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서도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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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5월 22일 (수) 00:2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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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서도중앙교회 [江華西島中央敎會]



개관

강화 서도 중앙교회 건물은 1923년 교인들의 헌금으로 지은 한옥 예배당이다. 1902년 감리교 전도사 윤정일이 복음을 전도하기 위해 이곳 주문도리에 들어왔고, 1905년에는 교회와 신도가 마음을 모아 영생학교를 설립하여 민족의식을 고취시켰으며, 1923년 교인들의 헌금으로 이 교회를 새로 지었다. 강화도는 19세기 말 우리 나라가 서양에 문호를 개방할 때 그 전진적 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고, 따라서 서양인들의 선교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이다. 이들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거나 그들의 영향에 의해 당시에 세워진 교회 중 지금까지 강화도에 남아있는 것만 3곳에 이른다. 1900년에 세운 성공회 강화 성당, 1906년에 세워진 강화 온수리 성공회교회 그리고 서도 중앙 교회가 현존하고 있는 당시의 교회들이다. 그 중 서도 중앙 교회는 1923년 2월 교인들의 건축 헌금으로 지어지기 시작해 같은 해 7월에 한옥 예배당으로 완공되었으며, 1978년 주문 교회에서 서도 중앙 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재 대한 기독교 감리회 소속이다.

주문도

강화군 서도면 면소재지이며 주문도 외의 부속섬은 볼음도, 아차도, 말도 등이 있다. 주문도의 이름은 예사롭지 않다. 조선 후기에 임경업(林慶業) 장군으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장군이 중국의 명나라 사신으로 갈 때 임금에게 하직하는 글을 이 섬에서 올렸다 하여 아뢸 주(奏), 글월 문(文)을 써서 주문도(奏文島)라 하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주문도(注文島)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비슷하게 임경업 장군과 관련하여 물가를 뜻하는 삼 수 변에 임금 주(主)자를 합한 주(注)자와 글월 문(文)자를 써서 주문도라 부른다고 전해져오고 있다. 이 외에도 옛날에 사신단이 중국을 왕래할 때 한양의 국왕에게 기나긴 여정을 보고하는 글을 올렸다는 유래를 갖고 있다.

건축

건축형식은 2고주(高柱), 5량가(梁架)의 가구구조를 가졌다. 평면 구성은 중세 초기 서양교회 형식이나 매우 단순하며 예배실로 쓰이는 좁은 신랑(身廊:Nave)과 측랑(側廊:Aisle), 그리고 전면 중앙 강단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강단 뒤에는 사제석(司祭席)이 마련되어 있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며, 홑처마집이다. 건물 안은 중세 전기의 서양교회 양식을 하고 있으나 매우 단순하여, 예배실로 쓰이는 좁은 신랑(身廊)과 측랑(側廊), 중앙의 강단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 전통 목조건물의 가구형식을 바탕으로 서양교회를 지었다는데 큰 의미를 지닌다.

사진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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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기여

일자 역할 이름 전공
2019.4. 편집 이수민 인문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