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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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쉰떡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4월 16일 (목) 15:5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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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학력

  • 동국대학교 사학과 재학
  • 청주대성고등학교 졸업

경력

  • 2020.3.16~ 동국대학교 사학과 비상대책위원회 4학년 임시 과대표
  • 2019.3.26.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 2016.3.2~2016.12.31 동국대학교 사학과 71대 학생회 집행부

좋아하는 것

라디오, 음악 듣기, 마블, 전시관람, 공연, 료리

영상

사진

표 만들기

이_문서 관계 관련문서
담양_소쇄원 부속_건조물 제월당(霽月堂), 광풍각(光風閣), 오곡문(五曲門),

애양단(愛陽壇), 대봉대(待鳳臺)

담양 소쇄원 관련 인물 양산보(梁山甫), 양자징(梁子澄), 김인후(金麟厚), 송순(宋純)
담양 소쇄원 관련 공간 식영정(息影亭), 필암서원(筆巖書院)

디지털큐레이션 기획

백제 기와분류

한국의 미륵신앙

마이클 조던:Road to GOAT

프라하의 묘지

가야 특별전:칼과현

  • 의도: 작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했던 기획전시인 가야특별전:칼과 현에 대한 정리 및 지난 가야 특별전에 대한 비판
  • 타겟 대상:박물관 학예연구사
  • 타겟 메시지: 지난 가야 특별전에 대한 리뷰를 통해 관람객 입장에서 본 전시의 개선점 제시 및 새로운 전시 형태 제언

최부의 표해록

최부의 표해록 장서각본 교수님최원재

1월 8일

  • 원문
初八日。漂大洋中。是日陰。過午。西北風又作。舟復退流。向東南徹夜而行。
臣謂權山,高面,以福等曰。汝等執舵正船。向方不可不知。我嘗閱地圖。自我國黑山島。向東北行。
卽我忠淸黃海道界也。正北卽平安遼東等處也。西北卽古禹貢靑州兗州之境也。正西卽徐州楊州之域。
宋時交通高麗。自明州浮海。明州卽大江以南之地也。西南卽古閩地。今之福建路也。向西南稍南而西。
卽暹羅占城滿剌加等國也。正南卽大小琉球國也。正南而東卽女人國也。一岐島也。
正東卽日本國也。對馬州也。今漂風五晝夜。西向而來。意謂幾至中國之地。不幸又遭此西北風。逆向東南。
若不至琉球國,女人國。則必流出天海之外。上達雲漢。無有涯涘云。如之何。汝等其記我言。正舵而去。
權山等曰。天若開霽。測以日月星辰。猶未知海上四面。今則雲霧陰翳。日復一日。晨昏晝夜。俱不能記。
只以風之變作。臆記四方耳。安知正方之可辨乎。聚首而哭。
  • 국역
바다에서 표류하였습니다. 이 날은 흐렸습니다. 정오를 지나자 서북풍이 또 불었습니다.
배는 다시 뒤로 물러나 동남쪽을 향하여 밤새도록 갔습니다.
신은 권산, 고면, 이복 등에게 말하기를,
“너희들은 키를 잡아 배를 바로잡고 있으니 방향을 몰라서는 안 된다.
내가 일찍이 지도를 훑어보니 우리나라 흑산도에서 동북쪽으로 향해 가면 곧 우리 충청도와 황해도의 경계이며,
정북방은 곧 평안도의 경계이며, 정북방은 곧 평안도와 중국의 요동(遼東) 등지요,
서북방은 곧 우공(禹 貢)에 나오는 청주(靑州)와 연주(__州) 지역이며,
정서방은 서주(徐州)와 양주(揚州) 지 역이다.
송(宋)나라 때 고려와 교통할 적에 명주(明州)에서 바다를 건너왔으니, 명주는 곧 대강(大江) 이남의 땅이며,
그 서남방은 곧 옛날의 민(閩) 지방로서 지금의 복건로(福建路)요,
서남방을 향하여 조금 남쪽으로 가다가 서쪽으로 가면 섬라(暹羅), 점성(占城). 만랄가(滿刺加)등의 나라요,
정남방은 곧 대유구국(大琉球國), 소유구국(小琉球國)이요,
정남방으로 가다가 동쪽으로 가면 곧 여인국(女人國)과 일기도(一岐島)요,정동방은 곧 일본국과 대마주(對馬州)]이다.
지금 배가 풍랑에 표류된 지 닷새 동안 밤낮으로 서쪽을 향하여 갔는데,
거의 중국의 땅에 닿았을 것으로 생각된다.불행하게도 또 이 서북풍을 만나서 동남방으로 거슬러 가게 되니,
만약 유구국과 여인국에 이르지 않는다면 반드시 천해(天海) 밖으로 흘러 나가서, 위로 은하수에 닿게 되어
가이없는 곳에 도달하게 될 것이니, 어찌 할 것인가? 너희들은 내 말을 기억하고서 키를 바로잡고 가야만 한다"라고 하였습니다.
권산 등은 “날이 개어 해와 달 그리고 별자리로 헤아린다고 해도 해상에서는 사방을 가리기 힘든데,
지금은 구름과 안개가 짙게 드리운 것이 여러 날 계속되어 새벽인지 저녁인지 밤인지 낮인지도 알 수 없습니다.
단지 바람의 변화만으로 사방을 미루어 짐작할 뿐이오니, 어찌 바른 방향을 가려내어 알 수 있겠습니까?”
라고 하면서, 서로 머리를 맞대고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 영역
8th Day. Adrift in the Ocean. This day was cloudy. After noon a northwest wind again blew strong. The 
boat again turned off its course and headed southeast. We travelled through the night. I said to Kwon 
San, Ko-myon, and I-hok, “In holding the tiller and trying to keep the boat steady, you must know 
where you are going. I have examined maps, and northeast from Hūksan Island of our country is the coast 
of our Ch’ungch’ong Province and Hwanghae Province. Due north are P'yong-an, Liao-tung, and such 
places. Northwest is the coast of the old Ch’ing-chou and Yen-chou of Yü kung. 13 Due west is the area 
of Hsü-chou and Yang-chou. In Sung times traffic with Koryo sailed from Ming-chou, which was the land 
from the Yangtze River south.14 Southwest is the old Min territory, the present Fu-chien-lu.15 South- 
southwest and then west are the countries of Siam, Champa, and Malacca. Due south are Great and Little 
Ryukyu. 16 Due south then east is I-ch’i-tao of Nü-jên-kuo. 17 Due east is Tsushima-shu of Japan. We 
have now drifted with the wind five days and nights, going west. I believe we almost reached Chinese 
soil, but then, unfortunately, we met this northwest wind and turned back to the southeast. If we do 
not reach Ryukyu or Nü-jênkuo, we shall sail out beyond the Sea of Heaven and rise through the Milky 
Way, and there will be no end. What are we to do then? “Mark my words. Keep the helm steady.” Kwon 
San and others said, “Even if the sky were clear and we could calculate by the sun, moon, stars, and 
planets, we still could not know the four directions of the sea. Now there are clouds, fog, and 
darkness day after day. We cannot even keep track of dawn and dusk, day and night. We only guess at the 
four directions from changes in the wind. How can we distinguish a right direction?” They huddled 
together and wept.

1월 9일

  • 원문
初九日。漂大洋中。是日片雲綴天。海色愈白。至是舟久爲波濤所衝擊。梁頭風梢鼻隅三板。皆動撓欲拆。
水又漏齧。將有自破之漸。斤寶,高面,尙理等截纜索。纏舟頭尾。削木補之。遂相向泣且言曰。若此修船。
非不盡心。然飢渴將近旬矣。目無所見。手足痿痺。身不能保。力不能盡。故修之亦不能牢實。其將奈何。
倏有海鷗群飛而過。舟人望見喜曰。嘗聞水鳥晝遊海上。夜宿島渚。我曹漂過滄溟萬里外。幸得見此鳥。
則洲渚必不遠也。臣曰。鷗非一種。或浮沈江湖之渚者有之。若海鷗則群在漲海中。從潮飛翔。常以三月風至。
乃還洲嶼。今時則正月。鷗之群飛。正在大海之中之時。語未畢。又見有鸕鶿數雙飛去。臣亦稍疑島嶼之或近也。
當午南望。雲氣作陣。依熹見山樣。且有人煙之氣。意謂琉球國地界。將往泊。少選。東風又作。舟復向西。
至夜風勢愈緊。疾驅如飛
  • 국역
바다에서 표류하였습니다. 이 날은 하늘에 조각구름이 떠 있고 바다 빛깔이 더욱 희어졌습니다. 이제 배는 오랫동안 파도에
부딪혀 양두(梁頭), 풍초(風__), 비우(鼻偶)의 세 판자가 모두 흔들거리며 부러지려고 하였고, 물이 또 새어 들면서 저절로
파선이 되려는 조짐이 있었습니다. 근보, 고면, 상리 등이 닻줄을 끊어 뱃머리와 선미를 얽어매고 나무를 깎아 이를 보수하
였습니다.마침내 서로 마주 보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기를,“이와 같이 배를 수리하면서 정성을 다하지 않음이 없지만, 굶주림
과 목마름이 열흘에 가까우니 눈에는 보이는 것이 없고 손발은 마비되어 몸을 가누지 못해 힘을 다 쓸 수가 없다. 그래서 배를
수리하여도 또한 튼튼하게 할 수 없으니 장차 어찌 한단 말인가?”라고 하였습니다. 그때 갑자기 바다 갈매기가 떼를 지어
날아갔습니다. 뱃사람들이 이를 바라보고는 기뻐하면서 말하기를,“일찍이 듣건대, 물새는 낮에 바다 위에서 놀다가 밤에
섬 모래톱에서 잔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푸른 바다 만리 밖에서 표류해 와 다행히 이 새를 보게 되었으니 모래톱이 반드시
멀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갈매기는 한 종류뿐이 아니므로 강가 호수의 모래톱에서 사는 것도
있지만, 바다갈매기는 바다 가운데 떼 지어 있다가 조수를 따라 날고 항상 3월에 바람이 불어야 모래톱과 섬으로 돌아온다.
지금은 정월이므로 갈매기가 떼 지어 나는 것이 바로 큰 바다 가운데 있을 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또 바다가마우지 몇 쌍이 날아가는 것이 보였으므로 신 또한 어쩌면 섬이 가까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정오에 남쪽을 바라보니, 구름이 진(陣)을 치듯 퍼져 있고 어렴풋이 산 모양 같은 것이 보였으며 또 인가에서 불 때는 연기
같은 것이 있었으므로, 유구국의 땅이라 여겨 가서 정박하려고 하였습니다. 조금 후에 동풍이 또 일어나서 배는 다시 서쪽으로
향하였습니다. 밤이 되자 바람이 더욱 거세어져 배는 나는 듯 빠르게 내달렸습니다
  • 영역
9th Day. Adrift in the Ocean. This day floating clouds dotted the sky. The sea was extremely white.By now, the boat
had been pounded by waves for a long time. Three beams, the ridge pole, wind strut, and bow sprit, were shivering and
straining to split. Moreover, water was seeping in, and the boat was about to break up. Kūn-bo, Ko-myon, and Sang-ni
cut line and bound the boat bow to stern.18 They shaved wood and caulked it. Then they looked at each other and wept.
They said, "It is not that we do not put all our will into repairing the boat, but hunger and thirst have afflicted
us for almost ten days. Our eyes see nothing, our hands and feet are paralyzed. We can neither nourish our bodies nor
fully exert our strength. Though we repair it, therefore, we still cannot make it sound. What are we to do?”
Suddenly a flock of sea gulls flew by. When the men in the boat saw them, they joyfully said, “We have heard that
water birds disport at sea by day and roost in islands at night. We have drifted across a vast ocean. Since, such a
great distance out, we have the good luck to sight these birds, islands cannot be far.” I said, “Gulls are not of
one kind only. There are some that bob about the islands of rivers and lakes. If they are ocean gulls, the flocks
soar with the tides in the vast sea. Usually they only return to their islands when the winds of the Third Month come.
Since it is now the First Month, it is just the time when the flocks of gulls are flying in the open ocean."
Before I had finished speaking, we saw several pairs of fishing cormorants fly past. I, too, wondered a little whether
islands were perhaps near. At noon we looked south. There were banks of clouds and, obscurely, the shapes of mountains.
There was, too, an atmosphee of human settlement. I felt it was a shore of Ryukyu. We were going to go there and moor
when in an instant an east wind again rose strongly, and the boat again headed west. With night, the force of the wind
was very strong. We scudded along as if flying.

1월 10일

  • 원역
初十日。漂大洋中。是日雨。東風如昨。午後海色還靑。先是發濟州時。舟人無智。載陸水于鼻居舠以隨。自漂風後相失莫値。
所乘船中無一器。甘水未得漬炊。絶食絶飮。無可奈何。權松告于臣曰。觀舟中人或齎黃柑,淸酒而來。恣食無餘。請括聚輸之上藏。
儲以救渴可也。臣卽令臣伊山搜盡舟中行裝。得黃柑五十餘枚,酒二盆。謂孫孝子曰。同舟則胡越一心。況我等皆一國人。情同骨肉。
生則一時俱生。死則一時俱死。唯此柑酒。一滴千金。汝其掌之。毋得濫費。以救舟人一刻之渴可也。孝子視人之唇焦口爛者。
均分飮食之。止令沃舌。數日柑酒俱盡。或細嚼乾米。掬其溲溺以飮。未幾溲尿又竭。胸膈乾燥。不出聲氣。幾至死域。至是因雨下。
舟人或以手擎篷榮。取其溍滴者。或以笠帽若鼎器。貯其滲漉者。或屈席子。奉其灑汛者。或建桅楫中約紙繩。承其淋瀝者。
期得些少一勺。以舌舐之。安義曰。濕雨以衣。汁而取飮。所得誠多。但舟人之衣。皆爲鹹水所漬。雖濕雨而汁。亦不能飮。若之何其。
臣卽點出所藏衣數領。令臣伊山承雨霑洽。取汁以貯。幾至數甁。令金重用匙分飮之。重執匙以擧。舟人張口。有如燕兒望哺然。
自是始能掉舌噓氣。稍有向生之心
  • 국역
 바다에서 표류하였습니다. 이 날은 비가 내리고 동풍이 어제처럼 불었습니다. 오후에는 바다 빛깔이 도로 푸르러졌습니다.
이에 앞서 제주도를 떠날 때 뱃사람이 무지한 탓으로 식수를 거룻배에 싣고 따르게 하였는데, 풍랑에 표류된 뒤로는 서로
어긋나서 놓쳐버리고 말았습니다. 타고 있는 배에는 물 한 그릇이 없어 밥을 지을 수 없었습니다. 밥도 먹지 못하고 물도
마실 수 없었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권송이 신에게 말하기를,“보아 하니 배 안의 사람들 가운데는 황감(黃柑)과
청주(淸酒)를 가져오기도 했는데, 마구 먹어서 남은 것이 별로 없습니다. 청컨대 이를 한 데 모아 배 위의 창고에 운반하여
저장했다가 목마름을 풀도록 하시기 바랍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즉시 거이산에게 명하여, 배 안의 행장을 모두 뒤지게 하여
황감 50여 개와 술 두 동이를 얻었습니다. 손효자에게 말하기를,“배를 함께 탔으면 호인(胡人)과 월인(越人)도 한 마음일 터인데,
하물며 우리들은 모두가 한 나라 사람으로서 정은 골육지친(骨肉之親)과 같으니,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한다.
이 감과 술은 한 방울이 천금과 같다. 네가 이를 맡아서 함부로 쓰지 말고, 배에 탄 사람의 절박한 목마름을 풀어 주는 것이
좋겠다”라고 하였습니다. 효자가 사람들 가운데 입술이 타고 입이 마른 사람을 보아서 고루 나누어 마시게 하여 겨우 혓바닥
만 적시게 하였습니다. 며칠이 지나자 황감과 술이 모두 없어지니 어떤 사람은 마른 쌀을 잘게 씹고 제 오줌을 받아 마셨지만,
얼마 안 가 오줌마저 없어지고 가슴속이 건조해져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 마침 비가 내리니 배 안 사람들이 손으로 봉옥의 처마를 들고 거기에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기도 하고, 모자를 그릇삼아
아래로 떨어지는 빗물을 모으기도 하고, 돗자리를 구부려 뿌려지는 빗물을 받기도 하고, 돛대와 노를 세워 중간에 종이끈을
묶어서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을 받기도 하면서 한 잔 물이라도 기어코 얻어서 혀로 핥았습니다. 안의가 말하기를,
“옷에 비를 적셔 이를 짜서 마신다면 얻는 바가 실로 많을 터이지만, 뱃사람의 옷은 모두 바닷물에 젖어 비록 비에 적셔
짜내더라도 마실 수가 없으니 어찌하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즉시 간수해 둔 옷 몇 벌을 찾아내어 최거이산에게
비에 적신 뒤 이를 짜게 하니 거의 몇 병이 되었습니다.김중으로 하여금 숟가락으로 이를 나누어 마시게 하였습니다.
김중이 숟가락을 집어 들면 배 안 사람들이 입을 벌리기를 마치 제비 새끼가 먹이를 먹여주기를 바라는 듯하였습니다.
이때부터 비로소 혀를 움직이고 숨을 쉴 수가 있어 조금 살고자 하는 마음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 영역
10th Day. Adrift in the Ocean. This day it rained. An east wind, as on the day before.
After noon the sea became green again. Previously when we had left Cheju, the boatmen had unwisely loaded water
from land into a tender to be towed after us. After drifting away with the wind, we were separated from it and lost it.
There was not one container of fresh water in the boat. We were not able to boil water or cook food and had nothing
to eat or drink. We were in a desperate condition. Kwon Song told me, “I have noticed that some of the men
in the boat brought yellow oranges and refined wine, and they are greedily eating them up. Let us have them collected
and taken to the upper storehouse. We can store them and relieve our thirst with them.” I ordered Kõisan to search
through all the baggage in the boat. He got more than fifty yellow oranges and two jugs of wine. I said to Son Hyo-ja,
“When they are together in a boat, men of Hu and Yüeh are like one.
That is even more so with us, all men of one country, of the same flesh and bones.
If we are to live, let us all live at the same time.
If we are to die, let us all die at the same time. These oranges and this wine are all there are.
One drop is worth a thousand pieces of gold. You take charge,
therefore, and do not waste any, so that they can be used to relieve the thirst of the men in the boat.”
Hyo-ja inspected the men and gave those whose lips were parched and mouths cankerous some oranges and wine to eat and drink.
He gave them only enough to moisten their tongues. In a few days both the oranges and wine were consumed.
Some of the men chewed dried rice grains fine and caught their urine in their hands to drink.
Before long the urine, too, dried up.
Their diaphragms dry and burning, unable to utter sounds, they were almost dead.
At that point, rain fell. Some of the boatmen held up the awning flaps and caught the drops, and some used rain hats and cauldrons to gather the drops.
Some curved mats and got them, and some tied paper strings to the mast and oars and took what dripped down.
By these means they hoped to get some water and lick it off with their tongues.
An Ui said,
“If we took the moisture from clothing wet by the rain and drank it, we should really get a good deal.
But the boatman's clothes have all been soaked by salt water.
Even if we soaked them in the rain for moisture, we could not drink it.


That being the case, what can be done?”
I then picked and brought out several pieces of clothing that had been stored.
I ordered Kõisan to let them be soaked with rain and to collect the moisture from them.
It came to several jars, I ordered Kim Chung to ration it with a spoon and let the men drink.
Chung raised the spoon, and the boatmen opened their mouths wide, like fledgling swallows waiting to be fed.
Only afterwards were they able for the first time to move their tongues and belch. They felt a little more like living.

1월 11일

  • 원문:十一日, 漂大洋中, 是日陰, 清晨至一島, 石壁嵯峨甚險峻,海波震荡,激上____,幾一二丈. 丹隨波直入,勢迫擊碎,權山大哭,遂竭力運船,孝子、程保等,亦親攬帆邊阿綱,視風波或縱或引,時則水從海入島,風從島出海, 舟從風回旋,得免於患,夕至一大島,島又岩石立,欲泊舟不得,以福脫衣躍入水中,搜舟游泳,綠島岸以繫,舟人喜倒蘭下寬溪流,不甘水而飲,負没欲做飯,臣曰:“飢餓之極,五臟塗附,若賺得食飽,則必死,莫若先飲藥水,繼之以粥,適可而止可也.”舟人皆颜粥而吸,島無避風風處,故夜又縱舟而去.
  • 국역: 바다에서 표류하였습니다.

이 날은 흐렸습니다.

새벽에 한 섬에 도착하니 석벽이 우뚝 솟아 매우 험준하였습니다.

바다 물결이 넘실대다 석벽에 부딪치면 거의 1-2장(丈)을 솟구쳤습니다.

배가 물결을 따라 곧장 들어가 부딪쳐 부서질 지경이 되니, 권산은 크게 울부짖다가 마침내 있는 힘을 다하여 배를 몰았습니다.

효자와 정보 등도 또한 돛대 가의 밧줄을 직접 잡고 풍랑을 보아가며 놓아주기도 하고 당기기도 하였습니다.

그때 물이 바다로부터 섬 쪽으로 들어가고 바람은 섬으로부터 바다 쪽으로 나오니, 배가 바람을 따라 휘돌아 나와 화를 면하게 되었습니다.

저녁에 어떤 큰 섬에 도착하였는데 섬은 바위가 깎아지른 듯하였으므로, 배를 대려고 해도 댈 수가 없었습니다.

이복이 옷을 벗고는 물속으로 뛰어 들어가 배를 끌고 헤엄을 쳐서 섬 기슭에 붙들어 매었습니다.

배 안 사람들은 기뻐하며 구르듯이 마구 뛰어 내려가 시냇물을 찾아 손으로 움켜 달콤한 물을 떠 마시고는, 물을 지고 와서 밥을 짓고자 하였습니다.

신이, “굶주림이 극도에 달하면 오장이 말라붙게 되는데 만약 갑자기 밥을 배부르게 먹는다면 반드시 죽게 될 것이다. 먼저 미음을 마신 뒤 죽을 먹되 적당히 먹고 그만두는 게 좋을 것이다”라고 하였더니, 배 안 사람들이 모두 죽을 끓여서 먹었습니다.

섬에는 바람을 피할 곳이 없었으므로 밤에 또 배를 풀어서 떠났습니다.

  • 영역: 11th Day. Adrift in the Ocean. This day was cloudy. At dawn we came to an island that had sheer stone precipices and was extremely forbidding. The sea was heavy, and the waves dashed up the rocks some ten or twenty feet. The boat was following the waves directly in, threatening a crisis in which we should be broken to bits. Kwon San wept loudly and then tried with all his strength to turn the boat. Hyo-ja and Chong Po seized the ropes along the edge of the sail and pulled on them or let up according to the direction of the wind and waves. At the time, the current was from the sea to the island, and the wind was from the island to the sea. The boat followed the wind and turned back, and we avoided disaster. In the evening we came to a large island. It, too, had cliffs and rocks rising steeply. We wanted to moor the boat but could not. I-hok took off his clothes, jumped into the water, and swam ahead, guiding the boat. He climbed the shore of the island and fastened the boat to it. The men, overjoyed, tumbled out recklessly, sought out a stream, took the fresh water in their cupped hands, and drank. Turning from drawing the water, they wanted to prepare food. I said, “In the extremity of hunger the five organs are stuck together. If you suddenly eat to the full, you will surely die. It is better first to drink rice water and follow it with congee. You should stop when you have had the right amount.” The boatmen all boiled congee and sipped it. Since there was no place to escape the wind on the island, at night we freed the boat and went.

1월 12일

  • 원문:十二日,遇贼于寧波府界,是日,午陰乍雨,海色還白,哺,至巨島,連綿如屏,望有中船二艘,皆帶懸居,直指臣船而來,程保等羅跪臣前,曰:“凡事有經有權,請解喪服,權着紗帽團領,以示官人之儀,不然則彼必哄我為劫賊,加以修辱矣.”臣曰:“漂流海上,天也,屢經死地而復生,天也,到此島而遇此船,亦天也,天理本直,安可違天以行詐乎?”俄頃,二船漸近相值,一船可十餘人,人皆穿黑橘榜芒鞋,有以手帕裏頭者,有着竹葉笠棕皮囊者,喧麼叫噪,渾是漢語,臣度其乃是中國人,全程保書紙以遺曰:“朝鮮國臣崔溥奉王命,往海島,奔父喪過海,遇風漂到,不知是何國邑地也?”

其人復曰:“此乃大唐國浙江寧波府地方,”又曰:“要到本國去,润到大唐好.”程保以手指其口,其人以陸水二桶來遺,掉丹東去,臣令人嚮入一島以依,又有一艘亦帶懸居,有軍人可七八人,其衣服語音,亦與前所見同.來逆臣船,曰:“你是何國人?”臣又使程保答如前,因問曰:“此何國?”其人指其島,曰:“此即大唐寧波府地下山也,風水好,二日可回去,”臣又復:“他國人遭風萬死之餘,幸到大國之境,喜得復生之地,又問渠姓名謂誰,其人答曰:“我是大唐林大,你若大唐去,帶你進去,你有寶貨,可遺我:”臣答日:“僕奉使臣,非商賈者流,且漂流浮沈之後,安有寶貨乎?”即减米粮以之,其人受而復曰:“此山繫船,不怕西北風,但南風不好,隨我繫船,”引臣船指一泊舟島,曰:“此可泊可泊,”臣如其言,即往泊之,果無風風,環島中可藏船處也,其西岸有二草屋,如鮑作于家者,其人等泊舟于屋下,臣之同舟人,久久渴久勞久不寝寐之極,得食以食,得風定處以泊,困億支贏,相與 枕藉乎舟中,夜二更,所謂自稱林大者,率其黨二十餘人,或執鎗或帶刀而無弓箭,秉炬擁至,闖入臣船,賊魁書曰:“我是觀音佛,你有金銀,便須看,”臣答曰:“金銀非本國所產,初無有賣,”賊魁曰:“你若官人,豈不費來?

我當看看,”初臣及程保、李植、金重、孝子等,以濟州海外地,往來無期,具四節衣服數套而往,至是賊魁即叫其黨,窮搜臣及陪吏等包中衣裝、舟人糧物,輸載其船,其所遺者,若衣之濃沾鹹水者及諸般書册而已,賊中

p. 360 __一目者,惡之尤甚,程保謂臣曰:“賊之始至,示若從容,見我勢弱,剛成大賊,請一奮擊,以決死生:”臣曰:“我舟人皆以飢渴垂死之後,奪氣於賊,故賊乘勢肆暴,若與相搏,則我輩皆死於賊手,莫如盡付行李,以乞生活耳,” 賊魁又奪臣所賣印信、馬牌,納之懷袖,程保尾其後請還不得,臣曰:“船中有物,可盡取去,印與馬牌,乃國之信,私無可用,可還我.”賊魁以印牌還.繼出篷,與其黨列立船舷,喧嚣良久,旋入舟中,先脱程保衣榜,細而枚之,次以研刀,截臣衣紐,赤身脫,背手曲脚以綁之,以杖杖臣左臂七八下,曰:“你若愛生,便出金銀,”臣大號曰:“身可彎骨可碎,何所得金銀乎?”

賊不曉臣言,解臣轉,許以寫意,臣即寫之,贼魁怒,嗔目張喙,指程保而叫,指臣而叫,即更臣頭髮,還轉倒懸,荷刀指臣頸斷之,刀遍誤下右肩偶,刃舔在上,賊又荷刀將斬臣,有一賊來把荷刀之臂以泪之,賊黨齊聲大叫,莫知所謂,是時,舟人喘惧失常,奔竄無地,唯金重、巨伊山等,攤手拜跪,冀活臣命,俄而,賊魁蹂躏臣身,喝嚇人,引其黨而出,截去臣船牆諸緣,投諸海,遂以其船導緯臣船,指放大洋,然後乘其船遁去,夜已蘭矣.

  • 국역: 영파부(寧波府)[1][2] [3] [4]에서 해적 [5] [6] [7] [8] [9]을 만났습니다.

이 날은 흐렸다가 비가 오기도 하더니, 바다 빛깔이 도로 희게 되었습니다.

해질 무렵에 큰 섬에 이르렀는데, 섬이 병풍처럼 잇닿아 있었습니다.

바라보니 중선(中船) 두 척이 모두 거룻배를 매달고서 신의 배를 향하여 똑바로 왔습니다.

정보 등이 신의 앞에 빙 둘러 꿇어앉아 말하기를, “무릇 일에는 경상(經常)도 있고 권변(權變)[10]도 있는 것이니, 청컨대 상복[11]을 벗고[12] 임시로 사모(紗帽)와 단령(團領)을 착용하여 관인(官人)의 위의(威儀)를 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들은 반드시 우리를 도적이라고 떠들어 대며 욕을 보일 것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해상에서 표류하게 된 것도 하늘의 뜻이고, 여러 번 사지(死地)를 거쳤지만 다시 살아난 것도 하늘의 뜻이고, 이 섬에 도착하여 이 배를 만난 것도 하늘의 뜻이다. 천리(天理)는 본래 곧은 법인데, 어찌 천리를 어기면서 거짓을 행할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조금 뒤에 두 배가 점차 가까워져서 서로 만났습니다. 한 배에 약 10여 명이 타고 있었는데 사람마다 모두 검은 솜바지를 입고 짚신을 신었으며, 그중에는 수건으로 머리를 동여 맨 사람도 있었고, 대나무 잎으로 만든 삿갓과 종려(綜) 껍질로 만든 도롱이를 입은 사람도 있었는데, 요란스럽게 떠드는 소리가 모조리 중국말이었습니다. 신은 그들이 중국 사람인 줄 짐작하고 정보를 시켜서 종이에 글을 써서 건네기를, 조선국(朝鮮國)의 신(臣) 최부는 왕명을 받들고 해도(海島)에 갔다가 부친상을 당하여 급히 바다를 건너가던 도중, 바람을 만나 표류해 이곳에 도착하였는데, 이곳이 어느 나라 고을의 땅인지 모르겠소”라고 하였습니다.

그 사람이 회답하기를, “이곳은 곧 대당국(大唐國) 절강성(浙江省) 영파부(寧波府)[13] 지방이오”라고 하고, 또 말하기를, “본국으로 돌아가려면 대당(大唐)으로 가는 것이 좋소”라고 하였습니다.

정보가 손으로 자기의 입을 가리켜 보이니, 그 사람들은 먹을 물 두 통을 가지고 와서 주고는 노를 저어 동쪽으로 가 버렸습니다.

신은 배 안 사람들에게 명령하여 노를 저어 한 섬에 들어가서 대게 하였습니다. 또 다른 배 한 척도 거룻배를 달고 있고 군인 7-8명이 타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의 의복과 말소리는 또한 앞에 보았던 자들과 같았습니다.

신의 배에 다가와서 말하기를, “당신은 어느 나라 사람이오?”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또 정보에게 전과 같이 대답하게 하고는 이어서 물어보기를, “이곳은 어느 나라 땅이오?”라고 하니,

그 사람은 그 섬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이곳은 곧 대당(大唐) 영파부의 하산(下山)[14]이오. 바람과 물길이 좋으면 이틀이면 돌아갈 수 있소”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타국 사람이 풍랑을 만나 사경을 헤매던 나머지 다행스럽게 대국(大國)의 땅에 이르러 다시 살아날 길을 얻게 되어 기쁘오”라고 하였습니다.

또 그의 성명이 누군가 물으니 대답하기를, “나는 대당의 임대(林大)요. 당신이 만약 대당으로 간다면 데리고 갈 터이니 보화(寶貨)가 있으면 내게 주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나는 봉명사신(奉命使臣)5이지 장사하는 무리가 아니며 또 바다에 표류하여 물에 떴다 가라앉았다 한 뒤인데 어떻게 보화가 있겠소?”라고 하고, 쌀을 덜어 주었습니다.

그 사람은 받고 나서 다시 말하기를, “이 산은 배를 매기에 서북풍은 걱정되지 않지만, 다만 남풍이 좋지 않으니 나를 따라와 배를 매시오”라고 하였습니다.

신의 배를 인도하더니 배 댈 만한 섬을 가리키면서 말하기를, “이곳에 댈 만하오, 댈 만하오”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그의 말대로 곧 가서 배를 대었는데 과연 바람이 없었으며, 온 섬 안을 둘러보아 배를 매어 둘 만한 곳이었습니다.

그 서쪽의 물가에는 초가집 두 채가 있었는데 보자기의 집 같았습니다. 그들은 배를 초가집 아래에 매었습니다.

신과 함께 배를 탄 사람들은 오랫동안 굶주리고 목말랐으며 지치고 잠자지 못한 끝에 먹을 것을 먹게 되고 바람 잔 곳에 배를 대자 피로가 몰려들어 사지가 풀려서 배 안에서 서로를 베개 삼아 이내 곯아 떨어졌습니다.

밤 2경에 자칭 임대(林大)란 자가 그 무리 20여 명을 거느리고 왔는데, 창을 쥔 자도 있고 칼을 찬 자도 있었지만 활과 화살은 없이 횃불을 잡고 들이닥쳐 신의 배 안으로 마구 들이닥쳤습니다.

해적의 괴수가 글로 써 보이기를, "나는 관음불(觀音佛)이라 네 마음을 뚫어본다. 네가 금은을 가지고 있으니 찾아보겠다” 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대답하기를, “금은은 본국에서 생산되지 않아서 처음부터 가져온 것이 없소”라고 하였습니다.

“네가 벼슬아치라면 어찌 금은을 가지고 오지 않았겠는가? 내가 찾아보아야겠다.”

당초 신 및 정보, 이정, 김중, 손효자 등은, 제주도는 바다 밖의 땅이라 갔다 오는데 기약할 수 없다고 해서 사철 의복 몇 벌을 갖추어 갔습니다.

이 때 와서 해적의 괴수는 곧 그 무리들을 큰 소리로 불러서 신 및 배리(陪吏)들의 보자기 속에 있는 의류와 뱃사람의 양식 등을 샅샅이 뒤져 가지고 가 그들의 배에 실었습니다.

그들이 남긴 것은 바닷물에 흠뻑 젖은 옷과 여러 종류의 서책(書冊)뿐이었습니다.

해적 가운데 애꾸눈인 자가 특히 악독하였습니다.

정보가 신에게 말하기를,“해적이 처음 이르렀을 적에는 얌전하였는데, 우리의 형세가 약한 것을 보더니 차츰 날강도로 변하였습니다.

청컨대 한 번 온 힘을 다하여 공격하여 사생결단을 내기 바랍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우리 일행은 모두 굶주리고 목말라 거의 죽게 된 뒤이라 해적에게 기를 빼앗겼기 때문에 그들이 이러한 형세를 이용하여 포악한 짓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다. 만약 그들과 서로 싸운다면 우리들은 모두 해적의 손에 죽게 될 것이다. 행장을 모조리 주고 목숨만 살려달라고 비는 것만 못하다”라고 하였습니다.

해적의 괴수가 또 신이 가졌던 인신(印信)과 마패를 빼앗아 그의 소매 속에 넣었습니다.

정보가 그 뒤를 따라가서 돌려주기를 청했으나 받지 못했습니다. 신이 말하기를,“배 안에 있는 물건은 죄다 가져 가도 되지만, 인신과 마패는 나라의 신표(信標)라 사사로이 쓸 곳이 없으니 나에게 돌려주면 좋겠소”라고 하였습니다.

해적의 괴수는 인신과 마패를 돌려주었습니다.

봉창(蓬窓)을 나서더니, 그 무리들과 뱃전에 죽 늘어서서 한참 동안 떠들다가 배 안으로 도로 들어왔습니다.

먼저 정보의 웃옷과 바지를 벗기고 묶어놓고 매질을 하였습니다.

그 다음 칼로 신의 옷고름을 끊고 옷을 벗겨서 알몸을 만든 뒤, 손을 뒤로 젖히고 무릎을 굽혀 결박하더니, 몽둥이를 가지고 신의 왼팔을 일곱 여덟 차례 때리고 난 뒤에 말하기를, “네가 만약 목숨이 아깝다면 얼른 금은을 내 놓아라” 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큰 소리로 부르짖으며,“몸뚱이가 문드러지고 뼈가 가루가 될지라도 어디에서 금은을 가져온단 말인가?”라고 하였습니다.

해적은 신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으므로, 신의 결박을 풀어주고는 그 의미를 글로 쓰게 하였습니다.

신이 즉시 썼더니 해적의 괴수는 노하여 눈을 부릅뜨고 입을 벌린 채 정보를 가리키면서 큰 소리를 지르고, 신을 가리키면서 큰 소리를 지르고 나서 곧 신의 머리채를 끌어당겨 도로 묶어 거꾸로 매달고는 칼을 메고 신의 목을 베려고 하였지만, 칼을 마침 오른쪽 어깨로 잘못 내렸고 칼날이 뒤집혀져 있었습니다.

다시 칼을 메고 신의 목을 베려고 할 때 한 해적이 와서 칼을 멘 자의 팔을 잡아 이를 저지시켰습니다.

해적의 무리들이 한꺼번에 소리를 질러 크게 떠들어 댔지만 뭐라고 하는지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때에 뱃사람들은 두려워 제정신을 잃고 쥐새끼처럼 구석구석 숨어버렸습니다.

김중과 최거이산 등만은 손을 모아 절하고 꿇어앉아서 신의 목숨을 살려주기를 청하였습니다.

조금 후에 해적의 괴수가 신의 몸뚱이를 짓밟고, 뱃사람들을 공갈 협박하고는 그 무리들을 이끌고 나가면서 신의 배의 닻, 노 등 여러 가지 기구를 끊어 바다에 던져버렸습니다.

마침내 그들의 배로 신의 배를 끌어 큰 바다 가운데 놓은 다음 배를 타고 도망가 버렸는데 밤은 이미 깊었습니다.

  • 영역: 12th Day. An Encounter with Pirates at the Boundary of Ning-po Prefecture. This day was cloudy and sometimes rainy. The sea was again white. At dusk we came to large islands that lay opened out like a screen. We saw that there were two boats among them. Both carried small boats. They pointed directly at my boat and came toward us. Chòng Po and others knelt round me and said, “In all things there are rules and exceptions to the rules. Please take off your mourning clothes and, as an exception, wear your silk gauze cap and round collar and thus display the signs of an official. If you do not, they will make us out to be pirates and humiliate us.” I said, “We have drifted at sea by the will of Heaven. We have repeatedly approached death and regained life by the will of Heaven. We have also arrived at these islands and met these boats by the will of Heaven. Heaven's principles are just. How can I go against Heaven to practice deceit?" Very quickly, the two boats drew near and met us. In each boat there were about ten men, all of whom wore black, padded trousers and straw boots. Some had towels wrapped round their heads, and some wore bamboo-leaf rain hats and coir-bark raincoats. They clamored and shouted loudly. It was all in Chinese, and I judged them to be men of China. I ordered Chòng Po to write sa message] on a piece of paper and send it to them. It said, “I, Ch'oe Pu, a minister of Korea, received the King's order to go to an island in the sea. I was hurrying to mourn for my father, and, crossing the sea, met a wind and drifted here. I do not know what land or district this is.” The men answered, “This is the region of Ning-po Prefecture, Chekiang, China.” They also said, “If you want to reach your own country, it would be well for you to go to China [first].” Chong Po pointed to his mouth with his hand. The men brought two buckets of fresh water and gave them to us. They rowed their boats away to the east. I commanded the boatmen to scull into an island and seek shelter. There was another boat, which also carried a small boat and had about seven or eight soldiers. Their clothes and speech were the same as those of the men we had previously seen. They came to meet my boat and said, “What country are you from?” I had Chòng Po answer again as before. Then we asked, “What country and place is this?” The men pointed to the island and said, “This is Hsia-shan,21 in Ning-po Prefecture, China. If the wind and water are right, you can return home in two days." I replied, “We, men from a strange land, have encountered a storm and, despite ten thousand brushes with death, have been fortunate enough to reach the shores of China. We are happy to have reached a place where our lives are saved.” Then I asked them what their names were. A man answered, “I am Lin Ta of China. If you are going to China, I shall accompany you. If you have valuables, you should give them to me.” I answered, “I am an official on a mission, not a merchant. After drifting and bobbing about, furthermore, how could I have valuables?”' I took rice from our rations and gave it to him. The man accepted it and replied, “If you moor your boat to this island you need not fear the northwest wind, but the south wind is not good. Follow me to moor it.” He led my boat to an island anchorage. He said, “Here, this is where you should moor.” I did as he said. We went and moored the boat, and there was, true enough, no wind. It was a place ringed by the island, in which boats could find shelter. On the west shore were two thatched huts that looked like houses in which salt fish were prepared. The other men moored their boat below the huts. The men in my boat, at the extremity of prolonged hunger and thirst and having toiled without sleep for a long time, had got food and eaten and had got a place protected from the wind and moored. Then, exhausted, they dropped down in a jumble of limbs in the boat. In the second watch of the night, the one who had called himself Lin Ta came at the head of his band of over twenty men, some carrying spears, some carrying swords, but without bows and arrows, and holding torches. They came without leave into my boat. The pirate chief wrote [a message] that said, “I am the Buddha Kuan-yin. I see through to your heart. You have gold and silver, and I am going to look for it.” I answered, “Gold and silver are not produced by my country. I have not had any from the first.” The pirate chief said, “If you are an official, how can you not have brought any? I'll take a look.” Now I, Chòng Po, Yi Chong, Kim Chung, and Hyo-ja, because it was uncertain how long a voyage to Cheju and places at sea would take, had sailed with several pieces of clothing for all seasons. This pirate chief, now, shouted to his band to make a thorough search for clothes in my portmanteau and those of my secondary officials and for the boatmen's rations and to load them into his boat. They left behind only such things as the clothes drenched in salt water and all the books and documents. Among the pirates there was a one-eyed one who behaved especially badly. Chong Po said to me, “When the pirates first came, they showed something like courtesy. When they saw that we were weak, they gradually came to show their true colors. I suggest that we make one strong attack to decide who should die and who should live.” I said, “Our boatmen, after being on the brink of death from hunger and thirst, have lost their courage before the pirates. The pirates, therefore, take advantage of the circumstances and inflict on us their violence. If we fought with them, our men would all die at the pirates' hands. It is better to give up all our baggage and beg for our lives.” The pirate chief also seized the seal and horse permit that I had and put them into his sleeve. Chòng Po followed after him and asked him to return them but did not get them. I said, “Take away everything in the boat, but the seal and horse permit are symbols of state and of no use to unauthorized persons. You had better return them to me.” The pirate chief returned the seal and permit. Then he went out the door of the shelter and stood lined up with his band on the gunwale of the boat. They argued noisily for some time and then came back into the boat. First, they took off Chòng Po's clothes, bound him and beat him. Next, they cut the frog of my gown with a sword and stripped me naked. They put my hands behind me, bent my legs, and bound me. They beat my left arm with a stick seven or eight times and said, “If you love life, better bring out the gold and silver.” I shouted, “You can cut my body and break my bones, but where am I to get gold and silver?” The pirates did not understand what I said. They untied my bonds to let me write what I meant, and I wrote it. The pirate chief was angry. He stared ferociously, his mouth wide open. He pointed at Chòng Po and shouted, pointed at me and shouted. He pulled me by the hair and again bound me. He raised his sword and aimed it at my throat to cut it, but the sword happened to miss and struck something by my right shoulder, the blade glancing off. The pirate again raised the sword and was about to behead me, when one of the pirates came, took hold of the arm that raised the sword, and restrained it. The pirate band all raised great shouts, but I do not know what was said. | At the time, the boatmen were beside themselves with fright. They scurried about to hide, but there was no place. Only Kim Chung and Kõisan clasped their hands and begged on their knees that my life be spared. Then, after torturing me and terrifying the boatmen, the pirate chief led his band off. They cut away the boat's anchor, oars, and all ropes and threw them into the sea. Then with their boat they towed my boat toward the open

1월 13일

  • 원문: 十三日, 復漂大洋中, 是日陰, 西北風大起, 又流入無涯之海, 臣及丹人所藏構衣,俱失於賊,所穿之衣,久清鹹水,天且恒陰,不得曝乾,凍死之期逼矣,舟載儲粮,盡為賊奪,餓死之期逼矣;以觸為賊所投,假帆為風所破,但隨風東西,隨潮出入,稍工無所施其力,沈沒之期亦逼矣,舟人皆填噴

p.361 莫能出聲,坐待死期,孝枝謂臣曰:“我等之死,分內事也,只以敬差官之死為痛惜耳!”臣曰:“爾何以死地為分內乎?”孝枝曰:“我州在大海中,水路九百餘里,波濤視諸海,尤為淘暴,貢船、商舶,絡繹不絕,漂沒沈溺,十居五六,州人不死於前,則必死於後,故境中男墳最少,闆闆之間,女多三倍於男,為父母者,生女則必曰:“是善孝我者,生男則皆曰:“此物非我兒,乃量之食也,我等之死,如蜉蝣出沒,雖在平日,亦豈以死於痛下為心哉?唯朝臣往來,從容待風,舟楫價牢,故死於風波者,前古所罕,適丁今敬差官之身,天不陰佑,至於不測之地,是以痛哭耳.”

  • 국역: 다시 바다에서 표류하였습니다.

이 날은 흐리고 서북풍이 크게 일어서 배는 끝이 없는 바다 속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신 및 배에 탄 사람들이 간직했던 솜옷은 모두 해적에게 빼앗겼고, 입은 옷은 바닷물에 절었는데 날씨 또한 계속 흐려서 햇볕에 말리지 못하였으므로 얼어죽을 날이 가까이 왔고, 배에 실은 양식을 해적에게 모두 빼앗겼으니 굶어죽을 날이 닥쳐왔으며, 배는 닻과 노를 도적이 던져버렸고 임시로 만든 돛은 바람에 부서졌으므로, 다만 바람을 따라 동쪽으로 갔다가 서쪽으로 가기도 하고 조수를 따라 나왔다가 들어가기도 하여 사공이 힘을 쓸 수가 없었으니, 침몰될 날 또한 가까이 닥쳐왔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모두 목이 막혀서 소리도 내지 못하고, 앉아서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효지가 신에게 말하기를, “우리들의 죽음은 분에 맞는 일이지만 경차관의 죽음만은 매우 애석할 뿐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너는 어찌 죽는 것을 분에 맞는 일이라 하는가?”라고 하였습니다.

효지가 말하기를 “우리 제주도는 큰 바다 가운데 멀리 떨어져 있어, 수로가 900여 리나 되고 파도는 다른 바다에 비하여 특히 사납습니다. 공선(貢船)과 상선(商船)의 왕래가 잇달아 끊이지 않는데, 표류되고 침몰[1]되는 것이 10에 5-6척은 되어 제주사람은 일찍 빠져죽지 않더라도 나중에는 반드시 빠져죽곤 합니다. 그런 까닭에 경내에는 남자의 무덤이 매우 적고, 마을에는 여자가 많아서 남자보다 3배나 됩니다.[2] 부모가 된 사람이 딸을 낳으면 반드시 이 애는 나에게 효도할 아이다'라고 하고, 아들을 낳으면 모두 '이 물건은 내 자식이 아니고 곧 고래와 거북의 밥이다'라고 합니다. 우리들의 죽음은 하루살이와 같아서 평소에도 어찌 자기 집에서 죽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오직 조신(朝臣)들이 왕래할 때면 조용히 순풍을 기다리고 선박도 빠르고 견고한 까닭에 풍랑으로 죽은 사람은 예전부터 드물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경차관만을 하늘이 도와주지 않아 죽음의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었으니, 이 때문에 통곡할 따름입니다."

  • 영역: 13th Day. Adrift Again in the Ocean. This day was cloudy.

A strong northwest wind rose. We drifted again into the limitless sea. The padded clothing packed by me and the boatmen had all been lost to the pirates, and the clothing that we were wearing had been soaked in salt water for a long time. The sky, moreover, was constantly clouded, giving us no chance to dry it out, and the time when we should die of exposure was drawing near. All the rations loaded in the boat had been seized by the pirates, and the time when we should die of starvation was drawing near. Because the anchor and oars had been thrown away by the pirates and the makeshift sail ripped by the wind, the boat simply went east or west with the wind, or in and out with the tide. There was nothing for the helmsman to work at, and the time when we should sink was also drawing near. All the boatmen had stopped-up throats and could not utter sounds. They sat and waited for the time to die. Hyo-ji said to me, “For us, death is part of the job. It is only the death of a commissioner we should lament.” I said, “Why do you consider death part of your job?” Hyo-ji said, “Our department is far out at sea, more than nine hundred li. The waves are much worse than those of other seas. Of the unbroken lines of tribute and merchant boats that sail out, five or six of every ten are driven out to sea and not heard from again, and the men are drowned. Most of the men of the department die thus sooner or later. The graves of men, therefore, within the borders are extremely few. In the villages there are three times more women than men. When as fathers and mothers the people produce a girl, they say, “This is one who will be good and dutiful to us.' When it is a boy, they all say, 'This thing is not our child, it is food for whales and turtles.' Our lives are as uncertain as the day-fly's. Even if we had continued in our normal way, we should not have expected to die in our own rooms, under our own windows. “Ministers of the Court, however, going and coming, wait at their convenience for the wind. Their boats and oars are nimble and strong. Those who have died in the wind and waves, therefore, have been few in the past. But now this fate has befallen you, honored Commissioner, and, Heaven not rendering its unseen assistance, you have come to this extremely dangerous pass. That is why we mourn for your fate.”

1월 14일

  • 원문: 十四日,漂大洋中,是日晴,哺時,漂至一島,東西南三面,一望無際,唯可避北風處,顧以無為憂,初發濟州時,舟甚大無載物,故輸若干石塊于舟中,使不撓動,至是,尚理等以較索纏其石四齒,合為假碇以留泊焉,安義與軍人等相與言,使之聞之於臣曰:“此行所以至於漂死者,我知之矣,自古以來,凡往濟州者,皆祭於光州無等山祠及羅州錦城山[[1] 洞,自濟州出陸者,又皆祭於廣壤、遮歸、川外、楚春等詞,然後行,故受神之枯,利涉大海,今此敬差官特大言非之,來不祭無等、錦城之祠,去不祭廣壤諸洞,慢神不敬,神亦不恤,使至此極,尚誰給哉?”軍人和之,咸臣,權松獨曰:“不然,前此李准義暹,三日致齋,精祀廣壤等神,亦至漂流,幾復甦,權敬差官景帖,俱不致祭,尚且往來快順,亡些子差,則過海便否,在於待風之如何耳,__關於神之祭不祭哉?”臣亦稱之曰:“天地無私,鬼神默運,福善禍,唯其公耳,人有惡者,論事以微福,則其可福之乎?人有善者,不惑邪說,不為顯祭,則其可稱之乎?會謂天地鬼神為語事飲食,而降禍福於人乎?萬萬無此

p.362 理也,况祭有常等,士庶人祭山川,非禮也,非禮之祭,乃谣也,溶以獲福者,我未之見也.爾濟州人,酷好鬼神,山澤川敷,俱設神祠,至如廣壤等堂,朝夕敬詞,靡所不至,其於涉海,宜無漂沈之患,然而今日某船漂,明日某船沈,漂沈之船,前後相望,是果神有靈應歇?祭能受福欺?况今我同舟人不祭者,唯我一人耳,爾軍人皆誠心齋祭而來,神若有靈,豈以我一人不祭之故,廢爾四十餘人齊祭之誠也?我之漂船,專是行李顛倒,不善候風之所致,反以廢祭尤我,不亦惑乎?”安義等猶以臣言為迂闊不以為是.

  • 국역: 바다에서 표류하였습니다.

이 날은 맑았습니다.

해질 무렵에 배가 표류하여 한 섬에 이르니 동, 서, 남 3면이 탁 터져 있고, 북풍은 피할 수 있는 곳이었으나, 살펴보니 닻이 없는 것이 근심거리였습니다. 처음에 제주도를 출발할 때는 배가 매우 큰데도 실을 물건이 없었으므로 몇 개의 돌덩이를 배 안에 실어서 배가 흔들리지 않도록 하였습니다.[1][2] 이 때 상리 등이 새끼줄로 그 돌 네 개를 얽어매어 합쳐서 임시 닻을 만들어 배를 머물게 하였습니다.

안의는 신(臣)이 들을 수 있도록 군인 등에게 말하기를,“이번 행차에서 표류하여 죽게 된 까닭을 나는 안다. 옛날부터 제주도에 가는 사람들은 모두 광주(光州) 무등산(無等山)[3]의 신사(神祠)[4]와 나주(羅州) 금성산(錦城山)의 신사[5][6][7]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제주도에서 육지로 나오는 사람들도 모두 광양(廣壤)[8]·차귀(遮歸)[9][10][11]·천외(川外)[12][13]·초춘(楚春)[14][15][16] 등의 신사102에서 제사를 지내고 나서 떠났던 까닭에 신령님의 도움을 받아 큰 바다를 순조롭게 건너갈 수가 있었다. 지금 이 경차관은 특별히 이를 잘못이라고 큰소리치며 비난하며, 올 때도 무등산과 금성산의 신사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았고, 갈 때도 광양 등 여러 신사에서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신령님을 업신여겨 공경하지 않았으므로, 신령님 또한 돌보지 아니하여 이러한 지경에 이르게 되었으니 또한 누구의 잘못이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군인들은 동조하며 모두 신을 탓하였습니다.

권송만은 홀로 말하기를, “그렇지 않다. 이에 앞서 정의현감 이섬은 3일 동안 재계(齋戒)[17][18][1]</ref>팔재계, 법보신문, 2007.04.18[19]한 뒤 광양 등의 신령님께 정성껏 제사를 지냈는데도, 표류되어 거의 죽을 뻔하다 다시 살아났다.

경차관 권경우(權景祐)[20]는 아무 제사를 지내지 않았지만 왕래가 아주 순조로웠고 아무 탈도 없었다. 결국 바다를 건너는 데 그 안전한가 아니한가는 순풍을 기다리는 여부에 달려 있지, 어찌 신령님에 대한 제사를 올리고 말고 하는 것과 관계가 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신 또한 일러 말하기를, “천지는 사심이 없고, 귀신은 말없이 운행(運行) 하면서 착한 사람에게 복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 재앙을 주니 공평할 따름이다. 악한 사람이 귀신을 아첨해 섬겨서 복을 구한다면 그에게 복을 내리겠는가? 착한 사람이 사설(邪說)에 미혹되지 않아 제사지내지 않는다고 그에게 재앙을 내리겠는가? 천지와 귀신이 아첨하는 음식을 올렸다 하여 그에게 복을 내린다는 말이 일찍이 있었던가? 절대로 그런 이치는 없다. 하물며 제사도 일정한 등급이 있으니, 사대부와 서인(庶人)이 산천에 제사지내는 것[21][22][23][24][25]은 예에 어긋난 일이다[26][27]. 예에 어긋난 제사가 바로 음사(淫祀)인데, 음사로써 복을 얻은 일은 나는 본 적이 없다. 너희들 제주도 사람들은 귀신을 몹시 좋아하여 산택(山澤)과 천수(川藪)에 모두 신사를 세워, 광양 등의 신당(神堂) 같은 데는 조석으로 받들어 제사 지내기를 지극하게 하거늘, 바다를 건너는 데 표류거나 침몰하는 재앙이 없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오늘은 어느 배가 표류하고 내일은 또 다른 배가 침몰하여, 표류하거나 침몰하는 배가 앞뒤로 서로 잇닿으니, 이것이 과연 신령님의 영험이 있는 셈인가? 제사를 지낸다고 복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하물며 지금 함께 배를 탄 우리들 가운데 제사를 지내지 않은 사람은 나 한 사람뿐이고, 너희 군인들은 모두 정성스런 마음으로 재계(齋戒)하고 제사를 지내고 왔는데, 신이 만약 영험이 있다면 어찌 나 한 사람이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고 해서 너희들 40여명이 재계하고 제사 지낸 정성을 저버릴 수가 있는가? 나의 배가 표류한 것은 오로지 일정을 서두르다, 순풍 기다리기를 잘못한 데서 말미암은 것인데, 도리어 제사 지내지 않은 일로 나를 탓하니, 또한 미혹된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안의 등은 여전히 신의 말을 물정에 어두운 탓이라 하며 옳다고 여기지를 않았습니다.

  • 영역: 14th Day. Adrift in the Ocean. This day was fair. Between 3 and 5 p.m. we sailed into an island. In three directions, east, south, and west, nothing met the eye. It was a place sheltered from only the north wind, and we were concerned about not having an anchor. When we had first left Cheju, because the boat was very large and carried nothing in it, we had put in a number of stones to keep it from rolling. Now Sang-ni and others tied four stones together with line for a makeshift anchor, and we moored there. An Ủi talked with the soldiers in my hearing: “I know why we have come to the point of drifting off and dying on this trip. Ever since olden times, everyone going to Cheju has first sacrificed at Mudungsan Shrine in Kwangju and Kumsongsan Shrine in Naju. Everyone sailing from Cheju has first sacrificed at Kwangyang, Sogwi, Ch’onwoe, and Ch’och’un shrines. Therefore they received the aid of the gods and successfully crossed the ocean. “The present Commissioner, however, has arrogantly ignored these measures. He came without sacrificing at Mudung and Kŭmsong shrines, and he went without sacrificing at Kwangyang and the other shrines. He is contemptuous of the gods. The gods, in turn, have not pitied us and have sent us to this extremity. Who is at fault?” The soldiers agreed with him and all blamed me. Kwon Song, however, said, “That is not so. Before this, Yi Som of Sõnŭi fasted three days and sacrificed punctiliously to Kwangyang and the other gods. He, too, went adrift, almost died, and survived. Commissioner Kwon Kyong-u did not sacrifice at all, yet he came and went swiftly and surely, without the slightest discomfort. Thus, the ease or difficulty of crossing the sea depends on waiting for the wind; it has nothing to do with sacrificing or not sacrificing to the gods.” I also admonished them, saying, “Heaven and Earth are not partial, and the gods and spirits do their work silently. They are strictly impartial in blessing good and damning evil. If a man is wicked and toadies for blessings, can they bless him? If a man is good and neither is deluded by heretical doctrines nor offers blasphemous sacrifices, can they damn him? Can one say that Heaven, Earth, the gods and spirits send down damnations and blessings on men for the sake of flattery, food, and drink? That cannot possibly be. “Sacrifices, moreover, have fixed ranks. For gentry and commoners to sacrifice to mountains and rivers goes against the code of propriety. A sacrifice opposed to propriety is an evil sacrifice. I have never known of any man who obtained blessings by improper sacrifice. “You Cheju men are devoted to gods and spirits. You build shrines to gods in all the mountains, marshes, rivers, and swamps. At such temples as Kwangyang you sacrifice respectfully morning and night, leaving nothing undone. That being so, when you cross the ocean you ought not to have mishaps like drifting and sinking. Yet today such-and-such a boat goes adrift, tomorrow such-and such a boat sinks, and so it goes with one after another. Can these things be taken to mean that these gods are powerful and that sacrifices to them can bring blessings? “Of the people in this boat, moreover, I alone have not sacrificed. All you soldiers devoutly fasted and sacrificed and then came. If the gods are powerful, how can they deny the devotion of the fasting and sacrificing of you fortyodd men because I alone did not sacrifice? Our boat has gone adrift solely because the baggage was unevenly stowed and because we were not good at forecasting the weather. Is it not foolish to blame me for having neglected the sacrifices ?”

An Ui and the others seem to consider what I said irrelevant and wrong.

1월 15일

  • 원문:十五日, 漂大洋中, 是日陰, 海色赤而濁, 東風復起, 又順風指舵于西,舟中人若朴從迴、萬山、李山等,有疾病不堪事;高保終、梁達海、高迴、金朝迴、任山海等,自漂海以至是日,臥不起動,雖督之以(露)取「露]等事,聽之藐藐;鄭實、夫同、金得時、姜有、宋真、金粟、姜內、吳山、高內乙同等,十喚一應,或有不得已而從事者;肯斤寶、金怪山、高福、金松、金石貴、李孝台、金真山等,或畫勤夜食,或始勤終息;許尚理、權山、金高面、金仇迴、崔巨伊山、金都終、高以福、文迴、玄山、韓每山、權松、莫金等,畫夜不息,以運船為己任;程保、金重、李植、孫孝子、李孝枝、安義等,或親自服役,或檢督治船,以期完事,自遇賊復漂以後,人皆無意於生,漸不如前,丹為暴濤所擊,為日已久,百孔千瘤,旋塞旋缺,蹲漏有水,將不勝,臣曰:漏水若此,舟人之解體又若此,

p.363 我其妄自尊大,坐見溺死,胡可哉?”遂與程保等六人,親自到水幾盡,尚理以下十餘人,亦稍有奮力而起者,夜無風而雨,至一大島,為勢所逆,欲依泊不得,中流海上,

  • 국역:바다에서 표류하였습니다.

이 날은 흐리고 바다 빛깔은 붉으면서 탁하였습니다.

동풍이 다시 일었으므로 또 바람 부는 대로 키를 서쪽으로 맞추어 갔습니다.

배 안에 있는 사람들 중에 박종회, 만산, 이산 등은 병이 나서 일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고보종, 양달해, 고회, 김조회, 임산해 등은 바다에서 표류가 시작된 뒤로 여태까지 드러누워 움직이려 하지 않고, 비록 취로(取露) 등의 일로 이들을 독려하여도 귀담아 듣지도 않았습니다.

정실, 부명동, 김득시, 강유, 송진, 김속, 강내, 오산, 고내을동 등은 열 번 부르면 한 번 대답하였으며, 마지못해 일을 하는 자도 있었습니다.

소근보, 김괴산, 고복, 김송, 김석귀, 이효태, 김진산(金眞山)05 등은 낮에는 부지런하다가도 밤에는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고, 처음에는 부지런하다가도 나중에는 나태하기도 하였습니다.

허상리, 권산, 김고면, 김구질회, 최거이산, 김도종, 고이복, 문회, 현산, 한매산, 권송, 막금 등은 밤낮으로 부지런히 배를 운행하는 일을 자기의 책임으로 삼았으며, 정보, 김중, 이정, 손효자, 이효지, 안의 등은 몸소 일하기도 하고, 배를 수리하는 일을 점검하고 독려하기도 하며, 일을 끝내기를 기하였습니다.

해적을 만나 바다에 다시 표류한 이후로는 사람들이 모두 살고자 하는 의욕이 없어 하는 일이 점차 전만 같지 못하여졌습니다.

배가 사나운 파도에 부딪친 지 오래 되자 수많은 구멍과 틈이 생겼고, 막는 즉시 곧 터져 새어 들어오는 물을 이루 다 퍼낼 수 없었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물새는 것이 이러하고, 뱃사람들 마음이 흩어진 것이 또 이러하니, 무턱대고 높은 사람이라고 점잔만 빼다가 앉아서 익사 당하는 것이 어찌 옳겠는가?”라고 하였습니다.

마침내 정보 등 6명과 함께 몸소 물을 거의 다 퍼내었습니다. 상리 이하 10여명 또한 조금씩 힘을 내어 일어나는 자가 있었습니다. 밤에는 바람은 없었지만 비가 내렸습니다. 어느 큰 섬에 이르렀지만 썰물의 힘에 밀려 정박할 수 없었고 배는 바다 쪽으로 흘러갔습니다.

  • 영역: 15th Day. Adrift in the Ocean. This day was cloudy.

The sea was red and muddy. An east wind had arisen again. Again we went with the wind and set the helm heading west. Of the men in the boat, some, such as Pak Chong-hoe, Mansan, and Yi San, were sick and not able to work. Ko Po-jang, Yang Tal-hae, Ko Hoe, Kim Cho-hoe, and Im San-hae, from the time we went adrift until the present, had lain down and not risen to work. Though we directed them to bail and do other things, they ignored the commands completely. Chòng Sil, Pu Myong-dong, Kim Tủk-si, Kang Yu, Song Chin, Kim Sok, Kang Nae, O San, and Ko Naeŭltong had to be called ten times before they would answer once. Some worked only when they could not help it. Among San Kủn-bo, Kim Koe-san, Ko Pok, Kim Song, Kim Sok-kwi, Yi Hyo-t'ae, and Kim Chin-san*,23 some worked hard by day and slacked by night, and some worked hard at first and became lazy later. Hồ Sang-ni, Kwồn San, Kim Ko-Myặn, Kim Kujilhoe, Chooe Köisan, Kim To-jong, Ko I-hok, Munhoe, Hyon San, Han Mae-san, Kwon Song, and Makkům worked hard night and day and made the sailing of the boat their responsibility. Chồng eo, Kim Chung, Yi Chăng, Son Hyo-ja, Yi Hyo-ji, and An Ủi, either personally undertook jobs or oversaw the repairing of the boat in the hope of finishing the work. But after we met the pirates and again were set adrift, they gradually changed from what they had been before, and none of them cared whether he lived. The ship had been pounded by violent waves now for many days. There were a hundred holes and a thousand strains; no sooner was one stopped than another leaked. So much water came through the cracks that we could not bail fast enough to keep up with it. I said, “With the water leaking like this and, too, the boatmen's loyalty as uncertain as it is, how can I in foolish pride sit and wait for death?”' Then with Chòng Po and five other men I myself bailed the water almost all out. More than ten men, from Sang-ni down, also regained a little of their strength and got up. At night there was no wind, but it rained. We came to a large island, and though we wanted to approach and moor, we could not, since the evening tide was against us. We rode in the current at sea.

3월 2일

  • 원문:初二日,過房村疇,是日少雨大風,自新安驛,過馬家淺、雙溝、豐·沛·蕭·陽四縣大廠及房村集,又過金龍顯聖靈廟,至呂梁小洪,以竹索練舟而上,過尼陀寺,西岸有關羽、(蔚)尉遲公、趙昂之廟,又過房村驛,至呂梁大洪,洪在呂梁山之間,洪之兩傍,水底亂石,噬嚴峭立,有起而高聳者,有伏而森列者,河流盤折,至此開岸,豁然奔放,怒氣噴風,聲如萬雷,過者心悸神怖,間有覆舟之患,東岸築石堤,鑿翻翻以決水勢,雖鼻居舠,必用竹綱,演十牛之力,然後可挽而上,臣等自青山龍神祠前,逆洪水過形勝樓,夜過工部分司、王家橋、李家橋、老聃廟,至水首廟前,洪之湍急處可八九里,陳萱謂臣曰:“此呂梁洪也,大禹疏鑒以後,有秦叔寶者,管修此洪”云云,臣曰:“《禹貢》‘治梁及岐’注云: ‘梁, 呂梁山也.’ 勵道元云: ‘呂梁之石崇鍊,河流激盪,震動天地,此洪無奈是乎?”蕾曰:“果若然也,但《禹貢》呂梁載在冀州,此洪轄徐州,為可疑耳.”
  • 국역:방촌역(房村驛)을 지났습니다.

이 날은 비가 조금 내리고 큰바람이 불었습니다.

신안역에서 마가천(馬家淺)·쌍구(雙溝)·풍현(豊縣)·패현(流縣)·소현(蕭縣)·탕현(陽縣) 등 4현의 부창(夫__)352과 방촌집(房村集)353을 지나고, 또 금룡현성령묘(金龍顯聖靈廟)를 거쳐 여량소홍(呂梁小洪)54에 이르러 대로 만든 새끼로 배를 끌고 올라가서 이타사(尼陀寺)를 지나니, 서쪽 언덕에 관우(關羽)와 울지공(尉遲公)355과 조앙(趙鬪)356의 사당이 있었습니다.

또 방촌역(房村驛)을 지나 여량대홍(呂梁大洪)에 이르니, 홍은 여량산(呂梁山)의 사이에 있었습니다.

홍(洪)의 양쪽 가의 물밑에는 여기저기 흩어진 돌과 가파른 바위가 높이 서 있었는데, 일어나서 높이 솟은 것도 있고 엎드려 죽 늘어선 것도 있었습니다.

강의 흐름이 꼬불꼬불하다가 이곳에 와서야 언덕이 탁 트여서 세차게 흐르는데, 세찬 기세는 바람을 뿜고 소리는 우레와 같아 지나가는 사람들은 두려워서 가슴이 두근거렸으며 간혹 배가 뒤집힐까 걱정했습니다.

동쪽 언덕에는 돌 제방을 쌓았는데 서로 어긋나게 파내어 물살을 터놓았습니다.

비록 작은 거룻배일지라도 반드시 대로 만든 새끼를 사용하여 소 열 마리라야만 배를 당겨서 올릴 수가 있었습니다.

신 등은 청산용신사(靑山龍神祠)357 앞에서 홍수(洪水)를 거슬러 형승루(形勝樓)를 지나서 밤에 공부분사(工部分司)·왕가교(王家橋) · 이가교(李家橋)·노담묘(老聃廟)를 지나 수수묘(水首廟) 앞에 이르렀습니다.

홍의 여울이 급한 곳은 8-9리나 되었습니다.

진훤은,

“이것이 여량홍입니다. 우왕이 땅을 뚫어 막힌 물을 통하게 한 이후에 진숙보(秦叔寶)359 란 사람이 이 홍을 맡아 수리하였습니다” 라고 운운하였습니다.

신이 말하기를,

“우공〉의 ‘양(梁)과 기(岐)를 다스린 다'는 구절의 주에, 양은 여량산이다'라 했으며, 역도원(鄭道元)은, 여량의 돌이 우뚝 솟았으므로, 강물이 이에 부딪쳐서 천지를 진동시킨다'고 했으니, 이 홍이 그게 아니겠습니까?”라고 하였습니다.

진훤이 말하기를,

"과연 그럴 듯합니다. 다만 우공>의 여량은 기주(__州)에 기재되어 있는데, 이 홍은 서주(徐州)에 관할되어 있어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 영역: 2nd Day. Passing Fang-ts’un Station. This day there were light rain and high winds.

From Hsin-an Station we (went past Fang-ts’un Station) and came to Lüliang Great Flood. The flood was in Lü-liang Mountains, and on both sides of it, scattered rocks jutted up sharply in the river bed. Some rose up high, and some were in low-lying clusters. The river twisted and turned, and when it came to those open banks it burst out free, angry and fuming, its voice like ten thousand claps of thunder. The hearts of those who passed pounded, and their spirits quaked. Boats occasionally met disaster. A stone levee that had been built on the east bank had been cut irregularly to check the force of the water, but even for tenders, it was necessary to use twisted bamboo rope and the power of ten oxen before they could be pulled up. From in front of Ch’ing-shan-lung-shen Shrine, we went up the flood past [several places] and arrived in front of Shui-shou Shrine. The fastest part of the flood was eight or nine li long. Ch’en Hsüan said to me, “That was Lü-liang Flood. After the Great Yü did the dredging and channelling, there was a Ch'in Shu-pao who supervised the repairing of this flood.”70

I said, “In Yü kung [after the passage], [He] took effective measures at Liang and Ch'i' [Legge, III: 94], a note says, ““Liang” is Lü-liang Mountain.' Li Tao-yüan says, “The rocks of Lü-liang rise up high. The flow of the river us turbulent and shakes heaven and earth.'71 This flood must be none other than that one.” Hsüan said, “So it seems, indeed, but in Yü kung [it says], 'Lü-liang lies in Chi-chou. '72 These rapids are in Hsü-chou, so it is somewhat puzzl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