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리학 도입 K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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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051천민경 (토론) 사용자의 2014년 6월 6일 (금) 20:3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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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 5백년은 불교배척과 유교보호의 정책으로 일관하였다. 이것은 고려조(朝)의 숭불정책(崇佛政策)으로 말미암은 패망의 한 원인을 시정 개혁하여 인심을 일신함으로써 신왕조의 지도이념을 확립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유학은 멀리 삼국시대부터 수입되어 관학(官學)으로서 정치·문학·예교(禮敎), 즉 규범학 등의 방면의 주축을 담당했다. 그러던 것이 고려말 백이정이 원으로부터 주자학(朱子學)을 도입하여 보급함에 이르러 차차 연구되어, 조선시대에 접어들자 정도전(鄭道傳)·권근(權近) 등이 배불숭유(排佛崇儒)에 힘썼으나 유학은 처음에는 역시 정치·경제·법률·문장 등의 이념에 머물렀다. 그 후 수차에 걸친 사화(士禍)로 인해 이제 유학은 치인지학(治人之學)인 회향적 태도로부터 내향적 태도로 바뀌어 수기지학(修己之學)으로 되었다. 여기서 이기(理氣)심성(心性)의 학으로서의 주자학, 즉 성리학(性理學)이 깊이 연구되어 중국 송대(宋代)의 성리학을 오히려 능가하게 되었다.

관련 항목

  • 타입: 인물
  • 관계: 유교의 시조
  • 항목명: 공자
  • 타입: 인물
  • 관계: 성리학의 시조
  • 항목명: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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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피디아 조선의 성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