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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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fs최찬미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6월 17일 (월) 23:4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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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대한민국의 가수, 작사가, 작곡가, 뮤지컬 기획자, 뮤지컬 연출가, 뮤지컬 제작자.

내용

인물정보

  • 재동초등학교 졸업. 양희은과 동문. 성인이 되고 나서 그를 알았고, 이후 많은 곡을 양희은에게 주게 된다.
  • 경기중학교 입학. 미술반 활동을 열심히 했다. 이후 대학도 서울대 회화과로 진학하게 되고 이 곳에서 만난 친구와 처음 음악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 경기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미술반 활동을 계속했고, 기타를 독학했다. 윤형주와 동문이다.
  • 1969년,서울대학교 미술대학 회화과 입학.
  • 당시 대학 동기였던 김영세(디자이너)와 함께 ‘도비두’(도깨비두마리) 라는 포크 팝 보컬 듀오를 결성하여 첫 음악 활동을 시작했다.
  • 그 활동을 끝무렵이었던 세시봉오비스캐빈에서 했다.
  • 1971년 《김민기 1집 - 아하 누가 그렇게/길 (김민기 노래모음)》을 시작으로 솔로 가수 겸 작곡가의 삶을 시작.
  • 정권에 반하는 성격의 노래를 줄곧 발매했고, 이로 인해 김민기의 음악적 활동은 강제로 중단되었다. 그 방향을 틀어 시작한 것이 연극이었고, 극단 학전학전 소극장을 만든다.

음반

에피소드

  • 김민기와 윤형주의 첫 만남은 명동 YWCA 노래모임인 '청개구리'에서 이루어졌다고. 그의 감상에 따르면
느낌도 독특했다. 시골에서 농사지을 법한 얼굴인데, 마치 음악을 다 꿰뚫고 노래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곡 자체도 우리가 부르는 노래와 많이 달랐다.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주의 팝송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대한 내용의 가사였다. 완전히 매료됐다.[1]


금지곡과 김민기

에피소드란에서 언급된 윤형주의 감상에도 나와있듯, 그는 사랑을 노래하는 낭만주의 팝송보다는 인생 전반에 대한 내용의 노래를 부르곤 했다고 한다. 그만큼 인생과 사람에 대해 지극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의 노래였기에, 고스란히 그런 성향이 묻어 나왔다. 1975년 - 당국에 의해 그의 노래 `아침이슬`이 금지곡이 됐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장석주는 “금지곡들은 분명한 금지사유가 명시됐지만 이 노래에는 아무런 금지사유가 명시되지 않았다. 그것은 하나의 상징이다”라고 말했다.[3]

1978년 - 노래극 《공장의 불빛》을 작사, 작곡했다.

학전 소극장

1973년 - 김지하가 희곡을 쓴 연극 《금관의 예수》의 전국 순회 공연에 참여했다.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노래 `금관의 예수`를 작곡했다. 1974년 - 소리굿 《아구》의 극본을 썼다. 1983년 - 연극 《멈춰 선 저 상여는 상주도 없다더냐》의 극본, 연출을 맡았다. 1991년 - ‘겨레의 노래’를 총감독했다. 극단 학전 개관. 1994년 - 국내 최장수 기록 가진 뮤지컬 <지하철1호선> 공연 시작. 현재 소극장 학전과 극단 학전의 대표로 있으며, 1994년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 연출과 기획을 했다. 이것으로 2007년 독일 바이마르 괴테 메달을 받았다. 록뮤지컬 지하철 1호선은 4000회를 마지막으로 공연을 중단한 상태이다. 그러나 추후 시대배경을 2000년대에 맞추는 등의 보완작업 후 새롭게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멀티미디어

이미지

동영상

네트워크 그래프

... 등

참고문헌

기여

주석

  1. 윤형주 칼럼, 세시봉, 우리들의 이야기 #7 익사한 후배에 바친 '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