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노동청년회

DH 교육용 위키
이수민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6월 17일 (월) 19:45 판

(비교) ← 이전 판 | 최신판 (비교) | 다음 판 → (비교)
이동: 둘러보기, 검색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JOC)


김수환 추기경이 펼친 사회사목 활동의 시작은 노동 분야였다. 1967년 마산교구장 시절, 노동문제에 투신하던 청년 단체인 한국가톨릭노동청년회(JOC, 가노청) 제2대 총재 주교가 되면서다. 김 추기경은 산업화로 격변하던 당시 우리 사회에서 심각하게 일어나는 노동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김 추기경은 이듬해 발생한 ‘강화 심도직물 사건’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강화도의 방직공장인 심도직물 노동자들이 ‘공장 걸레’로 불리며 착취를 당하다가, 가노청 회원들을 중심으로 조합을 결성해 저항하다 해고당한 터였다. 김 추기경은 곧장 임시 주교회의를 열어 한국 주교단 명의로 공동 성명을 발표했고, 복직을 이끌어냈다. 이는 사회문제를 향한 한국 주교단의 첫 공동성명이었고, 노동권 가치를 알린 첫 성과의 중심에 김 추기경이 있었다.


1958년 발족한 가노청은 급속히 발전하는 산업화 속에 ‘노동권’, ‘노동조합’이란 말조차 잘 몰랐던 노동자의 ‘희망’이 됐다. 가노청은 1만 원 남짓한 월급에 살인적 노동 시간을 감내했던 노동자와 버스 안내양, 윤락 여성, 구두닦이 등 모든 노동자에게 신성한 노동의 의미를 전했다. 전국 조직으로 확산된 가노청 회원들은 교육, 심포지엄, 봉사활동, 노동운동, 현장 실태조사 등 노동권 신장을 위한 전방위적 활동을 펼쳤다. 김 추기경은 강연을 열어 노동문제를 인간의 문제로 바라볼 것을 알리고, 부당한 처우를 받는 노동자들을 적극 보호해줬다.


1968년 가노청 제4대 전국 여성회장을 지낸 윤순녀(수산나)씨는 “추기경님은 가노청 담당 사제들을 중심으로 노동사목 기구를 설치토록 하는 등 노동사목의 초석을 놓고, 노동자들과 함께하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