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氏禪敎之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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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씨선교지변
- 佛氏之說, 其初不過論因緣果報, 以誑誘愚民耳, 雖以虛無爲宗, 廢棄人事, 尙有爲善得福, 爲惡得禍之說, 使人有所懲勸, 持身戒律, 不至於放肆。故人倫雖毀, 義理未盡喪了。至達摩入中國, 自知其說淺陋, 不足以惑高明之士, 於是曰: “不立文字”, “言語道斷”, “直指人心”, “見性成佛。”
- 불씨의 설이 그 처음에는 인연(因緣)과 과보(果報)를 논하여서 어리석은 백성을 속이고 꾀는 데 불과할 뿐이었다. 비록 허무를 종주로 삼아서 ‘人事’를 저버렸지만, 그래도 선을 행하면 복을 얻고 악을 행하면 화를 얻는다는 설은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징계하고 권면하는 바가 있고 몸가짐과 계율이 방사해지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게 하였다. 그러므로 인륜은 비록 훼손하였지만 의리를 완전히 상실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달마가 중국에 들어와서는 그의 설이 얕고 비루하여 高明한 선비들을 현혹시킬 수 없음을 스스로 깨닫고서 이에 말하기를, “불교의 진리는 너무나도 깊어서 문자로 전할 수 없다.(不立文字)” [1],고 하고 “불교의 진리는 너무나도 깊어서 말로 표현할 말의 길이 끊어져 있다.(言語道斷)”,고도 하며 “곧바로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낸다.(直指人心)”고도 하고, “자신의 性을 깨닫게 되면 부처가 된다.(見性成佛)”고도 한다.
- 其說一出, 捷徑便開, 其徒轉相論述, 或曰, “善亦是心, 不可將心修心, 惡亦是心, 不可將心斷心,” 善惡懲勸之道絶矣; 或曰, “及淫怒癡, 皆是梵行”, 戒律持身之道失矣。自以爲‘不落窩臼, 解縛去械’, 慠然出於禮法之外, 放肆自恣, 汲汲如狂, 無復人理, 所謂義理者, 至此都喪也。
- 그 말이 한번 나와 샛길(捷徑)이 열려서 불교의 무리가 서로 돌아가면서 논술하기를 어떤 사람은 “선(善)도 또한 이 마음이지만 이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닦을 수 없으며 악(惡) 또한 이 마음이지만 이 마음을 가지고 마음을 끊을 수도 없다.” 라고 말하여 선을 권장하고 악을 징계하는 도가 끊어졌고, 또 어떤 사람은, “음(淫)과 노(怒)와 치(癡)도 모두 범행(의 대상) [2] [3]이다.”라고 하여 계율과 몸가짐의 도를 잃어버렸다. 스스로 ‘구덩이에 빠지지 않고 세속의 일정한 형(型)에서 벗어났다’고 여기고 오만하게 예법 밖으로 벗어나 방자하고 제멋대로 하여 위태로운 것이 마치 미친 것 같으니, 사람의 도리라고는 조금도 없어서 이른바 의리라는 것도 여기에 이르러 모두 상실하였다.
- 朱文公憂之曰, “西方論緣業, 卑卑喩群愚。流傳世代久, 梯接凌空虛。顧盻指心性, 名言超有無。【按, 佛說大略有三, 其初齋戒, 後有義學, 有禪學。緣之名有十二, 曰觸、愛、受、取、有、生、老、死、憂、悲、苦、惱。業之名有三, 曰身、口、意。指心性, 謂卽心是佛, 見性成佛。超有無, 謂言有則云色卽是空, 言無則云空卽是色。】 捷徑一以開, 靡然世爭趨, 號空不踐實, 躓彼榛棘塗。誰哉繼三聖, 【按, 三聖, 謂禹周公孔子。】 爲我焚其書。”甚哉, 其憂之之深也。予亦爲之憮然三歎。
- 주문공(朱熹)께서 이것을 근심하여 말씀하시길 “서방세계 [4] 는 인연(緣)과 업(業)을 논하여 비루하게도 뭇 어리석은 자들을 꾀는구나. [5] 여러 세대에 흘러 전한지가 오래됨은 사다리의 대서 허공을 오르는 듯 하고 [6] 이것저것 돌아보고 심성을 가리켜 유무를 초월했다 이름지어 말하네 【권근 : 불교의 설에 대략 세 가지가 있으니 처음에 재계(齋戒)가 있고 그 다음에 의학(義學)있고 선학(禪學)이 있다. 연(緣)의 이름은 열둘이 있으니 촉(觸)ㆍ애(愛)ㆍ수(受)ㆍ취(取)ㆍ유(有)ㆍ생(生)ㆍ노(老)ㆍ사(死)ㆍ우(憂)ㆍ비(悲)ㆍ고(苦)ㆍ뇌(惱)이다. 업(業)의 이름은 셋이 있으니 신(身)ㆍ구(口)ㆍ의(意)이다. 심(心)과 성(性)을 가리킨다는 것은 마음은 곧 불심이니 나의 성(性)을 깨달아 부처를 이룬다는 것을 말함이다. 유무를 초월했다는 것은, 유를 말하면 ‘색(色)은 곧 공이다.’ 하고, 무를 말하면 ‘공은 곧 색이다.’ 하는 것을 이른 말이다. 】 첩경이 한번 열리게 되니 바람에 휩쓸리듯 온 세상이 쏠리는데 공만을 부르짖고 실은 밟지 않고 저 가시덤불 길에 넘어지듯 하는구나 [7] 그 누가 세 성인을 계승하여 【권근 : 세 성인은 우(禹)ㆍ주공(周公)ㆍ공자(孔子)을 말한다.】 나를 위해 그 책을 불사를 것인가.” [8]
[9]라고 하였으니 심하도다! 그 근심함의 깊음이여! 나 또한 이를 위하여 서글퍼 재삼 탄식하는 바이다.
주석
- ↑ 朱子語類, 석씨의 책은 처음에는 다만 사십이장경만 있었으며 그 말이 속되고 낮았다. 후에 날로 더하고 불어난 것은 모두 중국의 학자들이 서로 도와 편찬한 것들이다. 진(晉)나라와 송(宋)나라 연간에 스스로 강사(講師)를 세워, 누구는 석가(釋迦)가 되고 누구는 아난(阿難)이 되고 누구는 가섭(迦葉)이 되어 각각 서로 묻고 힐난하면서 책으로 써서 서로 전하며 속인 것과 같은 경우이다. 대개는 노자와 열자의 생각을 표절하여 그들의 설을 문장을 통하여 변환하고 덧붙인 것이다. 대반야경은 책의 권수가 지나치게 많아 스스로 지루하다고 인식하여 심경 한 권으로 줄였다. 능엄경은 억지로 한두 가지의 의의를 세우고 그것들만 그저 반복되어 몇 장의 뒤에는 전혀 의미가 없다. 원각경 같은 책도 본래에는 그 의미가 얼마나 되었겠는가. 그저 심하게 속되었을 뿐이며 그 나머지는 더하고 갖다 붙인 것뿐이다. 불가의 학문은 처음에 공(空)만을 말하였으나 후에 동정(動靜)을 말하였으며 수많은 가지들로 만연됨이 심하였으나 달마가 홀연히 불립문자(不立文字)를 말하고 다만 침묵하여 단정히 앉아있음으로 마음을 고요히 하여 이치를 살폈다. 달마의 학설이 크게 유행하자 이전의 허다한 것들은 말할 가치도 없었으며 노씨 또한 대항하기가 어려워졌다. 오늘날 석씨는 그 왕성함이 지극함에 이르렀다. 다만 정(程)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공격하는 자가 잡는 이치는 도리어 그 아래에서 나온다”고 하셨으나 우리 유가는 이치를 잡음에 이미 스스로 비루하고 더럽다고 여기니 불가를 공격하여도 이기지 못함이 마땅하다. <불가의 책은 모두 지루한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일일이 거론하여 말할 수 있으나 여기서는 다 적을 수 없다.> <주모> (釋氏書其初只有四十二章經, 所言甚鄙俚. 後來日添月益, 皆是中華文士相助撰集. 如晉宋間自立講師, 孰爲釋迦, 孰爲阿難, 孰爲迦葉, 各相問難, 筆之於書, 轉相欺誑. 大抵多是剽竊老子列子意思, 變換推衍以文其說. 大般若經卷帙甚多, 自覺支離, 故節縮爲心經一卷. 楞嚴經只是强立一兩箇意義, 只管疊將去, 數節之後, 全無意味. 若圓覺經本初亦能幾何? 只鄙俚甚處便是, 其餘增益附會者爾. 佛學其初只說空, 後來說動靜, 支蔓旣甚, 達磨遂脫然不立文字, 只是黙然端坐, 便心靜見理. 此說一行, 前面許多皆不足道, 老氏亦難爲抗衡了. 今日釋氏, 其盛極矣. 但程先生所謂“攻之者執理反出其下”. 吾儒執理旣自卑汙, 宜乎攻之而不勝也. <說佛書皆能擧其支離篇章成誦, 此不能盡記.> 謨.)
- ↑ 【漢語大詞典】 梵行 : 謂清凈除欲之行
- ↑ 圓覺經, “善男子。一切障礙即究竟覺。得念失念無非解脫。成法破法皆名涅槃。智慧愚癡通為般若。菩薩外道所成就法同是菩提。無明真如無異境界。諸戒定慧及淫怒癡俱是梵行。眾生國土同一法性。地獄天宮皆為淨土。有性無性齊成佛道。一切煩惱畢竟解脫。”
- ↑ 서방(西方): 익증에 “주나라 소왕 때 부처가 서역의 천축국에서 태어났다[周昭王時 佛生於西域天竺國]”라고 하였다.
- ↑ 비비(卑卑): 사기』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에 “신자는 비근하게 명실에 시용한다(申子卑卑, 施之於名實)”라 하였는데, 남조 송나라 배인(裴駰)은 “스스로 힘쓴다는 뜻(自勉勵之意)”라 하였다.
- ↑ 제접(梯接): 차의에 “불법은 진·송간에 이르러 점차 번성해져 재계에서 의학으로 변하였는데, 원법사·지도림 같은 경우는 모두 다만 노·장의 설을 가져다가 펴서 넓혔을 뿐이다. 양나라 회통 연간에 달마가 들어와서 면벽을 한 지 9년만에 다만 사람의 심성은 지극히 선하다고 말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모든 것을 쓸어버렸고 문자는 세우지 않고 곧장 사람의 마음을 가리켜 선을 말해내었다. 주자어류에 보인다(佛法至晉宋間漸盛, 自齋戒變爲義學, 如遠法師·支道林皆只是將老莊之說來鋪張. 梁會通間, 達磨入來, 面壁九年, 只說人心至善, 卽此便是一切掃蕩, 不立文字. 直指人心說出禪來. 見語類)”라 하였다. 주자어류 권122에서 139까지에서 산견된다. 능공허(凌空虛): 익증에 “반씨가 말하기를, ‘이는 부처의 말씀이 스스로 마음을 알고 본성을 보며 유무를 초월하였으나 실질은 알지 못하였으니 허공에다 사다리를 놓아 공허함을 밟는 것이므로 의거할 것이 없음을 말하였다’라 하였다(潘氏曰, 此言佛氏之說, 自以爲識心見性, 超越有無而不知實, 則架空踏虛, 無所依據也)”라 하였다.
- ↑ 진극도(榛棘途): 순희본에는 형진도(荊榛塗)로 되어 있다. 진극(榛棘): 한나라 양웅(揚雄)의 반이소(反離騷)에 “가시덤불 빽빽이 우거짐이여, 원숭이들 감히 내려가지 않으려 하네[枳棘之榛榛兮, 蝯貁擬而不敢下]”라 하였다.
- ↑ 분기서(焚其書): 당나라 한유(韓愈)의 원도(原道)에 “(佛·老를) 막지 않으면 (우리의 도가) 유행하지 못하고, 저지하지 않으면 행해지지 못하니 그 사람들을 일반인으로 만들고, 그들의 책을 불태우고, 그들의 거처를 집으로 만들고 선왕의 도를 밝혀 그들을 인도한다(曰不塞, 不流, 不止, 不行, 人其人, 火其書, 廬其居, 明先王之道以道之)”라 하였다. 차의에 “웅씨가 말하였다. 이 편은 불학의 그릇됨을 논하였다(熊氏曰, 此篇論佛學之非)”라 하였다.
- ↑ 朱子大全, 卷四. “西方論緣業 서쪽 나라에서는 인연의 업을 논하여, 卑卑喩羣愚 힘껏 뭇 어리석은 사람들 깨우쳤네. 流傳世代久 널리 퍼져 세대가 오래되니, 梯接凌空虛 사다리를 대고 텅 빈 하늘을 오르듯 하네. 顧盻指心性 돌아보고 흘겨보며 마음과 본성 가리키니, 名言超有無 논설이 유와 무를 초월하였다네. 捷徑一以開 지름길이 한번 열리게 되니, 靡然世爭趨 쏠리듯이 세상에서 다투어 쫓네. 號空不踐實 공허함 부르짖으며 실천하지 않으니, 躓彼榛棘途 저 가시나무 길에서 넘어진 듯하네. 誰哉繼三聖 누구인가? 세 성인을 이어, 爲我焚其書 나를 위해 그 책을 사를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