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ter From Underwood To Ellinwood (18900804)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90년 8월 4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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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별자 | L18900804UTO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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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명칭 | 언더우드가 엘린우드에게 보낸 편지 (1890년 8월 4일) |
영문명칭 | Horace G. Underwood's Letter To Frank F. Ellinwood (Aug, 4 1890) |
발신자 | Underwood, Horace G.(원두우) |
수신자 | Ellinwood, Frank F. |
작성연도 | 1890년 |
작성월일 | 8월 4일 |
작성공간 | 서울 |
자료소장처 |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
번역문출처 | 김인수, 『언더우드 목사의 선교편지』,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02. |
Dr. Horace G. Underwood | 언더우드인물 |
Swoul, Korea | [서울산]]공간, 한국 |
Aug 4, 1890 | 1890년 8월 4일 |
Dear Dr. Ellinwood, | 엘린우드인물 박사님께, |
Of course you have ere this heard of the sad death of Dr. Heron. He was sick but a short time. He came in from the place that he was staying at for the summer & was taken with diarrhoea which soon developed into dysentery. At the same time nausea set in 6 thus he was for almost five days unable to get the effects of any medicine. In this way the poison from the dysentery seems to have entered the system & blood poisoning set in. He lingered for several out of his mind but most of the time conscious for several days and then sank lower & lower until one afternoon we were all gathered there thinking that his end had come. From this he rallied & hope revived but it was only for a few days & then he passed quietly and peacefully away. He knew almost from the start that it was to the death, this as you will know was against the doctors, not a moment did he waver, not a doubt did he express. He spoke about the work that he had done, how little it had been, how he wished that it had been more but how it had all been done for Jesus. Once a Chinaman, who had spent many years in America, was in the room & Dr. Heron, looking at him said, "Jesus, Jesus all washed in the blood of the Lamb." His was a triumphant death and we hope & pray that even his death may not be without fruits. As soon as I heard he was sick, I went up & took my place at his bedside. He seemed to think that that was right & throughout his sickness seemed to be glad to have me nurse him. I was in with him most of the time night & day, so that I was unable to write before. Then as soon as he was dead the preparation for the funeral selecting of a cemetery mostly fell to me, then the U. S. Minister appointed Mr. Moffett & I to act with him in settling the estate. This is now done as far as it can be and tomorrow we will start for Nam Han 17 miles from here where we will spend a week or ten days. |
헤론 의사가 사망했다는 슬픈 소식. 헤론 박사는 1890년 7월 26일에 사망하였다. 이 때 선교사들이 정부와 타협해서 얻어 낸 곳이 지금의 마포 양화진 외국인 공동묘지이다.
을 들으셨을 줄 압니다. 헤론 의사가 병중에 있던 기간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여름에 머물렀던 곳. 여름에 휴가차 선교사들 가족이 남한산성으로 피서를 갔었다. 에서 돌아온 후에, 설사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곧 이질로 악화되고 말았습니다. 동시에 구토가 시작되었는데 한 5일 동안 어떤 약으로도 증세가 완화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이질의 독성이 체내에 들어와서 패혈증(敗血症)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는 수 동안 무의식 상태로 간신히 연명하기도 했지만, 그 몇 일의 기간 동안 대부분 의식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쇠약해져 갔습니다. 그의 마지막 순간이 가까이 왔다고 생각되어서 어느 날 오후에는 우리가 다 함께 그가 있는 곳에 모이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부터 헤론 의사는 회복의 기미를 보였고 희망이 되살아나는 듯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며칠 동안뿐이었습니다. 그 후 그는 조용히 평화스럽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헤론 의사는 병이 시작될 때쯤부터 자신이 죽음에 이르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박사님께서 아시다시피 이것이 의사들이 취하는 태도는 아니지만 그는 한 순간도 동요하지 않았고 자신이 회복될 수도 있을거라는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했던 일에 대해 우리에게 이야기했습니다. 자신의 사역이 얼마나 미소(微少)했던지, 더 많은 일을 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랬었는지 말하면서 그렇다해도 그 모든 일들은 다 주님을 위한 것이었다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한 중국인이 그 방에 있었는데 헤론 의사는 그를 바라보면서 “예수님, 예수님께서 어린양의 보혈로 모든 것을 다 씻어주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죽음에는 승리의 영광이 있었습니다. 그의 죽음을 통해서도 복음의 열매가 맺히게 되기를 우리는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그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저는 그에게로 달려가서 그의 침상 곁에 있었습니다. 그는 ‘제가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참 좋다’고 생각하는 듯했고, 그가 병환 중에 있는 기간 동안 줄곧 제가 그를 간호해 주는 것을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거의 대부분, 밤낮을 가리지 않고 그와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는 편지를 쓸 시간이 없었습니다. 그가 별세한 후, 묘지를 선택하는 일을 비롯한 장례 준비는 대부분 제가 담당해야 할 일이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미국 공사는 그 땅을 처분하는데 있어 자신과 함께 일할 사람으로 저와 마펫 씨를 택했습니다. 이 일은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잘 마무리가 되었고 내일은 이곳에서 17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남한산성으로 출발하려고 합니다. 그곳에서 일주일이나 열흘 정도 머무를 것입니다. |
Mrs. Heron desires to stay on and work here. She is expecting her mother out if she stays. She has got some teaching work for her at the Japanese Legation and if she comes they will I suppose live together. If Mrs. Heron stays I suppose she will take charge of the girls school & continue the work that she has begun among a certain class of women. I do not know what class it is but from all that I can learn it is a growing work. There will undoubtedly be plenty of work for her, if her two little ones do not take up all of her time and I see no reason why they should. About the funeral expenses we have written you asking for money to pay them. |
알렌 의사가 공사관의 서기관으로 임명받았다는 소식을 들으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알렌 의사는 제게 찾아와 “그 일을 수락하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어 보았습니다. 저는 알렌 의사에게, “그가 한국으로 나왔을 때 선교사였으니 그대로 선교사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하게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알렌 의사는 이렇게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박사님께서 아시다시피 그 자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가 의도하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잘 모르겠지만 그가 이중 지위를 가질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공사관의 서기관으로서 그가 훌륭하고도 실제적인 선교 사역을 많이 수행해 낼 수 있다고 해도, 만일 그가 정치적인 직임을 맡게 된다면 선교부와의 관계는 단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Since then we have had a mission meeting at which various matters came up of which you will hear in the general report of the meeting. |
<div style="text-align:justify현재 알렌 의사는 특이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는 제물포에 두도록 선교부에서 허락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div>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