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장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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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명 | 연세대학교 |
유형 | 사립 종합대학 |
분야 | 교육기관 > 고등교육기관 > 대학교 |
주소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
전화번호 | 1599-1885 |
URL | http://www.yonsei.ac.kr/ |
연세대학교(延世大學校, Yonsei University)는 1885년에 설립된 대한민국의 개신교 계통 사립 종합 대학이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의 신촌캠퍼스와 강원도 원주시의 원주캠퍼스(매지캠퍼스와 일산캠퍼스로 구성), 인천광역시 연수구(송도국제도시)의 국제캠퍼스, 경기도 고양시의 삼애캠퍼스로 이루어져 있다. 연세대나 연대라는 약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22개의 단과 대학, 21개의 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학교법인 연세대학교에 의해 운영되며 현재(18대) 총장은 연세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한 김용학이다.
오늘날 연세대학교의 교명은 1957년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과대학의 통합 후에 공식적으로 사용되었다. 1886년에 세워진 경신학교를 전신으로 하는 연희대학교는 1915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가 설립하였고, 세브란스 의과대학은 1885년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 호러스 뉴턴 앨런이 고종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광혜원을 전신으로 한다. 두 대학의 통합은 1920년대부터 이루어진 지속적인 협력이 낳은 결과였다.
건학 이념인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한복음 8:31~32)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진리와 자유의 정신을 체득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뜻한다. 상징 동물은 독수리이고, 상징 색은 ‘로얄 블루’(Royal blue)이다.[10] 연세대학교의 심볼마크에는 방패가 그려져 있는데 방패 속의 ‘ㅇ’ 표시는 하늘을 의미하여 ‘ㅡ’는 땅이고, ‘ㅅ’은 사람을 뜻한다. ‘ㅇ’표시 왼쪽에 그려진 ‘책’은 진리를, 오른쪽에 그려진 ‘횃불’은 자유를 의미하며, 방패는 이러한 두 이념을 수호한다는 뜻이다.[1]
목차
연혁
1957년 1월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과대학이 통합해 연세대학교로 출범했다. 세브란스 의과대학은 1885년 궁정어의(宮廷御醫)로 활동한 미국인 선교사 H. N. 알렌(H. N. Allen)이 고종황제의 인가를 받아 설립한 [[[제중원]](濟衆院 : 초기 이름은 廣惠院)이라는 병원에서 출발했다. 광혜원은 한국에서 최초로 설립된 서양식 병원으로 개원 2주 만에 제중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2]
연세대학교(1957년~)
1955년에 세브란스 의과대학과 연희대학교의 이사회는 재단법인 연세대학교를 구성하는데 합의하였고 1956년에 재단법인이 설립되었다. 1957년 1월 5일, 연희대학교와 세브란스 의과대학이 통합하면서 연세대학교(延世大學敎, Yonsei University)로 교명을 변경하였는데 초대 총장은 백낙준, 부총장은 최현배(崔鉉培, 1894년 ~ 1970년)가 취임하였다. 1959년에 한국어학당을 설립하였고 1977년에는 강원도 원주시에 제 2캠퍼스인 원주캠퍼스를 설립하였다. 1981년 신촌캠퍼스의 스팀슨관, 언더우드관, 아펜젤러관이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85년 5월 11일에 창립 100주년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제5공화국 말기인 1987년 6월 9일에 연세대학교 학생 1천여 명이 학교 정문 앞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중 경영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던 이한열이 전경이 쏜 최루탄을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 사건은 6월 항쟁의 기폭제가 되어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이끌어 낸 대한민국 현대사의 분수령이 되었다. 1996년에 학부제 및 계열화를 실시하였다. 같은 해 8월에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이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에서 제6차 8.15 통일대축전 및 범민족대회를 강행하여 원천봉쇄하려던 경찰과 충돌을 벌였고, 종합관과 과학관에서 8월 13일부터 20일까지 점거 시위를 벌였다. 2003년에 부속기관인 김대중도서관을 설립하여 개관하였다. 2006년에 인천광역시와 연세대학교 송도 국제화 복합단지 조성 양해각서를 체결하여 2010년에 국제캠퍼스 약학대학 신설하였고, 같은 해 3월 3일에 국제캠퍼스 봉헌식을 거행하였으며, 2011년 3월 2일에 국제캠퍼스 정규학위과정을 시작하였다. 2011년 5월 31일에 연세대학교 기술지주회사가 설립되었다.[3]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신촌캠퍼스(新村-)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세로 50 (신촌동)에 위치한 연세대학교의 제 1캠퍼스이다. 언더우드의 큰형인 존 토마스 언더우드(John Tomas Underwood)는 10만 달러를, 로스앤젤레스의 찰스 스팀슨(Charles S. M. Stimson)은 대학 설립용 자금으로 2만 5천 달러를 연희전문학교에 기부하였다. 언더우드는 미국에 돌아가서 교사 건립용 기부금 모금을 했는데 스팀슨에게서 위 기부금을 얻은 후 사망하였고, 후임 교장인 에비슨이 기부금으로 교사를 건립하였다. 연희전문학교는 당시 경기도 고양군 연희면 신촌리의 숲이 울창한 토지 190,320평을 매입하였다. 이곳은 조선 정종 때 세워진 연희궁(延禧宮) 터와 영조(英祖)의 후궁 영빈 이씨(映嬪李氏)의 수경원(綬慶園)이 자리 잡고 있었고, 학교명 ‘연희’는 여기서 연유하였다. 캠퍼스 마스터플랜과 교사동 설계는 예일 대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미국인 건축가 헨리 머피(Henry Killian Murphy)에 의하여 작성되었다. 현재의 백양로 등 신촌캠퍼스의 골격은 초기 마스터플랜에 의해 조성되었다. 최초의 건물은 치원관(致遠館)이며, 목조 2층으로 1918년에 준공되어 1950년까지 있었다. 치원관 이외에도 스팀슨관, 언더우드관, 아펜젤러관, 한경관 등이 준공되었으며, 기숙사인 핀슨관과 노천극장, 돌층계 등이 만들어졌다.
현재 신촌캠퍼스는 송림으로 둘러싸인 약 990,000㎡의 규모로 성장하였다. 신촌캠퍼스를 가로지르는 백양로를 중심축으로 오른편에 현대식 건물로 약 165,000㎡에 달하는 연세의료원, 백주년기념관, 수경원, 루스채플, 음악대학, 학생회관, 대강당, 용재관, 노천극장, 청송대가 있으며, 왼편에는 연세공학원, 공과대학, 중앙도서관, 체육관, 체육교육관, 장기원기념관, 연세과학원, 과학관, 백양관, 광복관이 서로 대치를 이루며 서 있다.
백양로의 끝에는 대학 본부가 위치한 언더우드관을 중심으로 왼편에 스팀슨관과 오른편에 아펜젤러관이 위치에 있고 세 건물의 중앙에는 학교의 창설자이며 초석을 이룬 언더우드의 동상이 서 있다. 스팀슨관 뒤편 언덕위 왼편에는 한경관과 핀슨관이 나란히 서 있고, 그 뒤로 신학관이 동향을 바라보며 자리 잡고 있다. 언더우드관의 뒤편으로 사회과학대학이 자리한 연희관이 서 있으며 오른편에 성암관, 왼편에 유억겸기념관, 그 뒤로 대우관이 있다. 유억겸기념관 뒤편 오른쪽에는 빌링슬리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뒷산 중턱에는 종합교실단과 외솔관, 위당관이 서 있다. 성암관 뒷길을 따라 동문방향으로 가면 우측에 새천년관, 국제학사, 언어연구교육원, 제중학사가 있고, 대우관 뒤편 고개를 넘어 북문방향으로 가면 무악학사(학생기숙사) 5개동이 자리 잡고 있다.
- 백양로(白楊路): 현재 백양로라고 불리지만 본래 백양로는 1930년경 만들어진 연희의 관문으로 백양목(白楊木)이 도로 좌우로 심어져 있었다. 1960년 4월에는 나무의 수명이 다 되었기 때문에 베어 버리고, 노폭 22m의 아스팔트로 포장된 도로로 양쪽에는 은행나무가 심어져 있다.
- 스팀슨관(Stimson Hall): 스팀슨관은 1920년에 지상 2층, 반지하층의 석조 건물로 준공되었다.[26] 스팀슨의 기부금으로 지은 것으로, 대학 본부로 사용하다가 현재는 대학원과 대외협력처에서 사용하고 있으며, 1981년에 사적 275호로 지정되었고[28] 일제시대 대학캠퍼스 건물은 대부분 석조 고딕풍의 건축이었다. 이러한 건물들의 최초 건물이 스팀슨관이다.
- 아펜젤러관(Appenzeller Hall): 아펜젤러관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 피츠필드 시의 제일감리교회(First Methodist Church)의 기부금으로 1924년 지상 2층, 지하 1층의 석조 건물로 준공되었다. 아펜젤러관은 이학관(理學館)으로 연희전문캠퍼스에서 두 번째로 건립된 건물이다. 현재 사회복지대학원 등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1981년 사적 277호로 지정되었다. 건물 명칭은 언더우드와 함께 내한한 미국 북감리교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를 기념하기 위하여 명명되었다. 아펜젤러는 배재학당(培材學堂)을 설립하는 등 교육과 선교 사업에 업적을 남겼다.
- 언더우드관(Underwood Hall): 언더우드관은 1925년 지상 3층(중앙탑 5층)의 석조 건물로 준공되었다. 건물의 명칭은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자인 언더우드를 기념하기 위하여 명명되었다. 연희캠퍼스에서 스팀슨관, 아펜젤러관에 이어 3번째 석조 건물이다. 건물은 문과대학에서 사용하여 오다가 1982년부터 대학 본부 건물로 사용하고 있으며, 사적 276호로 지정되었다. 언더우드관은 초기 마스터플랜의 중심축인 백양로의 종점에 위치하여 좌우에 스팀슨관과 아펜젤러관이 같이 있어 캠퍼스 내에서 시각적 정점(terminal vista)을 형성하였다. 언더우드관은 20세기 초기의 대표적인 대학 캠퍼스인 연희전문학교 캠퍼스의 중심 건물이면서 보존 상태가 우수하여 역사적 가치가 크다.
- 언더우드 동상: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자인 언더우드의 동상은 1928년에 교직원과 사회 인사들의 기부를 통해 세워졌으나[25] 1942년에 일제에 의해서 전쟁 물자로 공출되어 그 자리에는 대리석으로 만든 흥아유신기념탑(興亞維新記念塔)이 세워졌다. 1948년에 두 번째 동상을 세웠지만 한국 전쟁으로 다시 파괴되었다가 1955년에 세 번째 동상을 세웠다.
- 청송대(聽松臺): 연세대학교 정문에서 백양로를 따라 캠퍼스를 오르며 노천극장을 끼고 돌면 마주하는 소나무 숲이 청송대이다. 청송대는 ‘소나무(松) 소리를 듣는다(聽)’는 의미이다. 청송대에서 동문쪽으로 향해 난 뒷길은 연희전문학교 시절부터 알려진 유명한 데이트 장소이다. 이양하의 수필 《나무》, 《신록예찬》 등의 모티브가 되었다.
- 노천극장: 1932년 밀러(Dr. Miller) 교수에 의하여 설계되어 1933년 5월에 준공되었다. 이후 1957년 여름에 보수공사를 거쳤으며 현재의 노천극장은 동문들의 성금을 모아 1999년 5월 준공된 초현대식 건물로 성금을 낸 동문들의 이름을 대리석에 새겨놓고 있다.
- 백주년기념관(百周年紀念館): 연세대학교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1988년 5월에 준공된 건물로 박물관과 콘서트홀로 구분하여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은 1924년 설립되었으며, 1964년 공주 석장리 유적 발굴은 대한민국의 구석기 문화를 최초로 밝히는 계기가 되었다. 박물관은 10개소의 전시실과 소강당, 4개소의 수장고로 이루어져 있다. 콘서트홀은 9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객석과 휴게실을 갖추고 있다.
대중문화 속 연세대학교
- KBS 드라마 <아이리스>의 주인공인 현준(이병헌)과 승희(김태희)가 처음 만난 대학원 강의실 - 연희관
- 2003년 개봉한 영화 <클래식>에서 비오는 날 지혜(손예진)와 상민(조인성)이 상민의 코트를 우산 삼아 함께 뛰어가는 장면 - 빌딩슬린관에서 연희관까지
- 2001년 개봉한 영화 <엽기적인 그녀> 속 견우(차태현)과 그녀(전지현)가 대학교에서 데이트하는 장면의 대학교
공식 블로그 게시글-무비로드 in Yonsei!의 글을 바탕으로 정리하여 작성한 글입니다.
응답하라 1994의 주요 무대인 연세대학교의 90년대 모습
- 94년 농구대잔치 사상 첫 대학농구팀 우승
지난 83년 닻을 올린 농구대잔치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학세 돌풍이 거셌던 '93-'94 농구대잔치 남자부 경기는 연세대가 사상 첫 대학팀 우승이라는 금자탑을 세우고 막을 내렸다. 올시즌 농구대잔치는 지난해 12월23일 개막, 74일 동안 105게임의 대장정을 펼치는 동안 모두 16차례나 매진사태를 빚는등 사상 처음으로 입장수입 10억원을 돌파, 겨울철 최고 인기 스포츠임을 입증하면서 프로출범을 가시화시키는 성과도 올렸다. 열기가 한단계 떨어졌던 여자부와는 달리 남자부는 거의 대부분의 경기가 박진감 넘치게 진행됐고 특히 연세대와 고려대, 중앙대는 `오빠부대'를 몰고다녀 농구열기를 실감케했는데 대잔치 기간과 맞아 떨어진 TV 농구드라마 `마지막 승부'도 농구 열기를 부추기는 데 한몫을 했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이면에는 대회 5연패를 달려오며 성인 농구 최정상으로 불리우던 기아자동차가 정규리그에서 연세대에 패한데 이어 준준결승에서 중앙대에 무릎을 꿇고 준결승에도 오르지 못하는등 실업팀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 대회 최대 성과는 207㎝의 최장신 센터 徐章勳을 국내 최고의 센터로 성장시킨 것이었고 연세대는 이와 함께 文景垠을 최고의 슈터로 탄생시키는등 각종 진기록을 양산했다. 연세대는 지난 1월13일 기아자동차와 연장 접전을 펼친 끝에 94-92로 극적인 승리를 거둬 최대 고비를 넘긴뒤 무적의 연승 행진을 계속,사상 첫 전승우승과 최다연승(21)기록까지 세울듯 했으나 챔피언결정 3차전에서 상무에 패해 여자부의 국민은행과 함께 20연승 기록에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연세대는 許載 金裕宅등이 주축이 됐던 중앙대가 지난 85년과 86년 2차례 연속 시도했던 대학팀 정상 등극의 꿈을 처음으로 달성함으로써 새 이정표를 세우고 대학 전성기를 활짝 열었다.[4]
- 96년 연세대 사건
1996년 8월 20일 서울 연세대학교. 한국대학총학생연합(한총련)이 주축이 된 대학생들이 8월 14일부터 시작한 제7차 범민족대회가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범민족대회를 불허한 경찰은 연세대 주변을 원천봉쇄했다. 학생들은 쇠파이프와 화염병을 던지며 격렬하게 저항했다. 대회가 끝난 8월15일 오후 경찰은 봉쇄를 풀지 않고 학생들의 귀가 길을 막았다. 대규모 병력을 학교 안으로 투입해 대대적인 검거 작전을 벌였다. 학교 안에 몰린 학생들은 건물을 점거하고 뜻하지 않은 농성에 들어갔다. 4박5일간의 농성은 20일 새벽, 경찰이 헬기를 동원한 진압작전으로 끝이 났다. 과학관, 종합관 등 건물 곳곳에 불이 붙었고, 성한 유리창이 없을 정도로 학교는 폐허가 되었다. 학생 5,848명이 연행되었고, 462명 구속, 3,341명 불구속, 373명이 즉심에 회부되었다. 단일 사건으로 가장 많은 연행자와 구속자를 기록했다. 진압 작전에 투입된 경찰도 피해가 컸다. 900여명이 다쳤고, 당시 20살이던 김종희 이경이 돌에 맞아 병원으로 옮겼지만 숨졌다. 현장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에게 엄청난 상처를 남긴 사건이었다. 80~90년대를 풍미했던 학생운동은 이 사건을 계기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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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촌역
- 수도권 전철 경의·중앙선 신촌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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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 ↑ <출처>위키피디아-연세대학교
- ↑ <출처> 굿모닝미디어, 연세대학교(Yonsei University, 延世大學校)
- ↑ <출처>위키피디아-연세대학교
- ↑ <출처> 연합뉴스,‘농구대잔치 결산-대학팀 첫 우승의 금자탑', 1994.03.06
- ↑ <출처> 한겨레,‘1996년 연세대’에서…20년 만의 편지, 2016-10-14
- ↑ 김동률은 연세대학교에 93학번 건축공학 전공으로 입학하였으나 중퇴하고 1999년 버클리 음악대학에 입학하고 2003년에 졸업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