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인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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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탄압에 대한 보복으로 프랑스군이 침입한 사건이다.
내용
역사적 배경
병인사옥이라고도 한다. 1866년 초에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금압령으로 프랑스신부와 조선인 천주교신자 수 천 명이 학살된 병인박해가 발생했다. 이때 프랑스선교사는 12명 중 3명만이 화를 면할 수 있었는데 이 3명 중, 리델이 중국으로 탈출해 주중 프랑스 함대사령관 구스타브 로즈에게 박해 소식을 알리면서 병인양요가 발생하게 되었다.
경과
날짜 | 내용 |
---|---|
1866.10.16 | 강화부 점령 |
1866.10.26 | 문수산성 전투 |
1866.11.09 | 정족산성 전투 |
1866.11.10 | 프랑스군 함대 철수 |
결과
프랑스군은 강화도 철수 시 고도서 345권과 은괴 19상자 등 문화재를 약탈해갔고 방화로 인해 외규장각 전각이 소실되었다.
강화 고려산 백련사와 병인양요 이야기
인천의 전통사찰과 불교미술(3)(103쪽)에 의하면 ...
"1866년 프랑스 군대가 강화도를 침법해 온 병인양요 때, 장녕전에 봉안되어 있던 숙종관 영조의 어진을 백련사에 잠시 보관한 적이 있었다. 당시 강화유수 이인기가 장계를 올려 장녕전에 모셨던 주 어진을 서문 밨에 있는 백련사로 옮겨 놓았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다시 어진은 왕명으로 서울의 궁궐로 옮기게 되었다. 고재형이 지음 심도기행에는 1866년 9월 프랑스 군이 쳐들어 와 강화성이 함락되었을 때, 별검 최씨가 두 어진을 받들고 서울로 들어와 궁 안의 진전에 종안하였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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