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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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숙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4월 11일 (목) 05:22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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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관

논산읍에서 남동쪽으로 난 643번 지방도로로 10분 남짓 가면 바로 관촉사 입구에 닿는다. 100m쯤의 나지막한 야산인 반야산 중턱에 있는 관촉사는 너른 연무벌을 향하고 있는데, 다알다시피 연무는 우리나라 장정이면 한번은 거쳐야 하는 상징처럼 되어있는 ‘논산훈련소’가 있는 곳이니 이 절에 늠름히 서 있는 관음보살상의 기상과도 맥이 닿아 있다고 함직하다.

이 절에는 ‘은진미륵’으로 유명한 부처가 있다. 도상 자체로는 관음보살상인데도 사람들은 흔히 그렇게 부른다. 미륵이 대개 상을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이 있기보다는 조성된 내력에따라, 또 사람들의 바람에 따라 불리게 마련이니 그 두 이름이 다 통용되어도 무방하겠다. 다만 미륵부처가 뜻하는 의미가 참으로 여러 가지임은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미륵상의 다양성에서 알 수 있는데, 이 관촉사의 미륵은 왕권과 밀접한 관련을 맺은 관제미륵 중의 하나이다.

부처 왼쪽에 있는 사적비에 따르면, 고려 4대 광종 19년(968)에 왕명을 받은 혜명대사가 조성하기 시작하여 37년 만인 7대 목종 9년(1006)에 완성되었는데 찬란한 서기가 삼칠일 동안 천지에 가득하여 찾아오는 사람으로 저잣거리를 이룰만큼 북적댔다고한다. 또 머리의 화불(化佛)이 내는 황금빛이 하도 밝아 송나라 지안대사가 빛을 따라 찾아와서 예배하면서 절 이름을 ‘관촉사’라고 지었다고 한다.

이 절에는 관음보살상말고도 창건 당시에 같이 조성했을 것으로 보이는 석등과 석탑, 그리고 연화배례석이 있다.

영문 개관

Gwanchoksa Temple located in Nonsan, South Chungcheong Province, is known for a host of cultural sites and intriguing legends. The most famous attraction of the temple is Seokjomireukbosalipsang Buddha (Treasure No. 218). The construction of the Buddha statue, widely known as “Eunjinmireuk Buddha,” started in 968 during the Goryeo period and lasted for 37 years. When the country’s largest stone Buddha statue was fully built (18.12m in height and 9.9m in girth) in 1006, the temple was said to have been crowded with people coming from across the country. The origin of the name of the temple has to do with the alleged “golden glow” emanating from the stone Buddha, but the original small sculpture placed in the head of the statue is now gone.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강화 전등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 제1785호)은 17세기 전반에 전북, 충남 등지에서 활동하던 수연(守衍)이 수화승으로 참여하여 1623년에 조성한 불상으로 수연이 수화승(首畵0僧)으로 조성한 작품들 가운데 지금까지 알려진 두 번째 불상이다. 삼불의 구성은 석가불을 본존으로 아미타불과 약사불이 좌우에 협시하는 형식으로서 조선 후기에 전국적으로 유행했던 삼세불의 도상을 보이고 있다. 불상들의 세부를 보면, 본존 석가불상은 단엄한 자세에 자비한 상호(相好)를 보이며, 좌우의 아미타불상과 약사 불상은 이목구비의 표현이나 비례 면에서 본존상 보다는 다소 조형감이 떨어지는 편이다. 본존상은 상호(相好)의 표현이 근엄하고 전체적인 신체비례 면에서도 안정감이 느껴져 시기적으로 앞서는 같은 수연 작의 서천 봉서사 목조 아미타여래삼존좌상(1619년)에 비해 조각적으로 세련된 감각을 보여준다.

삼세불상의 얼굴은 각각 독특한 상호를 보이고 옷주름 표현기법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인다. 이것은 아마도 전등사 삼세불상 조성에 참여한 조각승들 가운데 수화승 수연과 함께 서천 봉서사 극락전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1619년, 보물 제1751호) 조성에 참여했던 성옥(性玉)의 조각적 개성이 표현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세 번째 화원으로 참여한 영철(靈哲)은 이후 옥구 보천사 목조지장보살좌상과 시왕상(1634년, 익산 숭림사 봉안)과 남원 풍국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639년, 예산 수덕사 봉안)의 조성에 수연을 따라 참여했으며 성옥에 비해 연배가 아래인 조각승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전등사 대웅보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조성원문을 통하여 정확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조각적으로 우수하며, 조각승들과 나타난 발원시주자들의 명단이 잘 전하여 불상(佛像), 면금(面金), 체목금, 체목, 오금(烏金), 좌대(座臺), 보단(甫團), 채안(彩安), 복장(腹藏) 등 세부적인 시주 항목이 기록된 점 등에서 조선시대 불교조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강화 전등사 약사전 (江華 傳燈寺 藥師殿 )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전하지만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조선 선조 38년(1605)과 광해군 6년(1614)에 큰 불이 일어나 절이 모두 타버려, 그 이듬해 다시 짓기 시작하여 광해군 13년(1621)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

대웅보전 서쪽에 있는 아담한 약사전(보물 제179호)은 중생의 병을 고쳐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는 법당이다.『대웅전약사전개와중수기(大雄殿藥師殿改瓦重修記)』에 조선 고종 13년(1876) 대웅보전과 함께 기와를 바꾸었다는 기록이 보일 뿐 언제 지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고 건축 수법이 대웅보전과 비슷하여 조선 중기 건물로 짐작하고 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이며 주위에는 화려한 연꽃무늬와 덩굴무늬를 그려 놓았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수법이 특이하여 당시의 건축수법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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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

강화 전등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보물 제1786호)은 조성원문을 통하여 숭정(崇禎) 9년(1636)이라는 뚜렷한 조성연대를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이 조각승 수연(守衍)에 의해 조성된 지 13년이 지난 뒤에 역시 수연이 수화승이 되어 제작한 상들이다. 지장보살상과 그 좌우에 무독귀왕, 도명존자, 시왕(十王)와 귀왕, 판관, 사자상, 동자상, 인왕상 등 명부전의 권속이 많다보니 조각승도 12명이나 참여하여 수연의 지휘 아래 제작을 맡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상들의 조성을 위한 시주에 수많은 신도들이 참여한 것으로 보아 당시 전등사 일대의 대대적인 불사(佛事)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지장보살상은 방형의 얼굴에 엄중하면서도 자비로운 상호(相好)를 보이며 양 어깨에 걸쳐진 대의 옷자락은 유연한 주름을 이루며 하체로 연결된다. 양손으로는 지물을 들지 않고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설법인을 결하고 있는데, 전체적인 비례와 조형감이 우수하다. 지장보살상과 매우 유사한 특징을 보이는 도명존자상은 얼굴표현에서 사실성이 돋보이며, 장삼위에 가사를 입은 착의형식이 단정하다. 수연 조각의 특징을 가장 잘 보여주는 지장보살상과 도명존자 외에도 시왕상과 기타 권속의 여러 상에서 보이는 인간적이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는 수연 조각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조각기법상의 우수성, 조각가와 조성연대에 대한 분명한 기록, 원래부터 전등사 명부전 봉안을 위해 조성된 상이라는 여러 점에서 볼 때 그 가치가 큰 상들이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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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1. 문화유산정보

기여

일자 역할 이름 전공
2019.4. 편집 김은숙 인문정보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