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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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fs신민정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6월 24일 (월) 21:5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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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박종철(朴鍾哲, 1964년 4월 1일 ~ 1987년 1월 14일, 부산 출생)은 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가로, 서울대학교 언어학과에 재학중이던 1987년 1월13일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관련 주요 수배자를 파악하려던 경찰에 강제 연행됐다. 박 열사는 서울 용산구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물고문을 받은 그는 이튿날 숨졌고 박 열사의 죽음은 그해 6월 항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1]

내용

박종철 열사는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1986년 4월1일 청계피복노조 합법화 요구 시위로 구속된 뒤 같은 해 7월15일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출소했다. 출소 후에도 학생운동을 이어가던 박종철 열사는 1987년 1월13일 자신의 하숙집에서 치안본부 대공분실 수사관에게 연행됐다. 경찰이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 관련 수배자인 박종운의 소재 파악을 위해 그 후배인 박종철 열사를 불법으로 체포한 것이었습니다. 다음 날인 14일 ‘대학문화연구회’ 선배인 박종운의 소재를 묻는 질문에 박종철 열사가 계속 답하지 않자 물고문·전기고문이 시작됐고 결국 박종철 열사는 509호 조사실에서 사망했습니다. 영원히 묻힐 것 같던 진실은 우연히 사건의 단서를 접하게 된 중앙일보 신성호 기자의 ‘경찰에서 조사받던 대학생 쇼크사’라는 짧은 기사 이후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박종철 열사 사망 다음날인 15일 강민창 치안본부장이 박종철 열사 사망에 대해 “‘탁’ 하고 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고문에 의한 사망이 아닌, 단순 쇼크사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당시 경향신문은 경찰이 발표한 내용은 이렇게 전합니다.

-이날 박군은 오전 8시10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9동 하숙집에서 경찰에 연행된 뒤 9시16분쯤 경찰이 제공한 콩나물국과 밥으로 아침식사를 했는데 “어제밤 술을 많이 마셔 밥맛이 없다”며 냉수 몇 컵을 요구해 마셨다는 것이다. 이어 10시 50분쯤부터 수사관의 신문을 받기 시작, 11시20분쯤 수사관이 수배된 박종운군(서울대생)의 소재를 물으면서 책상을 세게 두드리는 순간 의자에 앉은 채 갑자기 “억”하는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는 것이다. 경찰은 곧바로 박군을 용산의 중앙대 부속병원으로 급히 옮겼으니 이날 낮 12시 숨졌다. 경찰은 “박군을 조사할 당시 수사관의 가혹행위는 절대로 없었다”고 전했다-

멀티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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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

참고문헌

기여

주석

  1.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855263.html#csidxd3994bfa6334c0a8332576cf0bca3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