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학회"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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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6월 18일 (화) 00:04 판
정의
우리말과 글의 연구를 목적으로 조직된 단체. 현재 한글학회의 전신 [1]
내용
시대적 배경
- 1930~40 년대는 조선에 대한 일본의 탄압이 최정점에 이른 시기였다. 일본은 1929년에 경제 대공황을 겪은 이후, 1910년대에 사용한 무단통치 방식을 1930년대부터 다시 사용하며 민족 말살정치를 시작했다.
- 일본은 황국 신민화라는 명목으로 내선일체와 일선동조를 강조, 조선의 민족성을 말살시키기 위해 황국 신민 서사 암송을 강요하고, 조선총독부에서는 조선어와 조선의 역사를 교육하는 것을 금지했으며,조선인들에게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강요했다.
- 일본은 나라의 말과 글에는 혼과 정신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말과 글을 없애는 일에 가장 공을 들였다.
- 그리하여 용기있는 학자들이 뜻을 모아 조선어학회를 설립하게 된다.
설립
- 1907년 주시경과 지석영의 주도로 설립된 국문연구소
- 조선어 연구회(1921)에서 가갸날 제정(1926), 잡지 한글 창간(1927)
- 마지막으로 이 두 단체를 계승한 조선어 학회설립(1931)
업적
- 장지영, 김윤경,이윤재, 이극로,최현배, 이병기 등을 회원으로 하여 연구발표회와 강연회를 갖고 한글의 우수성을 선전.
- 1927년 2월부터 기관지 <한글>발간
- 1929년 <조선어사전> 편찬사업 착수 (일제의 탄압으로 출판하지 못함. 후에 한글학회에서 사업을 이어받아 조선말큰사전 출판)
-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 제정
사건
- 조선어학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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