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적련사(赤蓮寺) 적석낙조(積石落照)"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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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big>赤蓮寺在碧山'''南''' (<small>적련사재벽산'''남'''</small>) 적련사는 고려산의 남쪽에 있는데, <br />積石奇形手欲'''探''' (<small>적석기형수욕'''탐'''</small>) 돌 쌓은 모습 기이하여 만지고 싶어졌네.<br />夕照倘沈西海否 (<small>석조당침서해부</small>) 저녁 해는 서쪽 바다로 잠기는 게 아닐까,<br />先將此理問[https://hanja.dict.naver.com/search?query=%E7%9E%BF%E6%9B%87 瞿'''曇'''] (<small>선장차리문구'''담'''</small>) 먼저 이 이치를 부처에게 물어볼까.<b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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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적련사(赤蓮寺)는 고려산 서남쪽에 있다. 지금은 적석사( | + | ○ 적련사(赤蓮寺)는 고려산 서남쪽에 있다. 지금은 적석사(積石寺)라고 한다.<br /> |
− | + | ○ 낙조(落照)는 강화부 10경(景)의 하나이다. 중수한 사실을 적은 비문의 글씨는 상서 윤순(尹淳)이 썼다. | |
− | ○ 낙조(落照)는 강화부 10경(景)의 하나이다. 중수한 사실을 적은 | + | ○ 전하기를 “장차 좋은 일이 일어날 때는 서기가 충만하고 장차 재변이 일어날 때는 우물이 마른다.”라고 하였다.<br /> |
− | 비문의 글씨는 상서 윤순(尹淳 | + | ○ 또 말하기를 “정축년(1637) 오랑캐들이 이곳에 왔을 때 머리 숙여 예배하였고 거주하는 승려들이 피해를 면하였다고 하는데 일이 대략 다음과 같다.”라고 하는데 황당해서 믿지 못하겠다.<br /> |
− | ○ 전하기를 “장차 좋은 일이 일어날 때는 서기가 충만하고 장차 | + | ○ 정축의 난리에 정명공주(貞明公主)가 이곳에 피난하였는데 그 초상화를 두었었다. 화재를 겪어서 사찰을 중수하였는데 예전의 정명공주의 초상화는 다시 보지 못하였다.<br /> |
− | 재변이 일어날 때는 우물이 마른다.”라고 하였다. | + | |
− | ○ 또 말하기를 “정축년(1637) 오랑캐들이 이곳에 왔을 때 머리 | + | ○ 동악 이안눌이 지은 사남루(寺南樓)에 대한 시는 다음과 같다.<br /> |
− | 숙여 예배하였고 거주하는 승려들이 피해를 면하였다고 하는데 일이 | + | “길에는 해당화가 피어있고(逕又棠花發) 처마에는 제비새끼 나는구나.(簷仍燕子飛)<br /> |
− | 대략 다음과 같다.”라고 하는데 황당해서 믿지 못하겠다. | + | 젊어서 일찍이 도착했지만(眼靑曾到處) 늙어서야 비로소 돌아간다네.(頭白始歸時) <br /> |
− | ○ 정축의 난리에 정명공주(貞明公主)가 이곳에 피난하였는데 그 | + | 양남곡에서 잎사귀를 채취하고(採葉楊南谷) 면북기에서 고기를 낚는구나.(釣魚沔北機) <br /> |
− | 초상화를 두었었다. 화재를 겪어서 사찰을 중수하였는데 예전의 | + | 십년 동안의 한스러움은(十年前後恨) 이 누각과 더불어 알고 있네.(留與一樓知)”<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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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동악 이안눌이 지은 사남루(寺南樓)에 대한 시는 다음과 같다. | + | |
− | “길에는 해당화가 피어있고(逕又棠花發) 처마에는 제비새끼 | + | ○ 전정(前正) 정휴(鄭庥)는 유수 이익(李翊)과 함께 모임을 가지려고 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시를 지었다. 시는 다음과 같다. <br /> |
− | + | “나귀타고 높은 비탈 오르는데(騎驪上危磴) 흰구름 사이에 절이 있다네.(寺在白雲間) <br /> | |
− | + | 미망의 바깥에는 해읍이 있고(海邑迷茫外) 깁 사이로 종소리가 나는구나.(鐘聲縹紗間) <br /> | |
− | + | 축축한 찬비에 걱정 많은데(却愁寒雨濕) 한가로운 노승이 부러웁구나.(偏羨老僧閒) <br /> | |
− | + | 높이 오르면 굽히기 어려우니(高駕應難枉) 숲 속을 질러서 혼자서 돌아오네.(穿林獨自還)”<br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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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만난 뒤에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br /> | |
− | + | “불단에는 아침햇살 비치고(採龕暎朝日) 절간에선 돌끝에 앉는다네.(禪菴駕石端) <br /> | |
− | + | 하늘은 창해 밖으로 이어지고(天連滄海外) 사람은 비취빛 속에서 말하네.(人語翠微間) <br /> | |
− | ○ 전정(前正) 정휴(鄭庥 | + | 여러 해의 괴로움을 벗어나(已脫經年苦) 이날에야 한가함 즐긴다네.(偏因此日閒)<br /> |
− | 가지려고 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시를 지었다. 시는 다음과 같다. | + | 노니는 일은 다시 얻기 어려워라(淸遊難在得) 저녁이라도 돌아감을 재촉말아라.(向夕莫催還)”<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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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유수 심성진(沈星鎭)의 시는 다음과 같다. <br /> | |
− | + | “절의 누대 높이 솟아 바위를 누르는 듯(寺樓高壓石嶬峨) 하늘은 가까워 손으로도 만지는 듯.(尺天雲霄手可摩) <br /> | |
− | + | 승려 떠난지 언제런가 불경만이 남아있고(師去何年留寶揭) 손은 와서 종일토록 바라소리 듣는구나.(客來終日聽婆羅) <br /> | |
− | + | 깊은 숲속 세 가지의 나무가 있다지만(深林應有三枝椏) 기이한 자취는 오색 연꽃에서 들었네.(異迹曾聞五色荷) <br /> | |
− | ○ 만난 뒤에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불단에는 아침햇살 | + | 상서로운 기운은 언제나 일어나지만(瑞氣尋常朝暮起) 영험한 고을이라 사람들은 말을 하네.(人語靈驗在邦家)” <b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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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 내가[저자 고재형]이 이 절에서 노닐고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br /> | |
− | + | “층층이 싸인 바위 높게도 올라서(積石層層高可攀) 푸른 숲속에 승려가 인도하여 들어오네.(寺僧導入碧松間) <br /> | |
− | 노니는 일은 다시 얻기 어려워라(淸遊難在得) 저녁이라도 돌아감을 | + | 불교는 우리 도가 아니라고 누가 말했나(誰言鷲嶺非吾道) 용문에 오르려면 이산부터 거쳐야지.(欲至龍門自此山)<br /> |
− | 재촉말아라.(向夕莫催還)” | + | 나무가 하늘 받친 듯 남은 빛이 걸려있고(若木浮天殘照掛) 적련은 뭍으로 나와 서운이 조화되네.(赤蓮出陸瑞雲斑) <br /> |
− | ○ 유수 심성진(沈星鎭 | + | 사물을 보는 것은 모두가 인연이라(推看物物皆因果) 만겁이 흘러서 바다 소리 찾는구나.(萬㤼流覓聲海灣)”<br /> |
− | 솟아 바위를 누르는 듯(寺樓高壓石嶬峨) 하늘은 가까워 손으로도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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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師去何年留寶揭) 손은 와서 종일토록 바라소리 듣는구나.( | + | ==기행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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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 778-3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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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C) 37.744544, 126.426281, [[170. 고려산(高麗山*)]] 고려산 현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 | |
− | 언제나 일어나지만(瑞氣尋常朝暮起) 영험한 고을이라 사람들은 말을 | + | |
− | 하네.(人語靈驗在邦家)” | + | 3#000000 |
− | ○ 내가[저자 고재형]이 이 절에서 노닐고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 | + | |
− | “층층이 싸인 바위 높게도 올라서(積石層層高可攀) 푸른 숲속에 | + | (B) 37.746236, 126.447813, [[171. 청련사(靑蓮寺)]] 현 청련사 강화읍 국화리 550 |
− | + | (B) 37.750813, 126.437912, [[172. 백련사(白蓮寺)]] 현 백련사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 231 | |
− | 누가 말했나(誰言鷲嶺非吾道) 용문에 오르려면 이산부터 거쳐야지. | + | (B) 37.737200, 126.410483, [[173. 적련사(赤蓮寺)_적석낙조(積石落照)]] 현 적석사 강화군 내가면 연촌길 181 |
− | (欲至龍門自此山) 나무가 하늘 받친 듯 남은 빛이 걸려있고( | + | (B) 37.740883, 126.445149, [[174. 홍릉(洪陵)]] 현 고려고종홍릉 강화읍 국화리 산157-2 |
− | + | (B) 37.688558, 126.321329, [[175. 보문사(普門寺)_첩도(疊濤)]] 현 보문사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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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리 찾는구나.(萬㤼流覓聲海灣)” | + | </googlema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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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 ==인물== | ||
− | * | + | * 정휴(1625년 출생) 자는 대경(大卿). 본관은 경주(慶州). |
+ | * 이익(1629∼1690)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계우(季羽), 호는 농재(農齋). | ||
+ | * 심성진(1659년 출생) 자는 시서(時瑞) 본관은 청송(靑松). | ||
+ | * 윤순(1680∼1741) 조선 후기의 문신·서화가.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중화(仲和), 호는 백하(白下)·학음(鶴陰). 만년에는 나계(蘿溪)·만옹(漫翁)이 | ||
+ | 라 하였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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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 ==참고== | ||
+ | * 적련사는 현재의 적석사인데, 내가면 고천리에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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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 <references/> |
2019년 4월 20일 (토) 00:32 판
赤蓮寺在碧山南 (적련사재벽산남) 적련사는 고려산의 남쪽에 있는데,
積石奇形手欲探 (적석기형수욕탐) 돌 쌓은 모습 기이하여 만지고 싶어졌네.
夕照倘沈西海否 (석조당침서해부) 저녁 해는 서쪽 바다로 잠기는 게 아닐까,
先將此理問瞿曇 (선장차리문구담) 먼저 이 이치를 부처에게 물어볼까.
○ 적련사(赤蓮寺)는 고려산 서남쪽에 있다. 지금은 적석사(積石寺)라고 한다.
○ 낙조(落照)는 강화부 10경(景)의 하나이다. 중수한 사실을 적은 비문의 글씨는 상서 윤순(尹淳)이 썼다.
○ 전하기를 “장차 좋은 일이 일어날 때는 서기가 충만하고 장차 재변이 일어날 때는 우물이 마른다.”라고 하였다.
○ 또 말하기를 “정축년(1637) 오랑캐들이 이곳에 왔을 때 머리 숙여 예배하였고 거주하는 승려들이 피해를 면하였다고 하는데 일이 대략 다음과 같다.”라고 하는데 황당해서 믿지 못하겠다.
○ 정축의 난리에 정명공주(貞明公主)가 이곳에 피난하였는데 그 초상화를 두었었다. 화재를 겪어서 사찰을 중수하였는데 예전의 정명공주의 초상화는 다시 보지 못하였다.
○ 동악 이안눌이 지은 사남루(寺南樓)에 대한 시는 다음과 같다.
“길에는 해당화가 피어있고(逕又棠花發) 처마에는 제비새끼 나는구나.(簷仍燕子飛)
젊어서 일찍이 도착했지만(眼靑曾到處) 늙어서야 비로소 돌아간다네.(頭白始歸時)
양남곡에서 잎사귀를 채취하고(採葉楊南谷) 면북기에서 고기를 낚는구나.(釣魚沔北機)
십년 동안의 한스러움은(十年前後恨) 이 누각과 더불어 알고 있네.(留與一樓知)”
○ 전정(前正) 정휴(鄭庥)는 유수 이익(李翊)과 함께 모임을 가지려고 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시를 지었다. 시는 다음과 같다.
“나귀타고 높은 비탈 오르는데(騎驪上危磴) 흰구름 사이에 절이 있다네.(寺在白雲間)
미망의 바깥에는 해읍이 있고(海邑迷茫外) 깁 사이로 종소리가 나는구나.(鐘聲縹紗間)
축축한 찬비에 걱정 많은데(却愁寒雨濕) 한가로운 노승이 부러웁구나.(偏羨老僧閒)
높이 오르면 굽히기 어려우니(高駕應難枉) 숲 속을 질러서 혼자서 돌아오네.(穿林獨自還)”
○ 만난 뒤에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불단에는 아침햇살 비치고(採龕暎朝日) 절간에선 돌끝에 앉는다네.(禪菴駕石端)
하늘은 창해 밖으로 이어지고(天連滄海外) 사람은 비취빛 속에서 말하네.(人語翠微間)
여러 해의 괴로움을 벗어나(已脫經年苦) 이날에야 한가함 즐긴다네.(偏因此日閒)
노니는 일은 다시 얻기 어려워라(淸遊難在得) 저녁이라도 돌아감을 재촉말아라.(向夕莫催還)”
○ 유수 심성진(沈星鎭)의 시는 다음과 같다.
“절의 누대 높이 솟아 바위를 누르는 듯(寺樓高壓石嶬峨) 하늘은 가까워 손으로도 만지는 듯.(尺天雲霄手可摩)
승려 떠난지 언제런가 불경만이 남아있고(師去何年留寶揭) 손은 와서 종일토록 바라소리 듣는구나.(客來終日聽婆羅)
깊은 숲속 세 가지의 나무가 있다지만(深林應有三枝椏) 기이한 자취는 오색 연꽃에서 들었네.(異迹曾聞五色荷)
상서로운 기운은 언제나 일어나지만(瑞氣尋常朝暮起) 영험한 고을이라 사람들은 말을 하네.(人語靈驗在邦家)”
○ 내가[저자 고재형]이 이 절에서 노닐고 지은 시는 다음과 같다.
“층층이 싸인 바위 높게도 올라서(積石層層高可攀) 푸른 숲속에 승려가 인도하여 들어오네.(寺僧導入碧松間)
불교는 우리 도가 아니라고 누가 말했나(誰言鷲嶺非吾道) 용문에 오르려면 이산부터 거쳐야지.(欲至龍門自此山)
나무가 하늘 받친 듯 남은 빛이 걸려있고(若木浮天殘照掛) 적련은 뭍으로 나와 서운이 조화되네.(赤蓮出陸瑞雲斑)
사물을 보는 것은 모두가 인연이라(推看物物皆因果) 만겁이 흘러서 바다 소리 찾는구나.(萬㤼流覓聲海灣)”
기행 지도
인물
- 정휴(1625년 출생) 자는 대경(大卿). 본관은 경주(慶州).
- 이익(1629∼1690) 본관은 우봉(牛峰). 자는 계우(季羽), 호는 농재(農齋).
- 심성진(1659년 출생) 자는 시서(時瑞) 본관은 청송(靑松).
- 윤순(1680∼1741) 조선 후기의 문신·서화가. 본관은 해평(海平). 자는 중화(仲和), 호는 백하(白下)·학음(鶴陰). 만년에는 나계(蘿溪)·만옹(漫翁)이
라 하였다.
참고
- 적련사는 현재의 적석사인데, 내가면 고천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