師第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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師第七

주돈이의 통서 제7장 원문 및 朱注이다.


或問曰:「曷爲天下善?」曰:「師。」曰:「何謂也?」曰:「性者,剛柔、善惡,中而已矣。」
혹자가 물었다. “어떻게 천하를 선하게 만듭니까?” 말했다. “스승을 두어야 한다.” 물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했다. “性이라는 것은 剛柔의 善惡이니, (그 가운데에서) 적절함을 취해야 한다.”[1]
此所謂性,以氣稟而言也。
여기에서 性을 이른 것은 기품을 가지고 말한 것이다.


「不達」。曰:「剛善,爲義,爲直,爲斷,爲嚴毅,爲幹固;惡,爲猛,爲隘,爲強梁。柔善,爲慈,爲順,爲巽;惡,爲懦弱,爲無斷,爲邪佞。」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2] 말했다. “선한 강건함은 의로움이 되고, 곧음이 되고 결단함이 되고, 엄격함이 되고, 꼿꼿함이 되며, 악한 강건함은 사나움이 되고 협애함이 되고 포악함이 된다. 선한 유순함은 자애로움이 되고 순함이 되고 부드러움이 되며, 악한 유순함은 유약함이 되고 결단 없음이 되고 사특하고 아첨함이 된다.”
剛柔固陰陽之大分,而其中又各有陰陽,以爲善惡之分焉。惡者固爲非正,而善者亦未必皆得乎中也。
강유는 본래 음양을 크게 나눈 것이니 그 가운데에 또한 각각의 음양이 있어서 선악의 구분이 된다. (강유의) 악함은 진실로 바르지 않은 것이 되지만 (그렇다고 강유의) 선함이 또한 반드시 모두 적절함을 얻는 것은 아니다.


惟中也者,和也,中節也,天下之達道也,聖人之事也。
다만 적절함[中]이라는 것은 和이고 절도에 맞는 것[中節]이며 천하의 보편적인 원칙[達道]이니, 성인의 일이다.
此以得性之正而言也。然其以和爲中,與中庸不合。蓋就已發無過不及者而言之,如書所謂「允執厥中」者也。
이것은 性의 올바름을 얻은 것을 가지고서 말한 것이다. 그러나 和를 中으로 여긴 것은 『중용』과 부합하지 않는다.[3] 아마도 이미 발하여 과불급이 없는 것에 나아가서 말한 것으로, 『서』의 이른바 “진실로 그 中을 잡으라”라는 말과 같다.[4]


故聖人立教,俾人自易其惡,自至其中而止矣。
따라서 성인이 가르침을 세우셨으니,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剛柔의) 악함을 바꾸고 스스로 그가 적절함[中]에 이르러야 그치게 하셨다.
易其惡, 則剛柔皆善,有嚴毅慈順之德,而無強梁懦弱之病矣。至其中,則其或爲嚴毅,或爲慈順也,又皆中節,而無太過不及之偏矣。
(剛柔의) 악한 것을 바꾸면 剛柔가 모두 선하게 되어, 엄격하면서도 자애로운 덕을 가지게 되며, 사납거나 유약한 병폐가 사라지게 된다. 적절함[中]에 이르면, 어떤 경우에는 엄격해지고 어떤 경우는 자애롭게 되더라도 또한 모두 절도에 적중하여 크게 지나치거나 모자란 치우침이 없게 될 것이다.


故先覺覺後覺,闇者求於明,而師道立矣。
따라서 먼저 깨달은 사람은 뒤에 깨달을 사람을 깨우쳐주고, 어두운 사람이 밝은 사람에게서 구하여야 스승의 도가 세워진다.
師者所以攻人之惡,正人之不中而已矣。
스승 노릇이란 사람의 (剛柔의) 악한 것을 지적하고 사람의 적절하지 않음을 바르게 해주는 것일 뿐이다.


師道立,則善人多;善人多,則朝廷正,而天下治矣。
스승의 도가 확립되면 선한 사람이 많아지고, 선한 사람이 많아지면 조정이 바르게 되며, 천하가 다스려지게 된다.
此所以爲天下善也。此章所言剛柔,即易之「兩儀」;各加善惡,即易之「四象」;易又加倍﹐以爲「八卦」。而此書及圖則止於「四象」,以爲火、水、金、木,而即其中以爲土。蓋道體則一,而人之所見詳略不同,但於本體不差,則並行而不悖矣。
이것이 (스승이) 천하를 선하게 만드는 까닭이다. 이 장에서 말한 剛柔는 바로 『역』의 ‘兩儀’이며, 각각 선악을 더한 것은 바로 『역』의 ‘四象’이며, 『역』에서는 또한 배를 더하여 ‘八卦’를 만들었다.[5][6] 그러나 이 책과 태극도에서는 ‘四象’에 그쳤으니, (네 가지를) 화·수·금·목으로 삼고서, 곧 그 中에 나아가서는 土로 삼았다. 대개 도라는 본체는 같지만, 사람들이 보는 것에는 자세함과 간략함이 같지 않으나, 다만 본체에 있어서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함께 행하여도 위배되지 않을 것이다.[7]


주석

  1. 『주자어류』 “問「性者,剛柔善惡中而已。」 曰:「此性便是言氣質之性。四者之中,去卻兩件剛惡、柔惡,卻又剛柔二善中,擇中而主焉。」 (”통서의 “性者,剛柔善惡中而已”에 대해 물었다. 말했다. “여기에서의 性은 바로 기질지성을 말한 것이다. 네 가지 가운데 두 가지 굳셈의 나쁜 것과 유약함의 나쁜 것을 버리고[去卻], 다만 재차 剛柔의 두 좋음 가운데에서 적절함[中]을 택하여 주로 하라는 것이다.”)
  2. 『漢語大詞典』 1.不明白;不通達。
  3. 『中庸』 “喜怒哀樂之未發,謂之中;發而皆中節,謂之和。中也者,天下之大本也;和也者,天下之達道也。”
  4. 『書』“人心惟危,道心惟微,惟精惟一,允執厥中。”
  5. 『易』「繫辭傳」 “是故, 易有大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6. 『朱子語類』 問:「解云:『剛柔,即易之兩儀,各加善惡,即易之四象。』疑『善惡』二字是虛字,如易八卦之吉凶。今以善惡配為四象,不知如何?」曰:「更子細讀,未好便疑。凡物皆有兩端。如此扇,便有面有背。自一人之心言之,則有善有惡在其中,便是兩物。周子止說到五行住,其理亦只消如此,自多說不得。包括萬有,舉歸於此。康節卻推到八卦。太陽、太陰,少陽、少陰。太陽、太陰各有一陰一陽,少陽、少陰亦有一陰一陽,是分為八卦也。」 (문 : “통서해의 『剛柔,即易之兩儀,各加善惡,即易之四象。』에서 ‘善惡’ 두 글자는 허자이니, 『역』에서의 팔괘의 길흉과 같습니다. 지금 선악을 四象에 배속시킨 것은 어째서입니까?” 답 : 재차 자세히 읽어야하니, 잘 읽지 않으면 곧 의문을 품게 될 것이다. 모든 사물은 양단을 가지니, 마치 부채에 앞면이 있고 뒷면이 있는 것과 같다. 한 사람의 마음에서부터 말하자면, 그 안에 선도 있고 악도 있으니 이것이 바로 兩物이다. 염계선생은 다만 오행을 가지고 말하셨으니, 그 이치가 또한 다만 이와 같이 그치므로, 스스로 많이 말해서는 안 된다. 만유를 포괄하는 것은 모두 여기에 귀결된다. [후략] )
  7. 『中庸』 “萬物並育而不相害,道並行而不相悖,小德川流,大德敦化,此天地之所以為大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