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현 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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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현

대한민국의 서예가이다. 호는 ‘일중(一中)’이며, 서울 출신이다.

1943년 중동학교를 졸업. 1949년 문교부 예술위원, 서울특별시 문화위원 등을 역임했고, 1953년 국전 심사위원이 되었다. 1965년 한국 서예가협회 상임위원이 되었고 동방연서회(東方硏書會)를 창립, 이사장으로서 1천5백여 회원들에게 서예를 지도하기도 했다.

7세 때 안진경체(顔眞卿體)를 쓰기 시작했고 현재는 후한(後漢) 조전비서풍(曹全碑書風)의 예서(隸書)를 썼다. 궁체(宮體) 한글은 국내 독보적인 존재로 알려지고 있다. 김응현과 중계(仲季)의 형제간으로 그들의 사백(舍伯) 김문현(金文顯) 등 3인 모두 삼절(三絶)로 불릴 만큼 일가(一家)의 서풍(書風)을 이루었다.

주요작품으로 〈4·19의거 희생자 묘비〉, 〈권도원수 행주대첩비명〉, 〈이충무공 한산도제승당비〉, 〈병천 유관순 기념비〉, 〈예산 윤봉길의사 기념비〉, 〈백범 김구선생 묘비〉, 〈사육신묘비〉, 〈의암손병희선생 묘비〉, 〈월남 이상재선생 묘비〉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