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경원원소도감 의궤"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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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25일 (화) 18:31 판

정의

1863년 양주 순강원 우강에 있던 현목수빈묘인 휘경원을 양주 달마동으로 천봉[1]하기 위해 원소[2]를 준비한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3]

내용

구성

수빈 박씨의 묘소인 휘경원을 조성하는 과정을 모두 글과 그림으로 기록하여 남긴 조선왕실의궤로, 상하권 2권 2책으로 이루어져 있다. 산릉도감의궤의 일종으로 1822년 수빈 박씨가 사망하자 이듬해 3월 양주에 마련해 놓은 묘소에 묻히는 과정을 모두 상세하게 기록했다. 주요 내용은 장례가 이루어지는 3개월동안 이에 관해 조정에서 의논한 내용들과 왕명을 적은 전교, 장례를 담당한 도감 관원들의 직무와 명칭, 관련 기술자들에게 지급된 자급의 내용, 장례과정에서 사용된 총 경비, 묘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각종 제례 의식과 의복, 제기 등의 모습과 내용 등등 다양한 자료들을 담고 있다.

반환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에 의해 약탈되어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되어 오다가 1993년 9월 15일 저녁, KTX 기술력 수주[4]를 위한 미테랑 대통령의 방한 및 정상회담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수빈휘경원원소도감의궤-상권」이 직접 전달되었다. 이는 외규장각 의궤 역사상 최초로 이루어진 반환이었으며, 한국 문화재 반환 운동 역사상 가장 큰 의의가 있는 사건이었다. 그러나 완전한 반환이 아닌 3년마다 자격을 갱신하는 영구 임대 형식으로 한국에 전달되었다는 아쉬움이 남았다.

보관

분상용 의궤 4세트가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같은 분상용 의궤 1세트가 한국학 중앙 연구원 장서각에 보관되어 있다. 이 규장각 소속 수빈휘경원원소도감의궤 4질과 장서각 소속 의궤 1질은 모두 2016년에 다른 의궤들과 함께 대한민국 보물 제1901호로 일괄 지정되었다. 이 중 어람용 수빈휘경원원소도감의궤 상권은 다른 297권의 외규장각 의궤와는 다른 날짜에 다른 방식으로 임대된 의궤이다. 2011년 영구 대여된 297권의 외규장각 의궤들이 5년 단위로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것과는 달리 이 어람용 수빈휘경원원소도감의궤 상권은 3년마다 계약을 갱신하여야 한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지불해야 하는 임대료 또한 다른 외규장각 의궤와는 약간 다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5] [6]

멀티미디어

이미지

미테랑1.jpg
미테랑2.jpg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방한 모습이다. 이 당시에 규장각도서 반환문제를 논의했다.[7]


휘경원1.jpg
휘경원원소도감 상편의 제목과 목차[8]

참고

1993-09-16. 옛문서 1권 (상권) 전달/순조때 휘경원원소도감의궤 /미테랑,김대통령방문, 조선일보

2005-07-05, 佛 외규장각 '버팀수' 에 韓 '자충수', 경향신문

휘경원, 조선왕조실록사전

외규장각 의궤의 반환,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기록관

기여

오미래:최초작성

주석

  1. 묘자리를 옮김
  2. 묘자리
  3. 휘경원원소도감의궤, 위키백과
  4. 이로 인해 현재 대한민국 고속철도에서 운행되고 있는 열차가 프랑스에서 제작한 TGV로 결정되었다.
  5. 수빈휘경원원소도감의궤,나무위키
  6. 휘경원원소도감의궤, 위키백과
  7. 프랑수와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 방한 행사, 국가기록사진, e영상역사관
  8. 반남박씨대종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