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를 사랑한 이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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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라인: 한국을 사랑한 이방인



Storyline Narrative

에피소드 1: 가장 낮은 곳에 서서평



Episode 1 Korean Narrative:

서서평은 미국 남장로회 선교부의 간호 선교사로 파송을 받아 32세에 조선으로 와서 1912년 부터 1934년 소천하기까지 22년 동안 일제 점령기에 당시 한국의 궁핍한 지역으로 의료혜택을 받지 못했던 광주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녀는 광주 제중병원에서 시작해 광주기독병원과 광주나병원에서 활동하였고, 의료 봉사뿐만 아니라 광주 3.1운동, 한센병자의 인권을 위한 구라행진을 이끌며 사회적 변화를 추구했습니다. 또한, 이일학교와 조선간호협회 창립자로서 교육과 간호의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고귀한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가 제작되었습니다.

에피소드 2: 양림동에 묻힌 작은 천사들



Episode 2 Korean Narrative:

양림동 선교사 묘역에는 단순히 선교사들만이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도 함께 안장되어 있으며, 그 중에는 태어난 해에 떠난 어린 아기의 묘도 있습니다. 이 어린 아이들은 한국에서 태어나거나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건너온 선교사의 자녀들로, 당시 열악한 의료 환경과 각종 질병으로 인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때 당시의 한국은 의료 시설이 부족했고, 특히 외국인들에게는 풍토병 등 더욱 낯선 질병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많은 선교사 가족들이 이 땅에서 아이들을 잃는 아픔을 겪었고, 그들의 슬픔과 희생은 양림동 선교사 묘역에 있는 어린 아이들의 묘비를 통해 오늘날에도 전해져 내려옵니다. 이 어린 아이들의 묘비들은 단순히 슬픔의 상징이 아니라, 그 당시 선교사 가족들의 삶의 현실과 그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역사적 상징입니다. 그들의 부모님들은 자신들의 사명을 위해, 또한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 자신들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희생했습니다. 이 어린 생명들의 희생은 한국에서 기독교와 근대 교육, 의료 서비스의 발전에 기여한 외국인 선교사들의 헌신과 노력을 더욱 극명하게 부각시킵니다. 양림동 선교사 묘역을 방문하는 이들은 이 어린 아이들의 묘비 앞에서 잠시 멈추어 그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함께, 선교사 가족들의 사랑과 희생을 되새겨보시길 바랍니다.

에피소드 3: 양림동 선교사와 근대건축물



Episode 3 Korean Narrative:

양림동에는 근대건축물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미국남장로교에서 파견된 선교사들이 머물며 교육에 관련된 건물과 의료 선교에 관련된 건물, 또 그들의 사택 등 서양식의 건축물과 전통양식을 그대로 갖고 있는 고택들도 공존하고 있는 특별한 곳이지요. 수피아여학교의 윈스브로우 홀, 커티스 메모리얼 홀과 같은 기념 건축물과 종종 드라마의 장소로 등장하는 우일선 선교사 사택 등이 있습니다. 이 근대 건축물들은 한국에서의 서양 문화와 기술의 도입을 상징하며, 광주와 양림동이 한국 문화와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한 위치를 보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