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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3월 5일 (일) 08:32 기준 최신판

생애

부산에서 출생. 4세이후 서울에서 살았다. 성장기는 우리나라의 압축 경제성장과 정치변혁의 시기였고 성인기는 모든 자원이 부족하고 급변하는 시기여서 역설적으로 기회의 시기이기도 했다.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대부분 일자리를 찾아 자기 몫의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성장기

부산의 외가와 경남 양산군 물금면의 친가에서 도시 생활과 전형적 농업국의 시골생활을 이해했다. 어른이 된 후 4년간의 유럽 생활은 넓은 세계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기회가 되었다.

학교생활

충정유치원 수송국민학교 경기여고 연세대학교 서울대학교사회과학대학원 한국외대통역대학원 등 여러 학교를 두루 다녔다. IDAS(디자인대학원)CEO 과정도 재미있었다. 90분 강의하러 외국서 비행기 타고 왔던 비싼 연사들의 강의 내용이 인상깊었다.

사회생활

Korea Times 신문기자 동시통역사 번역가 칼럼기고가 등 항상 일을 하며 바쁘게 지냈다. 신문기자를 하면서 동시에 서울대학교에서 저널리즘 석사공부를 했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어느 교수님은 그 당시 서울대는 학사관리가 "헐렁했다" 고 했다. 옳은 말이다. 아마도 그랬으니까 신문기자를 하면서 석사학위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외대 통역대학원 졸업후 동시통역사 활동을 했다. 유럽에서 지낸 기간이 내 생애 가장 한가로운 시간이었는데 여행을 많이 하고 책을 2권 썼다.

기업활동

세상 좋은 장면을 두루 많이 보았으니 그 안목으로 우리나라의 국제행사를 제대로 기획해 보라는 관광공사의 권유로 소위 컨벤션기획회사를 10년간 운영했다. 나보다 유능한 좋은 직원들이 모여있어서 나는 아이디어만 내고 일은 그들이 다 해 냈다. 지금도 문화계에서는 당시 우리 회사가 진행했던 "세계박물관대회" "세계도서관대회" 같은 역사적 문화행사를 가장 성공적인 행사로 회고한다. 당시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보람을 느낀다.

다시 학교로

2014년에 다시 [1]한국학중앙연구원 학생이 되었다. 과거에 4년동안 외대 신문방송학과에서 강의도 했었지만 나는 역시 학생노릇이 더 좋다.

개인생활

남들이 갖고 있는것은 다 있다. 남편,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집, 시골집, 자전거, 자동차, 게다가 손녀까지 둘 이나 있다. 꽃, 나무, 시골 좋아하는 식구들이 옛날 옛날에 아파트 평수를 늘리는 대신 적은 돈으로 시골에 싼 농가를 사 두었다가 나중에 집을 지었다. 이 집은 평생동안 우리 가족과 주위 친구들의 "꿈"이 되었다. "앞으로 지을 집"에 대해 수많은 계획을 세우며 다 들 행복했었다. 나중에 집을 짓고 나서는 더욱 행복하다.

그래서 요즘 사도삼촌 (四都三村) 생활이다. 시골집에서 금토일 3박이다. 다만 주인노릇 뿐 아니라 머슴노릇까지 해야 하는 집주인은 사실 일년 내내 힘든다. 나는 잡초뽑기 담당, 먹걸이 수확 담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