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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조선시대 예문관(藝文館)에 소속된 정구품(正九品) 관직이다. 위로 영사(領事: 正一品)가 1원으로 영의정(領議政)이 예겸하며, 대제학(大提學: 正二品), 제학(提學: 從二品), 직제학(直提學: 正三品), 응교(應敎: 正四品) 각 1원, 봉교(奉敎: 正七品), 대교(待敎: 正八品) 각 2원, 검열(檢閱: 正九品) 4원이 있다.
1392년(태조 1) 건국 당시에는 예문춘추관(藝文春秋館)의 직관(直館: 正九品)으로 설치하였다가 1401년(태종 1) 예문춘추관을 예문관과 춘추관으로 분리 개편할 때 검열로 바꾸어 예문관에 정원 4원을 두었다.
승지와 더불어 왕의 측근에서 일하는 근시(近侍)로 지칭되며, 사실(史實)의 기록과 왕명의 대필 등을 맡았으므로 사신(史臣)이라고도 한다.
또 같은 예문관 관직인 봉교(奉敎: 正七品) 2원, 대교(待敎: 正八品) 2원과 함께 8한림(八翰林)이라 하였으며, 상하번(上下番)으로 나누어서 좌·우사(左右史)를 삼았다. 춘추관의 기사관(記事官)을 겸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