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정수사(淨水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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淨水幽深地不凡 (정수유심지불범) 정수사 그윽하고 그 터도 비범하니,
法華金字匣中緘 (법화금자갑중함) 법화경 금자 사경 서갑 속에 봉해 있네.
浮屠前殿涵虛蹟 (부도전전함허적) 부도 앞쪽 전각은 함허대사 유적인데,
今日猶傳閣氏巖 (금일유전각씨암) 각시바위 전설이 오늘까지 전해오네.
○ 정수사(淨水寺)는 마니산 동남쪽 계곡 가운데에 있다. 절 아래에 부도전(浮屠殿)이 있었는데 명나라 영락 년간(1403~1424)에 이름이 득통(得通)이고 호가 함허자(涵虛子)인 스님이 중국에서 배를 타고 동쪽으로 와서 이곳에 절을 짓고 살았다. 이곳에 각씨암(閣氏巖 또는 角氏巖)이라고 불리는 바위가 있다. 전하기를 함허자가 이 암자에 머물면서 오래도록 돌아가지 않자 그 아내가 찾아와서 돌아가자고 했지만 거절당하자 죽어서 바위가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되었다고도 한다.
○ ≪법화경(法華經)≫의 십여구를 금으로 쓴 것이 있는데, 어떤 이는 안평대군(安平大君)이 쓴 것이라고 한다.
○ 동악(東岳) 이안눌의 시는 다음과 같다.
千古浮屠殿 (천고부도전) 천년의 세월에 부도전은
摩尼嶽麓東 (마니악록동) 마니산 기슭의 동쪽이라네.
山回人境隔 (산회인경격) 인적 드문 휘감는 산속에
天闊海門通 (천활해문통) 하늘 넓어 해문으로 통하네.
蜀魄啼斜月 (촉백제사월) 지는 달에 소쩍새는 지저귀고
梨花墮暗風 (이화타암풍) 밤바람에 배꽃이 떨어지네.
慚爲虎竹累 (참위호죽루) 범의 대에 누가될까 두려워
一宿別仙翁 (일숙별선옹) 하루 자고 신선과 이별하였네.
○ 병술년 유수 이은(李溵)이 동생 이미(李瀰)와 함께 이 절에 와서 시를 짓고 선조 동악 이안눌의 시판(詩板)를 우러러 보았다. 시는 다음과 같다.
留都能暇日 (류도능가일) 도읍에 머물다 한가한 날에
冥搜岳東西 (명수악동서) 밤새도록 산 속을 헤맸다네.
菊磴三秋晩 (국등삼추만) 국화길은 가을의 늦은 때이고
禪棲四望通 (선서사망통) 절에 있으니 사방이 통하네.
聯裾傳勝事 (련거전승사) 모여서 훌륭한 일 전하자니
題壁挹遺風 (제벽읍유풍) 벽에 붙여 유풍을 이어가네.
更向星壇去 (경향성단거) 참성단을 향해서 떠나니
問踵檀木翁 (문종단목옹) 단목옹의 발자취를 묻는구나.
○ 동생 참의 이미의 시는 다음과 같다.
涉遠滄溟際 (섭원창명제) 푸른 바다 저 먼 곳을 건널 때
吟蹤上峀東 (음종상수동) 읊조리며 산 동쪽을 오르네.
楓杉秋日暎 (풍삼추일영) 단풍나무 삼나무 가을 해가 비추고
樓殿夕潮通 (루전석조통) 누각에선 저녁 조수와 통하네.
古貞娃跡詩 (고정왜적시) 옛날의 정숙하고 고운 시는
傳我祖風迎 (전아조풍영) 우리 조상의 유풍을 전하네.
前三四衲□ (전삼사납□) 앞의 서너 납…… 472)
能識舊玲翁 (능식구령옹) 옛날의 영옹(玲翁)을 알 수 있다네.
○ 절 앞에 정녀석(貞女石)이 있다. 선집(先集)에도 정수사의 영상인(玲上人) 준 시(詩)가 있어서 아울러 스스로 주를 낸 것이다.
인물
- 함허기화(1376∼1433) 조선 초기의 유불조화론을 주장한 고승. 성은 유(劉)씨이고 본관은 충주(忠州)이다. 호는 득통 (得通), 당호는 함허(涵虛).
21세에 관악산 의상암에서 승려가 되었고, 회암사·대승사·현등사 등에서 수행하였고, 봉암사에서 열반하였다. 그가 중국에서 왔다는 전설을 입증할 만한 자료는 찾을 수 없다.
- 이은(1722∼1781)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치호(稚浩), 호는 첨재(瞻齋). 1766년 강화유수를 지냈으며, 그 후 이조판서, 우의정, 좌의정을 역임하였다.
- 이미(1725년 출생) 본관 덕수(德水), 자는 중호(仲浩)
참고
- 정수사(淨水寺): 화도면 사기리 마니산 남쪽에 있으며, 정수사법당은 보물 제161호로 지정되어 있다.
- 472) 원문에 빠진 글자가 있어 해석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