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수 생가"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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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원||은 -의 이름이다.||정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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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촌||은 -의 호이다.||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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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사||는 -에 지원하였다.||제주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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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는 -를 설립하였다.||고려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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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사람을 싫어하는 도깨비||-을 해꼬지했다.||정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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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에 자주 출몰했다.||인촌 김성수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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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사||는 -을 제압했다.||육지 사람을 싫어하는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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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는 -로부터 도망쳤다.||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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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지 사람을 싫어하는 도깨비||는 -를 돕는 존재가 됐다.||정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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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 치기를 좋아하는 도깨비||는 -를 돕는 존재가 됐다.||인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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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공||은 -를 일컫는 말이다.||키가 큰 [[도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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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6월 12일 (월) 15:49 판

관련 설화

제2대 부통령, 동아일보사, 고려대학교를 설립한 인촌 김성수와 삼양사, 경방을 설립한 수당 김연수 형제의 생가이다. 그들은 1907년 이곳을 떠나 이사를 가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화적때의 잦은 출몰과 귀화(도깨비불)의 출몰로 이곳을 떠나게 된다." 당시 전북 일대에서 소문난 만석꾼 집안이었던 김성수의 생가는 도깨비불이 자주 일어나기로도 유명했다. 그리고 인촌 집안의 재력이 눈덩이 처럼 불어나게 된것도 도깨비의 도움이라고 회자되고 있다. 집안의 곳간 구석구석에서 '도깨비불지른 곳'이라는 푯말을 찾아볼 수 있다. 도깨비 불이 생기고 난 다음날이면 도깨비가 입었다고 생각 될 만한 옷들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지붕의 아래에는 불이 났었던 흔적이 선명하며, 그로 인해 수차례에 걸친 증축에도 불구하고 불이 난 흔적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또한 당시에는 지방의 도적이 자주 출몰하여, 집안의 화를 경고한 도깨비의 뜻이라고 그를 받아들여서, 결국 인촌 일가는 이곳을 다른 사람에게 맞기고 줄포라는 곳으로 이사한다. 이와 관련해서 '도깨비 이용해서 부자되기'라는 이야기가 <초등학교 2학년 읽기 교과서>에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다. 장난 치기를 좋아하는 도깨비가 하루는 논밭에 똥을 잔뜩 가져다 놓았다. 이를 도깨비의 장난으로 생각한 인촌의 조부는 꾀를 써서, "올해 농사는 망쳤다. 이렇게 똥이 논밭에 많으면 어떻게 한해 농사를 마무리 짓나!" 라며 탄식했다. 이 장면을 본 도깨비는 인촌의 조부가 똥이 논과 밭에 있는것을 싫어한다고 생각하고 이 지역 일대의 모든 똥을 모아서, 그날 밤 인촌가의 논밭에 뿌려 놓았고 농사는 유래없는 풍년을 맞게 되어 인촌가는 큰 부자가 되었다.

노드관계표

노드 관계 노드
인촌 은 -의 호이다. 김성수
김성수 는 -를 설립하였다. 고려대학교
도깨비 불 은 -에 자주 출몰했다. 인촌 김성수 생가
김성수 는 -로부터 도망쳤다. 도깨비 불
장난 치기를 좋아하는 도깨비 는 -를 돕는 존재가 됐다. 인촌가

위치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봉암리 435

기여

최초작성 : 김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