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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문화유산정보 |사진=경주감은사지.jpg |사진출처=[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1333700310000 경주 감은사지], 국가문화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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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는 동해에서 신라 수도 경주로 들어오는 가장 빠른 길에 세워진 절이다. 삼층석탑 2기와 금당 및 강당 등의 건물터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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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682년 창건된 감은사의 옛 터이다.
  
문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부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략을 막고자 이곳에 절을 세우기 시작했지만 신문왕 2년(682)에 완성하였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낼 것”을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장사지낸 곳이 대왕암이고,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이름을 감은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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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가 위치한 곳은 동해에서 신라의 수도 서라벌로 들어오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문무왕(재위 661-681)이 부처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략을 막고자 세우기 시작했으며, 아들인 신문왕 때에 완공하였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내라”고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이 절에서 약 1.5km 떨어진 바다의 큰 바위에 장사지냈다. 그리고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의 이름을 감은사라고 지었다.
  
감은사는 강당, 금당, 중문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다. 금당 앞에 쌍탑이 있고 건물들을 회랑으로 두른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가람 배치를 보여준다. 금당 밑에는 배수시설이 있어 동해의 용이 된 문무왕이 드나들 수 있도록 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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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금당, 강당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으며, 금당 앞에는 쌍탑이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가람 배치를 보여준다. 금당의 초석 유구는 특이한 구조를 보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금당과 동해가 이어진 수로가 있어서 용이 된 문무왕이 바닷물을 따라 금당까지 드나들 수 있게 했다고 한다. 금당은 수로 위에 지어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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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왕의 명복을 빌기 위한 원찰(願刹)*이자 호국사찰(護國寺刹)*이며, 사찰을 관리하는 관부인 성전(成典)*설치되었던 곳이지만, 이후의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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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찰(願刹): 사찰 가운데 창건주가 자신의 소원을 빌거나 죽은 사람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건립하는 불교건축물. 원당·내불당·내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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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국사찰(護國寺刹): 부처의 공덕으로 나라의 안녕과 발전을 기원하고자 건립한 사찰. 또는 그런 역할을 하는 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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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成典): 신라시대 왕실의 사원을 관리하는 관청의 명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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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ayout is typical of Buddhist temples built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with a central gate, main worship hall, and lecture hall all aligned one in front of the other, along with a pair of pagodas that were built in front of the main worship hall. The remains of the foundation of the main worship hall have an unusual structure. According to legend, there was a water channel connecting the main worship hall and the East Sea so that King Munmu could visit the temple as a sea dragon. This foundation is thought to have allowed the worship hall to sit above this water channel.
 
The layout is typical of Buddhist temples built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with a central gate, main worship hall, and lecture hall all aligned one in front of the other, along with a pair of pagodas that were built in front of the main worship hall. The remains of the foundation of the main worship hall have an unusual structure. According to legend, there was a water channel connecting the main worship hall and the East Sea so that King Munmu could visit the temple as a sea dragon. This foundation is thought to have allowed the worship hall to sit above this water channel.
  
===영문 해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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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문화유산해설문 예시]]
이곳은 682년 창건된 감은사의 옛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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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가 위치한 곳은 동해에서 신라의 수도 서라벌로 들어오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문무왕(재위 661-681)이 부처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략을 막고자 세우기 시작했으며, 아들인 신문왕 때에 완공하였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내라”고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이 절에서 약 1.5km 떨어진 바다의 큰 바위에 장사지냈다. 그리고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의 이름을 감은사라고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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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문, 금당, 강당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으며, 금당 앞에는 쌍탑이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가람 배치를 보여준다. 금당의 초석 유구는 특이한 구조를 보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금당과 동해가 이어진 수로가 있어서 용이 된 문무왕이 바닷물을 따라 금당까지 드나들 수 있게 했다고 한다. 금당은 이 수로 위에 지어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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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문화유산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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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경주시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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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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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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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0 영문집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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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3월 22일 (월) 02:30 판


해설문

국문

이곳은 682년 창건된 감은사의 옛 터이다.

감은사가 위치한 곳은 동해에서 신라의 수도 서라벌로 들어오는 가장 빠른 길이었다. 문무왕(재위 661-681)이 부처님의 힘을 빌어 왜구의 침략을 막고자 세우기 시작했으며, 아들인 신문왕 때에 완공하였다. 문무왕은 “내가 죽으면 바다의 용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하니 화장하여 동해에 장사지내라”고 유언하였는데, 그 뜻을 받들어 이 절에서 약 1.5km 떨어진 바다의 큰 바위에 장사지냈다. 그리고 그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절의 이름을 감은사라고 지었다.

중문, 금당, 강당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으며, 금당 앞에는 쌍탑이 서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가람 배치를 보여준다. 금당의 초석 유구는 특이한 구조를 보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금당과 동해가 이어진 수로가 있어서 용이 된 문무왕이 바닷물을 따라 금당까지 드나들 수 있게 했다고 한다. 금당은 이 수로 위에 지어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영문

Gameunsa Temple Site, Gyeongju

This is the former site of Gameunsa Temple, which was founded in 682.

This temple was located on the shortest route from the coast of the East Sea to Seorabeol, the ancient capital of Silla (57 BCE-935 CE). The construction of the temple was initiated by King Munmu (r. 661-681) and finished by his son King Sinmun (r. 681-692) in the hopes of receiving the Buddha’s protection against Japanese pirates. In his will, King Munmu mentioned that he desired to be buried in the East Sea to become a sea dragon and protect the kingdom. Accordingly, his ashes were buried under a large rock in the sea about 1.5 km from this temple. To express gratitude to the king, the temple was named Gameunsa meaning “the temple of gratitude.”

The layout is typical of Buddhist temples built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with a central gate, main worship hall, and lecture hall all aligned one in front of the other, along with a pair of pagodas that were built in front of the main worship hall. The remains of the foundation of the main worship hall have an unusual structure. According to legend, there was a water channel connecting the main worship hall and the East Sea so that King Munmu could visit the temple as a sea dragon. This foundation is thought to have allowed the worship hall to sit above this water chann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