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한자표기 |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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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속대백과사전 |
褡 |
고려시대 이후 조선시대 말까지 袍위에 입는, 반소매이거나 소매가 없는 형태의 긴 덧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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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민족문화대백과 |
褡穫 |
고려후기부터 조선후기까지 입었던 옆트임이 있는 반소매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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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용어사전 |
踏胡 |
벼슬아치가 주로 입었던 옷의 한가지. 예복 밑에 입는 것으로, 소매는 없고 세자락으로 된 조끼형의 긴 옷임. 이런 답호는 하급관료의 제복이 되기도 하고 전투복으로써 일종의 마상의(馬上衣)이기도 하였음. ‘호(胡)’자는 ‘호(護)’와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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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복식사전 |
褡護 |
고려 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 왕, 왕세자, 왕세손이 착용하였으며, 단령 안에 입거나 철릭, 직령 등 포(袍) 위에 입는 소매가 없는 옷이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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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전문자료사전 |
褡穫 |
조선 시대 임금이 상복(常服) 속에 입던 옷으로, 벼슬아치들도 편복(便服)으로 입던 옷의 한 가지. 답호는 소매와 무・섶이 없으며 길이가 길고 뒷솔기를 허리 아래에서부터 터서 전복과 형태가 비슷하나 전복보다 어깨 넓이와 진동선이 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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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사전 |
褡𧞤 |
조선 시대에 입던, 밑이 길고 소매가 없는 조끼형의 관복. 또는 그런 군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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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사전 |
塔胡 |
더그레. 군복의 한 가지. 搭胡. 褡𧞤. 搭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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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사전 |
搭护 搭護 |
1. 옷자락까지 달린 긴 가죽 겹옷2. 반소매에 덧입는 겉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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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실록사전 |
塔胡 |
철릭 위에 입는 반소매의 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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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류학회지 |
褡護 |
나장과 같은 하급 관리들이 왕실 가족을 시위(侍衛) 할 때 상의 맨위에 입는 소매가 짧은 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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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편찬위원회 |
搭胡 |
답호(搭胡)는 소매가 없는 남자 의복이다. 조선 초기부터 반비(半臂), 전복(戰服)과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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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역사문화도감 |
褡𧞤 |
소매가 없는 남성용 의복으로, 탑호(蘆), 탑홀(蘆忽), 더그레라고도 한다. 고려시대에도 착용하였으며, 조선시대에는 왕과 상류층에서 즐겨 착용하였다. 중기 이후에는 선비들까지도 착용하였고, 말기에는 관리 들이 주의 위에 답호를 입어 예복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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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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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숙 (1983) 「褡護에 관한 연구」 |
답호는 그 형태가 소매와 섶이 없고 길이는 袍와 같으며, 뒷길 중심선과 무 양옆에 트임이 있는 옷으로, 唐의 半臂와 漢의 양상兩當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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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숙 (1993) 「우리나라 수의에 관한 연구」 |
『國朝五禮儀』에 답복이라 표기되어 있고, 『喪禮備要』에 ‘반비의’라 하여 뒷몸판의 허리 아래 부분이 터지고 소매가 없는 옷으로 심의대신 입혀지고 답호가 없을 때는 직령이 사용되기도 한다고 하였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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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숙 (1999) 한국복식문화사전 |
조선시대 왕과 문무관리들이 철릭 위에 입던 겉옷으로 소매가 없고 길이가 길며 무나 섶이 없이 뒷솔 기를 허리에서 아래까지 튼 형태이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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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구 (2000) 「朴通史諺解의 복식연구」 |
몽고어에는 dahu와 유사한 답홀이란 말이 있으나 이 말은 옷 이름은 아니다. 漢人 학자들이 말하는 것 같이 搭護라는 漢語가 元의 옷이름에서 유래된 것이라면 搭護 dahu란 말은 중세 서양의 복명인 tabard에서 몽고어로 音譯한 말인 것이 확실하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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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경, 김문자 (2000) 한국복식문화사 |
첩리나 액주름포 위에 덧입는 복식으로 조선시대에는 왕이 상복으로 착용하였고 후대에는 하급 군속이나 조례의 제복으로 착용되어 전복 또는 전포라 불리게 되었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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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연 (2005) 「18세기 남자 출토복식에 관한 연구」 |
『四禮便覽』에는 소매 없는 창의로 대금이며 옆은 이어져 있고 뒤가 터져있어 단령에 이어 입는 옷으로, 유관자가 심의를 襲衣로 사용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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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나영 (2008) 「출토복식을 통해서 본 조선시대 남자 편복포의 시대구분」 |
조선 초기부터 17세기 중반까지 보이는 답호는 소매가 짧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직령과 같은 형태이며, 깃과 무의 시대적 변화도 직령과 그 양사을 같이 한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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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경 (2009) 「조선시대 塔胡 연구 - 17세기 전기까지 -」 |
‘답호’는 고려시대 후기에 원나라에서 들어온 옷으로 『노걸대』에는 ‘搭胡’로 표기되어 있고 ‘더그레’로 언해되어 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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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월계 (2009) 「답호를 응용한 여성용 코트 디자인 연구」 |
답호는 첩리나 액주름포 등의 포 위에 착용하는 소매가 없거나 소매가 짧은 형태의 겉옷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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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자표기 |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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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乞大』, 1346년 |
褡護,搭胡(搭護,搭忽) |
답호(褡護)에 관한 최고(最古)의 기록. ‘대답호(大搭胡), 답호(褡護), 탑호(搭胡), 답홀(褡忽)’ 등의 명칭으로 표기되었고, ‘더그레’로 언해(諺解)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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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通事』, 1352년 |
搭胡 搭護, 搭忽 |
등으로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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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國朝五禮儀』, 1474년 |
褡𧞤 |
답복으로 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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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老朴集覽』, 1517년 |
搭胡 |
“事物紀原에 이르기를 수(隋)나라 내관(內官)이 많이 입었고, 반소매[半臂]이거나 긴 소매였다. 당고조唐高祖가 그 소매를 일컬어 반비(半臂)라 불렀으니, 지금의 배자(背子)이다. 장강(長江)과 회하(淮河) 지역에서는 간혹 작자(綽子)라고 하며 서인들이 다투어 그것을 입었다. 지금 시속에서 搭護[더그레]라고 부른다.” “搭胡[事物紀原云隋內官多服半臂餘皆長袖唐高祖減 其袖謂之半臂卽今背子也江淮間或曰綽子庶人競服之今俗呼爲搭護더그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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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喪禮備要』, 1648년 |
褡𧞤 |
‘반비의’라 하여 뒷몸판의 허리 아래 부분이 터지고 소매가 없는 옷으로 심의대신 입혀지고 답호가 없을 때는 직령이 사용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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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譯語類解』, 1775년 |
搭護 |
‘더그레’로 언해(諺解)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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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禮便覽』, 1844년 |
褡𧞤 |
소매 없는 창의로 대금이며 옆은 이어져 있고 뒤가 터져있어 단령에 이어 입는 옷으로, 유관자가 심의를 습의로 사용하지 않을 때 사용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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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常識』, 1948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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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비 곧 답호가 많이 군속(軍屬)의 입는 바임에 인하듯 언제부터 인지 ‘전복 (戰服)’이라는 변칭이 생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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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표기 |
기록 |
등장횟수 |
출처 및 선행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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褡𧞤 (褡 옷 해질 답 𧞤 획 ) |
1444년 명 정통(正統) 9년 세종실록 103권, 세종26년 3월 26일 병자 2번째기사 |
국역18 원문14 |
-답호(褡𧞤)에 관한 연구, 이봉숙 1983[11] -국어사전 -한민족역사문화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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塔胡 (塔 탑 탑 胡 오랑캐 이름 호) |
1452년 명 경태(景泰) 3년 단종실록 2권, 단종즉위년 8월 26일 병술 2번째기사 |
국역41 원문40 |
-조선시대 답호(塔胡) 연구 17세기전기까지, 송미경 (2009)[12] -한자사전 -위키실록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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搭胡 ( 搭 탈 탑 胡 오랑캐 이름 호) |
1452년 명 경태(景泰) 3년 단종실록 4권, 단종즉위년 10월 5일 계사 1번째기사 |
국역28 원문30 |
-老乞大 刊本들을 통해본 14∼18세기의 복식관련 용어 비교 연구, 서정원 (2003)[13]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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褡胡 (褡 옷 해질 답 胡 오랑캐 이름 호) |
1470년 명 성화(成化) 6년 성종실록 7권, 성종1년 8월 22일 정묘 4번째기사 |
국역4 원문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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褡複 (褡 옷 해질 답 複 겹칠 복) |
1477년 국조오례의 國朝喪禮補編 >국조상례보편 권1(國朝喪禮補編卷之一) >습(襲) |
국역0 원문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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褡穫 (褡 옷 해질 답 穫 땅이름 호) |
1603년 명 만력(萬曆) 31년 선조실록 160권, 선조36년 3월 18일 甲戌 1번째기사 |
국역0 원문1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패션전문자료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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褡護 (褡 옷 해질 답 護 도울 호) |
1796년 청 가경(嘉慶) 1년 정조실록 44권, 정조20년 3월 29일 을해 2번째기사 |
국역8 원문15 |
-더그레에 관한 연구, 변지연 (2006)[14] -출토복식을 통해서 본 조선시대 남자 편복포의 시대구분, 홍나영 (2008)[15] -한국복식사전 -한국의류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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搭護 (搭 탈 탑 護 도울 호) |
1884년 조선 개국(開國) 493년 고종실록 21권, 고종 21년 6월 20일 임진 2번째기사 |
국역4 원문5 |
-개화기 문관복에 관한 연구, 김미자, (1974)[16] -조선시대 高宗代의 衣製改革에 따른 官服의 변천, 김은정, (1997)[17] -朴通事 諺解의 服飾硏究, 김진구, (20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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