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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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민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6월 17일 (월) 22:0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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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6년 이미 강화도에는 강화직물조합이 설치되고 공동작업장까지 건설됐다. 강화도에는 심도직물 외에도 큰 섬유회사가 많았는데, 1975년 기준으로 회사는 15곳이었고, 전체 종업원수는 1천308명, 기계는 864대에 달했다고 '강화사'는 기록하고 있다


개항 이후 강화의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ㅣ독교의 수용. 상당 부분의 서양문물이 기독교를 통하여 전래되었던 것ㅇ. 특히 강화에는 1890년대 초부터 성공회와 감리교를 통한 선교가 이루어졌으며 신도들에 의한 자립교회로 발전하여 오늘날까지 그 전통이 계속되고 있다.


1900년대를 전후로 서구 문물의 수용이 지역적으로 부분적이지만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일제의 국권침탈과 관련하여 일본인들의 국내 이주가 증가하면서 생활에 관련된 문물의 수용이 증가되고 있었기 대문이다. 의료 도로 운송 우편 통신 전기 등의 근대 문물의 수용이 그것이다. 그러나 1900년대 이후 강화는 서해안의 중ㅇ요 군사 요충지로서의 그 중요성이 점차 떨어지게 되었고, 섬이라는 환경적 요인으로 인하여 그 위상을 회복시키지 못하였다. 따라서 근대화라는 측면에서는 오히ㅕ 타지역보다 서구 문물의 정착에는 뒤떨어져 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