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남 역사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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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ziibuyan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0년 3월 31일 (화) 22:44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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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역사박물관(河南博物館)
대표명칭 하남역사박물관
한자표기 河南博物館
영문명칭 Hanam Museum of History
유형 박물관
주소 경기 하남시 덕풍동로 30
관련물품 선사실, 고대실,고려실,조선실,근현대실,어린이체험실



정의

경기 하남시 덕풍동로 [https://map.naver.com/v5/entry/place/35489773?c=14160050.2588000,4515413.5393615,15,0,0,0,dh 로에 위치한 박물관이다

내용

하남은 선사시대부터 근현대까지 유구한 역사와 많은 유적, 유물들이 존재하는 역사와 문화의 도시입니다. 하남역사박물관은 하남의 문화유산을 수집, 연구, 보존하고 전시, 교육 등을 통해 관람객과 공유하고 있습니다. 하남역사박물관은 열린 문화공간이자 우리 지역을 대표하는 박물관이 되고자 합니다.

전시

아름다운 물결과 모래로 이루어진 섬이란 뜻을 지닌 하남의 ‘미사(渼沙)’ 지역은 그동안 신석기시대 및 청동기시대의 대표 유적(하남 미사리 유적, 사적 제269호)으로 알려져 왔으나, 구석기 시대 유적이 추가로 확인되면서 선사시대부터 지금까지 인류가 거주하기에 최적의 환경이라는 것이 고고학적으로 다시 증명되었습니다. 백제는 기원전 6년 한산 아래 하남위례성을 축조하고, 이듬해 도읍을 옮겼습니다. 오늘날 하남을 포함한 한강 일대는 백제, 고구려, 신라가 서로 주도권을 차지하기 위해 대립한 곳으로 삼국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고루 분포하고 있습니다.하남 이성산성(사적 제422호)은 춘궁동에 위치한 삼국시대 석축산성으로, 산성의 형태는 산의 능선과 계곡을 따라 돌을 쌓은 포곡형(包谷形) 산성입니다. 하남은 고려 성종대 지방 행정상 요지에 설치한 12목 중 광주목이 위치한 곳이자 고려 수도인 개경으로 들어가는 중요 관문이었습니다. 12목에는 지방의 교육을 전담하는 기관을 두는 한편 상평창을 설치하여 지방 경제의 안정을 도모했습니다. 고려 후기 하남을 포함한 광주 지역은 남쪽으로 진격하려는 몽골군을 막는 군사전략상 요충지로 인식되었습니다.

고려시대 불교 융성과 함께 광주목의 치소였던 하남에도 화려한 불교문화가 발달하였고, 덕풍천을 중심으로 금암산과 이성산, 객산 사이에 불교 관련 다양한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습니다. 하남에는 동사지 오층석탑(보물 제12호)과 삼층석탑(보물 제13호), 하사창동 천왕사지와 철조석가여래좌상(보물 제332호), 교산동 마애약사여래좌상(보물 제981호), 법화사지(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6호), 약정사지, 자화사지 등이 있습니다.

하남은 지방의 행정을 맡는 광주관아와 유교적 소양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광주향교(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3호)가 위치한 조선시대 광주 지역의 행정중심지입니다. 또한 하남은 수도 한양의 배후지역으로 많은 사람들의 왕래와 물류유통이 활발한 교통의 길목이었습니다. 1895년(고종 32)에 이르러 지방행정구역의 개편으로 하남은 광주군에 소속됐습니다. 오늘날의 하남시는 과거 광주군의 동부면과 서부면 일대로, 1912년에 이르러 28개의 동리로 확대되어 동부면에 17개 동리, 서부면에 11개 동리가 존재했습니다. 이후 꾸준한 발전을 이룩하다가 1980년 동부면이 동부읍으로 승격한 후 1989년 광주군 동부읍, 서부면, 중부면 일부가 합쳐져 하남시가 탄생하였습니다.서울 동쪽에 인접해 있고 경기도의 중심부에 자리한 하남시는 수도권의 부도심으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박물관에서 놀자! 어린이 체험실 하남의 역사와 문화재를 놀이를 통해 배웁니다.

대표적인 사상들을 소개하였다. 선사실, 고대실, 고려실, 조선실, 근현대실, 어린이체험실,  등 실학자들을 그린 초상화와 함께 이들이 집필한 고서들과 지도, 천문 관측 도구들을 전시하고 있다.[1]

소장자료

현실의 규모는 가장 작은 3호분이 길이 280㎝, 너비 170㎝ 정도이고 가장 큰 6호분이 길이 318㎝, 너비 180㎝, 9호분이 길이 310㎝에 너비 240㎝ 정도로서 그리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5,6,9호분을 제외한 나머지 고분은 현실 네 벽의 평면형이 바깥으로 배가 부른 이른바 동장식이며 3호분의 후벽 최하단석은 보통의 할석이 아니라 한장의 커다란 장대석을 이용하고 있는 점이 특이하다. 대개 2인이 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7호분의 경우 목관의 크기는 길이 214~257㎝, 너비 57~67㎝ 정도로 추정된다. 9호분을 제외한 모든 고분에서 부장된 토기가 발견되었는데 단경호와 직구호 등 호류가 주종을 이루며 고배와 완 등이 소수 포함되어 있다. 부장품 중 가장 주목되는 것은 장신구류이다. 1,3 ,6,7,9호분에서 은제 팔찌·은제 가랑 비녀·금동제 가랑비녀 등이 출토되었다. 총 9기의 고분 중 5기에서 장신구가 출토된 점은 매우 주목되는데, 한성 백제의 횡혈식 석실분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현상으로 피장자 집단의 성격을 추정할 때 주목할 점이다.

백제석실분 동편 백현동에 고구려의 횡혈식 석실분 2기가 발굴조사되었다. 구릉 남사면에서는 2기의 고구려 횡혈식 석실분이 발견되었다. 그 중 1호분은 쌍실묘로서 장벽을 공유하고 있다. 벽석은 커다란 할석을 이용하여 최하단석은 눕혀쌓고 그 위는 세워쌓는 방법으로 올렸으며 천장은 모퉁이의 모를 줄이는 말각천장이다. 벽석의 빈틈은 작은 자갈과 회로 채워 넣었다. 서편의 1-1호 현실은 길이 170㎝, 너비 125㎝, 잔존 높이 110㎝의 장방형으로서 모두 우편재 연도이다. 1-1호 현실의 연도에는 천장으로 사용된 커다란 장대석 2매가 남아 있으며 입구는 길이 100㎝의 판석을 문비석처럼 사용하여 폐쇄한 것이 확인되었다. 1-1호 현실의 바닥은 생토면 위에 두께 10㎝ 정도의 적갈색 점토를 깔아서 정지하였으며 일부 불 다짐한 흔적도 확인되었다. 한편 2호분은 길이 185㎝, 너비 140㎝로서 장방형 평면을 띠고 있으며 잔존높이는 120㎝이다. 역시 우편재 연도이다. 반면 북벽 서벽부, 서벽 전체, 남벽 서반부에 걸쳐 할석으로 만든 관대를 설치한 점이 1호분과 다르다. 쌍실묘와 말각천장의 존재는 고구려고분과의 관련성을 뒷받침해주며, 특히 말각조정의 천장구조는 용인시 기흥구 보정동 고구려고분군과 비슷하며 2호분에서 보이는 좌편재 관대는 화성시 청계지구의 고구려 석실분과 공통적이다.






지식 관계망




관계정보

항목A 항목B 관계 비고
1호 백제 석실분 판교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2호 백제 석실분 판교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3호 백제 석실분 판교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4호 백제 석실분 판교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5백제 석실분(현지보존) 판교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6백제 석실분(현지보존) 판교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7호 백제 석실분 판교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8호 백제 석실분 판교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9호 백제 석실분 판교박물관 A는 B에 소장되었다 A edm:currentLocation B

주석

  1. "https://www.hnart.or.kr/museum/index.do 하남역사박물관]", 『두산백과』onl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