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직물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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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6월 17일 (월) 19:3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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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편 강화사> 687쬭 강화의 특산물은 주로 직물류 견직, 면직, 마직이 있으며 그 총액은 연 10여 만원이며 자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경기도에서는 강화군에 산업기수 1명을 두어 직물업을 지도 장려하게 하고 강습회를 개최하며 직물기계를 구입하여 공동작업장을 설치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취지 하에 도에서는 1910년부터 1929년ㄲ지 8414원의 보조금을 지부하였다. 이는 당시 경성 직물조합의 9600원에 이어 도에서는 두 번째로 많은 보조금을 지급받은 것이다.

특히 직무을 주ㅗ 취급하는 포목상들은 조합을 결성하여 자신들의 이익을 확대하고자 하였다. 1924년 6월엔ㄴ 강화 포목상 조합에서 임시회의를 소집하여 상권 확장에 대한 안건을 토의하였다. 특히 1925년 8월에는 강화 포목상 조합에서 시장신설 및 이전 반대를 목적으로 대표를 경성에 파견하기도 하였다. 1935년에는 인조견 공장이 신설될 만큼 직물산업은 그 경재역을 인정받고 있었다. 즉 조양방적주식회사의 총 출자금액은 50만원, 건평은 150평으로 강화지역의 부호인 홍재묵, 홍재용 형제와 정주의 이정근의 출자로 설립되었다. 이와 같이 강화 지역의 직물업은 경기지역에서 가장 경쟁력있는 산업 가운데 하나였다.
한편 일제는 조선을 병합하면서 수산업에도 자국의 방식을 이식하였다. 일제는 1911년 이후 경기도의 수산업을 진흥시킨다는 명목 하에 어부의 양성과 함께 이에 필요한 자금을 마련할 명목으로 지방비ㅣ 어업 전습을 개설하였다. 관내 조선인 어엉ㅂ자를 선발하여 일본식 조어법 또는 안강망 어법을 습득하게 하여 그 수료자는 기업보조금을 교부하거나 어구를 배부하여 어업에 종사케 하였다. 특히 1923년 4월 도수산회를 설립하여 

한편 1931년 9월에 설립된 강화산업조합은 강화지역의 생산물을 주로 취급하였다. 즉 직물화연의 판매 가공 및 비료, 짚, 석유, 소금, 잡곡을 판매하고 산업용 재료 원료 및 기기 등을 구매하였다 이러한 강화산업조합의 활동은 당시 경기도 및 조선총독부에서도 관심이 지대하였다. 이미 1928년에 은사수산 산업장려대금을 계상하여 생산자금을 융통시키고자 자금을 대출하였으며 산어기사 1명을 두고 조직적으로 지도, 감독하였다. 이러한 강화산업조합의 조합원 및 출자금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위의 표에서 본 ㅂ와 같이 강화산업조합 가운데 중요한 것은 직무류에 대한 출자금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는데 이는 직물업이 강화의 대표적인 산업임을 나타낸다.

이러한 일제의 식민통치는 다음과 같은 폐해를 수반하였다. 즉 당시 식민지 농가의 궁핍은 크게 두 가지 문제를 초래할 수 있었다. 첫째는 한국통치가 일본에 부담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이본은 적어도 통치비용 이상의 수입을 한국에서 충당해야 했다. 통치비용을 가능한 주이고 이익을 늘려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