宋•明代 新儒學의 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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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lencevi424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7년 5월 22일 (월) 19:38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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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이전의 제의의 대상은 인격적인 신으로서의 상제나 조상이었다면, 선진 유가의 제의의 대상은 이전의 상제나 조상의 철학적 윤리적인 측면이 강조된 영격(靈格)으로서였다. 이런 점이 한대에 들어와서는 기론적(氣論的)인 생멸관 과 결합하여 유산(流産)하는 혼백의 뜻을 갖게 된 귀신개념은 송대(宋代)에서 는 이기론적(理氣論的) 세계관에 의한 자연 철학적 개념으로 그 의미가 확장 되었다.


특히, 주돈이(周敦頥) 장재(張載) 정호(程顥) 정이(程頥) 등이 활동하던 북 송(北宋)시대는 유학의 새로운 사조로서 만물의 존재 근거를 탐구하는 존재론 적 자연 철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므로 유학의 많은 개념이 자연 철학적인 의미를 가지게 되었는데 귀신개념도 예외는 아니었다. 우주론자로 일컬어 지는 장재는 태허(太虛)라고 이름한 기의 원초적 상태를 우주 최초의 모습으 로 상정하고 천지만물은 모두 그 기의 취산(聚散)운동의 결과이며 귀신 또한 취산운동을 일으키는 음•양이기(陰•陽二氣)의 ‘내재적인 변화능력’(良知)이 라고 보았다.177 곧 귀신을 제의론적인 개념에 국한시키지 않고 우주 자연의 보 편적인 운행현상으로 간주한 것이다.


장재와 거의 동시대의 인물로서, 우주의 근원적인 실체를 리와 기 두 가지로 상정하여 이기이원적(理氣二元的)인 세계관을 정립한 정이는 귀신을 ‘조화의 자취’(造化之迹)178라 하여 어떤 실체가 만들어 낸 현상을 가리켜 귀신이라 하 였다. 그 조화의 주체는 물론 리와 기로 이루어진 우주 자연이다. 정이는 형체로 말하면 天이요, 주재로 말하면 제(帝)요, 공용으로 말하면 귀신이요, 묘용으로 말하면 神이요, 성정으로 말하면 건(乾)이다.179


라고 하였다. 天•帝•鬼神•神 등은 모두 리와 기로 이루어진 우주 자연을 각각 어느 한 측면에서 바라본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 가운데 공용이라는 말로 설명된 귀신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현상 속에서 드러나는 자연의 변화의 능 력을 말하는 것이고, 묘용으로서의 신은 자연 전체의 변화 운행을 말하는 것이 다.180


그런데 정이는 위의 견해들과 다르다.『이정유서(二程遺書)』券2에서 기괴하 고 이상한 주장을 믿는 것은 이치에 밝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전제하고 인귀로 서의 귀신을 부인하였다. 그는 다만 하나의 기가 음양이나 오행이 되어 만물을 화생(化生)할 때의 작용으로 이해하였다. 이렇게 북송시대의 유학자들에 의해 자연 철학적 용어로 변모된 귀신개념은 신유학의 집대성자 주자에 의하여 계승, 발전되었다. 그의『주자어류(朱子語 類)』에서 귀신에 대한 논의를 언급하면서 보인 귀신론은 북송 유학의 자연 철 학적 귀신론과 선진•한당 유학의 제의론적 귀신론을 하나로 종합한 것이라고할 수 있다. 주자는 귀신의 자의(字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神은 펼치는 것이고 鬼는 움츠리는 것이다. 예컨대 바람 비 천둥 번개 등이 막 발생할 때는 神이고, 바람이 그치고 비가 지나가며 천둥이 멈추고 번개가 쉬는 것이 鬼이다.181


자연계의 모든 현상은 어느 것이나 예외 없이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한 생멸의 과정은 무에서 유, 유에서 무로의 변화인데, 그 유와 무 의 사이를 오가는 것, 다시 말해 본체로부터 현상으로, 현상으로부터 본체로 변 화해 가는 것 하나하나를 다 귀신으로 본다는 것이다. 이처럼 주자의 자연 철학적 개념으로 설명된 귀신의 의미는 장재나 정이의 것과는 크게 다르지 않으나 주자의 개념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사의 의의를 뒷받침해주는 이론까지 함께 수용한다. 그는 사람이 죽으면 다른 사물이나 자 연 현상과 마찬가지로 그 기가 흩어지지만, 단 시간에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 기 때문에 완전히 소멸될 때까지는 제사를 통해 느껴서 오는 이치가 있다고 하 고, 또 오랜 세월이 지나 기가 다 흩어진 후라 할지라도 조상과 자손이 한 핏 줄이면 그 기가 동일하기 때문에 통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귀신을 기의 취 산(聚散)이라는 자연 현상으로 설명하면서도 그것이 조상의 넋을 오랫동안 승 모하는 제사의 의미를 살릴 수 있도록 그 근거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182


주자는 귀신의 문제를 고대의 선진 유학의 제의설에 등장했던 귀신개념과 북송의 성리학의 자연 철학적 귀신관을 함께 수용하여 합리적인 이론을 견지 하면서 동시에 제사라고 하는 종교적 제의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포괄적인 귀 신론을 정립하였다. 그러나 주자의 그와 같은 집대성적 귀신개념에 포용된 두 가지 요소, 곧 제의론적 요소와 자연 철학적 요소는 완전하게 융합된 것이 아 니라 목적하는 바에 따라 어느 한쪽을 강조하면 다른 한쪽의 의미가 약화되는 관계에 있는 것이었다.183


결론적으로 송대의 성리학적인 귀신 개념은 곧 본체와 현상을 매개로 하는 중간적 존재로서의 귀신으로 이해했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