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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me
Episode 3: 한국의 소동파 덕후, 김정희
Synopsis
옹방강이 해마다 소동파에 대한 ‘모소(慕蘇)’의 열기를 더해가던 중 1809년 10월 28일 조선(朝鮮)에서 연행사(燕行使)로 사행을 가게 된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와 조우하면서 옹방강의 동파벽은 또한 김정희에게 전해지게 되었고, 이후 김정희에 의해 조선 문인들 사이에서 모소 열풍이 불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옹방강과 김정희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이후 조선 문인들 사이에서 지속된 ‘배파회(拜坡會)’의 현상은 성립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후 김정희의 제자 강위(姜瑋: 1820∼1884)는 1876년(고종 13년)에 이건창(李建昌: 1852∼1898), 조택희(趙宅熙) 등과 동파생진회(東坡生辰會)를 결성하여 지속적으로 ‘모소(慕蘇)’ 풍조를 형성해간다. 앞서 추사 김정희가 연행을 다녀온 이후, 1812년 7월에는 자하(紫霞) 신위(申緯:1769∼1847)가 왕세자 책봉의 서장관 자격으로 연경을 방문한다. 김정희는 신위를 위해 〈송자하입연십수(送紫霞入燕十首)〉를 써서 전별 선물로 주었다. 신위는 김정희의 소개장을 들고 옹방강을 만날 수 있었고 귀국 후에는 옹방강의 아들 옹수곤(翁樹崐)과도 지속적인 교유를 나누었다. 이후 신위는 해마다 소식의 생일이 돌아오면 몇몇 지인들과 자신의 보소실(寶蘇室)에 함께 모여 벽에 입극도(笠屐圖)를 걸고, 향을 피우며, 죽순과 육포를 올리는 등 추모하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이러한 점은 옹방강이 행했던 배파제(拜坡祭)의 형식이 신위에게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한편 김정희와 신위를 중심으로 퍼져나간 모소열(慕蘇熱)은 궁중으로까지 유입되었는데, 헌종(憲宗)이 자신의 거처인 낙선재(樂善齋)에 추사의 글씨로 ‘보소당(寶蘇堂)’이라는 현판을 내걸고 신위로 하여금 실제 사용하던 인장과 직접 수집한 인장, 왕실에서 가지고 있던 인장 등을 집대성하도록 하여 《보소당인존(寶蘇堂印存)》을 제작한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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