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연구에 있어서 데이터 네트워크의 활용 가능성
DH 교육용 위키
1. 문명의 발전과 지식의 확산, 기독교의 전파
- 인쇄술과 종교개혁
- 토착어를 성경언어로 택함
- 이동수단의 발달
- 온라인 도서관과 디지털 아카이빙
- 기독교가 유대교의 한 종파로 남지 않고 세계종교가 된 것은 로마제국의 도로와 교통망을 잘 이용한 메신저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세 기독교의 봉건적, 미신적 성격을 비판했던 종교개혁의 성공은 종교개혁가들의 생각을 담은 문서들을 대량으로 복제생산할 수 있었던 인쇄술 덕분이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개신교 선교사들이 두고두고 참 잘 한 일이라고 생각한 결정은 성경을 언문으로 번역한 것이었다. 선교사들은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의 소중한 발명품에 감사했다. 그 덕에 기독교의 메시지는 쉽게 대중에게 전달되었다. 내한선교사들에게 또 다른 호재는 철도의 개통이었다. 도보로 3일 걸리던 길을 불과 3시간만에 갈 수 있다는 것은 혁신이었다. 선교사들과 전도인들은 성경과 함께 인류가 획득한 새로운 지식과 문명을 시골 방방곡곡에 전달하고 연결망을 만들어갔다. 그 연결망을 통해 사경회운동이라는 종교적 대중운동이 일어났고, 독립운동과 계몽운동 등 새로운 사회적 변화가 확산되었다.
- 문명은 기술과 컨텐츠가 결합할 때 새로운 단계로 도약한다. 신적 지식의 보편성을 믿는 기독교는 모든 인간이 인종과 성별과 국적에 상관없이 이 지식에 접근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왔다. 선교사들과 초기 한국기독교인들이 이른바 신학의 위험성을 두려워하고 성경적 기독교를 지키려고 한 것은 기독교가 대중에게서 유리되어 신학적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을 염려해서일 것이다. 비록 그들이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인식의 패러다임이 바뀐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옛 세계에 갇혀버렸지만 말이다.
- 지금 세계는 또다시 문명의 전환기에 처해있다. 이동수단의 발달을 뛰어넘는 통신의 발달은 다른 나라에 가지않고도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 있다. 또 지식생산의 주체인 인간은 기계의 도움을 받아 더 빠른 속도로 더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예측하지 못한 결과를 데이터의 분석을 통해 얻게 되었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이 기독교에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며, 기독교적 학문연구에는 어떤 영향을 주는가? 그 의미를 다 알 수 있는 전망이 필자에게는 부족하지만 교회사 분야에는 기회로 다가온다. 뛰어난 소수의 사람에 의해 독점되었던 신학적 담론으로서의 교회사의 시대는 저물어가고 그저 그런 평범한 사람들도 자신이 이해하는 신과 인간에 대해 말할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것은 현재와 미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만 국한된 기회가 아니고 역사에서 미미하게 다루어졌던 목소리없고 얼굴없는 과거의 주변인들에게도 기회가 된다. 그들이 역사에 공헌한 바가 없기 때문에 다룰 가치가 없다는 말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들도 이 거대한 우주공동체에서 자신의 역할이 있었으며, 그 의미가 아직 완결되지 않았을 뿐이다.
- 너무 큰 이야기를 펼쳤지만 사실 기술적 변화의 헤택을 느끼는 것은 매우 일상적 차원이다. 연구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온라인상에 올라오는 자료의 양이 점점 많아지고 있으며, 원하는 모든 자료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전자문서화된 자료들을 우리집에 앉아 검색을 통해 쉽게 볼 수 있다는 점이다.이러한 변화는 앞으로 교회사 연구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2. 기존 교회사적 연구의 한계
- 인물중심의 연구
- 일대기 재구성
- 사상 연구
- 사건중심의 연구
- 정치사회적 의미를 가지는 사건
- 지식인들의 논쟁
- 기관, 단체중심의 연구
- 조직의 발전
- 사회운동과의 연관성
- 한계
- 인물의 공헌과 업적 강조-관계는 사라짐
- 엘리트 위주의 역사서술-주변인들의 목소리는 사라짐
- 문화적 현상을 다루지 못함-일상, 개념, 시대정신(망탈리테)의 변화를 볼 수 없음
- Transnational interaction에 대한 정보를 읽지 못함
- 예측가능한 범위에서 결론이 주어지므로 재미가 없음
3. 데이터 네트워크의 필요성
-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DB구축
- 해외도서관 기독교관련 자료들: 정기간행물, 고서, 선교보고서 등
- 국내 역사학계 자료들: 근대잡지, 신문, 조선왕조실록, 일기 등
- 연구주제에 따른 분류와 연결이 이루어진다면:
- 단선적 역사서술에서 벗어나 역사적 컨텍스트를 입체적으로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 국경을 넘나든 새로운 개념(ideas)과 그 문화적 번역과정을 볼 수 있지 않을까?
-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작업은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문과 정기간행물에서 시작해서 저작권이 만료된 고도서들, 더 이상 개인의 은밀한 기록이 아닌 비망록에 가까운 일기류 등이 전자화되어가고 있다. 사료의 전자화는 두 가지 측면에서 유익하다. 관리자의 입장에서는 고문서의 실물이 여러 사람 손에서 훼손되는 것을 방지한다. 연구자의 입장에서도 물리적 이동에 소요되는 비용과 시간을 절약해서 연구에 투자할 수 있다. 아쉬운 점은 아직 국내 기독교자료들에 대한 전자화가 미진해서 「기독신보」와 같이 대중적인 사료마저도 아직 도서관에 찾아가서 봐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기독교고문헌과 고잡지를 전자화해서 온라인 이용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동대학 연합신학대학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던 자료들도 폐관과 함께 전자화했더라면 좋았을 자료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 데이터베이스 구축은 검색을 통해 원하는 자료들을 빨리 찾을 수는 있지만 텍스트 간의 상호연관성에 대해서는 말해주지 않는다. 다만 텍스트의 나열일 뿐이며, 유의미한 결과를 얻기 위해 연구자는 얻어진 자료를 이렇게도 배열해보고, 저렇게도 배열해보며 오랫동안 텍스트와 씨름해야 한다. 『산파일기』의 저자는 이렇게 하는데 7년을 보냈다고 고백한다. 만약 그 일기가 데이터 네트워크를 이용했더라면 우리는 길고 지루한 텍스트 대신에 산파가 돌아다닌 지역을 지도로 확인하고, 거래처 사람들과의 관계도를 그 책에서 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데이터 네트워크는 서로 다른 별개의 텍스트들을 분류어와 하이퍼링크를 통해 서로 연결해주기 때문에 텍스트만으로 볼 수 없었던 측면과 의미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므로 데이터 네트워크의 가장 큰 장점은 밋밋한 텍스트가 그래프와 도표, 지도와 연대표 등으로 시각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데이터의 양이 많을수록 효용성은 커진다. 또 데이터를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는 정보학에 대한 기술적 이해 뿐 아니라 사료를 다루는 분야에 대한 인문학적 지식이 필수적이다. 즉 정보기술과 인문학적 컨텐츠가 시너지효과를 일으키는 것이다. 텍스트 간의 연결점이 많을수록, 인물간의 관계가 드러나고 관계 속에서 각 인물이 가진 사회적 역할, 일종의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일상의 리듬과 반복되는 행동에서 그 시대인들의 무의식을 엿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자료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새로운 개념의 유입을 다른 저자의 자료와 함께 보면서 더 분명히 인식할 수 있거나, 일방적인 한 사람의 의견을 일반화하는 오류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국내외 자료를 연결시킨다면, 문명의 교류가 이루어질 때 이질적인 두 가지 생각이 어떻게 서로 번역되고 소통되었으며, 어느 지점에서 타협했는지를 볼 수도 있을 것이다.
4. 가능성 있는 연구실례: 대중적 기독교문화의 형성과 유행의 흐름
- 전도부인: 19세기~20세기 중반까지 선교활동에 종사한 현지인 기독교여성들을 일컫는 말.</br>
Bible-woman의 번역어이지만 Bible-reader, helper, evangelist, deaconess 등을 포함한다.
- 이름과 사건과 조직의 중심에서 거리가 먼 사람들 : 1900년 이전의 전도부인의 이름은 Mrs. Shin, Mrs. Ko, Mrs. Park과 같이 성만 남아있고, 대부분 자원활동가들이라 조직에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
- 간접적인 증거만 조각조각 남아있다: 함께 활동했던 선교사들이 언급하거나 한국사회의 남성계몽가들이 이들을 언급했다.
- 초기 한국교회사 연구자로서 데이터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얻을 수 있는 연구의 효과는 무엇일지 생각해볼 때 가장 기대하는 부분은 유명한 목회자나 신학자 외에 이름없던 초기 기독교인들에 대한 연구이다. 이들이 받은 문화적 충격과 번역과 타협, 수용의 양상을 여러 가지 주제로 다루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개신교수용시기는 근대한국의 뼈와 살이 이제 막 조성되기 시작한 시기로 흥미로운 주제들이 많다. 관혼상제의 변화, 가정과 위생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등장, 아동과 여성의 발견, 노동과 직업에 대한 이해의 변화, 대중집회의 유행, 이주와 해외선교의 시작, 자선활동에서 사회참여로의 이행 등 갖가지 변화와 새로움은 기독교와 연관성이 적지 않다. 문화적 격변의 시기에 서구문화의 옷을 입은 기독교와 한국 문화가 만나서 어떤 상호작용을 했는지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활발하지 않다. 전도부인은 이런 변화의 중심에서 두 문화의 매개자이며 메신저로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이해하여 전달한 문화적 번역자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이름은 희미하게 남아있으며, 특별한 사건에 연루되어 있는 이도 적으며, 조명을 받는 사회적 지위를 누리지도 않았다. 선교사들과 한국인 남성 화자에 의해서 간접적으로 전도부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중요한 이슈에는 침묵할 때도 많다. 남아있는 자료들은 단편적인 에피소드로 되어 있다. 낱낱이 흩어져있는 조각들을 퍼즐맞추듯이 모으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궁금하다.
- 활용가능한 데이터베이스
5. 가능성 뒤의 그림자
- 사료공유의 문제: 개인의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정보를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가?
- 정보의 권위 문제: 온라인 상에서 취득한 정보가 신뢰할 만한가? 거짓 정보는 어떻게 필터링하는가?
- 연구윤리의 문제: 협업에서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도용하는 행위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