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석
인물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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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필명 백석(白石),
본명 백기행(白夔行) |
출생 |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군 |
사망 | 1996년(85세) 양강도 삼수군 관평리 |
성별 | 남자 |
국적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직업 | 시인, 교사, 기자, 세관공무원 |
경력 | 조선일보 재직, 함흥 영생여고보 교사, 만주 안동에서 세관 업무에 종사[1] 문학예술총동맹 외국문학 분과위원[2] |
정의
백석은 일제강점기의 시인이다.
내용
생애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定州)에서 출생하였다. 오산(五山)중학과 일본 도쿄[東京] 아오야마[靑山]학원을 졸업하였다. 조선일보사 출판부에 근무하였으며, 1936년 시집 《사슴》을 간행하여 문단에 데뷔하였다. 지방적·민속적인 것에 집착하며 특이한 경지를 개척하는 데 성공한 시인으로, 8·15광복 후에는 고향에 머물렀다. 1963년을 전후하여 협동농장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연구자에 의해 유족 확인을 거친 후, 사망연도가 1996년임이 밝혀졌다.[3]
연인 관계
- 란을 중심으로
- 자야를 중심으로
- 그 외 백석의 여인들
안도현의 '백석평전'과 자야 김영한 여사의 '내 사랑 백석'을 통해 백석은 세 번의 결혼을 했다고 알 수 있다. 자야 여사를 만나던 시기에 두 번의 억지 결혼을 했다.
우리는 백석이 결혼을 파탄내고 버리고 떠난 여성들의 삶이 그 후에 어떠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형태로 잠시나마 백석과 맺어졌던 그들의 삶이 황당하고 참담했을 거라고 짐작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아무리 부모의 강권에 의한 결혼이라고 하더라도 백석은 상대 여성의 결혼에 대한 일말의 기대와 환상을 여지없이 깨뜨려버렸다.[4]
이북에서의 백석은 리윤희라는 여성과 결혼하여 첫째아들 화제, 맏딸 지제, 둘째아들 중축, 막때딸 가제, 막내아들 구를 낳았다. 이 사실은 삼수군 관평리에 살고 있던 백석의 유족들이 중국 옌벤의 조선족 지인들을 통해 국내에 알려왔기 때문에 확인이 된 것이다.[5]
주요 작품
- 《사슴》: 1936년 1월 20일 자가본(自家本)으로 발행한 시집이다.
- 《사슴》에는 총 33편의 시가 4부로 나뉘어 수록되어 있다. 1부 ‘얼럭소새끼의 영각’에 〈가즈랑집〉·〈여우난곬족(族)〉·〈고방〉·〈모닥불〉·〈고야〉(古夜)·〈오리 망아지 토끼〉 등 6편, 2부 ‘돌덜구의 물’에 〈초동일〉(初冬日)·〈하답〉(夏畓)·〈주막〉(酒幕)·〈적경〉(寂境)·〈미명계〉·〈성외〉 등 9편, 3부 ‘노루’에 〈산비〉·〈쓸쓸한 길〉·〈머루밤〉·〈노루〉 등 9편이 실려 있다. 4부 ‘국수당 너머’에 〈절간의 소이야기〉·〈오금덩이라는 곳〉·〈정주성〉(定州城)·〈통영〉(統營) 등 9편이 각각 실려 있다.
- 《사슴》의 판권지 상단에는 ‘詩集(시집) 사슴 百部 限定版 定價 二圓(100부 한정판 정가 2원)’이라고 표시되어 있으며 그 하단에는 ‘著作兼 發行者 白石(저작 겸 발행자 백석)’이라고 되어 있다.
-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1938년에 발표한 시로 현실을 초월한 이상, 사랑에 대한 의지와 소망을 노래한 작품이다.
- 《서행시초》(西行詩抄): 1939년 《조선일보》에 재입사한 백석이 4회에 걸쳐 발표한 연시로 자신의 고향인 평안도를 여행하면서 발표한 작품이다.
- 〈팔원〉(八院): 연시 〈서행시초〉(西行詩抄)의 세 번째 시인 〈팔원〉은 승합자동차를 타고 여행하던 도중 차에 오르는 ‘나이 어린 계집아이’의 모습을 보고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는 한국 민족의 비극적 삶을 떠올리며 이를 형상화한 내용이다. 승합자동차 안팎의 상황을 사실적이면서도 상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 《남행시초》(南行詩抄): 《조선일보》에 4회에 걸쳐 발표한 연시로 경상남도 통영, 고성, 창원, 사천을 여행하면서 발표한 작품이다.[6]
시풍(詩風)
백석의 시 세계는, 당시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았으면서도, 향토적인 서정의 세계를 사투리로 형상화하는 특징을 띠고 있으며, 일제 강점 하 어렵게 살고 있던 민중들의 애환과 삶을 그려내는 모습을 보인다.[7]
백석은 소월과 만해, 지용이 다져놓은 현대시의 기틀 위에서 새로운 시의 문법을 세움으로써 한국 시의 영역을 넓히는 데 기여한 시인이다. 평안 방언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언어들을 시어로 끌어들이고 고어와 토착어를 빈번하게 사용함으로써 시어의 영역을 넓히고 모국어를 확장시켰다. 또한 우리말의 구문이 품고 있는 의미 자질을 적절히 활용하여 경험세계를 감각적으로 재현하였다. 백석의 시는 형태적인 측면에서도 정제된 운율이 있는 전통적인 서정시 형식 대신 이야기 구조를 갖춘 서사지향적인 시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 때 ‘이야기 구조’는 서사양식처럼 사건의 서사적 진행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장면 묘사와 서술에 의미의 중심이 놓여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주 짤막한 형태로 이루어진 시들은 대상의 미감을 가장 압축된 형태로 포착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또한 시각 외에 청각과 후각, 촉각, 미각 등 거의 모든 감각을 사용하여 대상을 감각적으로 포착하고 표현해냈다. 구체적인 생활 현장에서 벌어지는 삶의 면면들을 그려낸 시들은 풍속을 시로 재현해냄으로써 풍속사적인 의의를 담고 있기도 하다. 백석의 시 중에서 1인칭 화자의 주관적 독백을 표출하는 전형적인 서정시들은 특별한 수사나 기교 없이 평명한 언어로써 차분하게 내면을 성찰하고 있다.[8]
멀티미디어
이미지
네트워크 그래프
백석의 인물 관계 묘사 예정 백석 란 자야 신현중 신순정 서병직 신순영 허준 혼인관계 속의 여인들
참고문헌
- '백석평전(안도현)'
- '내 사랑 백석(김영한)'
기여
주석
- ↑ 네이버 한국현대문학대사전 '백석'
- ↑ 네이버 지식백과 '백석'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이는 북한 생활 초기의 직업이었다.
- ↑ 네이버 지식백과 '백석' (두산백과)
- ↑ 안도현 '백석평전' 206-207p
- ↑ 안도현 '백석평전' 419p
- ↑ 위키피디아 '백석'
- ↑ 네이버 한국현대문학대사전 '백석'
- ↑ 네이버 지식백과 '백석'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 ↑ 조선일보 기사 '백석의 '테스'에서는 수레가 뜨즉뜨즉(띄엄띄엄) 굴러간다'
- ↑ 네이버 블로그 추후 보다 정확한 출처 찾을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