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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은 한 가지 듣고 알아낸 것이 있거든 다른 사람들이 재빨리 내가 듣고 알아낸 것을 알아주지 않음을 염려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채서 인정해주길 조급하게 기다리니 경박함이 또한 심하도다!
 
:보통 사람들은 한 가지 듣고 알아낸 것이 있거든 다른 사람들이 재빨리 내가 듣고 알아낸 것을 알아주지 않음을 염려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채서 인정해주길 조급하게 기다리니 경박함이 또한 심하도다!
 
::聖凡異品, 髙下懸絶, 有不待校<ref> 【교감기37】 ‘校’가 유본에는 ‘較’로 되어 있다.</ref>而明者. 其言此者, 正以深厚之極, 警夫淺薄之尤耳<ref> 【교감기38】 ‘而’가 유본에는 ‘爾’로 되어 있다.</ref>. 然於聖人言深, 常人言薄者, 深則厚, 淺則薄, 上言首, 下言尾, 互文以明之也.
 
::聖凡異品, 髙下懸絶, 有不待校<ref> 【교감기37】 ‘校’가 유본에는 ‘較’로 되어 있다.</ref>而明者. 其言此者, 正以深厚之極, 警夫淺薄之尤耳<ref> 【교감기38】 ‘而’가 유본에는 ‘爾’로 되어 있다.</ref>. 然於聖人言深, 常人言薄者, 深則厚, 淺則薄, 上言首, 下言尾, 互文以明之也.
::성인과 보통 사람의 서로 다른 등급은 높고 낮음이 너무나도 현격해서 비교해보지 않고도 분명하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심원한 경지와 두터운 덕의 극치를 통해서 저 천박함의 과오를 경계하려는 것뿐이다. 그러나 성인에 대해선 깊음(深)만 말하고, 보통 사람에 대해선 엷음(薄)만 말한 것은, 깊으면(深) 바로 두터움(厚)이 [따라오고] 얕으면(淺) 엷음(薄)이 [따라오기 때문이니], 앞에서는 머리[에 해당하는 깊음(深)을] 말하고 뒤에서는 꼬리[에 해당하는 엷음(薄)을] 말하여 서로 호문을 이루어 의미를 분명하게 하려 함이다.<ref> 일반적으로 ‘깊음(深)’의 반대말은 ‘얕음(淺)’이고 ‘얇음(薄)’의 반대말은 ‘두터움(厚)’인데, 주돈이가 이 구절에서 성인과 일반인을 대비하면서 ‘깊음(深)’과 ‘얇음(薄)’을 가지고 설명한 것이 부적절해보일 수 있어서 주자가 이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다음의 표를 참고할 것.</ref><ref> 【보충】 이 장은 10장 「지학志學」과 20장 「성학聖學」과 23장 「안자顔子」와 같은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통서通書』전반에 걸쳐 안연(顔淵)은 학자들의 모범으로 제시되고 있다. 『통서』의 내부논리를 통해 봤을 때, 안연은 어떠한 사회적·경제적 조건(外)으로 대표될 수 있는 외적 요인이 아니라 순수하게 마음의 경지(內)에 의하여 성인(聖人)의 여부가 결정된다고 주장할 때 훌륭한 전범이 된다. 23장에서 보이는 것처럼 안연은 “천지간에는 지극히 부귀하고 사랑하고 찾을 만하면서 저것(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부귀)과는 다른 것이 있으니, 큰 것을 보고 작은 것은 잊었다.(天地閒有至貴至[富可]愛可求, 而異乎彼者, 見其大、而忘其小焉爾.)”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성인을 내면의 문제로 다루려는 문제의식은 ‘성인은 배워서 이를 수 있다.’는 사유로 전개되고, 이는 20장 「성학」으로 드러난다. <br/>이러한 문제의식은 주돈이에게서 뿐 아니라 북송시기 사대부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진양(陳襄, 1017-1080), 호원(胡瑗, 993-1059)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정이(程頤, 1033-1107)의 「안자소호하학론顔子所好何學論」에서 가장 구체화 된 형태로 정식화 된다. <br/> 사회·정치적으로 볼 때, 성인을 내면의 문제로 귀속시키려는 북송 사대부들의 사유는 사대부들의 정치적 주체의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사유들이 중앙 정계로의 진출을 모색하는 지방 사대부들의 움직임을 가속화 시켰다는 점이다.(쓰치다 겐지로, 성현창 역, 『북송도학사』, 예문서원, 2006년, 122쪽.)</re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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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과 보통 사람의 서로 다른 등급은 높고 낮음이 너무나도 현격해서 비교해보지 않고도 분명하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심원한 경지와 두터운 덕의 극치를 통해서 저 천박함의 과오를 경계하려는 것뿐이다. 그러나 성인에 대해선 깊음(深)만 말하고, 보통 사람에 대해선 엷음(薄)만 말한 것은, 깊으면(深) 바로 두터움(厚)이 [따라오고] 얕으면(淺) 엷음(薄)이 [따라오기 때문이니], 앞에서는 머리[에 해당하는 깊음(深)을] 말하고 뒤에서는 꼬리[에 해당하는 엷음(薄)을] 말하여 서로 호문을 이루어 의미를 분명하게 하려 함이다.<ref> 일반적으로 ‘깊음(深)’의 반대말은 ‘얕음(淺)’이고 ‘얇음(薄)’의 반대말은 ‘두터움(厚)’인데, 주돈이가 이 구절에서 성인과 일반인을 대비하면서 ‘깊음(深)’과 ‘얇음(薄)’을 가지고 설명한 것이 부적절해보일 수 있어서 주자가 이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다음의 표를 참고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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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ref> 【보충】 이 장은 10장 「지학志學」과 20장 「성학聖學」과 23장 「안자顔子」와 같은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통서通書』전반에 걸쳐 안연(顔淵)은 학자들의 모범으로 제시되고 있다. 『통서』의 내부논리를 통해 봤을 때, 안연은 어떠한 사회적·경제적 조건(外)으로 대표될 수 있는 외적 요인이 아니라 순수하게 마음의 경지(內)에 의하여 성인(聖人)의 여부가 결정된다고 주장할 때 훌륭한 전범이 된다. 23장에서 보이는 것처럼 안연은 “천지간에는 지극히 부귀하고 사랑하고 찾을 만하면서 저것(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부귀)과는 다른 것이 있으니, 큰 것을 보고 작은 것은 잊었다.(天地閒有至貴至[富可]愛可求, 而異乎彼者, 見其大、而忘其小焉爾.)”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성인을 내면의 문제로 다루려는 문제의식은 ‘성인은 배워서 이를 수 있다.’는 사유로 전개되고, 이는 20장 「성학」으로 드러난다. <br/>이러한 문제의식은 주돈이에게서 뿐 아니라 북송시기 사대부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진양(陳襄, 1017-1080), 호원(胡瑗, 993-1059)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정이(程頤, 1033-1107)의 「안자소호하학론顔子所好何學論」에서 가장 구체화 된 형태로 정식화 된다. <br/> 사회·정치적으로 볼 때, 성인을 내면의 문제로 귀속시키려는 북송 사대부들의 사유는 사대부들의 정치적 주체의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사유들이 중앙 정계로의 진출을 모색하는 지방 사대부들의 움직임을 가속화 시켰다는 점이다.(쓰치다 겐지로, 성현창 역, 『북송도학사』, 예문서원, 2006년, 122쪽.)</ref>
  
 
==주석==
 
==주석==
 
<refer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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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3일 (월) 15:01 기준 최신판

聖蘊第二十九

주돈이통서 제29장 원문 및 朱注이다.


“不憤不啟, 不悱不發, 舉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
“[마음으로 깨닫고자 하지만 통하지 못해] 발분하지 않으면 열어 보여주지 않으셨고, [입으로는 말하고 싶은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떠듬떠듬 거리지 않으면 드러내지 않으셨다. 한 측면을 거론할 때 나머지 세 측면을 반추하지 않으면 다시 가르치지 않으셨다.”[1]
説見《論語》. 言聖人之教, 必當其可, 而不輕發也.
이 말은 『논어』에 보인다. 성인의 교육방침은 반드시 적절한 경우에만 행하셨지 경솔하게 드러내지 않으셨음을 말하였다.


子曰: “予欲無言.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공자가 말했다. “나는 말이 없고자 한다. 하늘이 무슨 말을 하는가? 사시(四時)가 운행되고 만물이 생장하지 않더냐.”[2]
説亦見《論語》. 言聖人之道, 有不待言而顯者, 故其言如此.
이 말 역시 『논어』에 보인다. 성인의 도에는 언어를 통하지 않고 드러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그 말씀이 이와 같다.


然則聖人之蘊, 微顔子殆不可見. 發聖人之藴, 教萬世無窮者, 顔子也. 聖同天, 不亦深乎?
그렇다면 성인의 마음 안에 온축되어 있는 것은 안자가 아니라면 결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성인의 마음 안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드러내고 공자의 가르침이 만세토록 무궁한 것은 안자 덕분이다. 성인은 하늘과 동일하니 역시 심원하지 않은가?
藴, 中所畜之名也. 仲尼無迹, 顔子微有迹. 故孔子之教, 既不輕發, 又未嘗自言其道之蘊, 而學之[3]者唯顔子為得其全. 故因其進修之迹, 而後孔子之蘊可見. 猶天不言, 而四時行, 百物生也.
‘온(蘊)’은 마음 안에 온축되어 있는 것의 명칭이다. 중니(仲尼)는 그 어떤 자취도 없었지만, 안자에게는 미약하게나마 자취가 있었다.[4][5] 때문에 공자의 가르침은 경솔하게 발할 수 없을 뿐더러 일찍이 [공자] 스스로가 그 온축되어 있는 도를 말한 적도 없었지만, 공자의 문하에서 배운 사람들 중에 오직 안자만이 공자의 가르침을 온전히 깨달았다. 그러므로 그가 수양했던 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이후에 공자의 마음 속 깊은 곳에 온축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마치 하늘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지만 사계절이 운행되고 만물이 생장하는 것과 같다.


常人有一聞知, 恐人不速知其有也, 急人知而名也, 薄亦甚矣!
보통 사람들은 한 가지 듣고 알아낸 것이 있거든 다른 사람들이 재빨리 내가 듣고 알아낸 것을 알아주지 않음을 염려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알아채서 인정해주길 조급하게 기다리니 경박함이 또한 심하도다!
聖凡異品, 髙下懸絶, 有不待校[6]而明者. 其言此者, 正以深厚之極, 警夫淺薄之尤耳[7]. 然於聖人言深, 常人言薄者, 深則厚, 淺則薄, 上言首, 下言尾, 互文以明之也.
성인과 보통 사람의 서로 다른 등급은 높고 낮음이 너무나도 현격해서 비교해보지 않고도 분명하다. 여기에서 이렇게 말한 것은 바로 심원한 경지와 두터운 덕의 극치를 통해서 저 천박함의 과오를 경계하려는 것뿐이다. 그러나 성인에 대해선 깊음(深)만 말하고, 보통 사람에 대해선 엷음(薄)만 말한 것은, 깊으면(深) 바로 두터움(厚)이 [따라오고] 얕으면(淺) 엷음(薄)이 [따라오기 때문이니], 앞에서는 머리[에 해당하는 깊음(深)을] 말하고 뒤에서는 꼬리[에 해당하는 엷음(薄)을] 말하여 서로 호문을 이루어 의미를 분명하게 하려 함이다.[8][9]

주석

  1. 『논어』, 「술이」8, “子曰: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
  2. 『논어』, 「양화」19, “子曰: ‘予欲無言.’ 子貢曰: ‘子如不言, 則小子何述焉.’ 子曰: ‘天何言哉? 四時行焉, 百物生焉, 天何言哉?’”
  3. 【교감기36】 대전본, 유본, 서본에는 ‘之’가 없다.
  4. 『이정수언』7-30 子曰: 仲尼無迹; 顔子之迹微顯; 孟子之迹著見. 선생님이 말했다. “공자는 자취가 없었고, 안자의 자취는 미세하게 드러났고, 맹자의 자취는 현저하게 드러났다.”
  5. 『이정유서』05-02 仲尼, 元氣也; 顔子, 春生也; 孟子, 幷秋殺盡見. 仲尼, 無所不包; 顔子示「不違如愚」之學於後世, 有自然之和氣, 不言而化者也; 孟子則露其才, 蓋亦時然而已. 仲尼, 天地也; 顔子, 和風慶雲也; 孟子, 泰山巖巖之氣象也. 觀其言, 皆可以見之矣. 仲尼無迹, 顔子微有迹, 孟子其迹著. 공자는 원기(元氣)이고 안연은 춘생(春生)이고 맹자는 또한 추살(秋殺)을 아울러 모두 드러내었다. 중니는 포용하지 않는 게 없으며, 안연은 ‘어기지 않는 것이 어리석어 보이는’ 학문을 후세에 보여주었으니 자연스러운 和氣가 있는 것이며 말해주지 않아도 스스로를 변화시킨 경우이고, 맹자는 그 재주를 드러내었으니 아마 역시 그 때가 그러한 것일 뿐이다. 공자는 천지(天地) 그 자체이며, 안연은 산들바람과 상서로운 구름과 같고, 맹자는 태산의 위엄이 넘치는 기상과 같다. 그 말을 살펴보면 모두 이를 알 수가 있으니 공자는 아무런 자취가 없었으며 안연은 미세하게나마 자취가 있었고 맹자는 그 자취가 현저하다.
  6. 【교감기37】 ‘校’가 유본에는 ‘較’로 되어 있다.
  7. 【교감기38】 ‘而’가 유본에는 ‘爾’로 되어 있다.
  8. 일반적으로 ‘깊음(深)’의 반대말은 ‘얕음(淺)’이고 ‘얇음(薄)’의 반대말은 ‘두터움(厚)’인데, 주돈이가 이 구절에서 성인과 일반인을 대비하면서 ‘깊음(深)’과 ‘얇음(薄)’을 가지고 설명한 것이 부적절해보일 수 있어서 주자가 이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다음의 표를 참고할 것.
    常人
  9. 【보충】 이 장은 10장 「지학志學」과 20장 「성학聖學」과 23장 「안자顔子」와 같은 맥락을 형성하고 있다. 『통서通書』전반에 걸쳐 안연(顔淵)은 학자들의 모범으로 제시되고 있다. 『통서』의 내부논리를 통해 봤을 때, 안연은 어떠한 사회적·경제적 조건(外)으로 대표될 수 있는 외적 요인이 아니라 순수하게 마음의 경지(內)에 의하여 성인(聖人)의 여부가 결정된다고 주장할 때 훌륭한 전범이 된다. 23장에서 보이는 것처럼 안연은 “천지간에는 지극히 부귀하고 사랑하고 찾을 만하면서 저것(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부귀)과는 다른 것이 있으니, 큰 것을 보고 작은 것은 잊었다.(天地閒有至貴至[富可]愛可求, 而異乎彼者, 見其大、而忘其小焉爾.)”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성인을 내면의 문제로 다루려는 문제의식은 ‘성인은 배워서 이를 수 있다.’는 사유로 전개되고, 이는 20장 「성학」으로 드러난다.
    이러한 문제의식은 주돈이에게서 뿐 아니라 북송시기 사대부 전반에 걸쳐 드러난다. 진양(陳襄, 1017-1080), 호원(胡瑗, 993-1059)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으며, 정이(程頤, 1033-1107)의 「안자소호하학론顔子所好何學論」에서 가장 구체화 된 형태로 정식화 된다.
    사회·정치적으로 볼 때, 성인을 내면의 문제로 귀속시키려는 북송 사대부들의 사유는 사대부들의 정치적 주체의식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사유들이 중앙 정계로의 진출을 모색하는 지방 사대부들의 움직임을 가속화 시켰다는 점이다.(쓰치다 겐지로, 성현창 역, 『북송도학사』, 예문서원, 2006년, 1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