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당
임경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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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번호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6호 |
지정일 | 1974년 9월 9일 |
지정 명칭 | 임경당 |
한자 명칭 | 臨鏡堂 |
영문 명칭 | Imgyeongdang House |
분류 |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가옥 |
건립·제작 | 조선시대 16세기 |
주소 |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소목길 18-26(금산리 445-1) |
위도 | 37.7399 |
경도 | 128.8515 |
웹사이트 | 임경당', 문화재청, 2022년 10월 7일</ref> |
정의
임경당(臨鏡堂) 김열(金說: 1506∼?)의 별당이다.
위치
내용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와 같은 시대의 사람으로 학문과 덕행이 뛰어났던 임경당(臨鏡堂) 김열(金說: 1506∼?)의 별당이다.
개요
당호인 임경당은 김열의 아호이며, 마을 위쪽에 있는 상임경당(上臨鏡堂)과 구분하기 위해 하임경당(下臨鏡堂)이라고도 한다.
인물
임경당(臨鏡堂) 김열(金說: 1506∼?)은 조선시대의 학자로 본관은 강릉, 자는 열지(說之), 호는 임경당(臨鏡堂)이다. 강릉김씨 임경당파의 파조(派祖)이고, 명주군왕의 24세손이다. 강릉시 성산면 금산리에 세거하며 경사(經史)와 문장으로 널리 알려졌으나 과거에 응시했다는 기록은 없고, 『강릉김씨천이백년사(江陵金氏千二百年史)』에 의하면 평강(平康)의 훈도(訓導)로 제수되었으나 처음부터 불사(不仕)하여 일생 동안 벼슬길에는 나가지 않고 효친과 우애로 제가(濟家)하였다 한다. 형제가 한 마을에 살면서 우애가 깊었고 집 주위에 선대에서 심어놓은 소나무를 후손들이 함부로 손을 댈까봐 율곡(栗谷)에게 부탁하여 「호송설(護松說)」을 지어달라고 하였다. 김열은 학문이 깊고 문장이 뛰어나 주위에서 과거를 봐서 출사할 것을 권했으나, 효친과 우애로 평생을 일관하였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그를 임경처사(臨鏡處士)라 불렀다고 한다. 1808년(순조 8)에 강릉향현사(江陵鄕賢祠)에 배향되었다.
건물
향교는 배향공간의 중심 건물이 대성전이고, 강학공간의 중심건물인 명륜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배산임수형 대지에 남쪽으로 축대와 계단이 있고, 그 위에 정문과 막돌 담장이 둘러싸고 있다. 경내에는 문묘에 속하는 대성전, 동서무, 전랑 이 있으며, 향교에 속하는 명륜당과 동서재가 있다. 전면 11칸, 측면 2칸 규모의 명륜당 전면 좌측에는 “향교 묘정비(鄕校廟庭碑)”가 있고, 그 좌측에 “금리 민공 성인비(錦里閔公成仁碑)”가 있다. 동서 재는 전면 5칸과 측면 2칸의 규모를 각각 갖추고 있으며, 명륜당 내에는 “명륜당 중수기(明倫堂重修記)”와 “성전 중수기(聖殿重修記)” 등 다수의 현판이 게판되어 있다.
의의
조선시대에는 나라로부터 토지와 책·토비 등을 지급 받아 운영하였다.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으나, 명륜고등학교를 향교에서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소장되었던 책은 한국전쟁으로 대부분 불타 없어졌으며, 현재 『공부자성적도』 등 70여 권만 남아있다.
관련 의식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에 가장 전통적인 유교식 제례를 올린다.
사진자료
참고문헌
- '강릉향교', 문화재청, 2022년 10월 6일
- '강릉향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2022년 10월 6일
- 강릉대학교 박물관(1995), 『강릉의 역사와 문화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