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선교장
강릉 선교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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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번호 | 중요민속문화재 제5호 |
지정일 | 1967년 04월 20일 |
지정 명칭 | 강릉 선교장 |
한자 명칭 | 江陵船橋莊 |
영문 명칭 | Seongyojang House of Gangneung |
분류 | 역사관광지 > 고택 |
건립·제작 | |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운정길 63 (운정동) |
위도 | 37.786892 |
경도 | 128.885000 |
웹사이트 | http://www.knsgj.net |
목차
Seongyojang House
Seongyojang was the residence of Naebeon Lee (1703-1781) and his noble family and was built in the later period the Joseon dynasty. The house is designated as National Folklore Cultural Heritage No.5. It is said that around ten generations of Naebeon Lee's descendants have continued to live in the house, preserving a traditional way of life for the past 300 years. The house comprises the anchae (women’s quarters), sarangchae (men’s quarters), haengnangchae (servants’ quarters), and detached quarters. The house also has a pavilion from where residents could gaze at a pond will blooming lotus flower.
정의
강릉 선교장(江陵船橋莊)은 강원도 강릉시 운정동에 있는 조선 후기에 양반의 집으로 300년 역사와 전통을 이어가는 한국 전통 상류주택이다. 99칸의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상류주택으로서 1967년4월 18일에 강릉 선교장은 중요민속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었다. 그 원형이 잘 보전된 아름다운 전통가옥으로 개인소유의 국가 문화재로서 유명한 장소이다. 2000년을 기해 한국 방송공사에서 20세기 한국 TOP 10을 선정할 때 한국 전통가옥 분야에서 한국최고의 전통가옥으로 선정되었다. [1]
위치
선교장(船橋莊)의 유래
선교장(船橋莊)은 지금보다 넓었던 경포호를 배타고 이동했다고 하여 '배다리 마을(船橋里)(선교리)'라는 이름에서 유래했다.
선교장(船橋莊)관련 인물
선교장은 조선 영조때(1703년)에 조선 태종의 둘째 아들인 효령대군 후손인 이내번이 족제비 떼를 쫓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이 명당 자리에 집을 지어 그 후 가세가 크게 번창하였다고 전해지며 현재에도 그 후손이 살고있다.[2]
선교장(船橋莊)의 입지, 규모 및 건축양식
강릉 선교장은 봉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를 기준으로 남쪽을 향해 좌청룡과 우백호의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어머니의 품안처럼 감싸 안은 처럼 보인 좋은 위치라고 해서 집터를 지었다고 전해졌다. 총 1,051.24m²(318평)으로, 안채, 동별당, 서별당, 연지당, 외별당, 사랑채, 중사랑, 행랑채, 사당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전형적인 사대부가의 면모를 갖춘 공간이다. 큰 부자집으로 항상 곡식이 가득하여 흉년에는 창고를 열어 이웃에게 나누어주며 베푸는 집안이라고 전해졌다. [3]
전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개인 살림 집으로, 전형적인 양반 상류주택이지만, 일반 사대부의 집들과는 다른 공간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반적인 상류주택은 평면구조에 따라 日자형, 月자형, 口자형, 用자형 등의 길상문자형의 공간구조를 가지 고 있지만, 선교장은 분산형 주택으로 다른 상류주택에서 볼 수 자유로운 공간구조를 이루어진다. [4]
동영상
- 문화유산채널, "선교장 1부 삼백년 고택, 조선의 생활을 담다" (방송일: 2015.10.04)
가상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