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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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gyung kang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9월 23일 (수) 09:33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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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무’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로써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라고도 한다. 노래와 춤이 신라시대부터 현재까지 전승되어진 오랜 역사성으로 인해 역사학, 국문학, 민속학, 무용학, 음악학 등 여러 분야에서 다방면의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처용무’는 신라 때 설화인 <처용설화>에서 비롯된 듯하며 처음에는 벽사(辟邪)적 성격이 강한 춤이었으나 고려 때 들어와 불교적 색채가 짙은 궁중무로 이후 조선에는 국가와 군왕의 안녕이나 왕실의 번영을 위한 수단으로, 또는 큰 행사시에 연회의 일환으로 공연되었던 것으로 그 역할이 변경되었던 것이다. ‘처용무’의 ‘처용’의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 처용랑 망해사(望海寺) 조에 “그 중 한 아들은 임금을 따라 입경하여 정사를 보좌하였다. 이름을 처용이라 하였고…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며 나갔다.” 고 기록되어 ‘처용’이라는 이름이 등장하며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는 것에서 ‘처용무’의 형태가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방 처용무에 있어서 복식은 음양, 오행 등의 사상을 표면으로 드러내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처용의 오방 복식은 청·홍·황·흑·백의 순서로 음과 양의 조화, 상생과 상극의 등시성(等時性), 상대(相對), 상배(相背)의 공간성, 공간의 이동성 등을 사상적으로 표현하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처용무의 구조와 동작은 음양오행에서 비롯되며 이것을 바탕으로 추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악학궤범』에서 역시 처용무의 동작 자체보다는 방향성과 이동에 대한 설명이 비교적 자세하게 묘사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처용무의 구성은 의식무에 적합한 음양오행론적 의미와 목적성을 지닌다. 공간적 구성에서 처용 5인이 동서남북과 중앙에 위치하는 것은 처용과 역신의 대결을 상극으로 표현한 뒤 다시 상생의 대형으로 풀어내는 논리적인 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며, 벽사적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춤의 내용을 춤의 형식 속에 구현해 놓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악학궤범』과 『조선왕실록』의 기록, 『의궤』의 복식도를 통하여 처용무의 방향성, 음양, 오행 등의 사상을 통하여 복식의 구성과 의미를 알아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