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직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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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ck Choi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5월 29일 (수) 00:5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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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19년 3월 8~9일 길직교회 이진형 목사 사택에 장윤백, 조종환, 조종렬, 장명순, 장동원, 장흥환, 황명희, 홍관우, 염성오, 유희철, 황도문 등이 모여 3월 1일 서울에서 발발한 만세운동을 이어 받아 강화에서도 동일한 운동을 펼치기로 결의했다. 이후 이들은 3월 18일 강화읍 곳곳에서 2만여명의 주민들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쳤다. 당시 63명이 시위 주도 혐의로 체포됐고 43명이 재판에 회부돼 상당수 옥고를 치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중 길상면 주민이 24명으로 절반 이상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1]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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