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규장외각(奎章外閣)"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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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정조 신축년(1781)에 유수 서호수(徐浩修)에게 명하여 행궁의 동쪽에 규장외각(奎章外閣)을 지어서 열조(列朝)의 보첩(譜牒)·단보어제(丹寶御製) | + | ○ 정조 신축년(1781)에 유수 서호수(徐浩修)에게 명하여 행궁의 동쪽에 규장외각(奎章外閣)을 지어서 열조(列朝)의 [https://terms.naver.com/entry.nhn?docId=630946&cid=50766&categoryId=50794 보첩(譜牒)])·단보어제(丹寶御製)·[http://jsg.aks.ac.kr/data/dir/bookView.do?callNum=K2-4657 어정제서(御定諸書)]들을 봉안하였고 각신(閣臣)에게 명하여 액자를 써서 걸게 하였으니, 대체로 문장을 같게 하여 한결같이 보려는 뜻이었다. |
2019년 5월 14일 (화) 07:36 기준 최신판
奎章閣在古宮傍 (규장각재고궁방) 규장각은 행궁의 옆 자리에 있었는데,
一視天恩最我鄕 (일시천은최아향) 임금님 은혜 보여주니 우리 고장 으뜸가네.
玉牒丹書眞寶氣 (옥첩단서진보기) 옥첩과 단서는 참된 보배 기운이니,
海西夜夜亘虹光 (해서양야긍홍광) 서쪽 바다엔 밤마다 무지개빛 뻗혔네.
○ 정조 신축년(1781)에 유수 서호수(徐浩修)에게 명하여 행궁의 동쪽에 규장외각(奎章外閣)을 지어서 열조(列朝)의 보첩(譜牒))·단보어제(丹寶御製)·어정제서(御定諸書)들을 봉안하였고 각신(閣臣)에게 명하여 액자를 써서 걸게 하였으니, 대체로 문장을 같게 하여 한결같이 보려는 뜻이었다.
기행지도
인물
- 서호수(徐浩修)
참고
- 1866년 병인양요 때 프랑스 군에 의해 도서가 약탈되고 불태워진 사실은 서술되어 있지 않다.