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백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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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9년 6월 25일 (화) 04:2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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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련사(白蓮寺)는 강화도 고려산오련사 전설의 의하면 고구려시대부터 고려산 일원에 존재했던 사찰이다.

역사기록에 언급된 백련사

  • 1530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산에 '백련사'란 사찰이 있다.
  • 1696년 『강도지』에 의하면 고려산에 '백련사'란 사찰이 있었다.
  • 1696년 『강도지』에 의하면 고려산 북쪽 기슭에 '백련사'란 사찰이 있다.
  • 1760년 여지도서 강화부지에 의하면 고려산 북쪽 기슭에 '백련사'란 사찰이 있으면 면 며쪽으로 강화부와의 거리가 8리이며 절의 누각에 석주권필의 가 현판에 있다.
  • 1783년 강화부지에 의하면 '백련사'란 사찰이 있다.
  • 1783년 강화부지에 의하면 고려산 북쪽에 '백련사'란 사찰이 있다.
  • 1906년 『심도기행』에 의하면 백련사가 고려산 서쪽에 있다.
  • 1932년 『속수증보강도지』에 의하면 '백련사'란 사찰이 있으며 국정사의 서북쪽 언덕 넘어 있다고 하며 그윽함과 시원함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조망이 뛰어난 곳이라고 한다.
  • 1942년 전등사본말사지에 의하면 '백련사'란 사찰이 있다.



강화 고려산 백련사와 병인양요 이야기

인천의 전통사찰과 불교미술(3)(103쪽)에 의하면 ...

"1866년 프랑스 군대강화도를 침법해 온 병인양요 때, 장녕전에 봉안되어 있던 숙종영조어진백련사에 잠시 보관한 적이 있었다. 당시 강화유수 이인기가 장계를 올려 장녕전에 모셨던 주 어진을 서문 밨에 있는 백련사로 옮겨 놓았다고 보고하였다. 그러나 다시 어진은 왕명으로 서울의 궁궐로 옮기게 되었다. 고재형이 지음 심도기행에는 1866년 9월 프랑스 군이 쳐들어 와 강화성이 함락되었을 때, 별검 최씨가 두 어진을 받들고 서울로 들어와 궁 안의 진전에 종안하였다고 하였다."


백련사지 위치

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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