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氏乞食之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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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dusdl12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7월 31일 (수) 21:55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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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걸식지변

정도전불씨잡변 제 12장의 원문 및 번역이다.


食之於人, 大矣哉。不可一日而無食, 亦不可一日而苟食。無食則害性命, 苟食則害義理。洪範八政, ‘食貨爲先’, ‘重民五敎, 惟食居首’, 子貢問政, 則夫子以足食告之。此古之聖人, 知生民之道, 不可一日而無食。故皆汲汲於斯, 敎以稼穡, 制以貢賦, 軍國有須, 祭祀賓客有給, 鰥寡老幼有養, 而無匱乏飢餓之歎, 聖人之慮民遠矣。
사람에게 있어서 먹는다는 것은 중요하다! 하루라도 먹지 않을 수 없으나 또한 하루라도 구차하게 먹어서는 안 된다. 먹지 않으면 목숨(性命)을 해칠 것이요, 구차스럽게 먹으면 의리를 해칠 것이다. (그러므로) 홍범(洪範)의 팔정(八政)에 식(食)과 화(貨)를 앞에 두었고 [1], 백성에게 오교를 중하게 하되, 食을 처음에 두었으며 [2], 자공이 정사에 관하여 물으니 공자(孔子)께서 ‘먹을 것부터 족(足)하게 하라.’ [3]고 고하셨다. 이는 옛 성인들도 백성이 살아가는 데는 하루도 먹지 않을 수 없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모두 먹는 것에 간절하여 농사법을 가르치고 공물(貢物)내는 것을 만들어서 군사와 국가의 용도에 충당함이 있고, 제사와 손님 접대에 공급함이 있고, 홀아비나 과부나 자식 없는 노인이나 고아를 먹여 살림이 있어서 곤핍(困乏)과 기아(飢餓)의 탄식을 없게 하였으니 (이것을 볼 때) 성인이 백성을 염려함이 심원한 것이다.


上而天子公卿大夫, 治民而食, 下而農工商賈, 勤力而食, 中而爲士者, 入孝出悌, 守先王之道, 以待後之學者而食, 此古之聖人, 知其不可一日而苟食, 故自上達下, 各有其職, 以受天養, 其所以防民者至矣。不居此列者, 姦民也, 王法所必誅而不赦者也。
위로는 천자와 공경대부(公卿大夫)가 백성을 다스림으로써 먹고, 아래로는 농부ㆍ공장(工匠)ㆍ상인들이 힘써 일함으로써 먹고, 그 가운데에 선비된 사람은 (집) 안으로는 효도하고 (집) 밖으로는 공경하여 선왕의 도를 지켜서 후학(後學)을 가르침으로써 먹었으니 이는 옛 성인들이 하루도 구차스럽게 먹어서는 안 됨을 알았기 때문에 위로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각각 그 직분이 있어서 하늘의 양육을 받았으니 백성들을 예방함이 지극하였기 때문이다. 이 반열(班列)에 속하지 않은 자는 간사한 백성이라 하여 왕법으로 반드시 죽이고 용서하지 않는 것이었다.


金剛經曰: “爾時世尊食時, 着衣持鉢, 入舍衛城, 【按舍衛, 波斯國名。】 乞食於其城中。”夫釋迦牟尼者, 以男女居室爲不義, 出人倫之外, 去稼穡之事, 絶生生之本, 欲以其道, 思以易天下, 信如其道, 是天下無人也, 果有可乞之人乎; 是天下無食也, 果有可乞之食乎。
《금강경(金剛經)》에 이르기를, “어느 때 세존(世尊)이 식사 때가 되어 가사를 입고 발우(鉢)를 가지고는 사위성(舍衛城) 【권근, ‘舍衛’는 파사국(波斯國 : 페르시아)의 이름이다.】에 들어가 그 성(城) 가운데에서 걸식(乞食)을 하였다. [4]” 하니, 대저 석가모니라는 사람은 남녀가 같은 방에서 사는 것을 옳지 않다고 여겨서, 인륜(人倫)의 밖으로 벗어나서 농사일을 버리고, 생생(生生)하는 근본을 끊어 버리고는, 그의 도(道)로써 천하를 바꾸려고 하고 있으나, 진실로 그의 도와 같이 한다면 천하에는 사람이 없어질 것이니, 과연 빌어먹을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천하의 음식이 없어질 것인데 빌어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겠는가!


釋迦牟尼者, 西域王之子也, 以父之位, 爲不義而不居, 非治民者也, 以男耕女織, 爲不義而去之, 何勤力之有。無父子君臣夫婦, 則又非守先王之道者也。此人雖一日食一粒, 皆苟食也, 信如其道, 誠不食如蚯蚓然後可也, 何爲乞而食乎。且食在自力則爲不義, 而在乞則爲義乎。佛氏之言, 無義無理, 開卷便見, 故於此論而辨之。
석가모니라는 사람은 서역(西域) 왕의 아들로, 그의 아버지의 지위를 옳지 않다고 하여 받지 않았으니,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아니며, 남자가 밭 갈고 여자가 베 짜는 것을 옳지 않다고 하여 그만두었으니, 무슨 힘써 일한 것이 있겠는가! 부자(父子), 군신(君臣), 부부(夫婦) 관계도 없으니, 또한 선왕(先王)의 도를 지키는 자도 아니다. 이런 사람은 하루에 쌀 한 톨을 먹을지라도 모두 구차하게 먹는 것이니, 진실로 그의 도(道)와 같이 하려면 지렁이처럼 (아예) 먹지 않은 뒤에라야 가능할 것이니, 무엇을 빌어서 먹는단 말인가! 또한 자기 힘으로 먹는 것을 옳지 않다고 하고서 빌어먹는 것은 옳단 말인가? 불씨의 말은 그 옳음도 없고 이치도 없는 말들이 책만 펴면 이내 보이기 때문에 여기에 논하여 변박하는 바이다.


佛氏其初, 不過乞食而食之耳, 君子尙且以義責之, 無小容焉, 今也華堂重屋, 豐衣厚食, 安坐而享之如王者之奉, 廣置田園臧獲, 文簿雲委, 過於公卷, 奔走供給, 峻於公務, 其道所謂斷煩惱出世間, 淸淨寡欲者, 顧安在哉。
불씨가 그 처음에는 걸식(乞食)하여서 먹고 사는데 지나지 않을 뿐인데 군자는 오히려 의(義)로써 문책하며 여기에 조금의 용납함이 없었는데도, 오늘날에는 저들이 화려한 전당(殿堂)과 큰 집에 사치스러운 옷과 좋은 음식으로 편안히 앉아서 흠향하기를 왕자(王子)가 봉양받듯 하고, 넓은 정원과 많은 노복을 두어 문서가 구름처럼 많아 공문서를 능가하고, 분주하게 공급하기는 공무(公務)보다도 엄하게 하니, 그의 도(道)에 이른바 번뇌를 끊고 세간에서 떠나 청정(淸淨)하고 욕심 없이 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不惟坐費衣食而已, 假托好事, 種種供養, 饌食狼藉, 壞裂綵帛, 莊嚴幢幡, 蓋平民十家之產, 一朝而費之。噫!廢棄義理, 旣爲人倫之蟊賊, 而暴殄天物, 實乃天地之巨蠹也。張子曰: “上無禮以防其僞, 下無學以稽其蔽, 非獨立不懼, 精一自信, 有大過人之才, 何以正立其間, 與之較是非計得失哉。” 噫! 先正之所以深致歎息者, 豈偶然哉; 豈偶然哉。
가만히 앉아서 옷과 음식을 소비할 뿐만 아니라, 좋은 불사(佛事)라고 거짓 칭탁(稱托)하여 갖가지 공양과 음식이 낭자(狼藉)하고 비단을 찢어 불전(佛殿)을 장엄하게 꾸며서 대개 평민 열 집의 재산을 하루 아침에 소비한다. 아아! 의리를 저버려 이미 인륜의 해충과 도적이 되었고, 하늘이 내어준 물건을 함부로 다 써버리니 실로 천지에 큰 좀벌레로다. 장횡거가 말하기를, “위로는 예(禮)로써 그 거짓을 막을 만한 이가 없고, 아래로는 배워서 그 가림(蔽)을 열어 줄 만한 이가 없으니, 혼자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일(精一)하여 스스로를 믿고 남보다 뛰어난 재주가 있는 이가 아니고서야 어찌 그 사이에 바로 서서 그와 더불어 옳고 그름을 비교하고 득실을 따질 수 있으랴? [5]” 하였으니, 아아! 선생이 깊이 탄식한 것이 어찌 우연이리요, 어찌 우연이리요.

주석

  1. 󰡔尚書󰡕, 「洪範」. 五章. “八政:一曰食,二曰貨,三曰祀,四曰司空,五曰司徒,六曰司寇,七曰賓,八曰師。”
  2. 󰡔尚書󰡕, 「武成」. “列爵惟五,分土惟三。建官惟賢,位事惟能。重民五教,惟食、喪、祭。惇信明義,崇德報功。垂拱而天下治。”
  3. 󰡔論語󰡕, 「顏淵」. “자공이 정사를 묻자,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양식을 풍족히 하고, 병(兵)을 풍족히 하면 백성들이 믿을 것이다.’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반드시 부득이 해서 버린다면 이 세 가지 중에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병(兵)을 버려야 한다.’ 자공(子貢)이 말하였다. ‘반드시 부득이해서 버린다면 이 두 가지 중에 무엇을 먼저 해야 합니까?’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양식을 버려야 하니, 예로부터 사람은 누구나 다 죽음이 있거니와, 사람은 신의가 없으면 설 수 없는 것이다.’(子貢問政。子曰:「足食。足兵。民信之矣。」子貢曰:「必不得已而去,於斯三者何先?」曰:「去兵。」子貢曰:「必不得已而去,於斯二者何先?」曰:「去食。自古皆有死,民無信不立。」 )”
  4. 󰡔金剛經󰡕, “一時,佛在舍衛國祇樹給孤獨園,與大比丘眾千二百五十人俱。爾時,世尊食時,著衣持鉢,入舍衛大城乞食。於其城中,次第乞已,還至本處。飯食訖,收衣鉢,洗足已,敷座而坐。”
  5. 󰡔正蒙󰡕, 《乾稱篇第十七》. “…此人倫所以不察,庶物所以不明,治所以忽,德所以亂,異言滿耳,上無禮以防其偽,下無學以稽其弊。自古詖、淫、邪、遁之詞,翕然並興,一出於佛氏之門者千五百年,自非獨立不懼,精一自信,有大過人之才,何以正立其間、與之較是非,計得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