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SVC-2218.story
목차
Theme
K사극 스토리로 배우는 한국사
Synopsis
한국 국내에서 지금까지 방송된 사극 가운데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한 작품은 MBC ‘허준’(1999~2000, 63.7%)이다. 이어서 KBS1 ‘태조 왕건’(2000~2002,60.2%), MBC ‘대장금’(2003~2004, 57.8%), MBC ‘주몽’(2006~2007, 51.9%), SBS ‘여인천하’(2001~2002, 49.9%), MBC ‘선덕여왕’(2009, 47.8%), MBC ‘해를 품은 달’(2012, 42.2%)순으로 최고의 시청률 베스트 7에 이름을 올렸다.
시청률 상위 사극에서 보면, 대체로 실존 인물이 주인공이면 시청률이 높게 나온다는 특징[1]이 있다.
드라마 <대장금>의 경우 중국 지역방송인 후난TV에서 방영을 하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2005년을 기점으로 한류의 붐을 일으켰다. 특히나 OTT 서비스가 활성화되면서 한국의 사극은 전 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으며 역사적 고증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기존의 사극 중 작품에서의 인물과 공간을 중심으로 학습자의 흥미를 유발하고 역사적 고증을 통하여 공간의 재현, 인물의 이야기를 펼쳐나갈 것이다.
Storyline
Story 1: 장금이가 일하던 소주방(燒廚房)
<대장금>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는 어디에서 일했을까? 대장금은 조선 중종 시대의 의녀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여성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며 조성왕조실록에서의 기록은 단 네 번이었다. 네 번의 등장만으로 한류의 열풍을 일으켰는데, 대장금의 실존 여부에 대해 알아보고 2015년, 일제에 의해 철거된 지 100년 만에 복원[2]된 소주방[3]을 소개한다.
조선구마사 논란에 “‘대장금’ 음식 조선에 있었겠나”라는 반문이 있었는데,실제로 '대장금'드라마의 경우 궁중음식들은 궁중음식연구원의 고증을 거친 뒤 만들어졌다고 한다. 특히 음식을 직접 만든 한복려 원장은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기능보유자로 알려졌다.
Episode 1
중종실록에 나온 대장금 이야기
중종실록 21권, 중종 10년 3월 21일 무인 1번째기사 1515년 명 정덕(正德) 10년
헌부에서 선·교 양종의 위전을 추쇄하도록 아뢰다
대간이 전의 일을 아뢰고 헌부가 또 아뢰기를,
"전일 [호조(戶曹)http://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41194]에서, 선(禪)·교(敎) 양종(兩宗)을 혁파한 지 이미 오래 되었으니 그 위전(位田)[4]을 추쇄(推刷)하여 국용에 충당할 것을 아뢰었는데, 추쇄하지 말라고 하교하시었습니다. 지금 도승(度僧) 도승(度僧)
을 허가하지 않아 영구히 그 뿌리를 끊었은즉, 양종의 위전은 의당 추쇄하여 속공(屬公) 속공(屬公)하고, 혁파한 사찰(寺刹)의 위전도 함께 추쇄하여야 합니다."
하였다.
전교하였다,
"대저 사람의 사생이 어찌 의약(醫藥)에 관계되겠는가? 그러나 대왕전에 약을 드려 실수한 자는 논핵하여 서리(書吏)에 속하게 함은 원래 전례가 있었다. 왕후에게도 또한 이런 예가 있었는지 모르겠으니, 전례를 상고하여 아뢰라. 또 의녀(醫女)인 장금(長今)은 호산(護産)하여 공이 있었으니 당연히 큰 상을 받아야 할 것인데, 마침내는 대고(大故)가 있음으로 해서 아직 드러나게 상을 받지 못하였다. 상은 베풀지 못한다 하더라도 또한 형장을 가할 수는 없으므로 명하여 장형(杖刑)을 속바치게 하였으니, 이것은 그 양단(兩端)을 참작하여 죄를 정하는 뜻이다. 나머지는 모두 윤허하지 않는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21권 70장 A면【국편영인본】 15책 66면
• 【분류】
정론-간쟁(諫諍) / 사법-탄핵(彈劾) / 사상-불교(佛敎) / 농업-전제(田制) / 신분-중인(中人)
Episode 2
중종 46권, 17년(1522 임오 / 명 가정(嘉靖) 1년) 9월 5일(무신) 1번째기사
대비의 병세가 나아지자 약방들에게 상을 주다
대비전(大妃殿)의 증세가 나아지자, 상이 약방(藥房)들에게 차등 있게 상을 주었다.【제조(提調) 김전(金詮)·장순손(張順孫)과 승지 조순(趙舜)에게는 말안장 20부(部)·활 1정(丁)·전죽(箭竹) 1부(部), 의원 하종해(河宗海)에게는 말 한 필과 쌀·콩 각 10석, 김순몽(金順蒙)에게는 말 1필, 의녀 신비(信非)와 장금(長今)에게는 각각 쌀·콩 각 10석씩을 주고, 내관(內官)·반감(飯監)·별감(別監)에게도 모두 하사가 있었다.】
- 여기서 의녀 장금은 쌀과 콩 10석을 상으로 받습니다. 아마, 대비전의 증세가 나아진 것에 따른 포상이던가, 그렇지 않으면 적어도 대비의 병세의 호전에 뭔가 공헌을 했기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Episode 2: 창덕궁의 왕실 내의원
허준(許浚, 1539년 ~ 1615년 10월 9일)은 조선 중기의 의관·의학자이다. 허준(1539∼1615)은 선조의 명을 받아 중국과 한국의 의학 서적(한의학)을 하나의 백과사전으로 모아 1596년(선조 29)부터 편찬하여 1610년(광해 2)에 의학서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완성하였다. 동의보감 외에도 선조의 명을 받아 임진왜란 종결 후, 각종 중국의서와 기존 의서의 복원, 편찬 및 정리에 힘썼다. <허준>을 바탕으로 내의원이라는 공간, 조선시대 궁궐의 모습을 조감하듯 한눈에 볼 수 있는 동궐도東闕圖[5]를 보면 내의원의 위치를 확인해 볼 수 있는데, 그 공간속에 있었던 실존인물, 시대적 배경 등을 알아볼 수 있다.
Episode 3: 조선시대 화원과 도화서
도화서(圖畵署)는 조선시대 왕실에서 필요로 하는 왕의 초상화와 행사에 필요한 병풍 등을 그려 공급하는 업무를 관장하기 위해 설치된 관청이다. 조선 초기부터 왕공·사대부들과 함께 회화의 발달에 쌍벽을 이루며 기여했던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화원들이었다. 畵員·畵史·畵師·畵工 등으로 일컬어진 이들은 주로 圖畵署에 소속되었던 사람들이 대표적이고 중심적 역할을 하였던 것이 사실이나, 이들 이외에도 한양의 巨商들에게 소속되어 있던 私畵員들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믿어진다. 도화서라는 공간에는 어떤 유명한 화가들이 있었을가? 김홍도ㆍ김득신과 더불어 조선 3대 풍속화가로 꼽히는 신윤복은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바람의 화원>에서 신윤복을 남장여자라는 설정으로 극의 흥미를 끌었는데 드라마의 영향으로 신윤복을 여자로 아는 사람들도 대부분이다. 도화서라는 공간은 터만 남겨진 상황인데, 이 공간에서 생산되고 남겨진 문화재를 알아보도록 한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