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0-301A.episo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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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3월 23일 (수) 18:5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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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0-301A	협률사	          hasContextualEl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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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d

Theme

1900년대 초 한양 밤문화의 형성

Synopsis

협률사는 고종의 어극40년칭경례식을 위해 봉상시 안에 설치되었던 희대(무대공간)가 이곳에서 공연했던 연희단체인 협률사와 같은 이름으로 극장으로 운영됨.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실내극장. 밤 문화 형성은 한양 도심부의 기반 시설 위에서 성장한 것이다.
<에피소드1>먼저, 한양 밤문화의 형성은 한성판윤인 이채윤이 185년 9월부터 본격적인 도시개조 사업을 시행 한것부터 시작된다.
<에피소드2> 1899년 5월에 서대문과 청량리 구간 전차가 개통되고, 같은 해 12월 종로에서 남대문, 남대문에서 용산 사이의 확장 개통과 1900년 7월 경인철도, 경성에서 용산 확장 개통된다.
<에피소드3> 그리고 1900년 4월 10일에 처음으로 전차 정거장과 매표소 주변을 밝히기 위해 가로등 3개를 설치한다. 1901 민간을 대상으로 하는 전등 영업이 시작 되면서, 진고개 일본인 상점가에는 600개의 민간 전등이 가설된다.
<에피소드2> 협률사 뿐만 아니라 활동사진소의 밤 늦은 영업의 배경이 되고, 밤 문화 형성은 1904년 오픈한 명월관으로 꽃을 피운다. 협률사에서 밤 공연 감상을 하고, 명월관에서 새벽까지 풍류를 즐기는 문화가 자리잡게 된다. 협률사는 상류층만 향유하던 궁중 및 기생 연희 문화를 입장료만 내면 볼 수 있어 대중들에게 폭발적인 관심을 끌게 된다.
<에피소드3>결국 풍기문란을 걱정하던 당시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협률사를 중심으로 한 실내 극장 협파론이 등장한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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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석

  1. 우수진, 협률사와 극장적 공공성의 형성, 우수진, 근대문학연구,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