其節目之詳。朱子曰。這箇須先識得外面一箇規模如此大了。而內做工夫以實之。凡人為學。便當以[明][32]明德新民止於至善。及明明德於天下為事。不成只要獨善其身便了。須是志於天下。所謂志伊尹之所志。學顔子之所學也。所以大學第二句。便說在新民。
"外有以極其規模之大。內有以盡其節目之詳。"에 대해 물었다.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반드시 밖의 규모가 이처럼 큼을 먼저 알고서 안으로 공부를 해 채워야 한다. 무릇 사람이 학문한다면 마땅히 '明明德'·'新民'·'止於至善'해서 '明明德於天下'함을 일삼아야지, 그저 자신만 선하게 해서는 안 된다.[33] 반드시 천하에 뜻을 두어야 하니, 이른바 '이윤이 지향한 것을 지향하고, 안연이 배운 것을 배우라'[34]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학>의 두 번째 구절에서 '新民'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1. 공부 과정은 개인적인 것이지만, 공부의 공효는 사회/국가/천하에 미친다. 즉 전자가 節目之詳이고 후자가 規模之大이다.)
○新安陳氏曰。規模之大。指三綱領。節目之詳。指八條目。孔子時。方有大學一章之經。
신안 진씨가 말했다: "'規模之大'는 삼강령을 가리키고, '節目之詳'은 팔조목을 가리킨다. 공자 때가 돼서야 비로소 <대학> 1장의 경문이 있게 되었다." (2. 삼강령이 대원칙이고, 팔조목이 그에 대한 구체적 실천 방법이다. 즉 전자가 規模之大이고 후자가 節目之詳이다.)
○東陽許氏曰。規模節目。以三綱八條對言。則三綱為規模。八條為節目。謂八條卽三綱中事也。獨以八條言之。則平天下為規模。上七條為節目。平天下是大學之極功。然須是有上七條。節節做工夫。行至于極。然後可以天下平。
동양 허씨가 말했다: "'規模'와 '節目'을 삼강령과 팔조목으로 대대해서 말하면, 삼강령이 '規模'이고 팔조목이 '節目'이니, 팔조목은 곧 삼강령 안의 일이다. 오직 팔조목만 말한다면 '平天下'가 '規模'가 되고, 앞의 일곱 조목은 '節目'이 된다. '平天下'는 <대학>의 궁극적 공효지만, 앞의 일곱 조목마다 공부해서 그 실천이 지극한 경지에 이른 연후에야 천하가 평안해질 수 있다."[35]

三千之徒。蓋莫不聞其說。而曾氏之傳獨得其宗。於是作為傳去聲義。以發其意。
[공자의] 삼천 제자 가운에 이러한 설을 듣지 못한 자가 없었지만, 증자가 전수받은 것만이 그 종지를 얻었다. 이에 [<대학>의] 傳義(文義에 대한 해설)를 지어 공자의 뜻을 드러냈다.[36]

曾子方有今大學之傳。以發明孔子之意。
증자가 비로소 오늘날의 <대학>의 傳을 두어 공자의 뜻을 발명했다.

及孟子沒而其傳泯音閔焉。則其書雖存。而知者鮮上聲矣。
맹자가 돌아가시고 나서 전수가 민멸되어, <대학> 텍스트는 비록 남아있었지만 [그 의미를] 아는 자는 드물었다.

5.
自是以來。俗儒記誦詞章之習。其功倍於小學而無用。
이때부터 속유들이 記誦·詞章을 익히는 공력이 소학에 배가 되었으나 쓸모가 없었다.

朱子曰。自聖學不傳。為士者不知學之有本。而所以求於書。不越乎記誦訓詁文詞之間。是以天下之書愈多而理愈昧。學者之事愈勤而心愈放。詞章愈麗。議論愈高。而其德業事功之實。愈無以逮乎古人。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聖學이 전해지지 않은 뒤로 선비들이 학문에 근본이 있음을 알지 못해, 책에서 찾는 것이라곤 記誦·訓詁·文詞 사이를 넘지 못했다. 그러므로 천하에 책이 더 많아질수록 이치는 더욱 어두워졌고, 배우는 자들이 더 열심히 노력할수록 그들의 마음은 더욱 방탕해졌으며, 詞章은 더욱 아름다워지고 議論은 더욱 고원해졌지만 德業·事功의 성과는 더욱 고인에 미치지 못했다."
○新安陳氏曰。記誦。口耳之學。詞章。枝葉之文。
신안 진씨가 말했다: "'記誦'은 단순 암기의 학문(口耳之學)이요, '詞章'은 지엽적인(하찮은) 글쓰기(枝葉之文)이다."

異端虛無寂滅之敎。其高過於大學而無實。
이단의 虛無(도가)·寂滅(불교)한 가르침은 고원하기가 <대학>을 넘어섰으나 실질이 없었고,

問異端何以高而無實。朱子曰。吾儒便著讀書。逐一就事物上理會道理。異端便都掃了。只恁地空空寂寂。便道事都了。若將些子事付之。便都沒奈何。
물었다: "이단은 어째서 고원하지만 실질이 없습니까?"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유가는 책을 읽어 하나하나 사물에서 도리를 이해하지만, 이단은 [그런 것들을] 모두 쓸어버리고는 그저 이처럼 거듭 비우고 거듭 고요하게만 하고서 '일이 모두 끝났다'고 말하는데, 만약 약간의 일이라도 맡기면 전혀 어찌하지 못한다."
○雲峯胡氏曰。此之虛。虛而有。彼之虛。虛而無。此之寂。寂而感。彼之寂。寂而滅。所以高而無實。
운봉 호씨가 말했다: "여기(유가)의 '虛'는 虛하면서도 有하지만, 저기(도가)의 '虛'는 虛하면서 無이다. 여기(유가)의 '寂'는 寂하면서도 感하지만,[37] 저기(도가)의 '寂'는 寂하면서 滅이다. 그래서 [저들은] 고원하면서도 실질이 없는 것이다."
○新安陳氏曰。老氏虛無。佛氏寂滅。
신안 진씨가 말했다: "老氏(도가)가 '虛無'이고, 佛氏(불교)가' 寂滅'이다."

其他權謀術數。一切以就功名之說。與夫音扶百家衆技之流。所以惑世誣民。充塞先則反下同仁義者[38]。又紛然雜出乎其間。
나머지 권모술수를 [부려] 공명을 추구하는 일체의 설과 저 각종 재주를 [부리는] 제자백가 부류들이 혹세무민하여 인의(유가)를 막는 경우가 또 어지럽게 그 사이에서 뒤섞여 나와,

朱子曰。秦漢以來。隨世以就功名者。未必自其本而推之。是以天理不明而人欲熾。道學不傳而異端起。人挾其私智。以馳騖於一世。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秦漢이래로 시대에 따라 功名을 좇는 자들이 반드시 근본으로부터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므로 천리는 밝혀지지 않고 인욕은 타올랐으며, 도학은 전해지지 않고 이단은 흥기해, 사람들은 자신의 꾀(私智)에 의지해 한 시대를 풍미했다."
○新安陳氏曰。權謀術數。謂管仲商鞅等。百家衆技。如九流等是也。
신안 진씨가 말했다: "權謀術數'는 관중·상앙 등을 말하고, '百家衆技'는 예를 들면 '九流'[39] 등이 이것이다."

使其君子。不幸而不得聞大道之要。其小人。不幸而不得蒙至治之澤。晦盲眉庚反否塞。
군자(치자)들로 하여금 불행히 위대한 도의 핵심을 듣지 못하게 하였고, 소인(피치자)들로 하여금 불행히 이상적 통치의 은택을 입지 못하게 해, [그들로 하여금] 어둡고 막히며,

東陽許氏曰。如月之晦。如目之盲。如氣之否。如川之塞。晦盲。言不明。否塞。言不行。
동양 허씨가 말했다: "달이 그믐인 것 같고, 눈이 먼 것 같으며, 기가 막힌 것 같고, 개울이 막힌 것 같은 것이다. '晦盲'은 밝지 않은 것(不明, 밝혀지지 않은 것)이고, '否塞'은 흐르지 않는 것(不行, 실천되지 않는 것)이다."

反覆沈俗作沉非音固
엎어지고(反覆) 잠기고(沈) 병들게 되었는데(痼),

○東陽許氏曰。反覆。是展轉愈深而不可去底意。沈。如物沒於水而不可浮。痼。如病著於身而不可愈。
동양 허씨가 말했다: "'反覆'은 더욱 깊은 곳으로 굴러 떨어져 떠나지 못한다는 뜻이다. '沈'은 사물이 물에 잠겨 떠오르지 못하는 것과 같다. '痼'는 몸에 병이 나 나을 수 없는 것과 같다."

以及五季謂梁唐晉漢周。五代季世。之衰。而壞亂極矣。
[당나라 이후] 五季의 쇠퇴한 시절에 이르러 혼란이 극에 달했다.

雲峯胡氏曰。惑世誣民。使斯民昏而不能知。充塞仁義。使斯道壅而不能行。晦盲。全無能知者。否塞。全無能行者。所以為壞亂之極也。大道之要。是大學書中所載者。至治之澤。是自大學中流出者。上之人無能知此大學。故君子不得聞大道之要。上之人無能行此大學。故小人不得蒙至治之澤。
운봉 호씨가 말했다: "'혹세무민'해서 이 백성들로 하여금 어리석어 알지 못하게 하고, '인의를 막아(充塞仁義)' 이 도로 하여금 막혀 행해지지 못하게 했다. '晦盲'은 전혀 알 수 없는 것이고, '否塞'은 전혀 실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혼란의 극이 된 것이다. '大道之要'는 <대학>에 기록된 것이고, '至治之澤'은 <대학>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윗사람이 이 <대학>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군자가 위대한 도의 핵심을 듣지 못했고', 윗사람이 이 <대학>을 실천하지 못했으므로 '소인이 완벽한 통치의 은택을 입지 못했다'."

6.
天運循環。無往不復。宋德隆盛。治敎休明。於是河南程氏兩夫子出。
하늘의 운수는 순환하기 때문에 가서 돌아오지 않는 것은 없으니, 송나라의 덕이 융성하여 통치와 교화가 아름답게 빛났다. 이때 하남 정씨 두 부자께서 나오셔서,

伯子諱顥。字伯淳。號明道先生。叔子諱頤。字正叔。號伊川先生。
첫째의 성함은 '호(顥)'이고 字는 '백순(伯淳)'이며, 號는 '명도선생(明道先生)'이다. 셋째의 성함은 '이(頤)'이고 字는 '정숙(正叔)'이며 號는 '이천선생(伊川先生)'이다.

而有以接乎孟氏之傳。實始尊信此篇而表章之。旣又為去聲之次其簡編。發其歸趣音娶
맹자의 전수를 이으셨으니, 실질적으로 처음 이 편(<대학>)을 존신하시고 표창하신 것이다. 이어서 또 <대학>에 대해서 텍스트의 차례를 손보고 그 의미를 드러내셨는데,

○新安陳氏曰。孟子沒而其傳泯焉。至二程夫子出。而絶學復傳。於是始拔大學篇於戴記之中而尊信之。又整頓其錯亂之簡而發揮之。但未成書耳。
신안 진씨가 말했다: "맹자께서 돌아가시자 전수되던 것이 민멸됐었는데, 이정 선생이 나오시고 나서 끊어졌던 학문이 다시 전해졌다. 이때 [이정 선생께서] 처음 <소대례기> 안에서 <대학>편을 독립시켜 존신하셨고, 또 뒤섞인 죽간을 정돈해 [그 의미를] 드러내셨다. 그러나 책을 완성하시지는 않았다."

然後古者大學敎人之法。
그런 연후에야 옛 태학에서 사람들을 가르치던 교법과

此八字收拾序文起句。
이 여덟 글자(古者大學敎人之法)는 <대학장구서> 앞쪽 구절을 모은 것이다.

聖經賢傳去聲之指。粲然復扶又反明於世。雖以熹之不敏。亦幸私淑而與去聲有聞焉。
聖經賢傳(성인이 지은 經에 현인이 傳을 달아 해석함)의 뜻이 찬연하게 다시 세상에 밝혀졌으니, 비록 불민한 나도 다행히 사숙해서[40] 그것을 들을 수 있었다[41].

新安陳氏曰。孟子云。予未得為孔子徒也。予私淑諸人也。此用其語。謂聞程子之敎於延平李先生諸公。
신안 진씨가 말했다: "맹자께서 '나는 공자의 제자가 될 수는 없었지만, [자사의 제자에게][42] 사숙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을 인용한 것이다. 정자의 가르침을 연평 선생 등 여러 공께 들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東陽許氏曰。私淑者。私善於人。孟子不得為孔子之徒。而私善於再傳之子思。朱子不得為程子之徒。而私善於三傳之李氏。此私淑字最切。
동양 허씨가 말했다: "'私淑'이라는 것은 남을 통해 스스로를 선하게 하는 것이다. 맹자께서는 공자의 제자가 될 수 없어서 [공자의] 재전제자인 자사를 통해 스스로를 선하게 하셨고, 주자께서는 정자의 제자가 될 수 없어서 [정자의] 삼전제자인 연평 선생(李氏)을 통해 스스로를 선하게 하셨다. 여기의 '私淑'이라는 단어가 가장 절실하다."

顧其為書猶頗放失。是以忘其固陋。采而輯音集之。間亦竊附己意。補其闕略。
그런데 <대학> 텍스트가 여전히 상당히 방실되었기 때문에, 내 고루함을 [잠시] 잊고서 [주제넘게 방실된 부분을 다른 곳에서] 찾아 모으고 그 사이에 다시 삼가 내 생각을 덧붙여 빠진 부분을 보충하고서,

謂補傳之第五章。
傳의 제5장을 보충한 것을 말한다.

以俟後之君子。極知僭踰。無所逃罪。然於國家化民成俗之意。學者修己治人之方。則未必無小補云。
훗날의 군자를 기다린다. 주제 넘는 짓이라 죄를 피할 길이 없음을 너무나 잘 알지만, 국가가 백성을 교화시키고 풍속을 이루는 뜻과 배우는 자가 수기치인하는 방법에 있어서는 조그만 보탬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脩己治人四字。包盡大學體用綱目。
'脩己治人' 네 자는 <대학>의 體用·綱目을 모두 포괄한다.

7.
淳熙己酉二月甲子新安朱熹序。
순희 기유년(1189) 2월 갑자일에 신안 주희가 서문을 쓴다.

新安陳氏曰。此序分六節。精義尤在第二節。曰知其性之所有而全之。曰敎之以復其初是也。朱子論學。必以復性初為綱領要歸。論語首註學字。曰人性皆善。曰明善而復其初。小學題辭曰。仁義禮智。人性之綱。曰德崇業廣。乃復其初。此書首釋明明德。亦曰遂明之以復其初。與此序凡四致意焉。聖人盡性。盡其本全者也。學者復其性。復而後能全也。欲知性之所有。在格物致知。欲復全其性之所有。在誠意正心脩身。以力於行而已。讀此序此書者。其以知性之所有。與復其性初為要領。以知行為工夫而融貫其旨云。
신안 진씨가 말했다: "이 <대학장구서>는 여섯 단락으로 나눠지는데,[43] 핵심적 의미(精義)는 두 번째 단락에 있으니, '모든 사람이 性에 있는 [인의예지를] 알고서 이를 온전히 한다', '가르쳐 자신의 처음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 이것이다. 주자께서 학문을 말씀하실 때에는 반드시 '본성을 회복하는 것(復性)'을 강령·핵심으로 삼으셨다. <논어>에서 '學'자에 주석을 다시길: '사람의 본성은 모두 선하다', '선을 밝혀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44]고 하셨고, <소학제사>에서 말씀하시길: '인의예지는 사람 본성의 벼리이다', '덕이 높고 업이 넓어야 처음으로 돌아간다'고 하셨으며, 이 책(<대학장구>)의 처음에 '명명덕'을 풀이하시며 또한 '마침내 밝혀서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45]고 하셨으니, 이 <대학장구서>까지 총 네 곳에서 자신의 뜻을 드러내셨다. '聖人盡性'은 본래 온전한 것을 지극히 하는 것이요, '學者復其性'은 돌아간 이후에야 온전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성에 있는 것을 알고자 하는 것은 格物·致知에 달렸고, 성에 있는 것을 다시 온전히 하고자 하는 것은 誠意·正心·脩身해 실천에 힘을 다하는 것에 달려있을 뿐이다. 이 <대학장구서>와 이 <대학>을 읽는 자는 '성에 있는 것을 아는 것'과 '본성(性初)으로 돌아가는 것'을 핵심으로 삼고 知行을 공부 방법으로 삼아서 그 종지를 완전히 깨달을 것이다."

대학 경문/전문/혹문

大學章句大全

大,舊音泰,今讀如字。
子程子曰:「大學,孔氏之遺書,而初學入德之門也。」於今可見古人為學次第者,獨賴此篇之存,而論、孟次之。學者必由是而學焉,則庶乎其不差矣。

經一章

大學之道,在明明德,在親民,在止於至善。

程子曰:「親,當作新。」大學者,大人之學也。明,明之也。明德者,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以具眾理而應萬事者也。但為氣稟所拘,人欲所蔽,則有時而昏;然其本體之明,則有未嘗息者。故學者當因其所發而遂明之,以復其初也。新者,革其舊之謂也,言既自明其明德,又當推以及人,使之亦有以去其舊染之污也。止者,必至於是而不遷之意。至善,則事理當然之極也。言明明德、新民,皆當至於至善之地而不遷。蓋必其有以盡夫天理之極,而無一毫人欲之私也。此三者,大學之綱領也。

知止而后有定,定而后能靜,靜而后能安,安而后能慮,慮而后能得。

后,與後同,後放此。止者,所當止之地,即至善之所在也。知之,則志有定向。靜,謂心不妄動。安,謂所處而安。慮,謂處事精詳。得,謂得其所止。

物有本末,事有終始,知所先後,則近道矣。

明德為本,新民為末。知止為始,能得為終。本始所先,末終所後。此結上文兩節之意。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先治其國;欲治其國者,先齊其家;欲齊其家者,先脩其身;欲脩其身者,先正其心;欲正其心者,先誠其意;欲誠其意者,先致其知;致知在格物。

治,平聲,後放此。明明德於天下者,使天下之人皆有以明其明德也。心者,身之所主也。誠,實也。意者,心之所發也。實其心之所發,欲其一於善而無自欺也。致,推極也。知,猶識也。推極吾之知識,欲其所知無不盡也。格,至也。物,猶事也。窮至事物之理,欲其極處無不到也。此八者,大學之條目也。

物格而后知至,知至而后意誠,意誠而后心正,心正而后身脩,身脩而后家齊,家齊而后國治,國治而后天下平。

治,去聲,後放此。物格者,物理之極處無不到也。知至者,吾心之所知無不盡也。知既盡,則意可得而實矣,意既實,則心可得而正矣。脩身以上,明明德之事也。齊家以下,新民之事也。物格知至,則知所止矣。意誠以下,則皆得所止之序也。

自天子以至於庶人,壹是皆以脩身為本。

壹是,一切也。正心以上,皆所以脩身也。齊家以下,則舉此而措之耳。

其本亂而末治者否矣,其所厚者薄,而其所薄者厚,未之有也!

本,謂身也。所厚,謂家也。此兩節結上文兩節之意。
  • 右經一章,蓋孔子之言,而曾子述之。
凡二百五字。
  • 其傳十章,則曾子之意而門人記之也。舊本頗有錯簡,今因程子所定,而更考經文,別為序次如左。
凡千五百四十六字。凡傳文,雜引經傳,若無統紀,然文理接續,血脈貫通,深淺始終,至為精密。熟讀詳味,久當見之,今不盡釋也。


『혹문』 경1장

1. <대학>과 <소학>의 구분 或問: “大學之道, 吾子以爲大人之學, 何也?”
혹자가 물었다: "'大學之道'를 그대가 '대인의 학문(大人之學)'이라고 한 것은 어째서인가?"

曰: “此對小子之學言之也.”
대답했다: "이는 '아이의 학문(小子之學)'에 대비해 말한 것이다."


2. <소학>이란?

曰: “敢問其爲小子之學, 何也?”
물었다: "감히 묻건대, '아이의 학문'이라고 하는 것이 무엇인가?"

曰: “愚於序文已畧陳之. 而古法之宜於今者, 亦旣輯而爲書矣,即今之小學書 學者不可以不之考也.”
대답했다: "내가 서문(<대학장구서>)에서 이미 간략하게 말했고, 옛 법도 가운데 오늘날에 적합한 것을 역시 이미 모아 책을 만들었으니,즉 오늘날의 <소학>이다. 배우는 자들이 이를 고찰하지 않아선 안 될 것이다."


3. <대학>과 <소학> 간의 관계

曰: “吾聞君子務其遠者大者, 小人務其近者小者. 今子方將語音御人以大學之道, 而又欲其考乎『小學』之書, 何也?”
물었다: "내가 듣기에 군자는 고원한 것·거대한 것에 힘쓰고, 소인은 비근한 것·사소한 것에 힘쓴다고 하는데, 지금 그대는 사람들에게 '大學之道'를 말하면서 다시 그들로 하여금 <소학>을 고찰하게 하려는 것은 어째서인가?"

朱子曰: "<小學>書是做人底樣子."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소학>은 사람을 만드는 틀이다."
○問小學大學之别. 曰: "小學大學只是一箇事. 小學是學事親事長; 大學便就上面講究委曲其所以事親事長是如何."
小學과 大學의 차이에 대해 물었다. 대답하셨다: "小學과 大學은 하나의 일일 뿐이다. 소학은 부모를 섬기고 어른을 섬기는 것을 배우는 것이고, 대학은 그 위에서 부모를 섬기고 어른을 섬기는 까닭이 무엇인지 강구하고 상세히 살피는 것이다."
○古人由小學而進於大學, 其於洒掃應對進退之間, 持守堅定, 涵養純熟, 固已久矣. 大學之序, 特因小學已成之功.
옛 분들은 소학을 거쳐 대학으로 나아가셨기 때문에, 쇄소응대·진퇴하는 때에 단속이 堅定하고 함양이 純熟했던 것이 진실로 매우 오래됐었다. [그러므로 삼강령·팔조목 같은] <대학>의 순서는 그저 소학에서 이미 이룬 결과에 기인할 뿐이다.
○陳氏曰: "小學書綱領甚好, 最切於日用. 雖至大學之成, 亦不外是."
진씨가 말했다: "<소학>의 강령이 매우 좋으니, 일상 생활에 매우 비근하다. 비록 대학 [공부가 완성되더라도] 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曰: “學之大小, 固有不同, 然其爲道則一而已. 是以方其幼也, 不習之於小學, 則無以收其放心, 養其德性, 而爲大學之基本.
대답했다: "학문의 큰 것(대학)과 작은 것(소학)에는 진실로 차이가 있지만, 도를 추구한다는 점은 같을 뿐이다. 그러므로 어렸을 때 소학에서 익히지 않는다면 놓아버린 마음을 수습하고 덕성을 길러 대학의 기반으로 삼을 수 없고,

或曰: "放心者, 或心起邪思妄念, 耳聽邪言, 目觀亂色, 口談不道之言, 以至手足動之不以禮, 皆是放也; 收者, 便於邪思妄念處, 截斷不續, 耳目言動皆然, 此謂之收. 既能收其放心, 徳性自然養得, 不是收放心外, 又養箇徳性也." 朱子曰: "然."
혹자가 말했다. "방심이라는 것은 간혹 마음에 삿된 생각이나 망념이 일어나서 귀로는 거짓된 말을 듣고, 눈으로는 난색을 보며, 입으로는 도가 아닌 말을 하여 손과 발이 움직임에 예로 하지 않는데 이르게 되니, 모두 '放'인 것입니다. 거둔다는 것은 바로 삿된 생각이나 망념이 일어난 곳을 절단해서 이어지지 않게하는 것이니 귀, 눈, 말과 행동이 모두 그렇게 (잘못하지 않게) 되니 이것이 '收'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미 그 놓아버린 마음을 거둘 수 있다면 덕성은 자연히 길러질 수 있으니 놓아버린 마음을 거두는 것 이외에 또 덕성을 기르는 것이 아닙니다." 주자가 말했다. "그렇다."
○西山真氏曰: "徳性謂得之於天者, 仁義禮智信, 是也; 徳性在心, 本皆全備, 縁放縱其心, 不知操存, 是致賊害其性. 若能收其放心, 即是養其徳性, 非二事也."
진덕수가 말하였다. "덕성이란 하늘에서 얻어진 것이니 인의예지신이 이것이요, 덕성은 마음 안에 있으니 본애 완전히 갖춰진 것이지만 그 마음을 방종하게 하면서도 잡아서 지킬 줄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그 성을 해치는데 이른 것이다. 만약 그 놓아버린 마음을 거두어 들일 수 있다면 곧바로 덕성을 기르게 되는 것이지, 두 가지 일이 (따로 있는게) 아니다."

及其長上聲下同也, 不進之於大學, 則無以察夫音扶義理, 措諸事業, 而收小學之成功.
장성해서 태학에 진학하지 않으면 의리를 살피고 여러 사업을 주관해 소학에서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玉溪盧氏曰: "察夫義理, 大學始事, 格致是也; 措諸事業, 大學終事, 齊治平是也."
옥계노씨가 말했다. "'察夫義理'란 대학의 시작이 되는 일이니 격물치지가 이것이고, '措諸事業'은 대학의 마지막이 되는 일이니, 제가·치국·평천하가 이것이다."

是則學之大小所以不同, 特以少去聲長所習之異宜, 而有高下淺深先後緩急之殊, 非若古今之辨, 義利之分, 判然如薰蕕音猶冰炭之相反而不可以相入也.薰香草蕕臭草 今使幼學之士, 必先有以自盡乎洒上去二聲去聲應對進退之間, 禮樂射御書數之習, 俟其旣長, 而後進乎明德·新民, 以止於至善, 是乃次第之當然, 又何爲而不可哉?”
이렇다면 학문의 큰 것과 작은 것의 차이는 그저 나이에 따라 익혀야 하는 것의 차이에 따라 高下·淺深·先後·緩急의 차이가 있는 것일 뿐이니, 고금의 차이·義利의 차이가 마치 薰蕕·冰炭이 상반되어 판연히 서로 섞일 수 없는 것과는 같지 않다. 이제 어린 선비로 하여금 반드시 우선 洒掃應對進退之間과 禮樂射御書數之習에 스스로 다하도록 하고, 그가 장성하기를 기다린 이후에 明德·新民·止於至善으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야말로 당연한 순서이니, 또 무엇 때문에 불가하겠는가?"


4. <소학>을 배우지 않고 장성한 사람의 학문 순서 문제(경공부)

曰: “幼學之士, 以子之言而得循序漸進, 以免於躐等陵節之病, 則誠幸矣. 若其年之旣長, 而不及乎此者, 欲反從事於小學, 則恐其不免於扞格不勝、勤苦難成之患;
물었다: "어린 선비가 그대의 말에 따라 순서를 얻어 점차 나아가 躐等·陵節[46]의 병폐를 면한다면 진실로 다행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장성했는대도 이에 미치지 못한 자가 반대로 [거슬러 올라가] 소학에 종사하고자 한다면 '[인욕에] 부딪혀 이기지 못하고 고생하더라도 이루기 힘든' 근심을 면하지 못할까 걱정스러우며,

<記><學記>"發然後禁, 則扞格而不勝; 時過然後學, 則勤苦而難成."扞, 胡半反; 格, 胡客反. 勝, 平聲. 人欲既發而後禁之, 則扞拒堅强而不勝也.
『예기』, 「학기」편에서 "일어난 다음에 금지한다면 인욕에 부딪혀 이겨내지 못할 것이고, 때가 지난 다음에 배운다면 노력하고 고생하면서도 이루기가 어려울 것이다." 인욕이 이미 일어난 후에 금지하면 [인욕의] 저항이 견고하고 강해 이길 수 없다.

欲直從事於大學, 則又恐其失序無本, 而不能以自達也, 則如之何?”
[그렇다고] 바로 대학에 종사하고자 한다면 또한 순서를 어겨 근본이 없기에 스스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할까 걱정스러우니, 어떻게 해야 하나?"

曰: “是其歲月之已逝者, 則固不可得而復扶又反下同追矣. 若其工夫之次第條目, 則豈遂不可得而復補耶?
대답했다: "이미 지나가버린 세월은 진실로 다시 나아갈 순 없지만, 공부의 순서나 조목은 어찌 끝내 다시 보완할 수 없겠는가?

朱子曰: "古人於小學, 自能言便有教, 一嵗有一嵗工夫, 到二十來嵗, 聖賢資質已自有二三分, 大學只出治光采. 而今都蹉過了, 不能更轉去做得, 只據而今地頭, 便劄住立定脚跟[47]做去, 栽種後來根株, 塡補前日欠缺. 如二十嵗覺悟, 便從二十嵗立定脚跟做去; 如三十嵗覺悟, 亦然; 便年八九十嵗覺悟, 亦只據現定劄住硬寨[48]做去."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옛날에 소학에서는 말할 수 있을 때부터 교육을 두었고, 1년에 (그에 해당하는) 1년 과정의 공부를 두었으니, 20세가 되면 성현의 자질이 이미 2-30%정도 있게 된다. <대학>은 다만 [거기에] 광채를 내는 것이다. 지금 [이미] 다 지나가버려서 다시 뒤돌아 갈 수 없다면, 다만 현위치에 의거하여 입장을 확고히 해, 훗날의 기반을 북돋고 과거의 흠결을 보완하여야 한다. 만약 스무살에 깨우쳤다면 스무살 때 부터 그 입장을 확고히 하고, 서른에 깨우쳤더라도 그렇게 해야 한다. 8-90세에 깨우쳤더라도 역시 그저 현재에 의거해서 견고한 입장을 확고하게 세워야 한다."

蓋吾聞之, 敬之一字, 聖學之所以成始而成終者也. 爲小學者, 不由乎此, 固無以涵養本原,即前所謂收放心養徳性而謹夫音扶下同洒掃應對進退之節, 與夫六藝之敎. 爲大學者, 不由乎此, 亦無以開發聰明,格致之事 進德誠正修修業,齊治平 而致夫明德新民之功也. 是以程子發明格物之道, 而必以是爲說焉.
내가 들으니, '敬' 한 자는 성인되는 학문(聖學)의 처음과 끝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소학이라는 것도 이를 말미암지 않으면 진실로 본원을 함양해 저 洒掃應對進退之節과 저 六藝之敎를 삼가 실천할 수 없고, 대학이라는 것도 이를 말미암지 않으면 또한 開發聰明하고 進德修業[49]해 저 明德·新民의 공효를 이룰 수 없다. 그러므로 정자께서 격물의 도를 발명하실 때 반드시 이것(敬)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問: "敬字當不得小學." 朱子曰: "看來小學却未當得敬, 敬巳自包得小學. 敬是徹上徹下工夫, 雖做到聖人田地, 也只放下這敬不得."
물었다: "'敬'이라는 글자는 소학에 대적할 수 없습니다."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내 생각에는 소학이 도리어 '敬'에 대적할 수 없으니, 敬은 이미 그 자체로 소학을 포함한다. 敬은 위 아래를 관통하는 공부이니, 비록 성인의 경지에 이르더라도 이 敬을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問: "大學首云明徳, 却不曾說主敬, 莫是已見於小學否?" 曰: "然. 自小學不傳, 伊川却是帶補一敬字."
물었다: "『대학』 첫 머리에서는 '명덕'만 말하고 도리어 '主敬'을 말한 적이 없으니, [경이] 이미 『소학』에서 드러났기 때문 아닙니까?",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그렇다 소학에서 부터 전해지지 않은 것을 이천선생께서 오히려 하나의 '敬'자를 겸하여 보완하신 것이다.
○北溪陳氏曰: "程子只說一箇主敬工夫, 可以補小學之缺. 盖主敬工夫可以收放心而立大本; 大本既立, 然後工夫循序而進, 無往不通. 大抵主敬之功, 貫始終, 一動靜, 合内外, 小學大學皆不可無也."
북계 진씨가 말했다: "정자께서는 오직 주경공부를 말씀하셨으니, 소학의 흠결을 보완할 수 있다. 대개 주경공부를 [통해] 놓아버린 마음을 거두어들이고 큰 근본을 세울 수 있으니, 큰 근본이 세워지고 난 연후에야 공부가 순서대로 나아가 가는 곳마다 통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대저 주경공부라고 하는 것은 시작과 끝을 관통하고 動과 靜에 동일하며 内와 外에 일치하니, 소학과 대학에 모두 없어선 안 된다."
○玉溪盧氏曰: "敬者, 定志慮, 攝精神, 而存養本心之道, 故為聖學之始終. 百倍其功, 只在主敬. 篇首三言為大學一書之綱領; 明明徳一句為篇首三言之綱領; 朱子敬之一字, 則又明明徳之綱領也."
옥계 노씨가 말했다: "경이라는 것은 사려를 안정시키고 정신을 거두어들여 본심을 존양하는 방법이므로 성인의 학문의 시작과 끝이 된다. [남들보다] 백 배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은[50] 다만 주경공부에 달려있을 뿐이다. [『대학』] 첫머리의 세 마디(명명덕, 신민, 지어지선)는 『대학』의 강령이 되며, '명명덕' 한 구절은 첫머리 세 마디의 강령이 되며, 주자의 '敬' 한 글자는 다시 '명명덕'의 강령이 된다."

不幸過時而後學者, 誠能用力於此, 以進乎大, 而不害兼補乎其小, 則其所以進者, 將不患於無本而不能以自達矣. 其或摧頹已甚, 而不足以有所兼, 則其所以固其肌膚之會·筋骸之束, 而養其良知良能之本者, 亦可以得之於此, 而不患其失之於前也.
불행이 때를 놓쳐 뒤늦게 배우는 자가 진실로 이에 힘쓸 수 있다면, 큰 것(대학)에 나아가면서도 작은 것(소학)을 아울러 보완하는 데 해를 끼치지 않을 것이니, 그렇다면 그가 진전된 바가 장차 근본이 없어 스스로 [목표에] 도달하지 못함을 근심하지 않을 것이다. 혹 摧頹함이 너무 심해 [소학까지] 아우를 수 없다면, 肌膚와 筋骸의 결속을 굳게 해[51]良知·良能의 근본을 기르는 것 또한 이것(경)에서 얻을 수 있으니 과거에 잘못했던 것을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記><禮運>"故禮義也者, 人之大端也, 所以講信脩睦, 而固人之肌膚之㑹、筋骸之束也." 㑹, 合也, 物合其則也, 如頭容宜合於直之類; 束, 收歛也, 如手容宜恭之類.
『예기』, 「예운」편에서 "그러므로 예의라는 것은 사람에게 중요한 것(大端)이니, 신의를 익히고 화목함을 닦아 肌膚와 筋骸의 결속을 굳게 하는 것이다."[52]라고 하였는데, '㑹'는 '맞다'로 사물이 그 법도에 맞는 것이니, 마치 머리모양이 마땅히 '直'에 맞아야 하는 부류와 같다. '束'은 '거두어들인다'로 손모양이 마땅히 공손해야 하는 부류와 같다.[53]

顧以七年之病, 而求三年之艾, 非百倍其功, 不足以致之. 若徒歸咎於旣往, 而所以補之於後者, 又不能以自力, 則吾見其扞格勤苦日有甚焉, 而身心顚倒, 眩瞀務茂二音迷惑, 終無以爲致知力行之地矣. 况欲有以及乎天下國家也哉!”
생각건대 7년의 병치레에 3년 묵은 쑥을 구하는 경우,[54] 백 배로 노력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으니, 만일 그저 과거에 허물을 돌리고 나중에 보완하려는 자도 스스로 힘쓰지 않는다면, 그가 [인욕에] 부딪히고 고생하는 것이 날로 심해져 몸과 마음이 엎어지고 어지럽고 미혹돼 끝내 致知力行의 경지가 되지 못할 것이다. 하물며 천하·국가에 미칠 수 있기를 바라는 자에 있어서랴!"

問: "人於已失學後, 須如此勉强奮勵, 方得." 朱子曰: "失時而後學, 必著如此䟎補得前許多欠缺處. '人一能之, 己百之; 人十能之, 己千之.' 若不如是, 悠悠度日, 一日不做得一日工夫, 只見没長進, 如何要補前面?"
물었다: "사람이라면 배움을 놓치고 나서는 모름지기 이처럼 열심히 힘써야 합니다."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때를 놓친 이후에 배우게 됐다면 반드시 많은 흠결을 서둘러 이처럼 보완해야 하니, '다른 사람이 한 번에 할 수 있으면 나는 백 번하고, 다른 사람이 열번에 할 수 있으면 나는 천 번한다.'고 하였다. 만약 이와같이 하지 않고 덧없이 시간만 보내고 하루에 하루치 공부를 하지 않는다면 발전이 없을 것이니, 어찌 과거를 보완하려고 하겠는가?"
○今人不曽做得小學工夫, 一旦學大學, 是以無下手處. 今且當自持敬始, 使端的純一静専, 然後能致知格物. 敬字是徹頭徹尾工夫, 自格物以至平天下, 皆不外此.
요즘 사람들은 일찍이 소학공부를 하지 않고 단지 대학만 배웠기 때문에 실천할 길이 없다. 지금은 우선 마땅히 持敬부터 시작해서 확실하게 순일하고 오롯하게 해야 하니, 그런 연후에야 격물치지할 수 있을 것이다. '敬'이라는 글자는 철두철미한 공부이니, 격물에서부터 평천하까지 모두 이것(경)을 벗어나지 않는다."


5. 경공부의 방법

曰: “然則所謂敬者, 又若何而用力耶?”
물었다: "그렇다면 이른바 '敬'이라는 것에 또 어떻게 힘쓰는가?"

曰: “程子於此, 嘗以主一無適言之矣,
대답했다: "정자께서는 이에 대해 '主一無適'으로 설명하시기도 했고,

程子曰: "主一之謂敬, 無適之謂一."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主一'은 '敬'을 말하고 '無適'은 '一'을 말한다."
○朱子曰: "主一只是心專一, 不以他念雜之; 無適只是不走作[55], 如讀書時只讀書; 著衣時只著衣. 了此一件, 又做一件, 身在這裏, 心亦在這裏."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主一'은 다만 마음을 전일하게 하여 다른 생각이 섞이지 않게 하는 것이고, '無適'은 다만 [마음이] 방일하지 않게 하는 것이니, 독서할 때는 단지 독서만하고 옷 입을 때에는 단지 옷만 입는 것처럼 한 가지 일을 끝내고 나서 또 한 가지 일을 하고, 몸이 여기에 있으면 마음 또한 여기에 있는 것이다."
○今講學, 更須於主一上做工夫. 若無主一工夫, 則講底義理無安著處, 都不是自家物事. 若有主一底工夫, 則外面許多義理, 方始為我有, 都是自家物事. 工夫到時, 纔主一, 便覺意思好, 卓然精明.
지금 강학함에 더욱 '主一'에 대해 공부(노력)해야 한다. 만약 '主一'공부가 없다면 강학한 의리가 안착할 곳이 없어서 모두 나의 일이 아니게 된다. 만약 '主一'공부가 있다면 외면의 많은 의리가 비로소 나에게 있게 되어 모두 나의 일이 된다. 공부가 완성된 때에는 '主一'하자마자 바로 생각이 좋고 매우 정밀하고 밝게 됨을 알게 될 것이다.
○北溪陳氏曰: "主一, 是心只在此, 不二不三; 無適, 是心只在此, 不東不西. 主一無適, 只展轉相解, 釋要分明, 非主一外, 又别有無適之功也."
북계 진씨가 말했다: "'主一'이라는 것은 마음이 단지 여기에 있어서 두 갈래 세 갈래가 되지 않게 하는 것이고, '無適'은 마음이 다만 여기에 있어서 동쪽으로 가거나 서쪽으로 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주일'과 '무적'은 상보적으로 풀어야 해석이 분명하게 되니, '主一' 이외에 또 따로 '無適'공부가 있는 것이 아니다."

嘗以整齊嚴肅言之矣.
'整齊嚴肅'으로 설명하시기도 했다.

程子曰: "只整齊嚴肅, 則心便一; 一則無非僻之干矣."
정자께서 말씀하셨다: "다만 整齊嚴肅 한다면 마음이 전일해지고, [마음이] 전일해지면 사악함[56]의 간섭이 없을 것이다."
○玉溪盧氏曰: "主一無適, 未易曉. 故又就事實上教人, 使只就眼前做工夫, 如正衣冠, 尊瞻視, 足容重, 手容恭之類, 皆是内外一致. 外面整齊嚴肅, 則内面便一; 内面便一, 則外面便無非僻之干."
옥계 노씨가 말했다: "'主一無適'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다시 구체적인 일로 사람들을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단지 눈앞에서 공부하게 하셨으니, 예를 들어 '의관을 바르게 하고 보기를 높게 하며'[57] '발모양은 무겁게 하고 손모양은 공경스럽게 하는'[58] 것들은 모두 내외가 일치되는 것이다. 외면을 整齊嚴肅하면 내면이 전일해지고, 내면이 전일하다면 외에 사악함의 간섭이 없을 것이다."

至其門人謝氏之說, 則又有所謂常惺惺法者焉.
정자의 문인 사량좌의 설의 경우에는 이른바 '常惺惺法'이라는 것이 있기도 하고,

上蔡謝氏曰: "敬是常惺惺法."
상채 사씨가 말했다: "敬은 늘 깨어있는 수양법(常惺惺法)이다."
○朱子曰: "惺惺乃心不昏昧之謂, 只此便是敬. 整齊嚴肅固是敬, 然心若昏昧, 燭理不明, 雖强把捉, 豈得為敬?"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惺惺은 바로 마음이 혼매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이니, 이렇게만 해도 敬이다. 整齊嚴肅은 진실로 경공부지만, 마음이 만약 혼매해서 이치를 밝게 밝히지 못한다면, 비록 [정제엄숙에 집착해 마음을] 애써 붙들더라도 어찌 敬이라 할 수 있겠는가?"
○學問須是警省, 且如瑞巖和尚每日常自問: "主人翁惺惺否?" 又自答曰: "惺惺." 今時學者却不能如此.
학문할 때는 모름지기 경계하고 성찰해야하니, 예를 들어 서암화상이 매일 항상 스스로 '주인장은 깨어있는가?'하고 묻고는 다시 스스로 '깨어있네'라고 대답하는 것과 같다. 오늘날의 학자들은 이렇게도 하지 못한다.
○或問: "佛氏亦有此語." 曰: "其喚醒此心則同; 其為道則異. 吾儒喚醒此心, 欲他照管許多道理; 佛氏則空喚醒此心, 無所作為, 異處在此."
혹자가 물었다: "불교에도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이 마음을 일깨우는 것[59]은 동일하지만 도를 행하는 것은 다르다. 우리 유가는 이 마음을 일깨워 그것으로 하여금 수많은 도리를 비추고자 하지만, 불교는 헛되이 마음을 일깨우기만 하고 하는 바가 없으니, 차이점이 여기에 있다."
○心既常惺惺, 又以規矩䋲檢之, 此内外交相養之道也.
마음이 이미 항상 깨어있는 상태에서 다시 規矩로 마음을 검속하는 것, 이것이 안과 밖을 같이 기르는 방법이다.
○今人心聳然在此, 尚無惰慢之氣, 况曰心常能惺惺者乎! 故心常惺惺, 自無客慮.
요즘 사람들의 마음도 조심히 여기에 있으면 오히려 태만한 기운이 없는데, 하물며 '마음이 늘 깨어있을 수 있다'고 하는 경우에 있어서랴! 그러므로 마음이 늘 깨어있으면 저절로 사념이 없게 된다.
○陳氏曰: "是就心地上做工夫處. 盖心常惺惺在這裏, 便常惺惺恁地活; 若不在, 便死了. 心纔在這裏, 則萬理便森然於其中矣."
진씨가 말했다: "이것(경)은 마음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대개 마음이 늘 깨어있어서 여기에 있으면 늘 깨어있는 것이 이처럼 활발하지만, 만약 여기에 있지 않으면 곧 바로 죽어버린다. 마음은 여기에 있자마자 만리가 마음속에 가득하다."

尹氏之說, 則又有所謂其心收斂不容一物者焉.
윤돈의 설의 경우에는 또 이른바 '其心收斂, 不容一物'이라는 것이 있기도 하다.

祈寛問: "如何是主一?" 和靖尹氏曰: "只收歛身心, 便是主一. 且如人到神祠致敬時, 其心收歛, 便著不得毫髮事, 非主一而何?"
기관이 물었다: "무엇이 '主一'입니까?" 화정 윤씨가 말했다: "다만 몸과 마음을 거두어들이는 것이 바로 '主一'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 신사에 이르러 공경을 다할 때 그 마음을 거둬들여 털끝 만큼의 일도 [마음속에] 두지 못하는 것, 이것이 '主一'아니고 무엇이겠는가?"
○朱子曰: "心主這一事, 不為他事攙亂, 便是不容一物."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이 이 한 가지 일을 주로하고 다른 일로 어지럽히지 않는 것이 바로 이것이 '不容一物'이다."
○問'心收歛, 不容一物.' 曰: "這心都不著一物, 便收歛. 他上文云: '今人入神祠, 當那時, 直是更著不得些子事, 只有箇恭敬.' 此最親切. 今人若能專一此心, 便收歛緊宻, 都無些子空罅; 若這事思量未了, 又走做那邊去, 心便成兩路."
'心收歛, 不容一物.'에 대해 물었다.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이 마음이 어떤 일에도 마음두지 않는 것이 곧 '收歛'이다. 윤돈의 윗 글에서 '사람이 신사에 들어가면 그때에는 단지 어떤 일에도 마음두지 않고 다만 공경함만 지니고 있다'고 하였으니, 이것이 가장 비근하다. 사람들이 만약 이 마음을 전일하게 할 수 있다면, [마음이] 수렴되고 긴밀해져 약간의 틈도 없겠지만, 만약 이 일에 대한 생각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것으로 가버린다면 마음이 두 갈래가 되는 것이다."

觀是數說, 足以見其用力之方矣.”
이 여러 설을 보면 힘쓸 방법을 알 수 있을 것이다."

問程子、謝氏、尹氏所說敬處. 朱子曰: "譬如此屋四方皆入得, 若從一方入到這裏, 則那三方入處都在這裏了."
정자와 사량좌와 윤돈이 敬을 설명한 것에 대해 물었다. 주자께서 대답하셨다: "비유하자면, 이 방은 사방으로 모두 들어올 수 있는데, 만일 한 쪽으로 들어온다면 나머지 세 쪽도 모두 여기에 있는 것과 같다."
○問: "敬, 諸先生之說, 各不同. 然總而言之, 常令此心常存, 是否?" 曰: "其實只一般. 若是敬時, 自然主一無適, 自然整齊嚴肅, 自然常惺惺, 其心收歛不容一物. 但程子'整齊嚴肅', 與謝氏、尹氏之說又更分曉."
물었다: "敬에 대한 여러 선생들의 설명이 각각 같지 않는데, 총괄해 말한다면 항상 이 마음을 보존하는 것이지요?" 말했다. "그 실질은 똑같을 뿐이다. 만약 敬하는 때라면 자연히 主一無適하고 자연히 整齊嚴肅하며 자연히 常惺惺하고 그 마음이 수렴되어 어떤 외물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정자께서 말씀하신 '整齊嚴肅'이 사량좌나 윤돈의 설명과 비교했을 때 [의미가] 더욱 분명하다."
○問: "程子、謝氏之説, 謝氏尤切當[60]." 曰: "如某所見, 程子說得切當. 整齊嚴肅, 此心便存, 便能惺惺, 未有外面整齊嚴肅而内不惺惺者. 人一時間外面整肅, 便一時惺惺; 一時放寛了, 便昏怠也." 新安陳氏曰: "朱子深取整齊嚴肅之説者, 盖以有著實下手處耳."
물었다: "정자와 사량좌의 설명 가운데 사량좌이 설명이 더욱 적절한 것 같습니다."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보건대, 정자의 설명이 가장 적절하다. 整齊嚴肅하면 마음이 보존되고 惺惺해질 수 있으니 외면을 整齊嚴肅하는데 내면이 惺惺하지 않은 자는 있지 않았다. 사람이 한 번 외면을 바르게 하면 일시에 惺惺해지며, 한 번 방관하게 되면 곧바로 혼매하고 나태해진다." 신안 진씨가 말했다: "주자께서 整齊嚴肅의 설명을 깊히 취하신 것은 아마도 착실히 실천하는 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勿齋程氏曰: "整齊嚴肅、及收歛不容一物, 皆敬之始也; 主一無適、及常惺惺者, 皆敬之成也. 主一無適者, 敬之純; 常惺惺者, 敬而明也. 然主一亦有淺深, 以初學言之, 則欲主乎一; 以成徳言之, 則所主者一."
물재 정씨가 말했다. "'整齊嚴肅'과 '收歛不容一物'은 모두 敬의 시작이고, '主一無適'과 '常惺惺'은 모두 경의 완성이다. '主一無適'은 敬 중에 순수한 것이고 '常惺惺'은 敬 중에 밝은 것이다. 그러나 '主一'함에는 깊이가 있으니, 초학자로 말한다면 한 가지를 주로 하고자 해야하고, 덕을 이룬 사람으로 말한다면 주로하는 한 가지일 것이다."
○黄氏曰: "且將自家身心去體察見得如何是主一無適, 如何是整齊嚴肅, 如何是常惺惺, 如何是其心收歛不容一物. 是四者皆以有所畏而然. 朱子晚年言敬字之義, 惟畏字近之, 其意精矣."
황씨가 말했다: "우선 나의 몸과 마음을 가지고 무엇이 主一無適이고 무엇이 整齊嚴肅이며 무엇이 常惺惺이고 무엇이 心收歛不容一物인지 살펴보라(體察見得). 이 네 가지는 모두 두려워하는 바가 있어서 그러한 것이다. 주자께서 만년에 말씀하신 敬자의 의미는 오직 畏자에 가까우니, 그 의미가 정밀하다. "
○西山眞氏曰: "持敬之道, 合三先生之言而用力焉, 然後内外交相養之功始備."
서산 진씨가 말했다: "敬을 유지하는 방법은, 세 선생의 말을 합쳐서 그것에 힘쓰는 것이니, 그런 연후에야 내외를 서로 길러주는 공부가 비로소 갖추어질 것이다."



6. 경공부가 학문의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되는 이유

曰: “敬之所以爲學之始者然矣, 其所以爲學之終也, 奈何?”
물었다: "敬이 학문의 시작이 되는 것은 맞지만, 학문의 끝이 되는 것은 어째서인가?"
曰: “敬者, 一心之主宰, 而萬事之本根也. 知其所以用力之方, 則知小學之不能無賴於此以爲始; 知小學之賴此以始, 則夫音扶大學之不能無賴乎此以爲終者, 可以一以貫之而無疑矣. 蓋此心旣立, 由是格物致知以盡事物之理, 則所謂尊德性而道問學;
대답했다: "敬이라는 것은 一心의 주재이자 모든 일의 근본이니, [이에] 힘쓸 방법을 안다면 소학은 이것에 의지하지 않고는 시작이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고, 소학이 이를 의지해 시작이 됨을 안다면, 저 대학이 이것에 의지하지 않고는 끝이 될 수 없다는 것도 '一以貫之'[61]해 의심이 없을 수 있을 것이다. 대개 이 마음이 확립되고서 이것(敬)을 통해 格物致知해 사물의 이치를 다하는 것이 이른바 '尊德性而道問學'[62]이요,

新安陳氏曰: "尊徳性, 持敬以涵養本原也; 道問學, 窮格以開發聰明也."
신안 진씨가 말했다: "尊徳性은 敬의 상태를 유지해서 본원을 함양하는 것이고 道問學은 궁리·격물해서 총명함을 개발하는 것이다."

由是誠意正心以修其身, 則所謂先立其大者而小者不能奪;
이것(敬)을 통해 誠意正心해 자신을 닦는 것이 이른바 '先立其大者而小者不能奪'[63]이요,

新安陳氏曰: "先立其大者, 持敬以誠其意、正其心也; 小者不能奪, 百體從心君所令而身脩也."
신안 진씨가 말했다: "'先立其大'라는 것은 경의 상태를 유지하여 그 뜻을 진실하게 하고 그 마음을 바로하는 것이며, '小者不能奪'이라는 것은 온 몸이 心이라는 군주가 명령한 바를 따라서 몸이 닦이는 것이다."

由是齊家治國以及乎天下, 則所謂修已以安百姓, 篤恭而天下平. 是皆未始一日而離去聲乎敬也. 然則敬之一字, 豈非聖學始終之要也哉!”
이것(敬)을 통해 齊家治國해 천하에 이르는 것이 이른바 '修已以安百姓'[64], '篤恭而天下平'[65]이니, 이 모두는 하루도 敬에서 떨어진 적이 없다. 그렇다면 敬 한 자가 어찌 성인되는 학문(聖學)의 처음부터 끝까지 [적용되는] 키워드가 아니겠는가!"

朱子曰: "敬者, 始終之要, 未知則敬以知之; 巳知則敬以守之. 若不敬則其心顛倒昏昧, 而不自知, 未知者, 非敬無以知; 巳知者, 非敬無所守."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敬이라는 것은 시작과 끝을 (관통하는) 핵심이니, 아직 알지 못한 것이 있다면 敬해서 그것을 알아가고, 이미 알았다면 敬해서 그것을 지켜야 한다. 만약 敬하지 않은다면 마음이 전도되고 어두워져도 스스로 알아채지 못하게 되니, 아직 알지 못하는 것은 敬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이미 안 것은 敬하지 않으면 지킬 수 없다."
○陳氏曰: "心之為物, 虚靈知覺, 所以為一身之主宰也. 身無此以為之主宰, 則四肢百體皆無所管攝矣. 然所以為心者, 又當由我有以主宰之, 我若何而主宰之乎? 所謂敬者, 是又一心之主宰也."
진씨가 말했다: "마음이라는 것은 허령한 지각이라서 한 몸의 주재가 된다. 몸이 이것을 주재로 삼지 않으면 온몸의 기관 모두를 관장하는 것이 없게될 것이다. 그러나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또한 마땅히 나를 통해 주재돼야 하니, 나는 어떻게 그것을 주재하나? 이른바 敬이라는 것이 다시 마음의 주재가 된다."



7. 삼강령·팔조목

曰: “然則此篇所謂‘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者, 亦可得而聞其說之詳乎?”
물었다: "그렇다면 이 편에서 말한 '在明明德, 在新民, 在止於至善'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겠는가?"

曰: “天道流行, 發育萬物, 其所以爲造化者, 陰陽五行而已.
대답했다: "천도가 유행해 만물을 발육함에 조화를 이루는 것은 음양오행일 뿐인데,

黄氏曰:"天道是理; 隂陽五行是氣. 合而言之, 氣即是理, 一隂一陽之謂道, 是也; 分而言之, 理自為理, 氣自為氣, 形而上下, 是也.
황씨가 말했다: "'천도'는 理이고 '음양오행'은 氣이다. 합해서 말하면 氣는 곧 理이니 '一隂一陽之謂道'[66]가 이것이다. 나눠 말하면 理는 그 자체로 理이고, 氣는 그 자체로 氣이니 '形而上下'[67]가 이것이다."
○未有五行, 只得喚做隂陽; 既有五行, 則隂陽在五行之中矣.
아직 오행이 있지 않을 때에는 단지 음양이라고 부를 수 있을 뿐이다. 오행이 있고 나면 음양은 오행 가운데 있다.

而所謂陰陽五行者, 又必有是理而後有是氣; 及其生物, 則又必因是氣之聚而後有是形. 故人物之生必得是理, 然後有以爲健順仁義禮智之性; 必得是氣, 然後有以爲魂魄五臟百骸之身. 周子所謂‘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者, 正謂是也.
이른바 '음양오행'이라는 것은 다시 반드시 理가 있은 뒤에 氣가 있고, 만물을 낳음에 이르러서는 다시 반드시 氣의 응취에 기인해 形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만물이 태어남에 반드시 理를 얻은 연후에 健順·仁義禮智와 같은 性이 될 수 있고, 반드시 氣를 얻은 연후에 魂魄·五臟·百骸와 같은 身이 될 수 있다. 周子께서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68]라고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다.

問: "必有是理然後有是氣, 是如何?" 朱子曰: "此本無先後之可言. 然必欲推其氣之所從來, 則須說先有是理. 然理又非别為一物, 即存乎是氣之中. 無是氣, 則是理亦無掛搭[69]處. 氣則為金木水火, 理則為仁義禮智.
물었다. "'반드시 이 理가 있은 이후에 氣가 있다'고 하신 것은 어째서입니까?"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이는 본래 말할 만한 선후가 없다. 그러나 굳이 氣의 유래를 추론하고자 한다면, 모름지기 理가 먼저 있다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理가 다시 별도로 하나의 사물인 것이 아니니, 氣 가운데에 보존되어 있는 것이다. 氣가 없다면 理 또한 안착할 곳이 없다. 氣는 金·木·水·火가 되고 理는 인·의·예·지가 된다."
○理未嘗離乎氣, 然豈無先後? 理無形, 氣便粗有查滓.
理는 일찍이 氣와 떨어진 적이 없지만, 어찌 선후가 없겠는가? 理에는 형체가 없지만 氣는 거칠게 찌꺼기 [같은 것이] 있다.
○就原頭定體上說, 則未分五行時, 只謂之隂陽; 未分五性時, 只謂之健順. 及分而言之, 則陽為木火, 隂為金水, 健為仁禮, 順為智義.
근원적 상태(原頭定體)에 대해 말한다면, 아직 오행으로 나눠지지 않은 때에는 다만 隂·陽이라 말하고, 아직 오성으로 나눠지지 않은 때에는 다만 健·順이라고 말한다. [오행과 오성으로] 나눠지는 경우에 대해 말하면, 陽은 木·火가 되고 隂은 金·水가 되며, 健은 仁·禮가 되고 順은 智·義가 된다.
○問隂陽五行健順五常之性. 曰: "健是稟得那陽之氣; 順是稟得那隂之氣; 五常是稟得五行之理. 人物皆稟得健順五常之性.
隂陽·五行·健順·五常의 性에 대해 물었다. 말씀하셨다: "健은 저 陽의 氣를 품수받은 것이고, 順은 저 隂의 氣를 품수받은 것이며, 五常은 五行의 理를 품수받은 것이다. 사람과 만물은 모두 健順·五常의 性을 품수받는다."
○天地之間有理有氣. 理也者, 形而上之道也, 生物之本也; 氣也者, 形而下之器也, 生物之具也. 故人物之生, 必稟此理, 然後有性; 必稟此氣, 然後有形. 其性其形, 雖不外乎一身, 然道器之間, 分際甚明, 不可亂也.
천지 사이에 理와 氣가 있으니, 理라는 것은 형이상의 도이니 만물을 낳는 근본이고, 氣라는 것은 형이하의 기물(器)이니 만물을 낳는 도구(具)이다. 그러므로 사람과 만물이 생겨남에 반드시 理를 품수받은 이후에 性이 있게 되고, 반드시 이 氣를 품수받은 이후에 형체가 있게 된다. 이 性과 형체는 비록 한 몸을 벗어나지 않지만, 道와 器 사이에는 구분이 매우 명확하여 [서로] 어지럽힐 수 없다.
○北溪陳氏曰: "人始於氣感則得魂為先, 既而體凝焉則魄次之. 魂主乎動, 所以行乎此身之中, 隨所貫而無不生者也; 魄主乎静, 所以實乎此身之中, 隨所注[70]而無不定者也.
북계 진씨가 말했다: "사람이 처음 기를 感하면 魂을 먼저 얻고, 이어서 육체가 응결되면 魄을 그 다음으로 [얻는다]. 魂은 動을 주로하기 때문에 몸 안에서 행함에 관통함(貫)에 따라 가지 않는 곳이 없고, 魄은 静을 주로하기 때문에 몸 안을 채움에 관통함(注)에 따라 안정시키기 않음이 없다."
○節齋蔡氏曰: "先有理後有氣者, 形而上為道, 形而下為器之謂也; 有則俱有者, 道即器之謂也. 盖不分先後, 則理氣不明; 不合理氣, 則判為二物, 如性之與情未發已發, 自有先後, 固不可道性情同時也. 然情之本實具於性, 非先有此性而後别生一情, 是有此性即有此情也.
절제 채씨가 말했다: "'먼저 理가 있은 후에 氣가 있다'는 것은 형이상자가 道가 되고 형이하자가 器가 된다는 말이고, '[理가] 있으면 [氣를] 갖춘다'는 것은 '道가 器에 즉한다'는 말이다. 대개 선후를 나누지 않으면 理와 氣[의 차이가] 밝혀지지 않고, 理와 氣를 합하지 않으면 두 가지 사물로 나뉘니, 마치 性과 情은 未發과 已發의 상태로 자연히 선후가 있어서 진실로 性과 情이 동시에 있다고 말할 수 없지만, 情은 본래 性에 실로 갖추어져 있어서 性이 먼저 존재한 연후에 따로 情이 생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性이 있으면 곧 이 情이 있게 되는 것과 같다."
○東窻李氏曰: "天之運五行, 其實隂陽而已; 人之性五常, 其實健順而已. 仁之油然生意不可遏, 禮之粲然明盛不可亂, 健之為也; 義不拂乎可否之宜, 智不外乎是非之别, 順之為也. 若夫信, 則體是理而不易者, 健也; 循是理而不違者, 順也.
동창 이씨가 말했다: "하늘이 五行을 운행함에 그 실질은 隂·陽일 뿐이고, 사람이 五常을 性으로 함에 그 실질은 健·順일 뿐이다. 仁의 유연한 生意를 막을 수 없고 禮의 찬연하고 성대함을 어지럽힐 수 없는 것은 健이 행한 것이고, 義가 可·否의 마땅함에서 벗어나지 않음과 智가 是·非의 구별에서 벗어나지 않음은 順이 행한 것이다. 信의 경우는, 理를 체득하여 바뀌지 않는 것이 健이고 理를 따라서 거스르지 않는 것이 順이다."
○玉溪盧氏曰: "魂, 陽之靈; 魄, 隂之靈; 五臟, 五行之質[71]; 百骸, 萬物之象也; 眞, 以理言而理不雜氣; 精, 以氣言而氣不離理. 妙者, 理氣之莫測; 合者, 理氣之無間; 凝則有是形而各一其性矣.
옥계 노씨가 말했다: "魂은 陽의 영이고 魄은 隂의 영이며, 오장은 오행의 형체이고 百骸은 만물의 형체이다. 眞은 理로 말하여 理가 氣와 섞이지 않는 것이고 精은 氣로 말하여 氣가 理와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妙라는 것은 理와 氣를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다. 合이라는 것은 理·氣에 간극이 없어서, 응결되면 형체가 있고 각각 하나의 性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周子之言見<太極圖說>
주돈이의 말은 <태극도설>에 보인다.

然以其理而言之, 則萬物一原, 固無人物貴賤之殊; 以其氣而言之, 則得其正且通者爲人, 得其偏且塞先則反者爲物, 是以或貴或賤而不能齊也.
그러나 理로 말한다면 만물은 같은 근원이니 진실로 사람과 사물·귀함과 천함의 다름이 없고, 氣로 말한다면 그 바르고 통한 것을 얻은 것이 사람이 되고 치우치고 막힌 것을 얻은 것은 사물이 되기 때문에 어떤 것은 귀하고 어떤 것은 천하여 같을 수가 없다.

朱子曰: "以理言之, 則無不全; 以氣言之, 則不能無偏."
주자가 말했다. "理로 말한다면 온전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氣로 말한다면 치우침이 없을 수 없다."
○人得其氣之正, 故是理通而無所塞; 物得其氣之偏, 故是理塞而無所通. 且如人頭圓象天, 足方象地, 平正端直, 以其受天地之正氣, 所以識道理有知識; 物受天地之偏氣, 所以禽獸横生, 草木頭生向下, 尾反向上, 物之間有知者, 不過只通得一路, 如烏之知孝, 獺之知祭, 犬但能守禦, 牛但能耕而已. 人則無不知、無不能, 人所以與物異, 所争者此耳.
사람은 그 氣 중에 바른 것을 얻었기 때문에 理가 통해 막힘이 없지만, 사물은 氣 중에 치우친 것을 얻었기 때문에 理가 막혀 통하는 바가 없다. 예를 들어 사람의 머리 모양이 둥근 것은 하늘은 본뜬 것이고, 발이 네모난 것은 땅을 본 뜬 것이며, 평평하고 바르고 단정하고 곧으며, 천지의 바른 기를 얻었기 때문에 도리를 인식하고 지식이 있는 것이다. 사물은 천지의 치우친 기를 받았기 때문에 금수는 横生하고, 초목은 머리가 날 때 아래를 향하고 꼬리는 도리어 위를 향한다. [또] 사물들 중에 지각이 있는 것은 다만 한 갈래만 통하는 데 불과하니, 예를 들어 까마귀는 孝를 알고 수달이 제사 지낼 줄 알며, 개는 지킬 수만 있고 소는 밭갈 수만 있을 뿐이다. 사람이라면 알지 못하는 것이 없고 할 수 없는 것이 없으니, 사람이 사물과 다른 점은 그 차이가 이것일 뿐이다.
○論萬物之一原, 則理同而氣異; 觀萬物之異體, 則氣猶相近而理絶不同. 方賦與萬物之初, 天命流行只是一般, 故理同; 二五之氣有清濁純駁, 故氣異. 萬物已得之後, 雖有清濁純駁之不同, 而同此二五之氣, 故氣相近; 以其昏明開塞之甚逺, 故理絶不同. 氣相近, 如知寒暖、識飢飽、好生惡死、趨利避害, 人與物都一般; 理不同, 如蜂蟻之君臣, 只是他義上有一㸃子明; 虎狼之父子, 只是他仁上有一㸃子明, 其他更推不去.
만물의 근원이 같음을 논한다면 理는 같고 氣는 다르며, 만물의 형체가 다름을 본다면 氣는 오히려 서로 가깝지만 理는 절대로 같지 않다. 만물에게 부여한 처음에는 천명의 유행은 단지 똑같기 때문에 理는 같지만, 음양오행의 氣에는 清濁純駁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氣는 다르다. 만물이 이미 얻고 난 후에는 비록 清濁純駁의 차이가 있지만 이 음양오행의 기는 같기 때문에 氣는 서로 가깝고, 그 어둡거나 밝고 열리거나 막힘의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理는 전혀 다른 것이다. '氣가 서로 가까운 것'은 마치 춥고 따뜻함을 알고 배고프고 배부름을 인지하며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며 이익을 쫓고 해악을 피하는 것과 같으니 사람과 만물이 모두 같은 것이고, '理가 같지 않은 것'은 마치 벌과 개미의 군신관계가 다만 '義'에 대해서 약간 밝은 부분이 있고, 호랑이와 이리의 부자관계가 다만 '仁'에 대해서 약간 밝은 것과 같은 것이니, 이밖으로는 더 미룰 수 없다.(벌과 개미는 義에만 밝고, 호랑이와 이리는 仁에만 밝다.)
○新安倪氏曰: "理雖不雜乎氣, 而亦不離乎氣. 以不雜者言之, 則理同而氣異; 以不離者言之, 則得氣之正者理亦全, 得氣之偏者理亦不全矣. 朱子後一條, 與或問之說略有不同者, 而亦未嘗不互相發也.
신안 예씨가 말했다: "理는 비록 氣와 섞이지 못하지만 氣와 떨어지지도 못한다. 섞이지 못하는 점으로 말하면 理는 동일하고 氣는 다르며, 서로 떨어지지 못하는 점으로 말하면 氣 중에 치우친 것을 얻으면 리 또한 온전하지 못하다. 주자의 이후 한 조목이 [여기] <혹문>의 설명과 약간 같지 않은 것이 있지만, 그래도 서로 발명하지 않은 적이 없다."

彼賤而爲物者, 旣梏於形氣之偏塞, 而無以充其本體之全矣. 唯人之生乃得其氣之正且通者, 而其性爲最貴, 故其方寸之間, 虛靈洞徹, 萬理咸備,
저 천하여 사물이 된 것은 이미 치우치고 막힌 형기에 구속되어 그 본체의 온전함을 확충할 수 없다. 오직 사람만이 태어남에 곧 바르고 통한 기를 얻어 性이 가장 귀중하게 되었으므로 마음이 허령하고 막힘없이 훤해 만리를 모두 갖추고 있다.

北溪陳氏曰: "此八字, 只是再詳'虛靈不昧, 以具衆理'之意. 虛靈洞徹, 盖理與氣合而有此妙用耳, 非可專指氣. 如心恙底人亦有氣存, 何故昏迷顛錯, 無此虚靈洞徹耶?"
북계 진씨가 말했다: "이 여덟 자(虛靈洞徹, 萬理咸備)는 다만 '虛靈不昧, 以具衆理'[72]의 의미를 다시 상세히 밝힌 것이다. '虛靈洞徹'은 대개 理와 氣를 합해 이러한 묘용이 있는 것이지 오직 氣만 가리킬 수는 없다. 만약 마음이 병든 사람에게도 [좋은] 氣가 보존되어 있다면, 무엇 때문에 혼미하고 전도되어 이러한 虚靈洞徹이 없겠는가?"

蓋其所以異於禽獸者正在於此, 而其所以可爲堯舜而能參天地以贊化育者, 亦不外焉, 是則所謂明德者也. 然其通也或不能無淸濁之異, 其正也或不能無美惡之殊, 故其所賦之質, 淸者智而濁者愚, 美者賢而惡者不肖, 又有不能同者.
대개 사람이 금수와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고, 사람이 요순이 될 수 있고 천지에 참여하여 화육함을 도울 수 있는 까닭도 여기에서 벗어나지 않으니, 이것이 바로 이른바 明德이다. 그러나 사람의 통한 [기]에도 간혹 맑고 탁한 차이가 없을 수 없고, 바른 [기에도] 간혹 아름답거나 추악한 차이가 없을 수 없기 때문에, 그 부여받은 기질이 맑은 사람은 지혜롭고 탁한 사람은 어리석으며 아름다운 사람은 어질고 나쁜사람은 불초하니, [사람과 사물 사이 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도] 다시 같을 수 없는 점이 있다.

朱子曰: "人雖皆是天地之正氣, 但衮來衮去, 便有昏明厚薄之異. 盖氣是有形之物, 纔是有形之物, 便自有美惡也."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록 천지의 바른 기를 가지고 있지만, 다만 이리저리 뒤섞여 昏明厚薄의 차이가 있다. 대개 氣는 형체가 있는 것이니, 형체가 있는 것인 이상 절로 아름답거나 추악한 [차이가] 있다."
○問: "智愚賢不肖是所稟之氣有清濁美惡之不同, 不歸於所稟, 而歸於所賦, 何邪?" 曰: "賦如俗語云分俵均敷之意."
물었다: "智·愚·賢·不肖함은 품부받은 氣에 清濁美惡의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그 원인을] '품수받은 것(所稟)'으로 환원하지 않고 '부여받은 것(所賦)'으로 환원하신 것은 어째서 입니까?" 말씀하셨다: "'賦'는 세간에서 '고르게 나눠준다(分俵均敷)'고 말하는 뜻과 같다."
○問: "有人聰明通曉, 是稟氣之清矣. 然却所為過差, 或流於小人之歸; 又有為人賢而不甚聰明通曉, 何也?" 曰: "<或問>中所謂知愚賢不肖之殊, 是也. 盖其所賦之質, 便有此四樣, 聰明曉了者, 智也; 而或不賢, 便是稟賦中欠了清和温恭之徳; 又有人極温和, 而不甚曉事, 便是賢而不智. 為學, 便是要克化教此等氣質, 令恰好耳."
물었다: "어떤 사람이 총명하고 훤히 다 아는 것은 품부받은 氣가 맑기 때문인데, 도리어 잘못을 저질러 혹 소인이라는 귀결지로 흘러가 버리기도 하고, 또 사람됨이 어진데 썩 총명하거나 훤히 알지 못하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 말씀하셨다: "<或問>에서 知·愚·賢·不肖의 차이를 말한 것이 이것이다. 대개 부여받은 자질에는 이 네 가지 양상이 있는데, 총명하고 훤히 아는 사람은 지혜롭지만(智) 간혹 어질지 못한 것(不賢)은 품부받은 것 중에 온화(清和·温恭)한 덕에 흠결이 있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이 매우 온화한데 썩 총명하지 못한 것은 어질면서도 지혜롭지 못한 것(賢而不智)이다. 학문함이란 바로 이러한 기질을 교화시켜서 적절하게 만드려고 하는 것이다."
○有是理, 而後有是氣; 有是氣, 必有是理. 但稟氣之清者為聖為賢, 此如寶珠在清冷水中; 稟氣之濁者為愚不肖, 此如寶珠在濁水中. 所謂明明徳者, 是就濁水中揩拭此珠也. 物亦有是理, 又如寶珠在至汚處. 然其所稟有些明處, 就上面便自不昩, 如虎狼之父子, 蜂蟻之君臣, 是也."
理가 있은 이후에 氣가 있으니, 氣가 있으면 반드시 理가 있기 마련이다. 다만 품부받은 기질이 맑은 사람이 성현이 되는 것은 마치 보주가 맑은 물 안에 있는 것과 같고, 품부받은 기질이 탁한 사람이 어리석고 불초하게 되는 것은 마치 보주가 탁한 물 안에 있는 것과 같다. 이른바 '明明徳'이라는 것은 바로 탁한 물에서 이 보주를 씻는 것이다. 사물에도 理가 있지만, 또 마치 보주가 매우 더러운 곳에 있는 것과 같다. 그러나 품부받은 바에 조금이나마 밝은 부분이 있어서 그 위는 어둡지 없으니, 마치 호랑이나 이리의 부자관계나 벌과 개미의 군신관계 같은 것이 이것이다.
○黄氏曰: "美惡是有生之初便分了, 非以性言, 是以氣言. 譬如玉之與石, 則美惡固分; 而玉之中, 又有美惡分焉."
황씨가 말했다: "아름답거나 추악한 차이(美惡)는 생겨난 처음에 나눠지는데, 性으로 말한 것이 아니라 氣로 말한 것이다. 비유하자면 마치 옥과 돌은 美惡이 진실로 구분되지만, 옥 가운데에서도 美惡이 나눠지는 경우와 같다."
○格庵趙氏曰: "通塞偏正, 判人物之大分而言; 其清濁美惡, 又就人中分别."
격암 조씨가 말했다: "'通塞偏正'은 사람과 사물을 나누는 큰 분류(大分)를 말한 것이고, '清濁美惡은' 사람 내에서 분별한 것이다."

必其上智大賢之資乃能全其本體, 而無少不明, 其有不及乎此, 則其所謂明德者已不能無蔽而失其全矣. 况乎又以氣質有蔽之心, 接乎事物無窮之變, 則其目之欲色, 耳. 之欲聲, 口之欲味, 鼻之欲臭, 四肢之欲安佚, 所以害乎其德者, 又豈可勝平聲言也哉! 二者相因, 反覆深固, 是以此德之明, 日益昏昧, 而此心之靈, 其所知者不過情欲利害之私而已. 是則雖曰: 有人之形, 而實何以遠於禽獸, 雖曰: 可以爲堯舜而參天地, 而亦不能有以自充矣. 然而本明之體, 得之於天, 終有不可得而昧者, 是以雖其昏蔽之極, 而介然之頃介音甲倐然之頃也一有覺焉, 則卽此空隙之中, 而其本體已洞然矣.
반드시 上智·大賢의 자질이라야 그 본체를 온전히 할 수 있고 조금의 밝지 못함도 없을 수 있으니, 여기에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다면 이른바 明德이라는 것이 이미 가려지지 않을 수 없어서 그 온전함을 잃어버리게 된다. 게다가 더욱이 기질 때문에 가려진 마음이 사물의 무궁한 변화를 만난다면, 여색을 바라는 눈과 아름다운 소리를 바라는 귀와 맛있는 것을 바라는 입과 향기를 바라는 코와 편안함을 바라는 몸이 그 덕(明德)을 해침을 또 어찌 이루 다 말할 수 있겠는가! 이 두 가지가 서로 말미암아서 반복되어 더욱 견고해지니, 이 때문에 밝은 덕은 날마다 더욱 어두워지고 신령한 마음은 정욕·이해와 같은 사욕만 알 것이다. 이렇다면 비록 '사람의 형체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진실로 금수와 무엇이 다르겠으며, 비록' 요순이 될 수 있고 천지에 참여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또 스스로 확충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본래 밝은 것(明德)은 하늘로부터 얻은 것이라서 끝내 어두워질 수 없으니, 이 때문에 비록 지극히 가려지더라도 잠깐 사이에 하나라도 깨우친다면, 그 틈 사이로 본체가 이미 훤히 드러나 있을 것이다.

問: "'介然之頃, 一有覺焉, 則其本體已洞然矣', 須是就這些覺處, 便致知充廣將去." 朱子曰: "然. 如擊石之火只是些子, 纔引著, 便可以燎原. 若必欲等大覺了, 方去格物致知如, 何等得這般時節? 那箇覺是物格知至了, 大徹悟, 到恁地時, 事都了. 若是介然之覺, 一日之間, 其發也無時無數, 只要人識認得操持充養將去."
물었다: "'잠깐 사이에 하나라도 깨우침이 있다면, 그 틈 사이로 본체가 이미 훤히 드러나 있을 것이다'라는 것은 반드시 조금 깨우친 곳에서 앎을 지극히 하고 확충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부싯돌로 낸 불은 미미할 뿐이지만, 끌어다 붙이자마자 들판을 태워버릴 수도 있는 것과 같다. 만약 반드시 크게 깨우치고 나서(大覺) 격물치지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이러한(大覺) 때를 얻겠는가? 저 깨우침(大覺)은 [격물치지의 결과로] 物格知至해서 크게 깨우친 것이니, 이런 때에 이르면 일은 [이미] 다 이뤄진 것이다. 잠깐 사이의 깨우침이 드러나는 건 하루[같이 짧은 기간]에도 정해진 때나 횟수가 없으니, 다만 사람이 [이를] 인식하고 지켜서 확충해 나가야 할 뿐이다."

是以聖人施敎, 旣已養之於小學之中, 而復扶又反開之以大學之道. 其必先之以格物致知之說者, 所以使之卽其所養之中, 而因其所發, 以啓其明之之端也; 繼之以誠意·正心·修身之目者, 則又所以使之因其已明之端, 而反之於身, 以致其明之之實也. 夫音扶旣有以啓其明之之端, 而又有以致其明之之實, 則吾之所得於天而未嘗不明者, 豈不超然無有氣質物欲之累, 而復得其本體之全哉! 是則所謂明明德者, 而非有所作爲於性分去聲之外也. 然其所謂明德者, 又人人之所同得, 而非有我之得私也. 向也俱爲物欲之所蔽, 則其賢愚之分, 固無以大相遠者. 今吾旣幸有以自明矣, 則視彼衆人之同得乎此而不能自明者, 方且甘心迷惑沒溺於卑汚音烏苟賤之中而不自知也, 豈不爲去聲之惻然而思有以救之哉! 故必推吾之所自明者以及之, 始於齊家, 中於治國, 而終及於平天下, 使彼有是明德而不能自明者, 亦皆有以自明, 而去上聲其舊染之汚焉, 是則所謂新民者, 而亦非有所付畀必至反增益之也. 이 때문에 성인께서 베푸신 가르침이란 소학에서 그들을 기르고 다시 대학의 道로 그들을 열어주는 것이다. 성인께서 반드시 격물치지의 설명을 우선하신 것은 그들로 하여금 [소학에서] 기르는 것에 나아가 [거기에서] 드러난 것을 통해 [명덕을] 밝히는 단서를 열게 하신 것이고, 誠意·正心·修身의 조목으로 격물치지를 이으신 것은 또한 그들로 하여금 이미 밝혀진 단서를 통해 자신에게 돌이켜 [명덕을] 밝히는 실질에 이루게 하신 것이다. 대저 이미 [명덕]을 밝히는 단서를 연 데다가 [명덕을] 밝히는 실질도 이뤘다면, 내가 하늘로부터 얻어 밝지 않은 적이 없던 것(명덕)이 어찌 초연히 기질과 물욕의 얽매임이 없이 다시 그 본체의 온전함을 회복하지 못하겠는가! 이렇다면 이른바 '明明德'이라는 것은 性分 밖에서 작위하는 바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른바 '명덕'이라는 것은 또한 사람마다 동일하게 얻은 것이지 내가 사사로이 얻은 것이 아니니, 이전에 모두 물욕에 의해 가려졌다면 어진 자와 어리석은 자(賢愚)의 차이가 진실로 클 수 없을 것이지만, 지금 내가 다행히 스스로 [명덕을] 밝힌 이상, 이것(명덕)을 똑같이 얻고도 스스로 밝히지 못하는 저 사람들이 막 기꺼이 미혹되어 더럽고 구차한 곳에 빠지면서도 스스로 알지 못함을 본다면, 어찌 그들을 위해 측은해 하며 그들을 구제하려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반드시 내가 스스로 밝힌 바를 미루어 다른 사람에게 미쳐, 齊家에서 시작해서 治國을 거쳐 마침내 平天下에 이르러, 이 명덕을 가지고도 스스로 밝힐 수 없는 저 사람들로 하여금 역시 모두 스스로 밝혀서 구습의 오염된 더러움을 제거하게 해야 하니, 이렇다면 이른바 '新民'이라는 것 역시 주거나 더하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니다.

玉溪盧氏曰: "非彼本無而我付畀之, 非彼本少而我増益之, 以其本體之明無不全也."
옥계 노씨가 말했다: "저들에게 본래부터 없기 때문에 내가 준 것도 아니고, 저들이 본래 조금만 가지고 있어서 내가 더해준 것이 아니니, 그 밝은 본체는 완전하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然德之在己而當明, 與其在民而當新者, 則又皆非人力之所爲; 而吾之所以明而新之者, 又非可以私意苟且而爲也. 是其所以得之於天而見形甸反於日用之間者, 固已莫不各有本然一定之則,
그러나 자신에게 있는 德을 마땅히 밝혀야 하는 것과 백성들에게 있는 덕을 마땅히 새롭게 해야 하는 것은 또한 모두 사람의 힘으로 하는 바가 아니고, 내가 밝히고 새롭게 하는 것 또한 사의로 구차하게 행하는 것이 아니니, 하늘로부터 얻어 일상생활에 드러나는 것에는 진실로 이미 각각 본연의 일정한 법칙이 있지 않음이 없다.

西山眞氏曰: "則者, 法也. 天下之理, 皆天實為之, 莫不有一定之法, 非人力所可増損, 故曰則."
서산 진씨가 말했다: "'則'이라는 것은 법칙이다. 천하의 이치는 모두 하늘이 실로 행하는 것이니, 일정한 법칙이 아님이 없고 사람의 힘으로 더하고 뺄 수 있는 바가 아니기 때문에 '則'이라고 말한 것이다."
○玉溪盧氏曰: "至善, 乃太極之異名而明徳之本體. 得之於天而有本然一定之則者, 至善之體, 乃吾心體統之太極; 見於日用之間而各有本然一定之則者, 至善之用, 乃事事物物各具之太極也."
옥계 노씨가 말했다: "'至善'이란 바로 태극의 다른 이름이며 명덕의 본체이다. '하늘로부터 얻어서 본연하고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은 至善의 體이니 바로 내 마음의 體統이되는 태극이요, '일상생활에 드러나는 것에는 각각 본연의 일정한 법칙이 있다'는 것은 至善의 用이니, 이것이 바로 '사물마다 각각 태극을 갖추고 있다(事事物物各具之太極)'[73]는 것이다."

程子所謂‘以其義理精微之極, 有不可得而名者, 故姑以至善目之',而『傳』去聲所謂君之仁·臣之敬·子之孝·父之慈·與人交之信, 乃其目之大者也. 衆人之心, 固莫不有是, 而或不能知, 學者雖或知之, 而亦鮮上聲能必至於是而不去, 此爲大學之敎者, 所以慮其理雖粗上聲略也復而有不純, 已雖粗克而有不盡, 且將無以盡夫音扶修己治人之道, 故必指是而言, 以爲明德·新民之標的也. 欲明德而新民者, 誠能求必至是而不容其少有過不及之差焉, 則其所以去上聲人欲而復天理者, 無毫髮之遺恨矣. 정자께서 '지극히 정미한 의리에는 이름할 수 없는 점이 있기 때문에 우선 至善으로 지목한다'[74] 고 하셨는데, <전>의 이른바 '君之仁·臣之敬·子之孝·父之慈·與人交之信'[75]이라고 한 것이 바로 그 항목 가운데 큰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진실로 이렇지 않음이 없으나 간혹 알지 못하기도 하고, 배우는 자가 비록 혹 이를 알더라도 [그 가운데] 반드시 이에 이르러 떠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드무니, 이것이 <대학>의 가르침을 세운 자가 그 理가 비록 약간 회복되더라도 순수하지 않음이 있고 이미 비록 약간 극복했다하더라도 다하지 않음이 있어 장차 修己治人의 도를 다할 수 없음을 염려한 까닭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것(至善)을 가리켜서 말해 至善을 明德·新民의 표적으로 삼은 것이다. 明德·新民하고 싶은 사람이 진실로 반드시 여기(至善)에 이르기를 바라 약간의 과불급의 어긋남도 용납하지 않을 수 있다면, 인욕을 없애고 천리를 회복하는 것에 조금의 여한도 없을 것이다.

朱子曰: "至善只是極好處, 十分端正恰好, 無一毫不是處, 無一毫不到處. 且如事君, 必當如舜之所以事堯, 而後喚做敬; 治民, 必當如堯之所以治民, 而後喚做仁. 不獨如此, 凡理皆有箇極好處."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至善'은 그저 아주 좋은 것이니, 십분 단정하고 적절해 조금의 옳지 않음도 없고 조금의 주도하지 않음도 없는 것이다. 예를들어 군주를 섬기는 경우 반드시 舜이 군주를 섬겼던 것과 같이 한 이후에야 敬이라고 불러야 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경우 반드시 堯가 백성을 다스린 것과 같이 한 이후에야 仁이라고 불러야 한다. [지선은] 이와 같은 경우 뿐만 아니라 모든 이치에 모두 각각 지극히 좋은 것이 있는 것이다.
○陳氏曰: "所謂'姑以至善目之'者, 所以極形容其精微爾, 非謂精微之不為善而借此以形容之也."
진씨가 말했다: "이른바 '姑以至善目之'라는 것은 그 정미함을 지극히 형용한 것일 뿐이지, 정미함이 선하지 못해 이 말(지선)을 빌려 형용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又曰: "自其大者言之, 如仁敬慈孝即君臣父子所當止之處; 自其小者言之, 如足容重, 手容恭, 重與恭, 即手足所當止之處; 視思明, 聽思聰, 聰與明, 亦視聽所當止之處."
또 말했다: "큰 것으로부터 말하면 仁·敬·慈·孝가 곧 군신·부자관계에서 마땅히 멈춰야 할 곳임과 같고, 작은 것으로부터 말하면 마치 '발 모양은 무겁게 하고 손 모양은 공손하게 한다'[76]에서 무겁게 하고 공경하게 함이 곧 손과 발이 마땅히 그쳐야하는 곳이며, '볼 때는 밝음을 생각하고 들을 때는 귀밝기를 생각한다'[77]에서 귀밝음과 밝음은 또한 보고 들음이 마땅히 그쳐야 하는 곳인 것과 같다."

大抵『大學』一篇之指, 總而言之, 不出乎八事, 而八事之要, 總而言之, 又不出乎此三者, 此愚所以斷都玩反然以爲『大學』之綱領而無疑也. 然自孟子沒而道學不得其傳, 世之君子各以其意之所便者爲學. 於是乃有不務明其明德, 而徒以政敎法度爲足以新民者; 又有愛身獨善, 自謂足以明其明德, 而不屑乎新民者; 又有畧知二者之當務, 顧乃安於小成, 狃女九反於近利, 而不求止於至善之所在者. 是皆不考乎此篇之過, 其能成己成物而不謬者鮮上聲矣.
대저 『대학』 한 편의 요지를 통틀어 말한다면 이 팔조목을 벗어나지 않으며, 이 팔조목의 요체를 통틀어 말한다면 또한 이 삼강령을 벗어나지 않으니, 이것이 내가 단호하게 [삼강령과 팔조목을] 『대학』의 강령이라고 여기고 의심하지 않는 까닭이다. 그러나 맹자께서 돌아가시고 나서 도학이 전해지지 못해 세상의 군자들이 각각 자기 뜻이 편한 바를 학문으로 삼았다. 이에 곧 자신의 明德을 밝히는 데 힘쓰지 않고 그저 정교와 법도가 新民하기 충분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었고, 또 자신을 아끼고 홀로 선하게 해서 스스로 '내 明德을 밝힐 수 있다'고 여기면서 '新民'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으며, 또 대략 이 두 가지(明德·新民)에 마땅히 힘써야 함을 알지만 도리어 이내 작은 성공에 안주하고 가까운 이익만 탐내서 '止於至善'의 소재를 구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이 모두는 이 편(<대학>)을 상고하지 않은 잘못이니, 자신을 이루고 사물을 이루며 잘못하지 않을 수 있는 자가 드물다.

朱子曰: "不務明其明徳而以政教法度為足以新民, 如管仲之徒便是; 自謂能明其明徳而不屑於新民, 如佛老便是; 略知明徳新民而不求止於至善, 如王通便是. 看他於己分上亦甚脩飾, 其論為治, 本末亦有條理, 甚有志於斯世, 只是規模淺窄, 不曽就本原上着工, 便做不徹. 須是無所不用其極, 方是. 古之聖賢明明徳, 便欲無一毫私欲; 新民, 便欲人於事事物物上皆是當也."
주자께서 말씀하셨다: "'자신의 明徳을 밝히는데 힘쓰지 않고 정교와 법도가 新民하기 충분하다고 여기는 것'은 관중과 같은 무리가 이에 해당하고, '스스로 明徳을 할 수 있다고 여기면서 新民하려고 하지 않은 것'은 불교·도가와 같은 자들이 이에 해당하며, '대략 明徳·新民해야 함을 알지만 止於至善을 구하지 않는 것'은 왕통과 같은 자가 이에 해당한다. 그(왕통)를 보면, 자기 본분상에서 매우 잘 닦았고, 그가 다스림에 대해서 논한 것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역시 조리가 있었으며, 이 세상에 심히 뜻을 두긴 했지만, 다만 규모가 너무 작아 일찍이 본원상에서 공부하지 않았기 때문에 철저하지 못하였다. 모름지기 그 지극함을 쓰지 않음이 없어야 비로소 옳다. 옛날의 성현들의 明明徳은 터럭만큼의 작은 사욕도 없고자 하셨고, 新民은 사람들이 사사물물마다 모두 옳게 하고자 하셨다."
○玉溪盧氏曰: "成己謂明徳; 成物謂新民; 不止至善, 故'不謬者鮮.'"
옥계 노씨가 말했다: "자신을 이루는 것을 明徳이라하고, 사물을 이뤄주는 것을 新民이라 한다. 至善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잘못하지 않는 자가 드물다.'"


8. '親民'을 '新民'으로 고친 이유

曰: “程子之改親爲新也, 何所據? 子之從之, 又何所考而必其然耶? 且以已意輕改經文, 恐非傳疑之義, 奈何?”
물었다: "정자께서 '親'을 '新'으로 고치셨는데, 어디에 근거하신 것인가? 그대가 이를 따랐는데, 또 무엇을 고찰해 그러함을 확신했나? 또 자기 생각으로 함부로 경문을 고치는 것은 傳疑[78]의 원칙[79] 이 아닌 것 같은데, 어떤가?"

新安倪氏曰: "<春秋穀梁傳>云: '信以傳信, 疑以傳疑.'[80] 此傳疑二字所本也."
신안예씨가 말했다. <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에서 이르기를 '信은 傳信으로 하고, 疑는 傳疑로 한다.'고 하였으니 이 傳과 疑의 두글자는 근본하는 바이다.

曰: “若無所考而輒改之, 則誠若吾子之譏矣. 今親民云者, 以文義推之則無理, 新民云者以傳去聲文考之則有據, 程子於此, 其所以處上聲之者亦已審矣. 矧未嘗去上聲其本文, 而但曰: 某當作某, 是乃漢儒釋經不得已之變例, 而亦何害於傳疑耶? 若必以不改爲是, 則世蓋有承誤踵之隴反吾禾反, 心知非是, 而故爲穿鑿附會, 以求其說之必通者矣, 其侮聖言而誤後學也益甚, 亦何足取以爲法耶?”
말했다. 만약 고찰할 바가 없는데도 곧장 그것을 고쳤다면 진실로 그대의 비판과 같다. 지금 親民을 말하는 사람은 글의 뜻으로 이를 미루어 본다면 이치가 없고, 新民을 말하는 사람은 (대학의) 傳文로 그것을 상고해 보면 근거가 있다. 정자께서 이에 대해 대처하신 것은 또한 매우 자세히 살피신 것이다. 하물며 일찍이 그 본문을 제거하지 않고 다만 '무엇은 마땅히 무엇으로 써야한다'고 말한 것은 바로 한나라 유자들이 경전을 해석하면서 부득이 한 變例니, 또한 어찌 傳疑에 해가 되겠는가? 만약 반드시 고치지 않는 것을 옳다고 여긴다면 세상은 아마도 잘못된 것을 답습해서 마음은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천착하고 억지로 가져다 붙이면서 그 설명이 반드시 통하는 것을 구할 것이니 성현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후학들을 그르치는 것이 더욱 심해질 것이니 또한 어떻게 본보기로 삼음을 취하기에 충분하겠는가?


9.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에 대한 설명

曰: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何也?”
물었다. "머무를 곳을 안 이후에 일정함이 있고 일정한 이후에 고요해질 수 있고 고요해진 이후에 안정될 수 있고 안정된 이후에 사려할 수 있고 사려한 이후에 얻을 수 있다고 하셨으니 어째서 입니까?"
曰: “此推本上文之意, 言明德新民所以止於至善之由也. 蓋明德新民, 固皆欲其止於至善, 然非先有以知夫音扶下同至善之所在, 則不能有以得其所當止者而止之. 如射者固欲其中去聲下同夫正鵠正音征鵠音谷, 然不先有以知其正鵠之所在, 則不能有以得其所當中者而中之也. 知止云者, 物格知至而於天下之事, 皆有以知其至善之所在, 是則吾所當止之地也. 能知所止, 則方寸之間, 事事物物, 皆有定理矣;
답했다. "이것은 상문의 의미를 탐구한 것이니[81] 明德, 新民이 止於至善하는 경로를 말한 것이다. 대개 明德, 新民은 진실로 모두 止於至善하고자 하지만 먼저 至善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면 마땅히 머물러야할 곳을 얻어서 머무를 수 없다. 이는 마치 사수가 진실로 정곡을 맞추고자 하지만 먼저 정곡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다면 마땅히 맞춰야 할 바를 얻어서 맞출 수 없는 경우와 같다. 知止를 말한 것은 物格知至한다면 천하의 일에 대해 모두 至善이 있는 곳을 알수 있을 것이니, 거기가 곧 내가 마땅히 멈춰야 할 곳이다. 머무를 바를 알 수 있다면 마음이 모든 일에 대해 모두 일정한 이치를 가지게 된다."

新安陳氏曰: "<章句>云: '知之則志有定向.' 此云: '事物皆有定理.' 合二說, 其義方備. 能知所止, 則此心光明, 見得事物皆有定理, 而志方有定向."
신안진씨가 말했다. <장구>에서는 '알고나면 뜻은 일정한 방향을 가진다(知之則志有定向)'고 하고 여기에서는 '만물에 모두 일정한 이치를 가지게 된다.(事物皆有定理)'고 하시니 이 두 설명을 합쳐야 그 의미가 비로소 (완전히) 갖추어 진다. 머무를 곳을 알 수 있으면 이 마음이 훤히 밝아져서 모든 일에 일정한 이치가 있음을 알 수 있고 뜻에도 일정한 방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理既有定, 則無以動其心而能靜矣; 心既能靜, 則無所擇於地而能安矣; 能安, 則日用之間, 從七恭反容閒音閑暇, 事至物來, 有以揆之而能慮矣; 能慮, 則隨事觀理, 極深研幾平聲,[82]無不各得其所止之地而止之矣.
이치가 정해짐이 있고나면 그 마음을 동요시킬 수 없어서 고요할 수 있게 되고, 마음이 고요질 수 있고나면 어느 곳에서든 안정될 수 있고, 안정될 수 있다면 평소에 느긋하고 한가로워서 사물이 닥칠 때 그것을 헤아리고 사려할 수 있고, 사려할 수 있다면 일에 따라 이치를 관찰함에 매우 깊히 그 기미를 연구해서 각각 그 머물러야 할 곳을 얻어서 머무르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問: "'知止'與'能慮', 先生昨以比<易>中'深'與'幾', <或問>中却兼下'極深研幾'字, 覺未穩." 朱子曰: "極深研幾, 是更審一審. 當時下得未仔細. 要之只著得研幾字."
물었다. '知止'와 '能慮'를 선생님께서 이전에 <易>의'深'과 '幾'에 비교하셨는데[83] <혹문>에서 도리어 '極深研幾'를 겸하여 쓰셨으니 온당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주자가 말했다. 極深研幾는 다시 한 번 살펴봐야 한다/. 당시에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았으니 핵심은 '研幾'자를 써야한다.
○陳氏曰: "物果格而無一理之不窮, 無一見之不盡, 則於天下之事, 所謂至善所當止者, 皆灼然有以知之矣."
진씨가 말했다. "사물에게 과연 格했을 때, 하나의 이치라도 궁구하지 않음이 없고 하나를 보더라도 다하지 않음이 없다면, 천하의 모든 일에 대해서 이른바 至善하여 마땅히 그쳐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모두 명확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
○理既有定, 則心之所主, 更無外慕, 凡外物皆無以動之, 而能静矣. 身既能安, 則向者知所當止之事物, 或接乎吾前, 而吾從容以應之, 自能精於慮, 而不錯亂矣.
이치가 정해지고 나면 마음이 주로하는 바에 달리 밖으로 사모하는 것이 없어 무릇 외물이 (내 마음을) 동요시킬 수 없음으로 고요할 수 있다. 몸이 편안할 수 있고나면 전에 마땅히 머물러야할 사물을 알아서 혹 내 앞에 접하더라도 내가 종용히 그것에 응하여 절로 사려를 정밀하게 할 수 있고 착란하지 않을 수 있다.

然旣眞知所止, 則其必得所止, 固已不甚相遠. 其間四節, 蓋亦推言其所以然之故, 有此四者, 非如孔子之志學以至從心,[84] 孟子之善信以至聖神,[85] 實有等級之相懸, 爲終身經歷之次序也.”
그러나 이미 진실로 그 머물 곳을 알았다면 반드시 그 머물 곳을 얻어서 이미 너무 (그 사이가) 멀지 않다. (그러나) 그 사이에 네 가지 단계는 아마도 또한 그 소이연의 이유를 미루어 말한 것이니 이 네가지 단계가 있는 것은 공자의 '학문에 뜻을 세우고 從心까지 이르는 것'과 맹자의 '善信해서 聖神에까지 이르는 것'이 진실로 단계끼리 서로 현격한 차이가 있어서 종신토록 거쳐야할 순서가 되는 것과 같지 않다.

朱子曰: "如'志學'至'從心', 中間許多, 便是大階級, 歩却闊. '知止'至'能得'只如'志學'至'立'、'立'至'不惑'相似, '定静安'大抵皆相類, 只是就一級中間細分耳."
주자가 말했다. 예를들어 '志學'부터 '從心'까지 그 중간에 많은 단계들은 큰 단계이니 걸음거리를 넒게해야 하지만 '知止'부터 '能得'은 다만 '志學'부터 '立'과 '立'부터 '不惑'까지와 서로 비슷하니 '定静安'은 대체로 이러한 부류인데 다만 한 단계를 중간에 세분화했을 뿐이다.
○某事當如此, 某事當如彼, 如君當仁, 此是知止; 事至物來, 對著胷中恰好底道理, 將這箇去應他, 此是得其所止.
누구의 일은 마땅히 이와 같아야하고 누구의 일은 마땅히 저것과 같아야 하니 예를들어 군주가 마땅히 仁해야하는 경우가 바로 머물 곳을 아는 것이다. 사물이 다가옴이 마음에 적절한 도리에 대해 그것을 가지고 사물에 응하는 것이 바로 머물 곳을 얻은 것이다.


10.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에 대한 설명

曰: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何也?”
물었다. "사물에는 本末이 있고 사건에는 終始가 있으니 선후를 알면 바로 도와 근접하다고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曰: “此結上文兩節之意也. 明德·新民, 兩物而內外相對, 故曰本末; 知止·能得, 一事而首尾相因, 故曰終始. 誠知先其本而後其末, 先其始而後其終也, 則其進爲有序而至於道也不遠矣.”
답했다. "이는 윗 글의 두 구절의 의미를 마무리한 것이다. 明德과 新民은 두 가지지만 안팍으로 서로 짝이되므로 本末이라고 말한 것이고, 知止와 能得은 한 가지 일인데 머리와 꼬리가 서로를 말미암기 때문에 終始이라고 말한 것이다. 진실로 그 근본을 먼저하고 그 말단을 나중에 하며 그 처음을 먼저하고 그 마지막을 나중에 할 줄 안다면 그 나아감에 순서가 있게 되어 도에 이르르는 것이 멀지 않다."

朱子曰: "知工夫先後、次第, 則進為有序, 不忽近務逺, 處下窺髙, 而其入道為不逺矣, 謂至道之近也."
주자가 말했다. "공부의 선후와 순서를 안다면 나아감에 순서가 있게 되어 가까운 것을 소홀히하고 고원한 것에는 힘쓰지 않으며 낮은 곳에 있으면서 높은 것을 헤아리지 않아서 도에 들어감이 멀지 않게 되니 도의 다다름이 가까워진다고 하였다."
○黄氏曰: "知所先後, 方是曉得為學之道, 未能遂得夫道也. 然既知其進為之序, 則有至之階矣, 故云去道不遠."
황씨가 말했다. "선후를 알아야 학문을 하는 방법을 깨달을 수 있지만 그 도를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미 그 나아가는 순서를 알았다면 이르게 되는 단계가 있기 때문에 도까지의 거리가 멀지 않다고 말한 것이다."


11.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 致知在格物’에 대한 설명

曰: “‘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何也?”
물었다. '옛날에 천하에 明德을 밝히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나라를 다스리고, 그 나라를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그 집안을 다스리고, 그 집안을 다스리고 싶은 사람은 먼저 그 몸을 다스리고, 그 몸을 다스리고 싶은 사람은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그 마음을 바르게 하고 싶은 사람은 먼저 그 뜻을 진실되게 하고, 그 뜻을 진실되게 하고 싶은 사람은 먼저 그 앎을 지극히하고, 앎을 지극히 하는 것은 격물에 달려있다.'고 하였는데 어째서 입니까?
曰: “此言大學之序, 其詳如此, 蓋綱領之條目也. 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者, 明明德之事也. 齊家·治國·平天下者, 新民之事也. 格物致知, 所以求知至善之所在; 自誠意以至於平天下, 所以求得夫至善而止之也.
답했다. 이는 대학의 순서가 이와 같이 상세함을 말한 것이니, 대개 3강령의 조목이다. 格物·致知·誠意·正心·修身이라는 것은 明明德의 일이고, 齊家·治國·平天下는 新民의 일이다. 格物致知는 至善이 있는 곳을 알기를 구하는 것이고 誠意부터 平天下에 이르기까지는 저 至善을 얻어서 그곳에 머무르기를 구하는 것이다.

朱子曰: "格物、致知, 是求知其所止; 誠意、正心、脩身、至平天下, 是求得其所止. 物格、知至, 是知所止; 意誠、心正、身脩、家齊、國治、天下平, 是得其所止."
주자가 말했다. 格物과 致知는 그 머무를 바를 알기를 구한 것이고, 誠意、正心、脩身부터 平天下까지는 그 머무를 바를 얻기를 구한 것이다. 物格、知至는 그 머무를 바를 안 것이고 意誠、心正、身脩、家齊、國治、天下平는 그 머무를 바를 얻은 것이다.

所謂明明德於天下者, 自明其明德而推以新民, 使天下之人皆有以明其明德也. 人皆有以明其明德, 則各誠其意, 各正其心, 各修其身, 各親其親, 各長上聲下同其長, 而天下無不平矣.
이른바 '明明德於天下'라는 것은 스스로 明德을 밝혀서 이것을 新民으로 미루어나가 천하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明德을 밝힐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모두 자신들의 명덕을 밝힐 수 있다면 각각 그 뜻을 진실하게 할 수 있고 각자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며 각자 자신을 닦아서 각자 자신의 부모를 친히하고 각자 자신의 어른을 어른대접할 것이니 천하가 평안하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問: "明徳之功, 果能若是, 不亦善乎? 然以堯舜之聖, 閨門之内, 或未盡化, 况謂天下之大, 能服堯舜之化而各明其徳乎?" 朱子曰: "<大學>'明明徳於天下', 只是且說箇規模如此. 學者須有如此規模, 不如此, 便是欠了. 且如伊尹'思匹夫不被其澤, 如已推而納之溝中',[86] 伊尹也只大槩要恁地, 又如何使得無一人不被其澤! 又如説比屋可封,[87] 也須有一家半家不恁地者, 只是見得自家規模自當如此, 到做不去處, 却無可奈何. 規模自是著恁地, 工夫便却用寸寸進. 若無規模次第, 只管去細碎處走, 便入世之計功謀利處去; 若有規模而又無細密工夫, 又只是一箇空規模. 外極規模之大, 内推至於事事物物處, 莫不盡其工夫, 此所以為聖賢之學."
물었다. 명덕의 공효가 과연 이와 같을 수 있으니 또한 좋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요순과 같은 성인도 안방문 안에 대해서는 혹 다 교화시키지 못하셨으니 하물며 천하와 같이 큼이 능히 요순의 교화를 입어서 각각 자신의 덕을 밝힐 수 있다고 말하시는 겁니까? 주자가 말했다. <대학>의 '明明徳於天下'라는 것은 다만 그 규모가 이와 같음을 말한 것이다. 학자는 모름지기 이와 같은 규모를 가져야 하니, 이와 같지 않으면 부족한 것이다. 예를 들어 이윤이 '필부라도 요순의 은택을 입지 못하는 것을 마치 자기를 미루어 시체 구덩이에 넣는 것과 같이 여겼'으니 이윤도 다만 대체적으로 이와 같이하고자 한 것이니, 또 어떻게 한 사람이라도 그 은택을 입지 못함이 없게할 수 있겠는가? 또 예를 들어 '주나라 사람들은 집집마다 봉할 만 했다(比屋可封)'로 말하더라도 틀림이나 이와 같지 않은 한 집, 반 집은 있었을 것이니 다만 자신의 규모가 응당 이와 같아야 함을 알아야 하지만 행하지 못하는 데 이르러서는 도리어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규모는 본래 이와 같이 두고 공부는 하나하나 나아가는 것이다. 만약 규모나 순서가 없고 그저 세세한 것에만 집학하면 세상의 공리를 꾀하는 수준에 들어가게 될 것이요 만약 규모는 있는데 세밀한 공부가 없다면 또 그저 헛된 규모일 뿐이다. 밖으로는 규모의 거대함을 다하고 안으로는 모든 일에 미루어 나가 그 공부를 다하지 않음이 없는 것 이것이 성현의 학문이 되는 것이다.
○新安陳氏曰: "不言各格物致知者, '民可使由, 不可使知'[88]之意也. 親親、長長, 即齊家之大者."
신안진씨가 말했다. "각각 격물치지한다고 말하지 않은 것은 '백성들은 말미암게 할 수 있지만 알게 할 수 없다'뜻이다. 親親, 長長은 제가 가운데 중요한 것이다."

然天下之本在國, 故欲平天下者, 必先有以治其國. 國之本在家, 故欲治國者, 必先有以齊其家. 家之本在身, 故欲齊家者, 必先有以修其身. 至於身之主則心也. 一有不得其本然之正, 則身無所主, 雖欲勉强上聲下同以修之, 亦不可得而修矣, 故欲修身者, 必先有以正其心. 而心之發則意也, 一有私欲雜乎其中, 而爲善去上聲惡或有未實, 則心爲所累, 雖欲勉强以正之, 亦不可得而正矣. 故欲正心者, 必先有以誠其意, 若夫音扶知則心之神明, 妙衆理而宰萬物者也. 人莫不有, 而或不能使其表裏洞然, 無所不盡, 則隱微之間, 眞妄錯雜, 雖欲勉强以誠之, 亦不可得而誠矣. 故欲誠意者, 必先有以致其知. 致者, 推致之謂, 如‘喪致乎哀’之致, 言推之而至於盡也.
그러나 천하는 본래 나라에 달려있으니 평천하 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나라를 다스려야하고, 나라는 본래 집안에 달려있으니 나라를 다스리고 싶은 사람은 반드지 먼저 그 집안을 가지런히 해야하고, 집안은 본래 자신에게 달려있으 집안을 다스리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몸을 닦아야 하고, 그 몸의 주인됨는 경우는 마음이니 하나라도 본래의 바름을 구할 수 없다면 몸에 주재하는 것이 없다. 비록 억지로 힘써 닦고자 하더라도 닦을 수 가 없다. 그러므로 수신하고하 하는 자는 반드시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바로해야한다. 마음이 발현된 것이 의이니 하나라도 사욕이 그 마음 속에서 뒤섞여 선을 행하고 악을 제거함에 혹시라도 충실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마음이 얽매이게 되니 비록 억지로 힘써 바로 잡고자 하더라도 바로 잡을 수 없다. 그러므로 마음을 바로잡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뜻을 진실되게 해야한다. 대저 지각은 마음의 신명이니 뭇 이치를 묘하게 갖추고 만물을 주재하는 것이다. 사람 知가 없는자는 없지만 혹 마음의 표리를 훤하게 다 알지 못하는 바가 없게 할 수 없다면 은미한 가운데 진망이 뒤섞여서 비록 억지로 힘써 진실되게 하고자 하더라도 또한 진실되게 할 수 없다. 그러므로 뜻을 진실되게 하고 싶은 사람은 반드시 먼저 그 앎을 지극히 해야한다. 致라는 것은 推致를 말하니 '喪致乎哀'[89] 의 致와 같으니 미루어서 지극한데 이름을 말한다.

朱子曰: "神是恁地精彩; 明是恁地光明."'
주자가 말했다. "神은 이와 같이 빛나는 것이고 明은 이와 같은 광명이다. "
○道理固本有, 用知方發得出來. 所以謂之妙衆理. 妙猶言能運用衆理也. '運用'字有病, 故只下得'妙'字."
道理는 진실로 본래 가지고 있지만 知를 써야 비로소 드러낼 수 있다. 그러므로 妙衆理라고 하였다. 妙는 運用를 운용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運用'에는 병통이 있기 때문에 다만 '妙'만 썼다.
○問: "宰是主宰之宰, 宰制之宰?" 曰: "主便是宰, 宰便是制."
물었다. "宰라는 것은 主宰의 宰입니까 宰制의 宰입니까?" 말했다. "主宰의 主는 주관함(宰)이고, 宰制의 宰는 제어함(制)이다."
○問: "知如何宰物?" 曰: "無所知學, 則不足以宰制萬物. 要宰制他, 也須要知覺."
물었다. "지가 어떻게 사물을 제재합니까?" 말했다. "지각함이 없으면 만물을 제재할 수 없다. 만물을 제재하려면 역시 지각해야한다."
○心之為物, 至虛至靈, 神妙不測, 常為一身之主, 以提萬事之綱, 而不可有頃刻之不存者也. 一不自覺而馳騖飛揚, 以狥物欲於軀殻之外, 則一身無主, 萬事無綱, 雖其俯仰顧盼之間, 盖巳不自覺其身之所在."
마음의 사물됨은 매우 虛靈하고 신묘하고 예측하지 못하여 항상 일신의 주재가 되니 만사의 기강을 잡아서 잠시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심이) 한 번이라도 자각하지 않고서 내달려 몸뚱이 밖으로 물욕을 좇는다면 일신에 주재가 없고 만사에 기강이 없어 비록 잠깐[90] 사이에도 대개 이미 몸이 있는 곳을 자각하지 못할 것이다.
○黄氏曰: "理是不動底物, 不著妙字, 如何發得許多理出來?"
황씨가 말했다. "理는 움직이지 않는 물건이니 '妙'를 쓰지 않으면 어떻게 허다한 理를 드러낼 수 있겠는가"
○陳氏曰: "致知言表裏洞然, 以心之内外而言. 知不致, 則無以識是非善惡之眞, 將從何而趨, 從何而捨? 必有錯認人欲作天理而不自覺者."
진씨가 말했다. "致知는 안과 밖으로 훤한 것을 말하니 마음의 안팎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앎이 지극하지 않으면 참된 시비, 선악을 알지 못하니 장차 무엇을 통해 취하고 무엇을 통해 버릴 것인가? 필시 인욕을 천리라고 잘못 인식하고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三山陳氏曰: "欲意之誠而不始於致知, 則有善否未明而誤於所向者, 多矣. '推之而至於盡', 有所用力之辭."
삼산진씨가 말했다. "뜻이 진실해지기를 바라면서 致知에서 시작하지 않는다면 선한지 아닌지에 대해 밝지 않은 점이 있게 되어 향할 바를 오인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推之而至於盡'라고 한 것은 힘쓸 바가 있다는 말이다."
○玉溪盧氏曰: "心之神明, 即所得於天而虚靈不昩者也. 心固具衆理而應事物, 所以妙衆理而宰事物者, 非心之神明乎? 其表與裏洞然無不盡, 則心之用與體無不明矣. 神明字與虚靈字, 相為表裏: 虚主理言, 靈兼氣言, 先言虚, 後言靈, 見心之體不離用; 神兼氣言, 明主理言, 先言神, 後言明, 見心之用不離體."
옥계노씨가 말했다. "마음의 신명함은 이미 하늘에서 얻어서 허령불매한 것이다. 마음은 진실로 具衆理하고 應事物하니, 妙衆理하고 宰事物이라는 것은 마음의 신명함이 아니겠는가? 그 안과 밖이 훤하여 다하지 않음이 없다면 마음의 용과 체가 밝혀지지 않음이 없다. 신명이라는 글자와 허령이라는 글자는 서로 표리가 되니 허는 리를 주로하여 말하였고 령은 기를 겸하여 말한 것인데 먼저 허를 말하고 나중에 령이라고 말한 것은 마음의 체가 용과 떨어지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고, 신은 기를 겸하여 말한 것이고 명은 리를 주로 말한 것이니 먼저 신을 말하고 나중에 명을 말한 것은 심의 용이 체와 떨어지지 않음을 드러낸 것이다."
○新安陳氏曰: "心本神明之物; 知又心之所以神明者. 惟神明所以妙也."
신안진씨가 말했는 "마음은 본래 신명한 물건이고 지는 또한 마음이 신명한 까닭이다. 오직 신명하기 때문에 묘한 것이다."

至於天下之物, 則必各有所以然之故, 與其所當然之則, 所謂理也, 人莫不知, 而或不能使其精粗隱顯, 究極無餘, 則理所未窮, 知必有蔽, 雖欲勉强以致之, 亦不可得而致矣.
천하의 사물에 경우는 반드시 각각 소이연의 연고가 있고 마땅히 그러한 법칙이 있으니 이른바 리이다. 사람은 (리를) 알지 못함이 없지만 혹 그 정추은현을 궁구하여 남음이 없게 할 수 없으면 리에는 다하지 못한 바가 있고 지에는 필시 가리워진 바가 있으니 비록 억지로 힘써 그것을 다하고자 하여고 또한 다할 수 없을 것이다.

朱子曰: "所當然之則, 如君之仁、臣之敬; 所以然之故, 如君何故用仁、臣何故用敬. 如君之所以仁, 盖君是箇主腦, 百姓人民皆屬他管, 他自是用仁愛, 非說是為君了, 不得巳以仁愛行之, 自是合如此, 若天使之然. 又如父之所以慈, 子之所以孝, 盖父子本同一氣, 只是一人之身分成兩箇, 其恩愛相屬, 自有不期然而然者. 其他大倫皆然, 皆天理使之如此, 豈容强為哉?"
주자가 말했다. "當然之則이라는 것은 군주의 인함과 신하의 공경함과 같은 것이고, 所以然之故라는 것은 군자가 어째서 인고 신하는 어째서 경한지 대한 것과 같다. 예를 들어 군자가 인한 까닭은 대개 군주는 리더고 백성 인민은 모두 그의 관할에 속하기 때문이니 그가 저절로 仁愛를 행하는 것이지 군주가 되었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仁愛를 행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니 절로 이와 같이 해야하는 것이 마치 하늘이 그렇게 하도록 시킨 것과 같다. 또 아버지가 자애로운 까달과 자식이 효성스러운 까닭은 대개 부자는 본래 한 기를 공유였는지라 한 사람의 몸이 나뉘어 둘을 이룬 것이니 그 은혜가 서로 이어져 절로 그렇게 하기를 기약하지 않았는데도 그렇게 되는 점이 있다. 다른 큰 인륜도 모두 그러하니 모두 천리가 그와 같이 하게 한 것이니 어찌 억지로 할 수 있겠는가?""
○玉溪盧氏曰: "粗也顯也, 即事物當然之則也; 精也隱也, 即事物所以然之故也."
옥계노씨가 말했다. 粗과 顯은 바로 事物當然之則이고 精과 隱은 事物所以然之故다.
○新安陳氏曰: "所當然之則, 理之實處; 所以然之故, 乃其上一層理之源頭也."
신안진씨가 말했다. "所當然之則는 리의 實處이고 所以然之故 바로 한 층 위의 근원적인 의미의 리이다."

故致知之道, 在乎卽事觀理, 以格夫物. 格者, 極至之謂, 如‘格於文祖’之格,見書舜典 言窮之而至其極也.
그러므로 致知하는 방법은 일에 나아가 이치를 관찰하여 저 물에 이르는 것에 달려 있으니 격이라는 것은 '이름'을 말하니 문조에 이른다는 격과 같으니 궁구하여 지극한 곳에 이른다는 말이다.

括蒼葉氏曰: "但能隨事觀理, 盡與理㑹, 卒之天下事物之理, 不惟知得一件兩件, 若隱若顯, 盖將無所不知矣; 一事一物之間, 不唯知得一分兩分, 若精若粗, 盖將無所不知矣."
괄창엽씨(葉味道/賀孫)가 말했다. "다만 일을 따라서 이치를 관찰하여 모두 이해할 수 있기만 한다면 끝내 천하 사물의 이치에 대해 한 두가지만 알 수 있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은미한 것이든 드러난 것이든 대개 장차 알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며, 한 사물간에 10%, 20%만 아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밀한 것이든 거친 것이든 간에 장차 알지 못하는 것이 없을 것이다."

此『大學』之條目, 聖賢相傳, 所以敎人爲學之次第, 至爲纖悉. 然漢·魏以來, 諸儒之論, 未聞有及之者. 至唐韓子名愈字退之乃能援音袁以爲說, 而見形甸反於「原道」之篇, 則庶幾其有聞矣. 然其言極於正心誠意, 而無曰致知格物云者, 則是不探音貪其端, 而驟語其次, 亦未免於擇焉不精, 語焉不詳之病矣. 何乃以是而議荀·揚哉?”
이것이 『大學』의 조목이요 성현께서 서로 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학문하게 하는 순서니 지극히 섬세하다. 그러나 漢·魏이래로 여러 유자들의 논의 가운에 이에 미친 것이 있다고는 듣지 못했다. 당나라 한유의 경우는 바로 이를 가져다가 설을 만들어「原道」라는 글에서 드러낼 수 있었으니, 거의 (미친게 있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말이 정심성의에는 미쳤으니 지지격물이라고 말한 것은 없었으니 이는 그 시작점을 탐구하지 않고 바로 그 다음 것 부터 말한 것이니 역시 택함에 정미하지 못하고 말함이 상세하지 못한 병폐를 면하지 못했다. 이것으로 순자와 양웅을 논할 수 있겠는가!

<韓文集>"荀與揚也, 擇焉而不精, 語焉而不詳."[91]
<韓文集>에서 "순자와 양웅은 택함이 정밀하지 못하고 말함이 상세하지 못하다"고 하였다.
○荀子, 名况, 字卿, 戰國時趙人也. 揚子, 名雄, 字子雲, 西漢成都人也. 各有所著之書, 今傳於世.
순자는 이름이 황이고 자는 경이니 전국시대 조나라 사람이고 양웅은 이름이 웅이고 자가 자운이니 서한 성도 사람이다 각각 저술한 책이 있어서 오늘날 세상에 전해진다.
○朱子曰: "「原道」舉<大學>, 却不說'格物致知'; <蘇氏古史>舉<中庸>'不獲乎上', 却不說'明善誠身',這様都是無頭學問."
주자가 말했다. "「原道」에서 <大學>을 거론하지만 오히려 '格物致知'를 말하지 않았고 <蘇氏古史>에서는 <中庸>의 '不獲乎上'을 서론하지만 '明善誠身'[92] 은 말하지 않으니 이런 것들은 모두 머리가 없는 학문이다."


12. ‘物格而后知至, …… 國治而后天下平’에 대한 설명

曰: “‘物格而后知至, 知至而后意誠, 意誠而后心正, 心正而后身修, 身修而后家齊, 家齊而后國治, 國治而后天下平’, 何也?”
물었다. "物格이후에 知至하고, 知至한 이후에 뜻이 진실되어지며 뜻이 진실되어진 이후에 마음이 바르게 되고, 마음이 바르게 된 이후에 몸이 닦여지며 몸이 닦여진 이후에 집안이 다스려지고, 집안이 다스려진 이후에 나라가 다스려지며 나라가 다스려진 이후에 천하가 평안해지는 것은 어째서 입니까?"
曰: “此覆說上文之意也. 物格者, 事物之理, 各有以詣其極上聲而無餘之謂也. 理之在物者, 旣詣其極而無餘, 則知之在我者, 亦隨所詣而無不盡矣. 知無不盡, 則心之所發能一於理而無自欺矣. 意不自欺, 則心之本體物不能動而無不正矣. 心得其正, 則身之所處不至陷於所偏而無不修矣. 身無不修, 則推之天下國家, 亦擧而措之耳. 豈外此而求之智謀功利之末哉!”
이것은 윗 글의 뜻을 뒤집어서 설명한 것이다. 物格이라는 것은 사물의 이치에 각각 그 지극한 곳에 이르러서 남음이 없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사물에 있는 理가 이미 그 지극한 곳에 이르러 남음이 없게 되었다면 나에게 있는 앎은 또한 이르른 바를 따라서 다하지 않음이 없게된다. 앎이 다하지 않음이 없다면 마음이 발현되는 바가 理에 전일하여 자신을 속이지 않을 수 있다. 意(心之所發)가 자신을 속이지 않는다면 마음의 본체를 외물이 동요시킬 수 없어서 바르지 않음이 없다. 마음이 바르게 되었다면 몸이 대처하는 곳은 편벽된 곳에 빠지는 상황에 이르지 않아서 (몸을) 닦지 않음이 없다. 몸이 닦여지지 않음이 없다면 그것을 천하와 나라 집안에까지 미루어 또한 (똑같이) 들어서 두면 될 뿐이니, 어찌 이것 벗어나서 지모나 공리의 말단적인 것에서 이것을 구하겠는가!

曰: “篇首之言明明德, 以新民爲對, 則固專以自明爲言矣; 後段於平天下者, 復扶又反以明明德言之, 則似新民之事亦在其中, 何其言之不一, 而辨之不明耶?”
물었다. "편 머리에서 명명덕을 말씀하셨을 때는 신민을 그 (동일하게) 대대하신 것은 진실로 오직 스스로 밝게하는 것만을 말씀하신 것인데 이후에 평천하에 대해서 다시 명명덕으로 말씀하신다면 신민의 일이 또한 그 안에 들어있는 것 같은데 어째서 그 말씀이 한결같지 않고 분변함이 명확하지 않은 것입니까?"
曰: “篇首三言者, 『大學』之綱領也. 而以其賓主對待先後次第言之, 則明明德者, 又三言之綱領也. 至此後段, 然後極其體用之全而一言以擧之, 以見形甸反音扶天下雖大, 而吾心之體無不該, 事物雖多, 而吾心之用無不貫. 蓋必析之有以極其精而不亂, 然後合之有以盡其大而無餘, 此又言之序也.”
말했다. "편 머리의 세마디 말은 『대학』의 강령이다. 이것들을 손님과 주인이 (서로를) 대하는 것과 대비해서 선후와 순서로 말한다면 명명덕이 세 마디 말 중에 강령이다. (그런데) 뒷 단계에 이른 연후에 그 體用의 온전함을 지극히하고서 한 마디로 말한 것이니, 이것으로 천하가 비록 크지만 내 마 마음의 體가 풀지 못하는 것이 없고, 사물이 비록 많더라도 내 마음의 用이 관통하지 못하는게 없음을 보인 것이다. 대개 반드시 분석하여 그 정미한 것까지 지극히 하고 혼란이 없을 수 있은 연후에야 그것을 합쳐서 그 큰 것을 다하여 남음이 없을 수 있으니 이것이 또한 말함의 순서이다."

○陳氏曰: "天下事物, 無一之不格, 幽明巨細, 有以洞灼其表裏, 其知之至也. 瑩萬理於胷中, 是極其所眞是而不可移, 非極其所眞非而不容易; 善極其本之所由來而無不徹, 惡極其幾之所從起而無少遁, 物果格, 知果至, 由是而往, 則意極其誠而無一念之或欺, 心極其正而無一息之不存, 身極其脩, 而無一動之或偏矣. 此書首三言固當無所不盡, 而所謂明明徳者, 又通為一篇之統體." 又曰: "體具於方寸之間, 萬理無所不備, 而無一物能出乎是理之外; 用發於方寸之間, 萬事無所不貫而無一理不行乎其事之中, 此心之所以為妙."
진씨가 말했다. "천하의 사물에 하나라도 이르지 못함이 없고 어둡고 밝은 것 크고 세세한 모든 것에 그 안과 밖을 밝힐 수 있으니 이것이 앎의 지극함이다. 모든 이치가 마음에 밝혀지면 옳은 것은 그 진짜 옳은 바를 지극히 하여 옮겨가지 않을 수 있고 그른 것은 그 진짜 그른 바를 지극히 하여서 바꾸지 않을 수 있고, 善은 그 뿌리가 말미암은 바를 지극히 하여 통하지 않음이 없고 惡은 그 기미가 말미암아서 일어난 것을 지극히하여 조금의 잃음도 없을 것이니 사물에 과연 이르고, 앎이 과연 지극해져 이것을 말미암아 간다면 뜻이 그 정성을 다하여 하나의 생각이라도 혹여 거짓됨이 없을 것이고 마음이 그 바름을 지극히하여 잠깐의 보존되지 않음이 없을 것이며 몸이 그 닦음을 지극히하여 한번 움직이더라도 간혹 치우치게 됨이 없을 것이다. 이 책 서두의 세마디 말은 진실로 다하지 못하는 바가 없어야 하고, 이른바 (뒤에서) 명명덕이라고 말한 것은 또한 통틀어 한 편의 統體가 되는 것이다." 또 말하였다. "體가 마음 안에 갖추어지면 모든 이치가 갖추어지지 않음이 없어서 하나의 사물이라도 이 이치 밖으로 나갈 수 없고, 用이 마음 안에서 발현된다면 모든 일이 관통되지 않음이 없어서 하나의 이치라도 그 일의 적절함을 행하지 못함이 없으니 이것이 마음이 신묘하게 되는 까닭이다."
○玉溪盧氏曰: "言明明徳與新民對, 則<大學>之體用猶二; 言明明徳於天下, 則<大學>之體用非二矣. 吾心之體, 即明徳之虚而具衆理者也; 吾心之用, 即明徳之靈而應萬事者也. 能析之極其精而不亂, 則知吾心之用無不貫矣; 能合之盡其大而無餘, 則知吾心之體無不該矣. 不析之而遽欲合之, 則有虚空恍惚之病; 徒析之而不能合之, 則有支離破碎之病. '必析之極其精, 然後合之盡其大', 此二句其義無窮. 眞西山嘗誦此而繼之曰: '小徳川流, 大徳敦化.' 又繼之曰: '吾道一以貫之.' 其旨深矣."
옥계노씨가 말했다. "명명덕과 신민을 대대하여 말한다면 <大學>의 體用이 두 개 같고, 明明徳於天下라고 말하면 <大學>의 體用이 두 개가 아닌 것 같다. 내 마음의 體는 곧 明徳의 虚와 具衆理고, 내 마음의 用은 곧 明徳의 靈과 應萬事다. 분석하여 그 정미한 것을 지극히하여 어지럽지 않을 수 있다면 내 마음의 用이 관통하지 못하는 것이 없음을 알 것이고, 이를 합쳐서 그 큰것을 다하고 남음이 없을 수 있다면 내 마음의 體가 풀지 못함이 없음을 알 것이다. (그런데) 분석하지도 않고서 갑자기 합지기를 바란다면 텅비고 황홀한 병폐가 있게되고, 다만 분석하기만 하고 그것을 합칠 수 없다면 지리하고 흩어져있는 병폐가 있게 된다. 必析之極其精, 然後合之盡其大' 이 두 구절의 의미가 무궁하니, 진서산이 일찍이 이것을 외며 말을 달기를, '작은 덕은 (곳곳에) 냇물처럼 흐르고, 큰 덕은 변화를 두텁게 한다.'[93]고 하였다. 또 말을 달기를 '우리의 도는 하나로 관통한다.'[94]고 하였으니 그 뜻이 깊다."


13. ‘自天子以至於庶人, …… , 未之有也’에 대한 설명

曰: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爲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何也?”
물었다. "'천자로부터 서인에 이르기까지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으니 그 근본이 어지러우면서 말단을 잘 다스리는 자는 없었고 그 두터운 것을 박하게 하고 박한 것을 두텁게 하는 일은 있지 않았다.'고 하신 것은 어째서 입니까?
曰: “此結上文兩節之意也. 以身對天下國家而言, 則身爲本而天下國家爲末. 以家對國與天下而言, 則其理雖未嘗不一, 然其厚薄之分亦不容無等差楚宜反矣. 故不能格物致知, 以誠意正心而修其身, 則本必亂而末不可治. 不親其親, 不長上聲下同其長, 則所厚者薄而無以及人之親長, 此皆必然之理也. 孟子所謂‘於所厚者薄, 無所不薄’, 其言蓋亦本於此云.”
말했다. "이것은 윗 글의 두 구절의 의미를 끝맺은 것이다. 자신을 천하국가와 대대하여 말한다면 자신이 근본이 되고 천하국가는 말단이 된다. 집안을 나라와 천하와 대대하여 말한다면 그 이치는 일찍이 같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후하고 박한 구분은 또한 약간의 차이도 용납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격물치지를 할 수 없으면서 성의정심하고 그 몸을 닦는다면 근본은 반드시 혼란해지고 말단도 다스려질 수 없다. 친하게 여기지 말하야할 사람을 친히 여기고 어른대접하지 말아야할 사람을 어른대접한다면 그 후한 것을 박하게 하여 다른 사람들의 부모와 어른에게까지 미칠 수 없을 것이니 이것은 모두 반드시 그러한 이치이다. 맹자께서 말씀하신 '마땅히 두텁게 해야할 것을 박하게 해서는 안 된다.'[95] 는 그 말은 대개 또한 여기에 근본한다."

○三山陳氏曰: "脩身者, 自格物致知誠意正心而積也. 不如是, 則身不可脩; 身之不脩, 則其本亂矣; 本之既亂, 如國家何? 事父母而不能孝, 事兄長而不能弟, 則是'於其所厚者薄'矣. 所厚者猶薄, 奚望其親天下之親、長天下之長哉?"
삼산진씨가 말했다. "脩身이라는 것은 격물치지부터 성의정심까지 쌓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지 않는다면 몸은 닦여질 수 없고, 몸이 닦여지지 않으면 그 근본이 혼란해지니 근본이 이미 혼란하다면 국가를 어떻게 하겠는가? 부모를 섬기면서 효도를 할 수 없고 형과 어른을 섬기면서 공경할 수 없다면 이것은 '그 후하게 대해야하는 사람에 박하게 하는 것'이다. 후하게 해야할 것을 오히려 박하게 하고서 어떻게 그 천하의 모든 부모를 친히 여기고 천하의 모든 어른을 어른대접하기를 바라겠는가?"


14. <대학>의 내용에 비춰봤을 때 상정된 독자가 적절한가?

曰: “治國平天下者, 天子諸侯之事也. 卿大夫以下, 皆無與音預焉. 今大學之敎, 乃例以明明德於天下爲言, 豈不爲思出其位, 犯非其分去聲, 而何以得爲如字去聲己之學哉?”
물었다. "나라를 다스리고 천하를 평안하게 하는 것은 천자와 제후의 일이니 경대부 이하는 모두 여기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대학의 가르침은 바로 대개 明明德於天下를 말한 것인데 어찌 자신의 지위를 벗어나서 생각하여[96] 자신의 몫이 아닌 것을 범하게 되지 않겠습니까? 어떻게 자기를 위한 학문이 될 수 있겠습니까?"
曰: “天之明命, 有生之所同得, 非有我之得私也. 是以君子之心, 豁呼括反然大公, 其視天下, 無一物而非吾心之所當愛, 無一事而非吾職之所當爲, 雖或勢在匹夫之賤, 而所以堯舜其君, 堯舜其民者, 亦未嘗不在其分去聲內也. 又况大學之敎, 乃爲去聲天子之元子·衆子, 公侯·卿大夫·士之適音的子, 與國之俊選去聲[97]而設, 是皆將有天下國家之責而不可辭者, 則其所以素敎而預養之者, 安得不以天下國家爲己事之當然, 而預求有以正其本淸其源哉! 後世敎學不明, 爲人君父者, 慮不足以及此, 而苟徇於目前. 是以天下之治去聲日常少, 亂日常多, 而敗國之君, 亡家之主, 常接迹於當世, 亦可悲矣! 論者不此之監, 而反以聖法爲疑, 亦獨何哉? 大抵以學者而視天下之事, 以爲己事之所當然而爲之, 則雖甲兵·錢穀·籩豆·有司之事, 皆爲去聲己也; 以其可以求知於世而爲之, 則雖割股[98]廬墓、敝車羸力為反[99], 亦爲去聲下同人耳. 善乎張子敬夫之言曰張子名栻, 字敬夫, 號南軒, 廣漢人. 乃朱子同志之友也.: ‘爲己者, 無所爲而然者也.’[100] 此其語意之深切, 蓋有前賢所未發者, 學者以是而日自省悉井反焉, 則有以察乎善利之間[101]而無毫釐之差矣.”
답했다. 하늘의 밝은 명령은 태어날 때부터 똑같이 받은 것이 있을 뿐 자신이 사사롭게 얻은 것이 아니다. 이 때문에 군자의 마음은 활연하여 크게 公하고 천하를 볼 때 한 사물이라도 자신의 마음이 마땅히 아껴할 바라고 여기지 않음이 없고, 한 가지 일이라도 자신의 직분으로 마땅히 해야할 바라도 여기지 않음이 없다. 비록 혹여 처지가 필부의 천함에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의 군주를 요순으로 만들고 자기 백성을 요순의 백성으로 만드는 것이 또한 일찍이 그 분수안에 있지 않음이 없다. 또한 하물며 대학의 가르침은 바로 천자의 첫째 아들과 다른 아들들, 공후·대부·사의 적장자와 나라의 뛰어난 인재들을 위하여 설치한 것이다. 이들은 모두 장차 천하와 국가의 책무가 있고 사양할 수 없는 자들로 그 평소 가르쳐서 미리 그들을 기르는 것이 어찌 천하 국가의 일을 자신이 마땅히 해야할 일로 삼아서 미리 그 뿌리를 바로잡고 그 근원을 맑게 하기를 구하게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후세의 교육이 밝지 못해서 남의 임금과 부모된 자들이 여기에 이르기 부족하다고 걱정하면서도 구차하게 눈앞에 있는 것을 따르니 이 때문에 천하의 치세는 날로 항상 적어지고 난세는 날로 항상 많아지며 나라를 망치는 군주들과 집안을 망치는 주인들이 항상 세대에 연이어 일어나니 또한 슬퍼할만 하구나! 그대가 이러한 것을 보지 않고 도리어 성법을 의심하는 것은 유독 어째서 인가! 대개 학자의 신분으로 천하의 일을 볼 때 자기가 마땅히 해야할 바로 여겼기 때문에 그것을 행한다면 비록 군사일, 창고일, 제사일, 유사의 일이라도 모두 자기를 위한 것이 되고, 세상에 알려지기를 구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한다면 비록 허벅지 안쪽살을 베거나 무덤 옆에 여막을 지어 살고, 청렴하게 살더라도 다른사람을 위한 것일 뿐이다. 좋구나! 장경부의 말이여! '나를 위한 것은 인위적으로 하는 것 없이 그렇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으니 이 말의 의미가 깊고 절근하다. 대개 이전의 성현들이 아직 드러내지 못한 바가 있어서 학자들이 이것을 날마다 스스로 성찰한다면 善과 利의 차이를 살펴서 털끝만큼의 차이가 없을 수 있다.

○問為己為人一條. 朱子曰: "這須要自看. 如一日之間, 小事大事, 只道我合當做便如此做, 這便是'無所為', 如讀書, 只道自家合當如此讀, 合當如此理㑹身巳. 纔說要人知, 便是'有所為', 如世上人纔讀書, 便安排這箇好做時文, 此又為人之甚者."
"'나를 위한다'와 '남을 위한다' 이 한 조목에 대해 묻습니다." 주자가 말했다. "이것은 모름지기 스스로 보려 해야한다. 평소에 모든 일을 '내가 마땅이 이렇게 해야한다'고 말하고 곧 그렇게 한다면 이것이 바로 작위하는 것이 없는 것이다. 책을 읽는 경우에 다만 '나는 이렇게 책을 읽어야해'라고 말하고 이와 같이 읽는다면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말하자마자 곧 작위함이 있게 되니 세상사람들이 책을 읽자마자 바로 時文 [102] 잘짓기를 꾀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더욱 남을 위하는 것이 심한 것이다."
○如甲兵、錢榖、籩豆、有司, 到當自家理㑹便理㑹, 不是為别人了理㑹. 如割股、廬墓, 一是不忍其親之病, 一是不忍其親之死, 這都是為已者. 若因要人知了去恁地, 便是為人."
"전쟁일, 창고일, 제사일, 유사의 일 같은 경우라도 마땅히 내가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야지 다른 사람을 위하여 이해하는 것은 옳지 않다. 割股나 廬墓의 경우는 하나는 그 부모의 지병을 차마하지 못하는 것이고 하나는 그 부모의 죽음을 차마하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모두 자신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만약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바랐기 때문에 이렇게 했다면 이는 곧 남을 위한 것이 된다."
○問: "割股事, 如何?" 曰: "割股固自不是, 若誠心為之, 不求人知, 亦庶幾. 今有以此要譽者."
물었다. "割股의 일은 어떻습니까?" 말했다. "할고는 진실로 스스로에게 옳지 않으니 만약 마음을 진실하게 하여 그것을 행하고 다른 사람이 알아주기를 구하지 않는다면 거의 (도에) 가깝겠지만 오늘날에는 이것으로 명예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南軒此言, 擴前聖所未發, 而同於孟子性善、養氣之功者歟!
장남헌의 이 말은 전 성현들이 아직 드러내지 못한 바를 넓힌 것이니 맹자의 性善、養氣의 공적[103]과 동일하구나!


15. <대학>의 저자 문제

曰: “子謂正經蓋夫子之言, 而曾子述之, 其傳去聲, 後凡言傳文經傳之類皆同.則曾子之意, 而門人記之. 何以知其然也.”
물었다. "그대가 正經을 말한 것은 대개 부자께서 말씀하시고 증자가 조술하였으며 그 해석은 증자의 뜻이고 문인들이 그것을 기록한 것이니 어떻게 그러하다는 것을 안 것인가?"
曰: “正經辭約而理備, 言近而指遠, 非聖人不能及也. 然以其無他左驗, 且意其或出於古昔先民之言也, 故疑之而不敢質. 至於傳文, 或引曾子之言, 而又多與『中庸』『孟子』者合, 則知其成於曾氏門人之手, 而子思以授孟子無疑也. 蓋『中庸』之所謂明善, 卽格物致知之功; 其曰誠身, 卽誠意·正心·修身之效也. 孟子之所謂知性者, 物格也; 盡心者, 知至也; 存心·養性·修身者, 誠意·正心·修身也.
말했다. "正經은 말이 요약하지만, 이치가 갖추어져 있으며 말이 절근하지만 뜻은 고원하니 성인이 아니라면 여기에 미칠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은 다른 증거[104]가 없으니 아마도 옛날 백성들의 말에서 나온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의심하지만 감히 질정[105]하지는 못했다. 傳文의 경우에 이르러서는 혹 증자의 말을 인용하고 또 『中庸』과『孟子』와 합치하는 것이 많으니 증자의 문하의 손에서 완성되었음을 알겠고, 자사가 맹자에게 전수한 뜻임을 의심할 바가 없다. 대개 『中庸』에서 말한 明善은 곧 格物致知의 공적이고, 誠身을 말한 것은 곧 誠意·正心·修身의 공효이다. 맹자가 말한 知性은 物格이고, 盡心은 知至며, 存心·養性·修身이라는 것은 誠意·正心·修身이다."

○朱子曰: "知性者, 物格也, 物字對性字; 盡心者, 知至也, 知字對心字."
주자가 말했다. "知性이라는 것은 物格이니, 物은 性과 대대하고, 盡心이라는 것은 知至하니, 知는 心과 대대한다."
○'物理之極處無不到', 知性也; '吾心之所知無不盡', 盡心也.
'物理의 지극한 곳에 이르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知性이고, '내 마음의 아는 바를 다하지 않음이 없다'는 것은 盡心이다.

其他如謹獨之云, 不慊口簟口劫二反之說, 義利之分, 恒言之序,
이외에 謹獨을 말한 것과 不慊[106] 의 설명과 義利의 구분은 항상된 말의 순서가

○新安倪氏曰: "孟子云: '人有常言皆曰天下國家, 天下之本在國, 國之本在家, 家之本在身.'[107] 此'常言之序'也."
신안예씨가 말했다. "맹자가 '사람은 항상된 말이 있어서, 항상 天下國家를 말하니, 天下의 근본은 國에 달려있고, 國의 근본은 家에 달려있으며 家의 근본은 자신에게 달려있다'라고 말한 이것이 '常言之序'이다. "

亦無不脗武粉反又音冺合焉者. 故程子以爲孔氏之遺書, 學者之先務, 而<論><孟>猶處上聲其次焉, 亦可見矣.[108]
또한 여기에 맞지 않음이 없었다. 때문에 정자께서 이 책을(대학) 공자를 수학하던 사람들이 남긴 책과 학자들이 급선무로 해야할 것으로 여기셨고, 『논어』, 『맹자』는 오히려 그 다음에 두셨음을 또한 알 수 있다.

曰: “程子之先是書而後<論><孟>, 又且不及乎<中庸>, 何也?”
물었다. "정자께서 이 책을 먼저로 여기시고 『논어』, 『맹자』를 뒤로 여기셨는데, 또 『중용』을 언급하지 않으신 것은 어째서 입니까?"
曰: “是書垂世立敎之大典, 通爲去聲天下後世而言者也. <論><孟>應機接物之微言, 或因一時一事而發者也. 是以是書之規模雖大, 然其首尾該備, 而綱領可尋, 節目分明, 而工夫有序, 無非切於學者之日用. <論><孟>之爲去聲人雖切, 然而問者非一人, 記者非一手, 或先後淺深之無序, 或抑揚進退之不齊, 其間蓋有非初學日用之所及者. 此程子所以先是書後<論><孟>, 蓋以其難易去聲下同緩急言之, 而非以聖人之言爲有優劣也. 至於<中庸>, 則又聖門傳授極致之言, 尤非後學之所易得而聞者, 故程子之敎未遽及之, 豈不又以爲<論><孟>旣通, 然後可以及此乎? 蓋不先乎<大學>, 無以提挈綱領而盡<論><孟>之精微; 不參之<論><孟>, 無以融貫會通而極<中庸>之歸趣; 然不會其極於<中庸>, 則又何以建立大本盡性也, 經綸大經立教也, 而讀天下之書, 論天下之事哉? 以是觀之, 則務講學者, 固不可不急於四書, 而讀四書者, 又不可不先於<大學>, 亦已明矣. 今之敎者, 乃或棄此不務, 而反以他說先焉, 其不溺於虛空, 流於功利, 而得罪於聖門者, 幾平聲希矣."
말했다. "이것은 세상에 드리워져 가르침을 세운 위대한 텍스트니 모두 천하의 후세를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다. 『논어』, 『맹자』는 주어신 상황에 따라 대응하는 (별거아닌 듯 하지만) 심호한 말이니 간혹 한 때나 한 사건을 말미암아서 일어났다. 이 때문에 이 책의 규모는 비록 크지만 그 머리와 꼬리는 모두 갖춰져 있고 강령을 살필 수 있으며 절못이 분명하고 공부에 순서가 있어서 학자의 평소에 절실하지 않음이 없으니, 『논어』, 『맹자』가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은 비록 절실하지만 물어보는 사람이 한 명이 아니고 기록하는 사람이 한 명이 아니라서 간혹 선후와 깊이가 순서가 없고 간혹 나아가고 물러남이 일정하지 않으니 이 사이에서 대개 초학자가 평소 미치지 못하는 바가 있게 된다. 이것이 정자께서 『대학』책을 먼저로 하고 『논어』, 『맹자』를 뒤로하신 까닭이다. 대개 그 어려움과 급함으로 말한 것이지, 성인의 말이 우열이 있다고 여긴 것이 아니다.『중용』에 경우는 성현의 문하에 전수한 지극한 말이고 또 후학들이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정자의 가르침은 선급하게 언급하지 않으셨으니 어찌 『논어』, 『맹자』를 이미 통달한 연후에 여기에 미칠수 있다고 여기신 것이 아니겠는가! 대개 『대학』을 우선으로 하지 않으면 강령을 항상 염두하면서『논어』, 『맹자』의 정미함을 다할 수 없고, 『논어』, 『맹자』을 참조하지 않으면 모두 관통하여 『중용』의 의미를 지극히할 수 없다. 그러나『중용』을 지극히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또 어떻게 근본을 세우고 법도를 운용하여 천하의 책을 읽고 천하의 일을 논하겠는가! 이것으로 본다면 강학에 힘쓰는 사람들은 진실로 이 네 가지 책을 급히여기지 않아서는 안 되고, 이 네 가지 책을 읽는 사람은 또한 『대학』을 우선으로 하지 않아서는 안 됨이 이미 분명하다. (그러나) 지금의 교육자들은 이내 간혹 이 네 가지 책을 버리고 우선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다른 설명을 이것들보다 우선하니 공허한 것에 빠지고 공리에 흘러들어가서 성현의 문하에 죄를 얻지 않는 사람이 드물었다. "

傳一章

康誥曰:「克明德。」

康誥,周書。克,能也。

大甲曰:「顧諟天之明命。」

大,讀作泰。諟,古是字。大甲,商書。顧,謂常目在之也。諟,猶此也,或曰審也。天之明命,即天之所以與我,而我之所以為德者也。常目在之,則無時不明矣。

帝典曰:「克明峻德。」

峻,書作俊。帝典,堯典,虞書。峻,大也。

皆自明也。

結所引書,皆言自明己德之意。
  • 右傳之首章。釋明明德。
此通下三章至「止於信」,舊本誤在「沒世不忘」之下。


『혹문』 전1장

或問: "一章而下以至三章之半, 鄭本元在沒世不忘之下, 而程子乃以次於此, 謂知之至也之文' 子獨何以知其不然而遂以爲傳之首章也?"
曰: "以經統傳, 以傳附經, 則其次第可知. 而二說之不然, 審矣."


○曰: "然則其曰: '克明徳'者, 何也?"
曰: "此言文王能明其徳也. 蓋人莫不知徳之當明而欲明之, 然氣稟拘之於前, 物欲蔽之於後. 是以雖欲明之而有不克也. 文王之心, 渾上聲然天理, 亦無待於克之而自明矣. 然猶云爾者, 亦見其獨能明之而他人不能. 又以見夫音扶未能明者之不可不致其克之之功也."

問: "'克明徳', 克, 能也. 或問中却作'能致其克之之功', 又似克治之克, 如何?" 朱子曰: "此克字, 雖訓能字, 然克字重, 是他人不能而文王獨能之. 若只作'能明徳', 語意便都弱了. 凡字有文義一般而聲響頓異, 如云: '克宅心', '克明徳'之類, 可見."
○人所以不能明其徳者, 何哉? 盖氣偏而失之太剛, 則有所不克; 氣偏而失之太柔, 則有所不克; 聲色之欲蔽之, 則有所不克; 貨利之欲蔽之, 則有所不克. 不獨此耳, 凡有一毫之偏蔽得以害之, 則有所不克. 唯文王無氣稟物欲之偏蔽, 故能有以勝之而無疑.
○西山眞氏曰: "明徳, 人所同有, 其所以為聖愚之分者, 但以克明與不能明之異爾. 常人所以不能明者, 一則以氣稟昏弱之故; 二則以物欲蔽塞之故. 雖是蔽塞之餘, 若一旦悔悟, 欲自明其徳, 亦無不可者. 患在自暴自棄而不肯為耳.
○格庵趙氏曰: "文王自誠而明者. 故其心渾然天理, 表裏澄瑩, 不待克之而自明. 若大賢而下, 未能如文王, 則不可無克之之功矣."


○曰: "'顧諟天之明命', 何也?"
曰: "人受天地之中以生. 故人之明徳, 非他也, 即天之所以命我而至善之所存也. 是其全體大用, 蓋無時而不發見形甸反於日用之間.

陳氏曰: "於寂然不動之時, 則合萬殊為一本, 而渾然之全體常昭融於方寸之間; 及感而遂通之際, 則散一本為萬殊, 而縱横曲直莫非大用之所流行矣." 又曰: "天理本體, 常生生而無一息之已; 而其大用, 亦無一息不流行乎日用之間."

人惟不察於此. 是以汨音骨於人欲而不知所以自明, 常目在之而眞若見其參於前、倚於衡也[109], 則成性存存而道義出矣[110]."

問: "如何是體, 如何是用?" 朱子曰: "體與用不相離, 且如身是體, 要起行去便是用. 赤子匍匐將入井, 皆有怵惕惻隱之心, 只此一端體用便可見. 如喜怒哀樂是用, 所以喜怒哀樂是體."
○若'見其參前', '倚衡', 此豈有物可見? 但凡人不知省察, 常行日用毎與是徳相忘, 亦不自知其有是也. 今所謂'顧諟'者, 只是心裏常常存著此理, 一出言, 一行事, 皆必有當然之則, 不可失也. 初豈實有一物之可見其形象耶?
○問: "'成性存存, 道義出矣', 何如?" 曰: "天之所命, 我之所得於已, 只是一箇道理. 人只要存得這些在這裏. 才存得在這裏, 則事君必㑹忠, 事親必㑹孝, 見孺子入井, 則怵惕之心便發, 見穿窬之類, 則羞惡之心便發, 合恭敬處便自然㑹恭敬, 合辭遜處便自然㑹辭遜. 須要常存得此心, 則便見得此性發出底都是道理; 若不存得這些, 待做出, 那箇㑹合道理?"
○西山眞氏曰: "'成性'者, 言天之與我者, 自有渾成之性, 如俗言'見成渾淪之物', 是也. 我但當存之又存, 不令頃刻失之, 則天下之道義皆從此出. 道義, 如事君忠, 事親孝之類."
○玉溪盧氏曰: "'天地之中', 太極是已, 天之命我, 此也; 我之明徳, 此也; 謂之至善, 亦此也. 道者, 體; 義者, 用; '成性存存而道義出', 則明徳之全體大用無不明矣."


○曰: "'克明峻徳', 何也?"
曰: "言堯能明其大徳也."

朱子曰: "人之為徳未嘗不明, 而其明之為體亦未嘗不大. 但人自有以昏之, 是以既不能明, 而又自䧟於一物之小. 唯堯為能明其大徳而無昏暗狹小之累, 是則所謂止於至善."
○玉溪盧氏曰: "能明其大徳, 只是明明徳到十分盡處, 非明徳之外有峻徳也."


○曰: "是三者, 固皆自明之事也. 然其言之, 亦有序乎?"
曰: "<康誥>通言明徳而已; <太甲>則明天之未始不爲人而人之未始不爲天也; <帝典>則專言成徳之事, 而極其大焉. 其言之淺深, 亦略有序矣."

問: "'天未始不為人而人未始不為天', 何也?" 朱子曰: "只是言人性本無不善, 而其日用之間莫不有當然之則, 所謂天理也. 人若毎事做得是, 則便合天理. 天人本一理, 若理㑹得此意, 則天何嘗大, 人何嘗小也?"
○天即人, 人即天. 人之始生, 得於天也; 既生此人, 則天又在人矣. 凡語言動作視聽, 皆天也; '顧'是常要看得光明燦爛, 照在目前.
○黄氏曰: "本文三引<書>, 乃斷章取義, 以明經文明明徳之意. 其言之序, 則自淺而深, 最爲有用. '克明徳'者, 泛言之; 曰'顧諟', 則言明之之功; 曰'明命', 則言明徳之故; 次之曰'峻徳', 加一峻字, 則又見明徳之極, 乃所謂'止於至善'者也."

傳二章

湯之盤銘曰:「苟日新,日日新,又日新。」

盤,沐浴之盤也。銘,名其器以自警之辭也。苟,誠也。湯以人之洗濯其心以去惡,如沐浴其身以去垢。故銘其盤,言誠能一日有以滌其舊染之汙而自新,則當因其已新者,而日日新之,又日新之,不可略有間斷也。

康誥曰:「作新民。」

鼓之舞之之謂作,言振起其自新之民也。

詩曰:「周雖舊邦,其命惟新。」

詩大雅文王之篇。言周國雖舊,至於文王,能新其德以及於民,而始受天命也。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

自新新民,皆欲止於至善也。
  • 右傳之二章。釋新民。


『혹문』 전2장

或問: "盤之有銘, 何也?"
曰: "盤者, 常用之器銘者, 自警之辭也. 古之聖賢, 兢兢業業[111], 固無時而不戒謹恐懼. 然猶恐其有所怠忽而或忘之也. 是以於其常用之器, 各因其事而刻銘以致戒焉, 欲其常接乎目, 毎警乎心而不至於忽忘也."


曰: "然則沐浴之盤而其所刻之辭如此, 何也?"
曰: "人之有是徳, 猶其有是身也; 徳之本明, 猶其身之本㓗也; 徳之明而利欲昏之, 猶身之㓗而塵垢音苟音烏又去聲之也. 一旦存養省悉井反察之功, 眞有以去上聲下同其前日利欲之昏, 而日新焉, 則亦猶其䟽平聲音藥[112]音早[113], 而有以去其前日塵垢之汚也. 然既新矣, 而所以新之之功不繼, 則利欲之交將復扶又反下同有如前日之昏, 猶既㓗矣而所以㓗之之功不繼, 則塵垢之集將復有如前日之汚也. 故必因其巳新而日日新之, 又日新之, 使其存養省察之功無少間斷間去聲斷徒玩反後凡二字相連者並同, 則明徳常明而不復爲利欲之昏, 亦如人之一日沐浴而日日沐浴, 又無日而不沐浴, 使其䟽瀹澡雪之功無少間斷, 則身常㓗清而不復爲舊染之汚也. 昔成湯所以反之而至於聖者, 正惟有得於此. 故稱其徳者有曰: '不邇聲色, 不殖承職反貨利.'[114] 又曰: '以義制事, 以禮制心.'[115] 有曰: '從諌弗咈音佛'[116], '改過不吝.'[117] 又曰: '與人不求備, 檢身若不及.'[118] 此皆足以見其日新之實. 至於所謂聖敬日躋牋西反[119]云者, 則其言愈約而意愈切矣躋, 升也. 聖人能敬其徳, 日愈升於髙明也.然本湯之所以得此, 又其學於伊尹而有發焉. 故伊尹自謂與湯咸有一徳[120], 而於復如字政太甲之初, 復扶又反下同以終始惟一, 時乃日新[121], 爲丁寧之戒, 蓋於是時, 太甲方且自怨自艾音乂, 於桐處上聲仁遷義而歸[122], 是亦所謂苟日新者. 故復推其嘗以告于湯者告之, 欲其日進乎此, 無所間斷, 而有以繼其烈祖之成徳也.[123] 其意亦深切矣.

朱子曰: "成湯工夫, 全在敬字上. 看來大叚是箇脩飭底人. 故當時人說他做工夫處, 如云以義以禮, 不邇不殖等, 可見日新之功. 或問中所以詳載, 非說道人不知, 亦欲學者經心[124]耳."
○格庵趙氏曰: "塵垢之汚, 其害淺, 利欲之昏, 其害深. 塵垢之汚, 人知求以去之, 而利欲之昏, 則不知所以去之. 唯聖人則以為徳之不可不新, 甚於身之不可不㓗也. 且人之㓗身也, 既知䟽瀹澡雪以去前日塵垢之汚矣. 然其㓗之之功不繼, 則塵垢復集, 將又如前日之汚. 故必日加䟽瀹澡雪之功, 無少間斷, 而後其身常㓗而不汚, 况欲去利欲之昏, 而復本然之明, 則存養省察之功, 其可一日而有間斷哉!"
○玉溪盧氏曰: "不邇聲色等八句, 是敬之目; 聖敬日躋一句, 是敬之綱. 合而言之, 即顧諟明命之事也."

其後周之武王, 踐阼存故反之初, 受師尚父[125]丹書之戒曰尚父太公望吕氏詳見孟子離婁上篇: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

問從字意. 朱子曰: "從, 順也. 敬便立起, 怠便放倒. 以理從事是義, 不以理從事便是欲. 這處敬與義, 是箇體用."
○須是將敬來做本領. 涵養得貫通時, 纔敬以直内, 便義以方外. 義便有敬, 敬便有義. 如居仁便由義, 由義便居仁. 敬者, 守於此而勿失之謂; 義者, 施於彼而合宜之謂.
○西山眞氏曰: "武王之始踐阼也, 訪丹書於太公, 可謂急於聞道者矣. 而太公望所告, 不出敬與義之一言. 蓋敬則萬善俱立, 怠則萬善俱廢, 義則理為之主, 欲則物為之主. 上古聖人巳致謹於此矣. 武王聞之, 若湯之戒懼而銘之器物以自警焉. 蓋恐斯須不存, 而怠與欲得乘其隙也."
○新安陳氏曰: "敬義對言, 其理甚精. 孔子於坤<文言>曰: '敬以直内, 義以方外.'[126] 實自此發."

退而於其几席、觴豆、刀劒、户牖, 莫不銘焉, 蓋聞湯之風而興起者. 今其遺語尚幸頗見形甸反於禮書, 願治去聲之君, 志學之士, 皆不可以莫之考也."

張氏存中曰: "<大戴禮> <武王踐阼>篇, '武王踐阼三日, 召師尚父而問焉曰: 『黄帝顓帝之道, 可得而見與?』 曰: 『在丹書, 王欲聞之, 則齊矣.』 王齊三日, 師尚父奉書而入, 道書之言曰: 『敬勝怠者吉, 怠勝敬者滅, 義勝欲者從, 欲勝義者凶. 凡事不强則枉, 弗敬則不正, 枉者滅廢, 敬者萬世.』 王聞書之言, 惕若恐懼, 而為戒書於席四端為銘焉. 銘曰: 『安樂必敬』 『無行可悔』 『一反一側, 亦不可不志[127] 『殷監不逺, 視爾[128]所代』, 鑑銘曰: 『見爾前, 慮爾後』, 盤銘曰: 『與其溺於人也, 寧溺於淵. 溺於淵, 猶可游也; 溺於人, 不可捄也.』, 楹銘曰: 『毋曰胡殘, 其禍將然; 毋曰胡害, 其禍將大; 毋曰胡傷, 其禍將長』, 牖銘曰: 『隨天之時, 以地之財, 敬祀皇天, 敬以先時』, 劒銘曰: 『帶之以為服, 動必行徳行. 德則興, 倍徳則崩』.'"倍與背同. 銘凡十有四, 今摘其辭義之易知者于此.


曰: "此言'新民', 其引此, 何也?"
曰: "此自其本而言之, 蓋以是爲自新之至而新民之端也."


○曰: "<康誥>之言作'新民', 何也?"
曰: "武王之封康叔也, 以商之餘民, 染紂汚俗而失其本心也. 故作<康誥>之書而告之以此, 欲其有以鼓舞而作興之, 使之振奮踴躍, 以去上聲其惡而遷於善, 舍上聲其舊而進乎新也. 然此豈聲色號令之所及哉? 亦自新而已矣.


曰: "孔氏<小序>以<康誥>爲成王周公之書, 而子以武王言之, 何也?"
曰: "此五峯胡氏之說也.

胡氏, 名宏, 字仁仲, 建安人, 文定公安國之子也. 其說見<皇王大紀>.

蓋嘗因而考之, 其曰朕弟寡兄云者, 皆爲武王之自言, 乃得事理之實, 而其他証亦多. <小序>之言, 不足深信, 於此可見. 然非此書大義所關. 故不暇於致詳, 當别爲去聲讀書者言之耳."


○曰: "<詩>之言'周雖舊邦, 其命維新', 何也?"
曰: "言周之有邦, 自后稷以來千有餘年, 至於文王, 聖徳日新而民亦丕變[129].

新安陳氏曰: "此乃推本言之, <詩>無'日新丕變'意. 蓋承上文'日新', 作新說來."

故天命之以有天下. 是其邦雖舊而命則新也. 蓋民之視效在君, 而天之視聽在民. 君徳既新, 則民徳必新; 民徳既新, 則天命之新, 亦不旋日[130]矣."

問: "'天之視聽在民', 與'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131], 若有不同, 如何?" 朱子曰: "天豈曾有耳目以視聽? 只是自民之視聽, 便是天之視聽. 如帝命文王, 豈天諄諄然命之? 只是文王要恁地, 便是理合恁地, 便是帝命之也." 又曰: "若一件事, 民人皆以為是, 便是天以為是; 若民人皆歸往之, 便是天命也."


○曰: "所謂'君子無所不用其極'者, 何也?"
曰: "此結上文<詩><書>之意也. 蓋<盤銘>言自新也, <康誥>言新民也, 文王之詩自新、新民之極也. 故曰: '君子無所不用其極.' 極, 即至善之云也. 用其極者, 求其止於是而巳矣."

朱子曰: "觀上文三引<詩><書>而此以無所二字總而結之, 則於自新、新民皆欲用其極, 可知矣."

傳三章

『혹문』 전3장

傳四章

『혹문』 전4장

傳五章

『혹문』 전5장

傳六章

『혹문』 전6장

傳七章

『혹문』 전7장

傳八章

『혹문』 전8장

傳九章

『혹문』 전9장

傳十章

『혹문』 전10장

대학 판본 비교

송대 유학자들이 『禮記』 「大學」을 높이 평가했지만 모두 온전한 글이라고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大學」이 순하게 읽히지 않는 것은 전래되는 과정에서 오류(착간이나 오탈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라고 여기고, (아마도) 내용을 기준으로 「大學」의 순서를 바로잡거나 글자를 수정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기도 했다. (자세한 수정 사항은 차치하고) 『禮記』 「大學」의 구절을 순서에 따라 ①~⑯으로 구분했을 때,

  • 「明道先生改正大學」 : 1-6-7-8, 2-3-4-10-11-12-13, 5-9-14-15-16
  • 「伊川先生改正大學」 : 1-2-9-3, 6-7-8, 4-10-11-12-13, 5-15-14-16
  • 『大學章句』 : 1-2-6-7-8-5-9-3, 4-10-11-12-13, 14-15-16

의 순서로 수정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표와 같다:

『禮記』 「大學」 「明道先生改正大學」 「伊川先生改正大學」 『大學章句』
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當作新>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①大學之道, 在明明德, 在親民, 在止於至善. 知止而后有定, 定而后能靜, 靜而后能安, 安而后能慮, 慮而后能得. 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則近道矣.
②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為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⑥《康誥》曰: 「克明德.」 《大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 ②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為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②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為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③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 ⑦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康誥》曰: 「作新民.」 《詩》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 ⑨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⑥《康誥》曰: 「克明德.」 《大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
④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慎其獨也! 小人閑居為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後厭然, 掩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慎其獨也.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⑧《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為人君, 止於仁; 為人臣, 止於敬; 為人子, 止於孝; 為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③此謂知本<四字衍>, 此謂知之至也. ⑦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康誥》曰: 「作新民.」 《詩》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
⑤《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詩》云: 「於戲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②古之欲明明德於天下者, 先治其國; 欲治其國者, 先齊其家; 欲齊其家者, 先修其身; 欲修其身者, 先正其心; 欲正其心者, 先誠其意; 欲誠其意者, 先致其知, 致知在格物. 物格而後知至, 知至而後意誠, 意誠而後心正, 心正而後身修, 身修而後家齊, 家齊而後國治, 國治而後天下平. 自天子以至於庶人, 壹是皆以修身為本. 其本亂而末治者否矣, 其所厚者薄, 而其所薄者厚, 未之有也! ⑥《康誥》曰: 「克明德.」 《大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 ⑧《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為人君, 止於仁; 為人臣, 止於敬; 為人子, 止於孝; 為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⑥《康誥》曰: 「克明德.」 《太甲》曰: 「顧諟天之明命.」 《帝典》曰: 「克明峻德.」 皆自明也. ③此謂知本, 此謂知之至也. ⑦湯之盤銘曰: 「苟日新, 日日新, 又日新.」 《康誥》曰: 「作新民.」 《詩》曰: 「周雖舊邦, 其命維新.」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 ⑤《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詩》云: 「於戲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⑦湯之盤銘曰: 「茍日新, 日日新, 又日新.」 《康誥》曰: 「作新民.」 《詩》曰: 「周雖舊邦, 其命惟新.」 是故君子無所不用其極. ④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慎其獨也! 小人閑居為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後厭然, 掩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己, 如見其肺肝然, 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慎其獨也.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⑧《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為人君, 止於仁; 為人臣, 止於敬; 為人子, 止於孝; 為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⑨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
⑧《詩》云: 「邦畿千里, 惟民所止.」 《詩》云: 「緡蠻黃鳥, 止于丘隅.」 子曰: 「於止, 知其所止, 可以人而不如鳥乎?」 《詩》云: 「穆穆文王, 於緝熙敬止!」 為人君, 止於仁; 為人臣, 止於敬; 為人子, 止於孝; 為人父, 止於慈; 與國人交, 止於信. ⑩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④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揜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已, 如見其肺肝, 然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愼其獨也.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③此謂知本<四字衍>, 此謂知之至也. (閒嘗竊取程子之意以補之曰: 「所謂致知在格物者, 言欲致吾之知, 在即物而窮其理也. 蓋人心之靈莫不有知, 而天下之物莫不有理, 惟於理有未窮, 故其知有不盡也. 是以大學始教, 必使學者即凡天下之物, 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 以求至乎其極. 至於用力之久, 而一旦豁然貫通焉, 則眾物之表裏精粗無不到, 而吾心之全體大用無不明矣. 此謂物格, 此謂知之至也.」)
⑨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⑪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此謂身不修不可以齊其家. ⑩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當作心>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④所謂誠其意者, 毋自欺也. 如惡惡臭, 如好好色, 此之謂自謙, 故君子必愼其獨也. 小人閒居爲不善, 無所不至, 見君子而后厭然揜其不善, 而著其善. 人之視已, 如見其肺肝, 然則何益矣? 此謂誠於中, 形於外, 故君子必愼其獨也. 曾子曰: 「十目所視, 十手所指, 其嚴乎!」 富潤屋, 德潤身, 心廣體胖, 故君子必誠其意.
⑩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⑫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 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眾也. 《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 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機如此. 此謂一言僨事, 一人定國. 堯、舜率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率天下以暴, 而民從之.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所藏乎身不恕, 而能喻諸人者, 未之有也. 故治國在齊其家. 《詩》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宜其家人,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宜兄宜弟.」 宜兄宜弟,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其儀不忒, 正是四國.」 其為父子兄弟足法, 而後民法之也. 此謂治國在齊其家. ⑪所謂齊其<其字衍>家在脩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 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此謂身不脩不可以齊其家. ⑩所謂修身在正其心者: 身有所忿懥, 則不得其正; 有所恐懼, 則不得其正; 有所好樂, 則不得其正; 有所憂患, 則不得其正.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
⑪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此謂身不修不可以齊其家. ⑬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詩》云: 「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 有國者不可以不慎, 辟則為天下戮矣. ⑫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 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眾也. 《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 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機如此. 此謂一言僨事, 一人定國. 堯、舜率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率天下以暴, 而民從之.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所藏乎身不恕, 而能喻諸人者, 未之有也. 故治國在齊其家. 《詩》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宜其家人,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宜兄宜弟.」 宜兄宜弟,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其儀不忒, 正是四國.」 其為父子兄弟足法, 而後民法之也. 此謂治國在齊其家. ⑪所謂齊其家在修其身者: 人之其所親愛而辟焉, 之其所賤惡而辟焉, 之其所畏敬而辟焉, 之其所哀矜而辟焉, 之其所敖惰而辟焉. 故好而知其惡, 惡而知其美者, 天下鮮矣! 故諺有之曰: 「人莫知其子之惡, 莫知其苗之碩.」 此謂身不修不可以齊其家.
⑫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 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眾也. 《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 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機如此. 此謂一言僨事, 一人定國. 堯、舜率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率天下以暴, 而民從之.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所藏乎身不恕, 而能喻諸人者, 未之有也. 故治國在齊其家. 《詩》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宜其家人,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宜兄宜弟.」 宜兄宜弟,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其儀不忒, 正是四國.」 其為父子兄弟足法, 而後民法之也. 此謂治國在齊其家. ⑤《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詩》云: 「於戲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⑬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詩》云: 「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 有國者不可以不慎, 辟則為天下戮矣. ⑫所謂治國必先齊其家者, 其家不可教而能教人者, 無之. 故君子不出家而成教於國: 孝者, 所以事君也; 弟者, 所以事長也; 慈者, 所以使眾也. 《康誥》曰: 「如保赤子」, 心誠求之, 雖不中不遠矣. 未有學養子而後嫁者也! 一家仁, 一國興仁; 一家讓, 一國興讓; 一人貪戾, 一國作亂. 其機如此. 此謂一言僨事, 一人定國. 堯、舜率天下以仁, 而民從之; 桀、紂率天下以暴, 而民從之. 其所令反其所好, 而民不從. 是故君子有諸己而後求諸人, 無諸己而後非諸人. 所藏乎身不恕, 而能喻諸人者, 未之有也. 故治國在齊其家. 《詩》云: 「桃之夭夭, 其葉蓁蓁; 之子于歸, 宜其家人.」 宜其家人,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宜兄宜弟.」 宜兄宜弟, 而後可以教國人. 《詩》云: 「其儀不忒, 正是四國.」 其為父子兄弟足法, 而後民法之也. 此謂治國在齊其家.
⑬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詩》云: 「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 有國者不可以不慎, 辟則為天下戮矣. ⑨子曰: 「聽訟, 吾猶人也, 必也使無訟乎!」 無情者不得盡其辭, 大畏民志. 此謂知本. ⑤《詩》云: 「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如切如磋」者, 道學也; 「如琢如磨」者, 自修也; 「瑟兮僩兮」者, 恂慄也; 「赫兮喧兮」者, 威儀也; 「有斐君子, 終不可諠兮」者, 道盛德至善, 民之不能忘也. 《詩》云: 「於戲前王不忘!」 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此以沒世不忘也. ⑬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所惡於上, 毋以使下; 所惡於下, 毋以事上; 所惡於前, 毋以先後; 所惡於後, 毋以從前; 所惡於右, 毋以交於左; 所惡於左, 毋以交於右. 此之謂絜矩之道. 《詩》云: 「樂只君子, 民之父母.」 民之所好好之, 民之所惡惡之, 此之謂民之父母. 《詩》云: 「節彼南山, 維石巖巖. 赫赫師尹, 民具爾瞻.」 有國者不可以不慎, 辟則為天下戮矣.
⑭《詩》云: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道得眾則得國, 失眾則失國. 是故君子先慎乎德.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 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是故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是故言悖而出者, 亦悖而入;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⑭《詩》云: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道得眾則得國, 失眾則失國. 是故君子先慎乎德.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 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是故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是故言悖而出者, 亦悖而入;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⑮《康誥》曰: 「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楚書》曰: 「楚國無以為寶, 惟善以為寶.」 舅犯曰: 「亡人無以為寶, 仁親以為寶.」 《秦誓》曰: 「若有一个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彥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實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尚亦有利哉! 人之有技, 媢嫉以惡之; 人之彥聖, 而違之俾不通. 實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唯仁人放流之, 迸諸四夷, 不與同中國, 此謂唯仁人為能愛人, 能惡人. 見賢而不能舉, 舉而不能先, 命也<作怠之誤也.>;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是謂拂人之性, 災必逮夫身. 是故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⑭《詩》云: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道得眾則得國, 失眾則失國. 是故君子先慎乎德.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 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是故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是故言悖而出者, 亦悖而入;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⑮《康誥》曰: 「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楚書》曰: 「楚國無以為寶, 惟善以為寶.」 舅犯曰: 「亡人無以為寶, 仁親以為寶.」 《秦誓》曰: 「若有一个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彥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實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尚亦有利哉! 人之有技, 媢嫉以惡之; 人之彥聖, 而違之俾不通. 實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唯仁人放流之, 迸諸四夷, 不與同中國, 此謂唯仁人為能愛人, 能惡人. 見賢而不能舉, 舉而不能先, 命也;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是謂拂人之性, 災必逮夫身. 是故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⑮《康誥》曰: 「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楚書》曰: 「楚國無以為寶, 惟善以為寶.」 舅犯曰: 「亡人無以為寶, 仁親以為寶.」 《秦誓》曰: 「若有一个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彥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實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尚亦有利哉! 人之有技, 媢嫉以惡之; 人之彥聖, 而違之俾不通. 實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唯仁人放流之, 迸諸四夷, 不與同中國, 此謂唯仁人為能愛人, 能惡人. 見賢而不能舉, 舉而不能先, 命也;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是謂拂人之性, 災必逮夫身. 是故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⑭《詩》云: 「殷之未喪師, 克配上帝. 儀監于殷, 峻命不易.」 道得眾則得國, 失眾則失國. 是故君子先慎乎德. 有德此有人, 有人此有土, 有土此有財, 有財此有用. 德者本也, 財者末也, 外本內末, 爭民施奪. 是故財聚則民散, 財散則民聚. 是故言悖而出者, 亦悖而入; 貨悖而入者, 亦悖而出. ⑮《康誥》曰: 「惟命不于常!」 道善則得之, 不善則失之矣. 《楚書》曰: 「楚國無以為寶, 惟善以為寶.」 舅犯曰: 「亡人無以為寶, 仁親以為寶.」 《秦誓》曰: 「若有一个臣, 斷斷兮無他技, 其心休休焉, 其如有容焉. 人之有技, 若己有之; 人之彥聖, 其心好之, 不啻若自其口出. 實能容之, 以能保我子孫黎民, 尚亦有利哉! 人之有技, 媢嫉以惡之; 人之彥聖, 而違之俾不通. 實不能容, 以不能保我子孫黎民, 亦曰殆哉!」 唯仁人放流之, 迸諸四夷, 不與同中國, 此謂唯仁人為能愛人, 能惡人. 見賢而不能舉, 舉而不能先, 命也;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好人之所惡, 惡人之所好, 是謂拂人之性, 災必逮夫身. 是故君子有大道, 必忠信以得之, 驕泰以失之.
⑯生財有大道. 生之者眾, 食之者寡, 為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雞豚; 伐冰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為善之, 小人之使為國家, 災害并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⑯生財有大道. 生之者眾, 食之者寡, 為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雞豚; 伐冰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為善之, 小人之使為國家, 災害并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⑯生財有大道. 生之者眾, 食之者寡, 為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雞豚; 伐冰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為善之, 小人之使為國家, 災害并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一本云彼爲不善之小人使之爲國家> ⑯生財有大道. 生之者眾, 食之者寡, 為之者疾, 用之者舒, 則財恒足矣. 仁者以財發身, 不仁者以身發財. 未有上好仁而下不好義者也, 未有好義其事不終者也, 未有府庫財非其財者也.

孟獻子曰: 「畜馬乘, 不察於雞豚; 伐冰之家, 不畜牛羊; 百乘之家, 不畜聚斂之臣. 與其有聚斂之臣, 寧有盜臣.」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長國家而務財用者, 必自小人矣. 彼為善之, 小人之使為國家, 災害并至. 雖有善者, 亦無如之何矣! 此謂國不以利為利, 以義為利也.

각주

  1. <한어대사전> 轉述; 傳授; 傳說.
  2. <한어대사전> 10. 可以; 便於.
  3. <한어대사전> 28. 能够; 會.
  4. <한어대사전> 直要.
  5. 1. 접미사. 동작의 결과가 화자로부터 떨어질 수 없는 뜻을 나타냄.
  6. <대학장구> 傳6章. 所謂誠其意者:毋自欺也,如惡惡臭,如好好色,此之謂自謙,故君子必慎其獨也!
  7. <대학장구> 傳6章. 小人閒居為不善,無所不至。
  8. <한어대사전> 8. 知; 覺.
  9. <주자어류> 권14 <대학1> 伊川舊日教人先看大學,那時未有解說,想也看得鶻突。而今看注解,覺大段分曉了,只在子細去看。
  10. <한어대사전> 19. 介詞. 對; 與. 表示動作的對象.
  11. <주자어류> 권118 <주자13/훈문인4>又言:「大學等書,向來人只說某說得詳,如何不略說,使人自致思?此事大不然。人之為學,只是爭箇肯不肯耳。他若無得,不肯向這邊,略亦不解致思;他若肯向此一邊,自然有味,愈詳愈有意味。」
  12. <한어대사전> 6. 標准; 模式.
  13. <서경> 탕고
  14. <한어대사전> 僅此而已. 謂不復深究或就此了事.
  15. <한어대사전> 1. 古代稱帝王或貴族的長子.
  16. <한어대사전> 4. 代詞. 泛指任何人.
  17. <주역> 태괘 대상전. 天地交泰,后以財成天地之道,輔相天地之宜,以左右民。
  18. <한어대사전> [坯墣] 亦作“坯璞”。 謂初具規模的事物;半成品。
  19. <주자어류> 권7 <학1> 古者小學已自養得小兒子這裏定,已自是聖賢坯璞了,但未有聖賢許多知見。及其長也,令入大學,使之格物、致知,長許多知見。
  20. <예기> <내칙> 凡內外,雞初鳴,咸盥漱,衣服,斂枕簟,灑掃室堂及庭,布席,各從其事。
  21. <예기> <곡례상> 凡為長者糞之禮,必加帚於箕上,以袂拘而退;其塵不及長者,以箕自鄉而扱之。
  22. <예기> <내칙> 在父母舅姑之所,有命之,應唯敬對。
  23. <예기> <곡례상> 長者與之提攜,則兩手奉長者之手。負劍辟咡詔之,則掩口而對。
  24. <예기> <내칙> 進退周旋慎齊。
  25. <예기> <곡례상> 凡與客入者,每門讓於客。
  26. <한어대사전> 指書面文字。 ▶ 漢 揚雄 《法言‧問神》: “言, 心聲也;書, 心畫也。 聲畫形, 君子小人見矣。”
  27. <주례> <지관사도> 以鄉三物教萬民而賓興之:一曰六德,知、仁、聖、義、忠、和;二曰六行,孝、友、睦、姻、任、恤;三曰六藝,禮、樂、射、御、書、數。
  28. <대대례기> <보부> 古者年八歲而出就外舍,學小藝焉,履小節焉。束髮而就大學。學大藝焉,履大節焉。
  29. <한어대사전> 2. 指學校。
  30. <한어대사전> 1. 古時國子學的代稱。 因其地在虎門之左, 故有是稱。
  31. <한어대사전> 3. 不可相比;不同於。
  32. <주자어류> 권14 <대학1> 問:「外有以極其規模之大,內有以盡其節目之詳。」曰:「這丢須先識得外面一丢規模如此大了,而內做工夫以實之。所謂規模之大,凡人為學,便當以『明明德,新民,止於至善』,及『明明德於天下』為事,不成只要獨善其身便了。須是志於天下,所謂『志伊尹之所志,學顏子之所學也』。所以大學第二句便說『在新民』。」
  33. <맹자> <진심상> 9. 古之人,得志,澤加於民;不得志,脩身見於世。窮則獨善其身,達則兼善天下。
  34. <通書> <志學第十> 志伊尹之所志。學顔子之所學也。
  35. <주자어류> 권14 <대학1> 明德,新民,便是節目;止於至善,便是規模之大。(3. 止於至善이 궁극적 목표이고, 明德,新民은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두 단계의 세부 과정이다.)
  36. 義와 意의 차이: <논어집주> <讀論語孟子法> 程子曰:「凡看文字,須先曉其文義,然後可以求其意。未有不曉文義而見意者也。」
  37. <주역> <계사전상> 寂然不動,感而遂通天下之故。
  38. <맹자> <등문공하> 楊墨之道不息,孔子之道不著,是邪說誣民,充塞仁義也。
  39. <한어대사전> 先秦的九個學術流派。▶ 《漢書‧敘傳下》: “ 劉向 司籍, 九流以別。” ▶ 顏師古 注引 應劭 曰: “儒、道、陰、陽、法、名、墨、從橫、雜、農, 凡九家。”
  40. <맹자> <이루하> 22. 予未得為孔子徒也,予私淑諸人也。
  41. <논어> <자로> 14. 雖不吾以,吾其與聞之。
  42. <맹자집주> <이루하> 22. 人,謂子思之徒也。
  43. 신안 진씨는 "大學之書,古之大學所以教人之法也。"을 한 단락으로, 다음 "蓋自天降生民,則既莫不與之以仁義禮智之性矣。然其氣質之稟或不能齊,是以不能皆有以知其性之所有而全之也。一有聰明睿智能盡其性者出於其閒,則天必命之以為億兆之君師,使之治而教之,以復其性。此伏羲、神農、黃帝、堯、舜,所以繼天立極,而司徒之職、典樂之官所由設也。"을 또 한 단락으로 본 듯 하다.
  44. <논어집주> <학이> 學之為言效也。人性皆善,而覺有先後,後覺者必效先覺之所為,乃可以明善而復其初也。
  45. <대학장구> 故學者當因其所發而遂明之,以復其初也。
  46. <한어대사전> 超越制度規定之範圍。
  47. <한어대사전> 2. 比喻立足點或立場。▶ 宋 朱熹 《答陳膚仲》四: “凡事從今更宜審細, 見得是, 當便立定腳根, 斷不移易。”
  48. <한어대사전> 2. 比喻堅定的立場與意志。
  49. <주역> 건괘 <문언> 子曰:「君子進德脩業,忠信,所以進德也,脩辭立其誠,所以居業也。」
  50. <중용> 人一能之己百之,人十能之己千之。【章句】 君子之學,不為則已,為則必要其成,故常百倍其功。
  51. <예기> <예운> 故禮義也者,人之大端也,所以講信修睦而固人之肌膚之會、筋骸之束也。
  52. <예기집설> 肌膚之總會, 筋骨之聨束, 非不固也。 然無禮以維飭之, 則惰慢傾側之容見矣。
  53. <예기> <옥조> 足容重,手容恭,目容端,口容止,聲容靜,頭容直,氣容肅,立容德,色容莊,坐如尸,燕居告溫溫。
  54. <맹자> <이루상> 9. 今之欲王者,猶七年之病求三年之艾也。苟為不畜,終身不得。
  55. 2.越規;放逸。
  56. 非僻 : 邪惡。《禮記‧玉藻》:“非辟之心,無自入也。”
  57. <논어> <요왈> 2. 君子正其衣冠,尊其瞻視,儼然人望而畏之,斯不亦威而不猛乎?
  58. <예기> <옥조> 足容重,手容恭,目容端,口容止,聲容靜,頭容直,氣容肅,立容德,色容莊,坐如尸,燕居告溫溫。
  59. 喚醒 : 叫醒。常用作比喻,有使之覺醒意。
  60. <한어대사전> 貼切恰當。
  61. <논어> <리인> 15. 子曰:「參乎!吾道一以貫之。」
  62. <중용장구> 27장. 故君子尊德性而道問學,致廣大而盡精微,極高明而道中庸。溫故而知新,敦厚以崇禮。
  63. <맹자> <고자상> 15. 先立乎其大者,則其小者弗能奪也。
  64. <논어> <헌문> 45. 脩己以安百姓,堯舜其猶病諸!
  65. <중용장구> 33장. 是故君子篤恭而天下平。
  66. <주역> <계사상> 5. 一陰一陽之謂道,繼之者善也,成之者性也。
  67. <주역> <계사상> 12. 形而上者謂之道,形而下者謂之器。
  68. <태극도설>
  69. <한어대사전> 2. 比喻着落、依據。
  70. <한어대사전> 【貫注】 1. 貫穿;貫通。▶ 《參同契》卷上“須以造化, 精氣乃舒” 宋 朱熹 考异: “此時陰陽對待, 分為二物, 莫不含情互結, 兩相貪戀, 交通貫注, 而後化生萬物, 以舒展向來自具之精氣。”
  71. <한어대사전>4. 形體;外貌。
  72. <대학장구> 경1장 주석. 明德者,人之所得乎天,而虛靈不昧,以具眾理而應萬事者也。
  73. 『太極圖說』 無極之眞, 二五之精, 妙合而凝. “乾道成男, 坤道成女”, 二氣交感, 化生萬物. 萬物生生, 而變化無窮焉. <注> 蓋合而言之, 萬物統體一太極也; 分而言之, 一物各具一太極也.
  74. <이정수언> 3-67. 子曰: "理義精微, 不可得而名言也, 姑以至善目之, 黙識, 可也."
  75. <대학장구> 전3장. 為人君,止於仁;為人臣,止於敬;為人子,止於孝;為人父,止於慈;與國人交,止於信。
  76. <예기> <옥조> 足容重,手容恭,目容端,口容止,聲容靜,頭容直,氣容肅,立容德,色容莊,坐如尸,燕居告溫溫。
  77. <논어> <계씨> 10. 孔子曰:「君子有九思:視思明,聽思聰,色思溫,貌思恭,言思忠,事思敬,疑思問,忿思難,見得思義。」
  78. <한어대사전> 謂將自己認為有疑義的問題如實告人。 亦謂傳授有疑義的問題。 ▶ 《穀梁傳‧莊公七年》: “《春秋》著以傳著, 疑以傳疑。”
  79. 義 : 4.理應。
  80. <춘추곡량전> 환공5년. 五年春,正月甲戌、己丑,陳侯鮑卒。鮑卒,何為以二日卒之?《春秋》之義,信以傳信,疑以傳疑。陳侯以甲戌之日出,己丑之日得。不知死之日,故舉二日以包也。
  81. 推本:探究
  82. <주역> <계사상> 夫易,聖人之所以極深而研幾也。
  83. 『주역』, 「계사상전」 "夫易, 聖人之所以極深而研幾也," <本義> 研, 猶審也. 幾, 微也. 所以極深者, 至精也. 所以研幾者, 至變也. 연(硏)은 살핀다는 ‘심(審)’과 같고 기(幾)는 기미이다. 깊음을 다한다는 것은 지극히 정밀함이고, 기미를 살핀다는 것은 지극히 변화함이다.
  84. <논어> <위정> 4. 子曰:「吾十有五而志于學,三十而立,四十而不惑,五十而知天命,六十而耳順,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
  85. <맹자> <진심하> 25. 浩生不害問曰:「樂正子,何人也?」孟子曰:「善人也,信人也。」 「何謂善?何謂信?」 曰:「可欲之謂善,有諸己之謂信。充實之謂美,充實而有光輝之謂大,大而化之之謂聖,聖而不可知之之謂神。樂正子,二之中,四之下也。」
  86. <맹자> <만장상> 7. 萬章問曰:「人有言『伊尹以割烹要湯』有諸?」 孟子曰:「否,不然。伊尹耕於有莘之野,而樂堯舜之道焉。…… 思天下之民匹夫匹婦有不被堯舜之澤者,若己推而內之溝中。」
  87. <상서대전> <略說> 周人可比屋而封。; <한어대사전> 【比屋可封】 1. 謂上古之世教化遍及四海, 家家都有德行, 堪受旌表。
  88. <논어> <태백> 9. 子曰:「民可使由之,不可使知之。」
  89. 『논어』 <자장> 14. 子游曰:「喪致乎哀而止。
  90. 俯仰 : 7.比喻時間短暫。
  91. 「原道」 曰:「斯道也,何道也?」曰:「斯吾所謂道也,非向所謂老與佛之道也。」堯以是傳之舜,舜以是傳之禹,禹以是傳之湯,湯以是傳之文武周公,文武周公傳之孔子,孔子傳之孟軻。軻之死,不得其傳焉。荀與揚也,擇焉而不精,語焉而不詳。
  92. <중용장구> 20장. 在下位不獲乎上,民不可得而治矣;獲乎上有道:不信乎朋友,不獲乎上矣;信乎朋友有道:不順乎親,不信乎朋友矣;順乎親有道:反諸身不誠,不順乎親矣;誠身有道:不明乎善,不誠乎身矣。
  93. <중용장구> 30장. 萬物並育而不相害,道並行而不相悖,小德川流,大德敦化,此天地之所以為大也。
  94. <논어> <리인> 15. 子曰:「參乎!吾道一以貫之。」曾子曰:「唯。」
  95. 『맹자』, 「진심상」, 45. "孟子曰:「於不可已而已者,無所不已;於所厚者薄,無所不薄也。"
  96. 『논어』, 「헌문」. 28장 "曾子曰:「君子思不出其位。」"
  97. <한어대사전> 俊士和選士。 古代指可以教育深造的優秀人材。
  98. <한어대사전> 舊有自割股肉以供君親食用之說, 古人認為是大忠大孝的表現。
  99. <한어대사전> 破車瘦馬。▶ 《三國志‧吳志‧劉繇傳》“ 繇 伯父 寵 為 漢 太尉” 裴松之注引晉司馬彪 《續漢書》: “ 寵 前後歷二郡, 八居九列, 四登三事。 家不藏賄, 無重寶器, 恆菲飲食, 薄衣服, 弊車羸馬, 號為窶陋。”
  100. <남헌집> 권14. <孟子講義序> 學者潜心孔孟, 必得其門而入, 愚以為莫先於義利之辯. 蓋聖學無所為而然也. 無所為而然者, 命之所以不已, 性之所以不偏, 而教之所以無窮也. 凡有所為而然者, 皆人欲之私而非天理之所存, 此義利之分也.
  101. <맹자> <진심상> 25. 欲知舜與蹠之分,無他,利與善之閒也。
  102. 時文 : 1.當代的文明。指禮樂製度等。
  103. <이정문집> 9-20. <答楊時論西銘書> <西銘>之爲書, 推理以存義, 擴前聖所未發, 與孟子性善、養氣之論同功.(二者亦前聖所未發)
  104. <한어대사전> 證人;證據。
  105. <한어대사전>【質】 15. 對質;驗證。
  106. 『맹자』, 「공손추상」, 2장. "是集義所生者,非義襲而取之也。行有不慊於心,則餒矣。我故曰,告子未嘗知義,以其外之也。" <注> (...)慊,快也,足也。言所行一有不合於義,而自反不直,則不足於心而其體有所不充矣。(...)
  107. <맹자> <이루상> 5. 孟子曰:「人有恆言,皆曰『天下國家』。天下之本在國,國之本在家,家之本在身。」
  108. <대학장구> 서론. 子程子曰:「大學,孔氏之遺書,而初學入德之門也。」於今可見古人為學次第者,獨賴此篇之存,而論、孟次之。學者必由是而學焉,則庶乎其不差矣。 ; <이정유서> 2上-36. 大學乃孔氏遺書, 須從此學則不差. ; <이정유서> 22上-1. 棣初見先生, 問「初學如何?」 曰:「入德之門, 無如大學. 今之學者, 賴有此一篇書存, 其他莫如論·孟.」
  109. <논어> <위령공> 5. 立,則見其參於前也;在輿,則見其倚於衡也。夫然後行。
  110. <주역> <계사상> 7. 成性存存,道義之門。
  111. <한어대사전> 1. 謹慎戒懼貌。▶ 《書‧皋陶謨》: “兢兢業業, 一日二日萬幾。”▶ 孔 傳: “兢兢, 戒慎;業業, 危懼。”
  112. <한어대사전> 1. 洗滌;沐浴。
  113. <한어대사전> 1. 洗滌使之清潔;洗滌。
  114. <서경> <商書> <仲虺之誥> 惟王不邇聲色,不殖貨利。
  115. <서경> <商書> <仲虺之誥> 王懋昭大德,建中于民,以義制事,以禮制心,垂裕後昆。
  116. <서경> <商書> <伊訓> 先王肇修人紀,從諫弗咈,先民時若。
  117. <서경> <商書> <仲虺之誥> 用人惟己,改過不吝。
  118. <서경> <商書> <伊訓> 居上克明,為下克忠,與人不求備,檢身若不及,以至于有萬邦,茲惟艱哉!
  119. <시경> <상송> <長發> 湯降不遲、聖敬日躋。
  120. <서경> <商書> <咸有一德> 惟尹躬暨湯,咸有一德,克享天心,受天明命,以有九有之師,爰革夏正。
  121. <서경> <商書> <咸有一德> 終始惟一,時乃日新。
  122. <맹자> <만장상> 6. 太甲顛覆湯之典刑,伊尹放之於桐。三年,太甲悔過,自怨自艾,於桐處仁遷義;三年,以聽伊尹之訓己也,復歸于亳。
  123. <서경> <商書> <伊訓> 伊尹乃明言烈祖之成德,以訓于王。
  124. <한어대사전> 2. 留心;着意。
  125. <한어대사전> 齊太公 呂望 的尊稱。
  126. <주역> <문언> 「直」其正也,「方」其義也。君子敬以直內,義以方外,敬義立而德不孤。「直、方、大、不習无不利」,則不疑其所行也。
  127. <대대례기> 원문에는 志자가 忘자로 되어 있다.
  128. <대대례기> 원문에는 爾자가 邇자로 되어 있다.
  129. <한어대사전> 大變。 ▶ 《書‧盤庚上》: “罔有逸言, 民用丕變。” ▶ 孔 傳: “民用大變從化。”
  130. <한어대사전> 1. 一日之間。
  131. <서경> <주서> <泰誓中> 天視自我民視,天聽自我民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