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만
인물 정보 | |
---|---|
이름 | 정재만(鄭在晩) |
출생 | 1948년 3월 4일 |
사망 | 2014년 7월 12일 |
성별 | 남 |
국적 | 한국 |
직업 | 무용가 |
경력 | 숙명여자대학교 명예교수, 정재만남무단 대표, 벽사춤아카데미 이사장, 2006 한국의집 예술총감독 |
개관
경기도 화성 출신의 무용가이다.
경희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무용을 전공한 정재만은 의사가 되길 바라는 부모의 바람과 달리 무용가의 길을 걸었다. 인천 대건중 2년 시절, 서울 충무로의 송범무용연구소를 발견하고 무작정 찾아가 춤을 배웠다. 그의 춤을 본 한영숙은 절친했던 송범에게 “제자로 삼게 이애주와 정재만을 달라”고 청했다. 이를 계기로 고인은 승무, 학무, 살풀이, 훈령무, 태평무 등을 차례로 전수받으며 근대 한국 춤을 집대성한 한성준과 그 계보를 이은 손녀 한영숙의 맥을 잇는 춤꾼으로 자리매김했다.
빈소에서 만난 이애주 서울대 명예교수는 “고 한영숙 선생이 유일하게 남자 제자를 받았던 사람이 정재만 선생”이라며 “고인의 춤에 힘과 기교가 있음을 눈여겨보신 뒤 할아버지인 한성준 선생의 학춤도 전수하셨다”고 말했다. 성기숙 한예종 교수도 “고인은 독보적인 기교로 한국 남성춤의 멋과 흥취, 풍류 정신을 세련된 극장 미학으로 승화시켰다”고 평했다.
고인은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을 수상한 최초의 남성무용수였다. 1972년 제7회 동아무용콩쿠르에서 승무로 참가해 대상을 받았다. 조흥동 경기도립무용단 예술감독은 “대상을 받았을 당시 무용계에선 ‘승무춤의 천재가 나타났다’고들 했다”고 회상했다. 고인은 이매방, 이애주에 이어 2000년 중요무형문화재 승무 예능보유자로 지정됐다.
1987년부터 숙명여대 무용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했고 정재만 남무단을 통해 남성무용수의 활동영역을 넓히는 데 기여했다. 1986년 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과 1988년 서울 올림픽 폐막식, 2002년 월드컵 전야제 등 굵직한 국가 행사에서 안무를 맡았다. 대한민국 예술원상, 서울시문화상, 대통령 표창, 옥관문화훈장, 프랑스디종국제민속예술제 금상 등을 받았다.[1]
영상 자료
관련 문서
주석
- ↑ ""명복을 빕니다 - 중요무형문화재 정재만 숙명여대 명예교수", 동아일보, 2014.07.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