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적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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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석사(赤石寺)는 강화도 고려산오련사 전설의 의하면 고구려시대부터 고려산 일원에 존재했던 사찰이다.

역사기록에 언급된 적석사

  •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산에 '적석사'란 사찰이 있다.
  • 1696년 『강도지』에 의하면 고려산에 '홍련사'란 사찰이 있었다.
  • 1696년 『강도지』에 의하면 고려산 남쪽 기슭에 '적석사'란 사찰이 있다.
  • 1714년에 적석사 사적비가 처음 세워졌다.
    • "고려시대 몽골과의 항쟁을 포기하고 도읍을 강화에서 개경으로 다시 옮겨간 후(1270), 몽골이 강화성을 철거한 때에도 온전하게 유지되었다고 한다."[1]
    • "임진왜란 ,병자호란 때에도 큰 화를 입지 않았기 째문에 여전히 사찰로서의 규모를 유지하였다."[2]
  • 1760년 여지도서 강화부지에 의하면 고려산 서쪽 기슭에 '적석사'란 사찰이 있으면 면 동쪽으로 강화부와의 거리가 20리이다.
  • 1783년 강화부지에 의하면 '적련사'란 사찰이 있다.
  • 1783년 강화부지에 의하면 고려산 서쪽에 '적석사'란 사찰이 있으며 창건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 1906년 『심도기행』에 의하면 적석사가 고려산 남쪽에 있으면 '적련사'라고도 하였다.
  • 1932년 『속수증보강도지』에 의하면 '적련사'란 사찰이 있다.
  • 1942년 전등사본말사지에 의하면 '적련사'란 사찰이 있다.
  • 『인천의 전통사찰과 불교미술(3)』에 의하면 『강도지』에 언급된 '홍련사'와 『속수증보강도지』에 언급된 '적련사' 현존하는 '적석사'가 동일한 사찰이라고 판단한다.



강화 고려산 적자사와 병자호란 이야기

인천의 전통사찰과 불교미술(3)(162~3쪽)에 의하면 ...

"김노진강화부지에는 병자정축년의 호란 때 정명공주가 적석사에서 난을 피했다고 했다. 종명공주(1603~1685)는 조선 14대 임금인 선조임목왕후의 딸이며 영창대군의 누나이다. 이복 동생 광해군이 즉위하여 영창대군을 역모죄로 사사하고 계비 인목대비를 폐출시켜 서궁에 감금할 때 정명공주도 폐서인되어 서궁에 감금되었으나 인조반정으로 인조가 즉위하면서 공주로 복권되었다. 병자호란 때 강화도청군에 의해 함락되면서 많은 왕족과 대신들이 고난을 껶었다."

적석사지 위치

갤러리

참고문헌

  1. 『인천의 전통사찰과 불교미술(3)』p. , 193ㅊ
  2. 『인천의 전통사찰과 불교미술(3)』p. , 193쪽
  3. 강화군 문화관광 - '적석사'
  4. 대한불교진흥원 - '하늘에서 본 아름다운 우리 절 - 강화도 고려산 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